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9 서서히 드러나는 쓴 맛 (2)
소피와 베피를 따라 걸어간 우리는 위를 향해 올라가고 올라갔다.
“하아… 힘드네~ 페스틴은 힘들지 않아?”
마리는 구슬땀을 흘리며 나에게 물었다.
나는 여기서 약한 소리를 한다면 앞서가는 두 사람에게 뭐라도 들을 것 같았다.
‘물론 내 지나친 걱정이지만….’
나는 조금이라도 손해보는 일은 없는게 좋다고 생각했다.
뭐든 결과를 생각하며 행동해야 실패를 덜 경험 할테니까.
“나는 괜찮아, 많이 힘들어 보이네.”
약한 소리를 하는 것 보다 아까부터 힘들어 하고 있는 마리를 걱정했다.
“그래~? 나는 솔직히 힘들어.”
“조금만 더 버텨봐라, 고지가 코앞이다.”
베피가 조금도 돌아보지 않은채로 말했다.
‘거추장스러운 옷을 입고서 어째서 그렇게 잘 올라가는지….’
“왜, 무슨 할 말 있어?”
나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베피는 돌아보며 말했다.
“아, 아닙니다….”
그녀의 시선이 나의 눈동자에 박히자 간담이 서늘해졌다.
어찌나 눈치가 빠른지 다음 부터 조심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왔다.”
소피는 그렇게 말하며 무거워 보이는 철문 앞에 섰다.
그리고는 돌아보면서 나를 응시하기 시작했다.
‘음?’
옆에 서있었던 베피도 나를 응시하기 시작했다.
‘예…? 뭡니까?’
“아… 저….”
자꾸만 불안한 느낌이 든다.
그녀들이 무언가를 말해주기를 바랐지만, 그들의 입은 쉽사리 열리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고, 팔짱을 끼고있는 소피의 등 너머로 문에 자꾸 눈길이 갔다.
‘혹시 저 철문을 내가 열어야 된다는… 건가…?’
나는 조심스레 철문을 가리켰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남들에게 부려먹혀진다는 것은 꽤나 슬픈 일이다.
내 손가락을 눈길로 따라가던 베피가 고개를 끄덕였다.
“꼭 말로해야 알아듣나?”
한숨을 쉬면서 베피가 말했다.
“가녀린 여성을 대신해서 해줘야 되는거 아냐?”
소피가 잔뜩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나의 마음속에는 거부감이 들긴 했지만, 내가 만족한다면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무엇이든지 마음이 원하게 만들면 일이 쉬워지는 것 같았다.
“그럼요, 당연하죠….”
하지만 여전히 내 마음속은 착잡했다.
“그렇게 나와야지~”
소피는 귀찮은 일을 떠맡길 사람이 생겼다는 것이 기쁜 듯 했다.
나는 그 육중해 보이는 철문 앞에 섰다.
나는 문고리를 잡고 돌렸고, 문을 열기 위해 밀었다.
삐걱!
자주 사용하지 않은지 문은 비명을 지르며 열리기 시작했다.
그 철문은 무거웠지만 예상과는 달리 열 때 힘겹지는 않았다.
철컹!
잘 열리다가 소리가 나면서 철문은 굳건해졌다.
“흡…!”
나의 노력에도 철문은 좀처럼 움직이질 않았다.
“나도…. 도와줄게.”
내 뒤편에서 자그마한 목소리가 들리더니, 토니가 내 옆으로 와서 같이 밀어주기 시작했다.
“어… 고마워.”
나와 토니가 같이 힘을 주자 철문은 그제서야 자리를 비켜주기 시작했다.
“좋아, 편하고만~?”
소피는 기분이 좋은지 팔짱을 낀채로 환하게 웃기 시작했다.
“그럼, 가자고.”
베피는 차갑게 말하고는 앞장서서 가기 시작했다.
* * *
우리는 좁고 어두운 통로를 걸어갔다.
“여기는 좀 서늘하네~?”
마리가 살 것 같다는 듯이 말했다.
“당연하지~ 여기는 ‘위’라고?”
소피는 거들먹거리면서 말했다.
“위…라뇨?”
나는 꽤나 걸어올라온 이 곳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졌다.
“가보면 알게 될거다.”
베피는 자신의 드레스 끝자락이 벽과 바닥에 닿지 않도록 신경쓰면서 말했다.
‘편한 옷을 입으면 될텐데….’
“그래 이제 거의 다 왔으니까 조금만 참으라고.”
계단을 올라온 시간이 길어서인지, 이 통로를 걸어온 시간이 짧게 느껴졌다.
그녀들의 말처럼 얼마 안되는 거리에서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우리는 그 빛에 근접했고, 시원한 바람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통로의 끝에는 벽에 메달린 두꺼운 천이 펄럭이고 있었고, 통로 안으로 스며드는 주홍빛의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베피는 그 펄럭이는 두꺼운 천을 왼손으로 쳐내고는 서둘러 나갔다.
우리들도 그녀를 따라 나갔다.
“하… 역시 싫다.”
베피가 기분이 언짢다는 표정을 한채로 한숨을 쉬었다.
아마 그녀는 자신의 드레스가 더럽혀지는 것이 싫은 듯 했다.
“오, 왔습니까?”
밖으로 나가고, 강렬한 태양에 익숙해질 때 즈음 우리를 반기는 테리스가 보였다.
“생각보다 일찍 왔구만?”
브란도가 예상 외였다는 듯이 말했다.
“와~ 예쁘다!”
마리가 환호성을 질렀다.
나는 무슨 일인가 하고 마리가 보고 있는 곳을 따라 보았다.
…나의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할말을 잃게 만들었다.
나라의 온 구역이 다 보일 정도로 높은 성벽 위에서 마주한 노을빛은 형용할 수 없는 깊은 인상을 주었다.
성벽 너머로 강렬하게 타오르고 있는 태양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간혹 불어오는 바람이 내 몸을 스치고가면, 더할 나위없이 좋았다.
그냥 단순히 좋고, 좋았고, 좋았다.
“예쁘지?”
소피가 이 광경을 보여주고 싶었었는지 부드럽게 웃으며 감탄하는 우리에게 물었다.
‘당연하죠….’
“네!”
마리가 눈을 반짝이면서 대답했다.
“…네… 좋네요.”
토니도 응답했다.
“또 볼 수 있으니까 일단은 이동하시죠.”
테리스는 자신이 들고 있는 서류가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꽉 붙잡고 있었다.
“그래… 빨리 가자고.”
히터는 이 광경이 별 감흥이 없는지 우리를 재촉했다.
“다들 타고 있다고?”
브란도도 거들었다.
“그럼, 가자고.”
베피는 기뻐하는 우리들을 지켜보다가 몸을 돌려 앞장섰다.
평소에 날카로운 사람이라 해도 저런 부면이 있었다.
역시 세상에는 나쁜 사람은 없다.
자라오면서 조금 뒤틀려졌을 뿐, 그 누구도 잘못이 없었다.
“이것도 ‘괴물 토벌반’의 특권이라고?”
소피는 으스대면서 말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 무언가 둥실둥실 떠 있었다.
‘어…?’
나는 순간 그것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챘다.
“배를 타요?”
나의 물음에 소피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오~ 배를 알고 있어? 팜이 말해 줬나?”
“아뇨, 책을 읽다가 ‘기록’을 봤어요.”
“…음~? 그래? 어디서?”
나는 조금 표정이 굳은 소피의 물음에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제 5구역에 있는 ‘히로의 책방’이요.”
나의 대답에 히터가 움찔했다.
“…그래?”
소피는 조용하게 되물었다.
“네, 거기에 다양한게 많던데요? ‘심리학에 대하여’라는 책도 있었어요.”
“꼬마, 입다물고 얼른 타는게 좋을 거야.”
나의 대답에 히터는 잔뜩 인상을 쓰면서 나를 윽박질렀다.
“아, 네.”
나는 서둘러 배에 올랐다.
'왜 다들 특정 단어만 나오면 얼굴이 굳으실까…?'
* * *
배에 탔더니 다들 앉아있었다.
줄리와 페퍼가 우리를 반겼다.
“오~! 왔어!”
줄리는 마리가 그토록 보고 싶었나 보다.
떨어진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어땠어?”
페퍼가 나에게 물었다.
“음! 좋았어.”
나는 문득 라이브 씨가 떠올랐다.
그녀가 한 말이 계속 내 마음속에 울렸다.
잊고 싶어도 좀처럼 잊혀지질 않았다.
나는 그저 세차게 고개를 흔들 뿐이다.
“왜그래?”
“아냐, 별것도.”
우리는 자리에 착석했고, 배는 우리를 싣고 어디론가 날아가기 시작했다.
“우오! 난다! 날아!”
줄리가 잔뜩 호들갑을 떨었다.
“오~ 내가 날고 있어~!”
마리도 창문 밖을 보면서 말했다.
그녀들이 호들갑 떠는 것을 보니까 꼭 어린아이 같았다.
덥썩!
그녀들을 보고 있었는데 누가 내 오른쪽 팔을 붙잡는게 느껴졌다.
오른쪽을 보니 페퍼가 잔뜩 웅크린채로 내 팔을 붙잡고 있었다.
조금 떨고 있는 그녀였다.
나는 그녀의 옆에 있는 창문의 덮개를 내리고는 떨리고 있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곁에 내가 있음을 확인시켜 주듯이 손을 꼬옥 잡았다.
소브가 어두운 밤에 불안함과 두려움을 느낄 때면 이렇게 해주었다.
정작… 나 혼자일 때는 침묵을 삼키며 어둠을 껴안았지만 말이다.
* * *
배에 탄지 조금 시간이 흐른 뒤에 우리는 외곽 성벽에 도착했다.
“자, 도착했다.”
소피가 좌석칸으로 들어오면서 말했다.
“다들 내릴 준비하세요. 물건은 두고 가도 됩니다.”
테리스가 문을 막고 있는 소피의 팔을 비집고 들어와 말했다.
“그리고, 문을 막지 맙시다.”
그녀는 소피를 쏘아보았고, 소피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웃었다.
“아하하! 네네~”
* * *
우리는 배에서 내렸다.
내리고 나서 깨달은 것이지만….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밖.’
그 거지에게서 들은 것과는 달리 매우 삭막했다.
‘뭐가 풀숲이야.’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은 흑색의 허허벌판이었다.
‘뭐가 풀밭이야.’
땅은 곳곳에 움푹 파여진 채로 망가져있었다.
‘안’보다 ‘밖’이 더 심했다.
“여긴….”
마리가 오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당황해하고 있었다.
“그래 밖이다.”
소피가 담담하게 말했다.
“어때? 우물 밖으로 나온 소감은?”
베피 역시 담담하게 우리에게 물었다.
“예상 밖이네요.”
나도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 때 멀리서 검은 형체의 무엇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저게 너희들이 처리해야 할 괴물, 우리 인간을 위협하는 ‘쓰레기’다”
브란도가 그 괴물을 응시하면서 말했다.
그 괴물은 점점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 괴물의 이마 한가운데는 붉은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아주 작게, 영롱하게 빛나고 있는 그 점은 나에게 이질감을 주었다.
“저 빛나는 부분이 약점입니다. 저곳을 꿰뚫든, 베든, 부수든 해야합니다.”
테리스가 차분히 설명했다.
“저 괴물은 비이상적으로 회복 속도가 빠르다. 그러니 절대로 방심은 금물이다.”
히터가 품속에 손을 넣으면서 말했다.
나를 포함한 학생들은 갑자기 마주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지만 시간은 속히 흐르고 있었다.
“저 괴물과 우리는 싸워야만 해.”
소피가 결의에 가득찬 눈으로 말했다.
“…꼭 싸워야 하나요?”
마리가 고개를 푹 숙이면서 말했다.
적어도 우리는 어느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그녀만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는 이 사명감을 날카롭게 낚아채고 재빨리 반응했다.
하지만 그녀는 둔했다.
아마, 그녀는 이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 상냥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
소피는 연약한 마리에게 부드럽게 대답했다.
하지만 마리는 아직 납득이 되지 않은지 되물었다.
“왜죠?”
“왜냐고?”
베피가 살짝 짜증난 듯이 말했다.
소피는 뭐라 말하려고 하는 베피를 손을 들어 저지했다.
“우리가 저 괴물과 싸운다는 것을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르지.”
마리는 침묵을 하며 소피의 말을 듣고있었다.
“그 사람들은 우리가 자신들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사실 조차도 모르지.”
자신의 노력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은 조금 슬픈 이야기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있고 해결할 능력도 있어.”
그렇다.
우리는 괴물을 봄으로써 위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괴물을 필시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힘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을 지켜야만 해.”
소피는 커다란 가방에서 아까 보여준 낫을 꺼내들었다.
“설령 두렵다 해도 말이야.”
탁!
소피는 가슴을 꼿꼿이 폈다.
히터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품 속에 넣은 손을 뺐다.
곧 다가오는 괴물은 소피가 처리하는 걸로 암암리에 동의한 것처럼 보인다.
“알아주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나요.”
포드가 나지막히 말을 내뱉었다.
“모르고 있는게 좋지, 아픔을 아는 것은 우리 뿐이면 돼.”
그렇게 말한 소피는 씨익 웃고는 가까이 근접한 괴물을 한순간에 베었다.
검붉은 피가 사방으로 흩어졌고, 흉측했던 그 괴물은 쓰러졌다.
“그래서?”
베피가 마리를 돌아보면서 물었다.
마리는 여전히 머리를 숙인채로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다.
“아직은 애인가….”
히터가 나즈막히 말했다.
어쩌면 마리는 모두의 망설임을 대변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까 괴물의 모습과 처리하는 모습을 보게 된 그들은 마음속에 두려움이 자리잡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보다 조금 일찍 겪었지만 말이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마리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아뇨! 할겁니다!”
그 전에 보여주던 모습과는 달리 그녀의 눈에도 결의가 가득차 있었다.
그녀는 두려웠는지 눈물이 흐른 자국이 남아있었다.
“하겠습니다! 사람들을 지키겠어요!”
그녀는 자신의 결의를 확실히 말했다.
베피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만족했는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잘… 생각했어…!”
소피는 그런 그녀를 대견하게 여기는지 그녀의 결의에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럼… 모두 같은 생각인건가요?”
테리스가 모두의 대답을 바라는 눈치였다.
“당연하지. 외적으로든, 내적으로든 내가 고칠 수 있다면 언제든지….”
가만히 마리를 지켜보던 포드가 무게있게 대답했다.
“그렇죠? 잃는다는 것을 겪지 않았으면 하니까요.”
안토리오가 대답했다.
옆에서 안나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들도 분명 무엇인가를 경험했기 때문에 저런 눈빛을 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후회는 없습니다.”
줄리도 생각이 정리 되었는지, 테리스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당연…하죠. 그러기 위해 여기까지 왔으니까요.”
토니도 작지만 커다란 그의 결심을 보여주었다.
나는 페퍼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망설이고 있었다.
아마도 그녀의 생각과는 다른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일까, 그녀는 당황한 것 같았다.
그녀는 이윽고 입을 열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아… 저…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나는 당황했다.
그녀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일 줄로만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남들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살았으면 한다.' 라는 일말의 바람이 나의 마음속에 있었기 때문에, 남들도 똑같이 겪는 ‘감정’인줄로만 알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함께 이야기를 하며, 목표가 같다고 생각해 왔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