소설리스트

〈 29화 〉#8 정보를 주고 받으며…. (2) (29/128)



〈 29화 〉#8 정보를 주고 받으며…. (2)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아침이었다.

“아.”

왕궁에 들어오고 나서 부터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것 같았다.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아아아암.”

나는 굳어진 몸을  피면서 하품을 했다.
오늘은 평소 보다 조금 늦게 일어난 것 같았다.
나는 부스스해진 머리카락을 세차게 헝클고는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높게 세워진 벽 위로 해가 걸쳐있었다.
날씨가 많이 풀렸는지, 창가로 조금씩 들어오는 햇살이 따뜻했다.
나는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고는 방문으로 향했다.
슬슬 씻어야 하기도 했고, 이대로 있다가는 다시 침대로 쓰러질 것 같아서 서둘러 욕탕으로 향하려 했다.
그래서 나는 문을 열기 위해서 문고리를 잡는 순간.

벌컥!

“뭐야…!”

갑자기 문이 열리는 바람에 나는 놀라고 말았다.

“앗….”

밖에서 문을 열은 것은 다름 아닌, 어젯밤에 욕탕에서 마주친  메이드였다.
그녀도 조금 놀란 것인지 흠칫 했다.
하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길래, 아직도 잠들어 있는줄 알았습니다.”

그녀는 한숨을 쉬고는 내 머리에서 발끝까지  훑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깊이… 잠들어 있었나 봅니다…?”

확실히 그녀의 눈에 내 모습이 많이 초췌해 보였나보다.

“아, 방금… 일어났어요.”
“…좋은 아침입니다. 씻고 식당으로 이동해 주기 바랍니다.”
“아… 네….”

나는 몽롱한 정신을 어떻게든 붙잡아 보려고 노력했다.

“그나저나, 웬일로 이 시간에 일어났나요?”

그녀는 다른 방으로 가려다 말고 나에게 물었다.

“아… 어쩌다 보니….”

어제의 일들을 그다지 떠벌리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대충 둘러댔다.

“흠, 그렇군요.”

그녀는 내 대답을 흥미롭다는 듯이 듣다가 자신의 손을 턱에 가져다 대었다.

“그, 그럼… 슬슬 씻으러….”

그녀는 방문 앞에 서서 비켜줄 생각이 없어보였기에, 나는 그녀에게 비켜달라는 말을 하려고 했다.

“아.”

그녀는 별안간 손가락을 튕기더니 그대로 나를 가리켰다.

“왜, 왜그러시나요?”

갑작스러운 지목에 나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당신, 어제의  모습을 보고 밤늦도록 욕정을 품으신 것인가요?”

그녀는 영문 모를 소리를 했다.

“…예?”

나는 그녀의 물음에 답하기 전에 그녀가 말한 것의 의미를 전혀 알 방도가 없어서 그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해 주기를 바랐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만, 왜 그런 말을 나에게 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욕정.이요.”

그녀는 딱잘라 말했다.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내가 ‘욕정’을 품었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욕정이라 함은… 남녀 사이에서 생기는 그렇고 그런 감정 아닌가?
나는 그런 감정과는 동떨어진 사람이다.
경험이 없을 뿐더러, 관심조차 없다.

“욕정이라뇨?”
“음…?”

그녀는 이상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아닌가요?”

그녀는 고개를 기울이면서 사실인지 물었다.

“예… ‘욕정’…이라뇨…?”
“음….”

그녀는 다시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보다 나는 얼른 씻고 허기진 배를 따뜻한 음식으로 채우고 싶었다.

“아… 저… 이제 슬슬….”

나는  앞에서 길을 막고 있는 그녀에게 다시 한 번 길을 비켜달라고 말하려고 했다.

“음! 제 몸으로는 부족했다는 말이군요.”

그녀의 입꼬리는 살며시 올라가 있었다. 음흉해 보이는 눈은 덤이다.

“예?”

자꾸만 마주하게되는 보라빛 눈에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왜 기가 빨리는 듯한 기분이 들지…?'

“이 무슨 알  없는 욕심…. 당신, 상당한 변태군요.”

‘변태?’

변태라…. 벽 밖의 생태계에서는 [벌레]라는 것이 존재했었다고 책에서 읽었다.
작고, 흉측하고, 재빠르다는 설명이 적혀있었다.
그리고 그 [벌레]의 유체가 성장하면서 하는 것이 변태라고 알고 있었다.
혹은… 터무니없는 오해를 하신 모양이지만, 과한 성욕을 가진 사람들을 일컫는데도 쓰인다는 것을 방금 이해하게 되었다.
성욕이라, 나는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나는 그쪽 방면으로는 방어력이 제로에 가까우니 화제를 전환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그렇게 많이 변했나요?”

이것이 언어의 순기능이다.
동음이의어.
이것은 대화라는 수단을 활용하는데 있어서 무척이나 변칙적인 방법으로 대처할 수 있다.

“네…? …확실히 첫인상 보다는 변한게 맞겠죠.”

그녀는 내가 예상과는 다른 반응을 보였는지, 살짝 당황하는 눈치였다.
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계속 지었다.
물론, 어렴풋이 알고는 있지만,  어중간한 지식은 쓸데가 없으며, 그냥 '모른다.' 라고 정의를 내려야 유용하다. 라는 생각에 근거한 행동을 취했을 뿐이다.

“아, 설마….”

그러자 그녀는 측은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고, 나는 그녀의 동정 어린 시선을 마주하고 있었다.

“…아까부터 제가 한 말은 다 잊으세요. 그냥, 농담이었어요.”

그리고 그녀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자리를 뜨려고 했다.

“예?”

갑작스럽게 돌변한 그녀의 태도에 되려 당황했다.

'뭐였던 거지….'


* * *


“앗.”
“…어.”

나는 씻고 나오면서 어깨를 잔뜩 웅크리고 있는 토니와 마주쳤다.

“토니, 잘 잤어?”

나는 방긋 웃으면서 토니에게 인사했다.

“…어.”

토니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욕탕으로 재빨리 들어갔다.
그와 조금은 친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기분이 좋았다.

꼬르륵-

나는 배에서 울리는 소리를 듣고, 서둘러 옷을 입었다.
그리고 나는 소리가 나는 배를 움켜잡고는 서둘러 식당으로 향했다.

'조금만 기다리렴, 곧 음식을 넣어줄테니….'


* * *


“페스틴! 좋은 아침~”

내가 식당에 들어서자, 마리가 나를 반겼다.

“어, 왔어?”

 옆에 있던 줄리는 입안에 음식이 가득 차있는 상태로 대답했다.
그리고 다시 아침을 먹는 것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식욕이 좋아보이네….”

전투적으로 빵과 스프를 흡입하는 줄리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침에는 별로 잘 안먹는 편이니까….

“줄리는~ 뭐든  먹으니깐~”

마리는 발을 앞뒤로 흔들거리며 스프를 떠먹었다.

'너와 견줄 자는 없음을 스스로가 알고 있으려나….'

“그러고 보니… 페퍼는?”

여느때 처럼, 그들 곁에서 나를 놀려댈게 뻔한 페퍼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까 저기로 조이드가 데려가는 것 같던데~?”

마리가 스푼으로 복도로 향하는 통로를 가리켰다.

‘조이드…?’

“무슨 일로?”
“글쎄~”

줄리의 표정을 살펴보니, 그녀 역시 잘 모르고 있는 듯 하다.

“흠… 그러면 일단 기다려 볼까?”

나는 상관 없다만, 타인은 뭐든지 함께하려는 경향이 있는 듯 하다.
페퍼가 혼자 식사를 하게 된다면 왠지 가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 그건 그닥 좋은 생각은 아닌데~?”

줄리는 머리를 갸우뚱 하고는 다시 식사를 속행했다.

“응? 왜?”
“음~ 우리도 한참 동안 기다렸다가 안오길래 먹고있는 거거든….”

마리가 숨겨두었던 접시를 꺼내면서 말했다.

‘언제 이렇게 먹은거냐…. 실로 두렵도다….’

‘여자’는 많이 먹는 생물인 것 같았다.
 사람 한정인 이야기라면 뭐… 어쩔 수 없다.
그도 그럴게 내가 본 또래의 여자는 이들이 다니까….

“그럼… 어쩔 수 없나?”
“어머, 페스틴 군! 어서오렴!”

한참 고민하고 있을 때에 메이드 아주머니가 다가왔다.

“페퍼 양은 좀 늦는다던데, 먼저 먹을래?”
“아… 그런가요?”
“그래, 어떻게 할래? 저기 두 숙녀분은 먼저 먹고 있긴 한데 말이야.”

메이드 아주머니는 맛있게 먹고 있는 줄리와 마리를 보면서 웃었다.

“음… 어쩔 수 없군요. 제것도 준비해 주세요.”
“그래!”

그녀는 나를 보면서 씨익 웃고는 주방으로 향했다.

* * *


잠시 뒤에 미리 만들어 둔 것 같은 따끈따끈한 음식이  앞에 차려졌다.
고소한 내음이 코를 스치자,  입안에 군침이 돌기 시작했다.

“우와… 맛있어 보이네~”

마리가 자신의 아침 식사는 놔두고, 내 음식을 보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네, 남의 빵이 더 커보인다는 말이 있잖아?”

줄리 역시 입맛을 다시며 내쪽을 느끼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일단 너네 몫이나 다 먹고 말하셔.”

나는 먹성이 좋은 두 숙녀분에게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알겠어….”

내가 한입이라도 줄거라고 생각했는지, 마리는 무척이나 실망한 것처럼 보였다.
시무룩해진 마리의 눈가는 부드럽게 내려앉고 있었다.

‘것참.’

“그럼, 이거 먹어볼래?”

나는 평소에 잘 안먹던 빵을 마리에게 건넸다.

“편식은 나빠.”

줄리의 따끔한 시선을 마주하니 어처구니가 없어진다.

‘신경 끄시지.’

나는 대답 대신 눈을 흘기는 것으로 반응했다.

“우와! 고마워~”

마리는 기쁜 듯이 빵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맛있게 먹었다.
마리는 빵을 베어무는 것에 너무 집중한 탓인지, 빵에 묻어있던 소스를 입가에 다 뭍히고 말았다.
마리는 눈치를 못챘는지 다시 스튜를 떠먹기 시작했다.

‘하….’

마리는 참으로 손이 많이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소브에게 해주던대로 손수건을 꺼내 마리의 입가를 닦아주었다.

“입에 묻은  수업시간 때 먹으려던  아니지?”
“음…?”

자신이 입에 소스를 뭍히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안 마리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오~ 페스틴 뭐야~? 아까부터. 묘하게 마리를 챙기는데~”

줄리는 우리를 흥미진진하게 쳐다보면서 말했다.

“음? 뭐가?”

줄리가 이번에 또 무슨 장난을 치려는 것인지 나는 경계하기 시작했다.

“흐음~?”

줄리는 나를 잠시 쳐다보더니, 이내 싱거워졌는지 다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흥, 재미없네….”
“그 손수건 빨아서 돌려줄게….”

마리는 자신의 오른손을 내밀었다.

“아니야 뭘, 괜찮아.”
“그, 그래도….”

마리는 무언가 보답하고 싶어 보였다.
귀족에게 있어서 이런건 실례이려나?
꽤나 곤란해 하고 있는 것 같아보이기도 하다.

“그럼, [커피] 또 사줘.”

흥미가 있어서 알아본 결과,  향 좋고 쓴맛이 가득한 음료의 이름은 커피라는 것을 알아냈다.
원재료가 [광석]이라는 점이 조금 걸렸지만, 우리가 늘 먹는 빵이나 스프도  광물에서 나온 추출물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뻔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었다.
어찌보면 돌만 먹고 사는 거나 다름이 없지만, 식용으로 먹을 수 있으니 뭐라 반항은 할 수 없다.
인체에 해가 없는 모양이니….
유일하게 [고기]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하다.
물론, 값이 비싸서 하층민들은 접하지 못하는 음식이긴 해도 말이다.
고기의 원재료는 무엇인지 예전에 찾아보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아마, 벽 밖에서 부터 가져오는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왕궁은 나라 전체에 흐르는 [정보]를 제어한다.
어쩌면, 고기를 탐해 벽을 넘는 무모한 행위를 막으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

나에게 커피를 사주는 것으로 만족했는지, 마리의 표정은 한결 나아졌다.

“그 쓰디쓴게 뭐가 맛있다고…. 이해가 안간다니깐….”

줄리는 자신의 생각보다 부드럽게 흘러가는 우리의 대화에 심통이  듯 하다.

“어린애 입맛은 알지 못하는, 어른들의 고급진 차라서 그런거 아닐까?”

나는 능청스럽게 줄리를 약올리기 시작했다.

“그게 그거랑 무슨 상관이야!”

줄리는 버럭 화를 냈고, 오늘은 내가 이겼다.

* * *

“어디갔다 온거야?”

수업 시작하기 조금 전에 강의실로 들어온 페퍼를 보면서 말했다.

“음…. 그럴 일이 좀… 있었어.”

나는 알고있다.
저 굳어진 표정은 사실을 숨기고 둘러대려는 표정이라는 것을 말이다.

“말하기 좀 그러면, 기다려 줄게.”

나는 어제 그녀들이 권해준 것처럼 그대로 말했다.

“파하하! 그래 그래 알았어~”

 말의 의미를 알아챘는지, 페퍼는 기분 좋게 웃었다.
잠시 뒤에 조이드가 들어왔다.

“자~ 여러분! 식사는 맛있게 하셨습니까~?”

조용했던 강의실은 조이드가 가진 특유의 목소리로 가득찼다.

“자! 오늘은~ 수업은 하지 않겠습니다!”
“엥?”

줄리는 놀라 눈이 동그래지면서 당황했다.

“그러면 무엇을 하나요?”

구석진 곳에 안토리오와 같이 앉아 있었던 안나가 말했다. 묘하게 생기가 넘치는 모습에 신선함을 느꼈다.

'마리와 대조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음~ 그 질문에 대한 제 대답은 아주 간단, 간단! 합니다.”

짝!

조이드는 힘차게 손뼉을 쳤다.
기분 좋은 울림에 나는 잠시 마음을 내려놓았다.

“또 시험인가?”

잠자코 있던 포드는 퉁명스럽게 물었다.

“물론~ 그런 재미없는 테스트는 아닙니다~ 이번에 할 것은 조금 다른 테스트죠.”

조이드는 능글맞게 긴 팔다리를 흐느적거리며 대답했다.

“테스트…?”

페퍼가 자세를 고쳐잡으면서 조이드의 말에 귀기울였다.

“네! 테스트! 여러분이 ‘인내심’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이제! 여러분이 ‘유능’한지 알아봐야겠죠?”

조이드는 빙그래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 테스트란… 바로! 들어오세요!”

조이드는 조용히 말하다가 갑자기 뒤에 있는 방문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조이드의 부름에 곧 문이 열렸고, 선생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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