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9 서서히 드러나는 쓴 맛 (1)
소리를 따라 나는 문쪽을 향해 시선을 옳겼다.
강의실로 들어온 그들은 나에게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회의’랍시고 내가 험한 꼴을 당했었던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 익숙한 얼굴들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이제부터 일어나게 될 일들을 예상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자! 다들 모였나요?”
조이드가 싱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
“애 취급하지 마라, 것보다 빨리 진행이나 하라고.”
사나이라는 명칭이 걸맞았던 그 사람이 정색하면서 말했다.
“그래, 우린 바쁘다고?”
까칠해 보이는 또 다른 여성이 동조했다.
포드와 내가 다투었을 때 우리를 말리러 온 그 사람이다.
그녀는 방금까지도 무언가를 했던 것인지, 온몸이 기름때 투성이었다.
“아하… 넵….”
조이드는 눈에 띄게 침울해져 보였다.
아무도 어울려주지 않으니, 그럴만도 하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보다가 곁에 서있었던 라이브 씨와 나는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더니 내 옆에 있는 페퍼를 향해 환하게 웃어보였다.
‘뭐야…?’
“라이브 씨도 있어!”
페퍼는 자신의 기쁨을 감추지 못하면서 말했다.
“그, 그렇네….”
나는 왠지 찜찜한 기분이 들어 어정쩡하게 대답했다.
“…? 페스틴은 별로 안 반가운 가봐?”
역시 페퍼는 은근히 눈치가 빠르다.
“아, 아니 그런건 아니야.”
“그럼 왜…?”
‘낭패다. 어떻게 얼버무리지?’
“저분이 저번에 이야기해준 페퍼의 스승이야?”
줄리가 페퍼에게 물었다.
“응!”
‘줄리 덕에 살았다….’
“자! 시간도 시간이니… 확실히….”
조이드는 한껏 들떠있던 기분을 가라앉히고 진지해졌다.
“자, 여러분은 오늘 부터 훈련을 받게 될겁니다.”
“훈련이라니… 뭘까…?”
안토리오가 옆에 있는 안나를 부드럽게 바라본다.
“글쎄? 잘 들어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안나는 한껏 미소를 얼굴에 머금으며 대답했다.
그녀는 무척이나 안토리오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안토리오, 그렇게 보채지 않아도 듣게 될거다.”
언제 그렇게 친해졌는지, 안토리오를 진정시키는 포드였다.
“뭐… 그런가….”
안토리오는 머리를 긁적였다.
'…?'
묘한 이질감이 느껴진다.
“여러분들을 어엿한 한명의 장인과 학자로 키워내기 위해서 힘써줄 선생들입니다. 왼쪽 부터 라이브 씨, 도서관의 사서장으로써 학자 계열에 힘쓰고 있는 여러분을 도울 겁니다.”
소개를 받은 라이브 씨는 자리에 앉아있는 우리들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얼굴은 미소짓고 있었지만, 약간의 차가움이 묻어나왔다.
“그 다음의 학자 계열의 선생은 테리스, 인체 및 각종 모든 것을 분석하는 일을 하는 선생입니다.”
테리스는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하고는 자신의 품속에 안겨있던 서류에 무엇인가를 적기 시작했다.
습관적인 행동인 듯 하다
그런 돌발적인 그녀의 행동에 선생들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아… 네, 그 다음은 브란도 씨 입니다. 역시 학자 계여….”
앞서 소개받은 브란도는 조이드의 말을 끊고는 우리에게 인사했다.
“반갑다.”
그 사나이 같은 느낌이 강했던 그 사람의 이름은 브란도였다.
팜 아저씨가 소개해준 사람 중 한명이다.
“아… 저… 제 말이 안끝났는데요….”
“됐고, 빨리 장소 안내나 해. 우리 소개는 나중에 찬찬히 할테니까.”
옷에 기름때가 잔뜩 묻혀있는 그녀가 귀찮아하면서 말했다.
슬슬 조이드가 불쌍해지기 시작했다.
“그래 그래, 불필요한 것은 건너 뛰는게 좋지 않냐?”
히터도 거들면서 말했다.
그의 말에는 귀찮음이 묻어나왔다.
“그래, 너무 질질끈다.”
베피가 그를 감싸주지 않고 타박했다.
“아하하….”
'힘내시죠. 조이드.'
“그… 그럼… 선생들을 따라가시죠…. 자세한건 가서 듣게되실 겁니다….”
조이드는 매우 시무룩해 하면서 토라졌다.
그런 그를 방치한 채로 우리는 강의실을 떠났다.
‘먼저… 갑니다….’
* * *
나를 포함한 ‘장인’에 지망한 우리는 그녀들을 따라갔다.
페퍼를 포함한 '학자' 계열에 지망한 사람들은 아까 전에 헤어졌다.
훈련 받는 장소가 다른 것 같았다.
헤어지면서 페퍼는 힘내자는 의미로 주먹을 꽉쥐고는 방긋 웃었다.
나도 웃으면서 화답했다.
참고로 ‘학자’에 지망한 사람은 페퍼, 줄리, 포드, 안토리오, 안나였다.
그녀들의 뒤를 따라가는 나의 옆에 있는 두 사람이 ‘장인’에 지망했다.
그 두 사람은 당연히 마리와 토니였다.
나는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 두 사람에게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고있다.
'동갑 보다는 연하라는 느낌이 강해서 그런가….'
그나저나, 나는 억센 그녀들의 밑에서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일단은, 함께할 동지와 친해지는 것은 중요해 보였다.
“토니, 앞으로 잘해보자고?”
나는 말없이 걷고 있었던 토니에게 말했다.
“…어….”
“오~? 페스틴, 토니랑 친해진거야?”
마리가 대단하다는 듯이 말했다.
“어? 그런가…?”
나는 무턱대고 친하다고 한다면 토니에게 실례일 것 같아서 두리뭉실하게 대답했다.
“…딱히… 인사… 정도만.”
‘다행이다… 하마터면 난감하게 될 뻔했네.’
“그정도만 해도 대단한거 아니야~?”
마리가 놀리는 것인지 칭찬하는 것인지 모를 말을 했다.
“딱히….”
토니는 시선을 회피하면서 대답했다.
‘응?’
“토니도 많이 변하긴 했구나?”
마리가 토니가 기특하다는 듯이 말했다.
“음? 토니랑 알고 있는 사이였어?”
나는 마리에게 물었다.
“응! 누나야~”
“어…?”
“…아니야….”
“그, 그래…?”
한껏 웃는 마리와 달리, 토니는 무척이나 정색하고 있었다.
그런 토니의 반응이 재밌었는지 마리는 웃기 시작했다.
‘것참….’
“잠깐 인연이 있었을 뿐이야~”
“그래? 어쩌다가?”
“글쎄~? 그건 토니가 알고있지 않을까~?”
마리는 대답을 토니에게 떠넘기다 싶이 말했다.
“하아….”
토니는 깊고 긴 한숨을 내뱉었다.
“…어쩌다가 만나게 된거야?”
나는 토니를 보면서 물었다.
“…아… 그냥 도서관에서 만난거야.”
“도서관?”
나는 마리를 바라보았지만, 여전히 대답할 마음은 없어보였다.
“그렇구나, 그럼 거기서 친해진거야?”
“…아니….”
“응? 둘은 안 친한거야?”
“…”
토니는 말이 없었다.
나는 대충 어떻게 된 것인지 예상이 되었지만 토니의 입으로 사실을 듣고 싶었다.
“어….”
더 이상 토니가 입을 열을 것 같지가 않아서 나는 난감해졌다.
“그냥 몇번 마주친게 다야~”
마리는 토니를 대신해서 답해주었다.
“토니도 나와 같은 제 3구역에서 왔거든.”
분명 줄리도 제 3구역에서 왔다고 들었다.
“그렇구나, 음…. 그래서 그랬구나.”
내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나는 분명 그 둘은 부모가 친하기 때문에 서로 알고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여러번 말을 걸었는데~ 완전히 무시당했어.”
변함없는 토니의 모습이 나는 조금 웃겼다.
“토니는 여전하네.”
피식 웃는 나를 토니가 째려봤다.
“아, 아… 미안 농담이었어.”
“…됐어….”
“자, 도착했다 애송이들아.”
까칠해 보이는 그녀가 멈추면서 말했다.
그리고는 뒤돌아 보면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난 소피, 편하게 아무렇게나 불러.”
“난 알고있지?”
베피가 팔짱을 끼면서 말했다.
“네~”
마리가 손을 번쩍 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둘은 흡족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두 사람 뿐인가요?”
나는 다른 사람이 더 없는지 궁금해졌다.
“뭐? 나로는 부족하다는 거야?”
소피가 인상을 구기면서 말했다.
“네? 아, 아뇨 그런 뜻이 아니라요.”
“그런 뜻이 아니라면 뭔데?”
베피도 거들면서 말했다.
“아… 저….”
양옆을 보니 이미 토니와 마리는 공장 안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빠르네….'
나는 여기서 잘못 말했다가는 미래의 내가 아주 힘들어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고개를 숙이고 비굴하게 사과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죄송합니다. 심기를 건드리는 말을해서….”
“흥, 알면서 그런거야?”
베피가 나를 비꼬았다.
“후… 귀엽네? 오늘은 내가 기분이 좋으니까 그냥 넘어가겠지만 말이야….”
소피는 내 어깨에 손을 얹고는 내 귀에 대고 말했다.
“또 그러면 남자구실 못하게 해주지.”
소피의 손은 나의 사타구니 근처로 향했다.
그녀라면 진짜로 할 것 같아서 소름이 돋았다.
‘것참, 정말 무서운 사람들이구만….’
나는 으름장을 놓고 공장으로 들어가는 두 사람을 따라 걸어갔다.
* * *
“그래서요~ 여기서 뭘하는 건가요?”
마리가 소피에게 물었다.
“아? 못들은 거냐? 너희들은 여기서 무기 개발을 할거다.”
“…무기요…?”
토니가 당황하고 있었다.
“젠장, 조이드 녀석 설명을 안해준거 아냐?”
소피가 베피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설마, 난 제대로 말해뒀다고?”
베피는 자신은 결백하다는 듯이 말했다.
“하… 교육을 더 해야되나?”
소피는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흠… 아무래도 그런 것 같네.”
베피도 그녀의 말에 동의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또 그녀들에게 험악한 말을 듣는 것은 사양이라 아까부터 잠자코 있었다.
“노예,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베피가 갑자기 나를 보면서 물었다.
“네…? 어… 적절한 교육은 도움이… 되죠…?”
‘것참 나만 가지고 그러네….’
베피는 나의 대답을 무시했다.
‘아? 그럴 거면서 왜 물어본겁니까?’
그리고 원래 조이드가 전해주어야 했던 그 말을 우리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너희는 방벽 밖에 있는 괴물들을 잡기 위한 무기를 만들어야 해”
“괴, 괴물…? 무, 무기요~?”
뭐, 이미 들은 내용이기는 하다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들으니, 실감이 안난다.
마리는 처음 듣는 이야기에 당황한 것인지, 그녀의 두 팔은 허공을 헤매이고 있었다.
“정말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구나.”
“그러게 괜히 ‘상냥함’을 설정해가지고 이 사단이 난거 아냐.”
소피가 베피를 탓하면서 말했다.
“내, 내가 이럴 줄 알았나!”
베피가 당황하면서 말했다.
“크흠, 아무튼 너희들의 첫 과제는 너희에게 맞는 무기를 제작하는거야.”
베피는 말을 돌리려고 애썼다.
그런 베피가 안쓰러웠는지 소피는 딱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래… 시간도 별로 없고 말이야.”
“괜한 테스트를 한다고 시간을 날려버리는 바람에 이렇게 된거야. 따지려면 국왕에게 하던지.”
베피는 한쪽 방문을 열면서 말했다.
“여기는 남자 출입금지 구역. 마리…라고 했던가? 여기서 옷갈아 입으면 돼.”
베피는 나를 째려보면서 말했다.
‘아니, 토니도 남자라고요?’
그런 내 마음속을 읽었는지 소피가 말했다.
“토니는 무해한 녀석이야.”
그러고는 토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스승님… 하지마세요….”
‘아… 인생은 불합리하다.’
“자재는 여기 있는거 마음대로 가져가서 써도 돼.”
소피가 자재 더미가 놓여 있는 곳을 가리켰다.
“혹시… 코어를 사용할 수 있나요?”
나는 계획의 폭을 넓히고자, 소피에게 물었다.
소피는 의외의 질문이 나와서 감탄하는 듯 했다.
“음~? 코어의 사용법을 알고 있어?”
“네… 뭐… 팜 아저씨가 알려줘서요.”
“푸핫! 아저씨라…!”
베피는 내 말을 듣고는 웃었다.
“그래, 코어는 저기에 보관 되어있어, 쓰고 싶으면 말해. 아무나 열지 못하는 거니깐.”
소피는 말투가 너그러워진 상태로 설명해 주었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나는 그녀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그녀는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자신에게 맞는 무기라뇨?”
마리는 여전히 당혹스러워 하고 있었다.
“응, 너희는 괴물과 싸워야 하니까.”
소피는 담담하게 말했다.
“자신에게 맞는 싸움 방식을 알고 싶으면 우리와 대련해 보면 될거야.”
웬일로 상냥하게 말하는 베피였다.
“…스승님…설명을 더 해주어야….”
토니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 담담하게 말했다.
“음… 그런가…?”
소피는 한명의 순수한 소녀에게 이 이야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면… 다른 애들은요?”
마리가 걱정하면서 물었다.
“다른 애들도. 너희는 걔네들보다 일찍 시작하는거야. 걔네들의 무기를 너희가 만들어야 하거든.”
베피가 설명했다.
“아….”
마리는 난처 해졌다.
자신이 상상하던 것이 아니어서 일까?
그녀는 어떻게 해야할지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괴물… 이란게 뭐죠…?”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아, 괴물….”
마리는 잊고 있었다는 듯이 말했다.
“보여주는게 빠른 듯 하네.”
베피는 그렇게 말하고는 한쪽에 비치되어있는 통신기에 다가가서 뭐라뭐라 중얼거렸다.
“그럼, 슬슬 보러갈 준비를 할까?”
소피는 그렇게 말하고는 한쪽에서 그녀의 무기로 보이는 물건을 집어들었다.
그것은 기다란 막대기에 곡선으로 휘어져있는 칼날이 붙어있는 것이었다.
내가 굉장히 관심이 있어보였는지 소피가 나를 보더니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이건 내 무기, ‘낫’이라고 해.”
“‘낫’…이요?”
“응, 원래 작물을 재배할 때 쓰였는데, 쓸모가 없어져서 말이야. 그래서 내가 좀 개조해 보았지.”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과거에는 ‘식물’을 재배해서 식용으로 썼었다.
하지만 더 이상 재배 할 환경이 아니게 되어서 ‘배’를 타고 밖에서 식재료를 구해온다는 것을, 나는 기억해 냈다.
“참고로, 괴물들은 한 번에 처치해야 해.”
소피가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것 처럼 말했다.
“외피가 두텁거든,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너희들의 목숨이 위험해지니깐.”
베피는 목숨이라는 단어를 힘주며 말했다.
아마 그녀도 무언가 잃은 경험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닐까….
그때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났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조이드였다.
아까 베피가 중얼거린 것은 필시 조이드를 호출하는 것이었나 보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상하지 못한 조이드는 밝게 웃고 있었다.
“얘들아 잠시만 기다려 줄래?”
상냥하게 웃으며 말한 소피는 베피와 함께 조이드를 데리고 어디론가 갔다.
* * *
돌아온 조이드는 덜덜 떨고 있었다.
‘과연 어떤 일을 당했길래….’
“그럼, 가볼까?”
소피가 앞장서면서 말했다.
‘괴물…이라 함은, 저번에 조우한 그 쇳덩이의 ‘괴물’과 관련이 있는 것인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