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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화 〉#9 서서히 드러나는 쓴 맛 (4) (33/128)



〈 33화 〉#9 서서히 드러나는 쓴 맛 (4)

“저…랑 말입니까?”
“그래.”

갑작스러운 상황에 조이드는 당황하면서 물었지만, 베피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흐음… 뭐, 그러죠.”

조이드는 잠시 고민하는 듯 했지만, 이내 흔쾌히 수락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내가 만든 이 기계가 얼마나 성능이 좋을지 기대가 되었다.

“전 처럼은 안될 겁니다?”

조이드는 웃으면서 말했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나와 조이드는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대련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여러 단련들을 할 수 있는  공터로 이동했다.

* *

“그럼,   배우겠습니다.”

나는 긴장되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면서 태연하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그가 보여주는 무표정을 보게 된다면 내 평정심이 흔들릴 것 같았다.
그 표정은 그가 인간이 아님을 뼈져리게 느끼게 해주기 때문에, 알  없는 두려움을 통해  몸이 경직될 것만 같았다.

“하하, 먼저 와보시죠?”

그는 나를 동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빈정거렸다.
순간 발끈했지만, 평정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다.

‘좋아, 그럼 가볼까?’

나는 스위치를 눌러 기계를 작동시켰고, 기계는 별 이상없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두 주먹을 꽉 쥐어보았다.

‘좋았어…!’

이대로라면 문제없이 마음껏 시험해 봐도 될 것 같았다.

“그럼!”

나는 그렇게 외치고 조이드에게 달려갔다.
외골격의 도움 덕분에 내딫는 두 다리에 힘이 실렸다.
조이드는 자세를 고쳐잡았고,  두눈을 똑바로 보면서  움직임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는 빈틈이 전혀 없어보였다.
역시, 저번의 그는 방심해서 그런 듯 했다.
하지만 경험을 토대로 그에게 허를 찌르는 공격이 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그것보다 성능을 알아보는게 중요하지.’

콰직!

천천히 자세를 낮추고, 바닥을 움켜쥐어 보았다.
확실히 근력은 증가 되었다.
중요한 것은 이 녀석이 얼마나  움직임을 따를지다.
나는 우선 시험삼아 조이드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왼주먹은 바람을 일으키며 조이드에게 향했다.

“눈에 보이는데요?”

조이드는 가볍게 피했다.

‘역시.’

그의 움직임은 재빨랐다.

‘일단 거리를 벌려볼까?’

나는 그때까지 그가 나에게 돌진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빈틈이네요!”

그의 다리가 매우 빠르게  얼굴로 향했다.

“…!”

가까스로 오른팔을 들어 막았다.

촤아아악!

그의 힘에 밀려  몸은 미끄러졌다.
자세를 고쳐잡기 위해 땅을 붙잡았다.

콰드드득-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그가 나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팜 아저씨 보다 빠르고 강해…!’

방심하다간 이 녀석을 시험도 못해보고 당할 것 같다.

철컥!

나는 자세를 고쳐잡고 이 녀석의 특수 기능을 사용하기 위해 준비했다.
조이드는 잠깐 움찔하고는 그대로 달려왔다.
그는 분명 나의 움직임을 극도로 경계할 것이다.
물론, 힘조절은 할것이다.
하지만   방으로 조이드는 쓰러질 것이다.

치이익-!

따뜻한 증기가 나의 등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럼! 제가 이겼네요!”

조이드는 확신한 것인지 그렇게 말했다.

“그럴까요…?”

잠시 방심한 그를 향해 미소를 짓자, 그는 움찔했다.
하지만, 늦었다.
이 녀석의 특수 능력이란, 인간을 초월한 힘으로 꿰뚫는 주먹.
힘을 축적해 한순간에 발산하는 기술.
위력과 풍압 마저도 압도적이게 파괴적인 힘.
오로지 살상력만을 위해 만든 나의 희대작.
그것이 바로.

퍽———!

‘건틀렛…!’


* * *


“하하… 이것 참, 어디 쥐구멍 없습니까?”

베피에게 수리를 받고 있는 조이드가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

“쥐구멍으로도 부족해, 어떻게 두번이나….”

착잡한 표정으로 수리하고 있는 베피가 말했다.

“에휴….”
“어휴….”

둘이 같이 한숨을 쉬는 모습을 보자니, 괜히 내가 일을 벌인 것은 아닌가 하고 후회가 되었다.

“죄, 죄송….”
“아니야.”

사과를 하기 위해서 입을 열음과 동시에 베피가 말했다.

“네, 괜찮아요. 저의 부족함이었던 걸요.”
“그래, 이건 단순히 방심이었다.”

조이드는 납득하는 반면, 베피는 여전히 마음에 걸려 하는  같았다.

“흥, 나의 작품이….”

‘정확히는 팜 아저씨와의 합작, 이죠?’

조용하게 중얼거리는 베피는 뒤끝이 있었다.


* * *


아까와의 대련을 통해 알게 된 것이지만, 세밀한 움직임까지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보였다.

끼릭- 끼릭-

조금더 손봐야 겠다고, 공방의 구석에 자리잡고 계속 조정하고 있었다.

“흠… 역시, 팜 아저씨처럼 만들 수는 없으려나?”

좀  간소하게 그리고 효과적이게 만들기 위해서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페스틴?”
“아! 그게 있었구나!”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재 더미로 달려갔다.

부스럭- 부스럭-

“흠~ 어디 있으려나.”
“페스틴~?”
“오…! 찾았다!”

분명 팜 아저씨가 관절 부분에 썼었던 그 철강이다.

“그럼, 이걸 써볼까?”

재료를 그대로 쓸 수 만은 없었기 때문에 절삭기계에 가져갔다.

“페스틴!”
“응?”

소리가 나서 뒤를 돌아보니, 페퍼가 서있었다.

“아? 페퍼?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인가 하고 그녀의 얼굴을 살펴보니 화가 나있었다.

“…어? 왜…그래? 무슨 일 있어?”
“…사람이 몇번이나 불렀는데도 대답조차도 없고.”
“아? 어어….”
“어! 심지어 쳐다보지도 않아!”
“그래…  사람이 잘못했네….”

나는 페퍼가 갑작스럽게 화내는 바람에 일단 그녀의 말에 동조했다.

“…뭐어?”

내 말을 들은 그녀는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너라구, 너!”

답답하다는 듯이 외치는 그녀의 말에 나는 내가 실수를 했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아, 아…! 미안!”
“미안하면 다야!”

퍽!

그녀는 나의 배를 힘껏 때렸다.
그녀도 대련을 통해 몸을 단련하고 있었는지 무척이나 아팠다.

“아야!”
“나참… 밥 먹을 시간 됐으니까 얼른 오라고.”

페퍼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를 떴다.

쾅!

‘화가 많이 났나보다….’

확실히 무시를 한다는 것은 꽤나 기분 나쁠만하기도 하다.
나는 손에 들린 자재를 바라보고는, 그 자리에 내려놓았다.
나는 주변을 간단하게 정리하고 먼저 나간 페퍼의 뒤를 따라갔다.

* * *

“미안하다니깐….”
“됐어, 밥이나 먹어.”

말은 그렇게 해도 페퍼의 기분은 풀린 것 같지 않아서 나는 조급해졌다.

“왜~? 무슨 일 있었어?”
“페스틴이 어디 가겠어?”

마리의 물음에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줄리였다.
나는 나몰라라 하고 있는 그녀들을 흘기고는 어떻게 하면 페퍼의 마음을 풀어줄지 생각했다.
아무말 없이 잠자코 먹고있는 페퍼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크흠!”

그녀는 나의 시선이 신경쓰인 것인지 헛기침을 했다.
나는 얼른 시선을 돌려 내 앞에 놓인 음식에 집중하기로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기분이 풀어지시려나…?”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음… 하루 종일 노예되기?”

줄리는 이 기회에 즐기기라도 하자는 듯이 말했다.

“에헤헤~ 그것도 좋다.”

마냥 좋다며 맞장구 쳐주는 마리가 오늘따라 얄밉게 느껴진다.

“아니… 그런거 말고….”

나는 마냥 화내기에는 페퍼의 눈치가 보여서 중얼거리면서 들었다.

“아참! 오늘 짐들어주기 어때?”

마리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이 말했다.

“오…! 좋은 생각인데?”

줄리가 명안이라는 듯이 마리를 치켜세웠다.

‘확실히.’

오늘은 외출하는 날이어서 우리는 밖으로 나가서 쇼핑도 하고 다과를 즐기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런거로 되려나…?”

나는 페퍼의 눈치를 살폈다.
마리의 생각이 명안이라고 생각한 것은 우리뿐만이 아니었는지, 페퍼의 입가는 너그러워졌다.

“…그러시든지.”

애써 미소를 감추면서 말하는 그녀를 보니 마음이 편안해 졌다.

‘음…?’


* * *


“으아… 너무 많은거 아니냐….”

상당히 많은 짐을 나에게 넘겨주는 그녀들을 향해 말해보았지만, 한글자도 들리지 않는 것인지 계속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에휴….”

어쩌다가 마리와 줄리의 짐까지 떠맞게 된 것인지 나로서는 의문이었다.
‘분위기’란 정말 무섭다. 한순간에 상황이 역전되기도, 예상과 달리 크게 뒤틀려 버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아! 다음은 저기?”

줄리가 장신구 가게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녀들은 뭐가 좋은지 재잘대면서 곧장 그 가게로 향했다.

‘저러다 돈 다쓰는 거 아냐…?’

아껴 쓰자고 한지가 언젠데 저렇게 펑펑 쓰니, 여간 걱정이 안들 수가 없다.
장신구 가게로 들어가는 그녀들 사이로 페퍼가 나를 흘낏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그녀의 마음이 풀린 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할 뿐이다.
나도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 * *

“으아… 힘들다….”

털썩-

무겁디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고 나는 한숨을 돌렸다.

“수고했어~!”

마리가 의자에 주저앉은 나를 부채질해 주면서 말했다.

“뭘 이런거 가지고!”

내가 고마움을 표시하려는 찰나, 줄리는 의기양양해지며 미소를 지었다.

‘뭐야…? 짐 들은 건 난데.’

나는 줄리에게 딴지걸 힘도 없었기에 대충 눈으로 흘겨보기만 했다.

“수고했네.”

페퍼도 손수건을 건네면서 말했다.

‘거참, 병주고 약주고도 아니고….’

“고맙다….”

나는 페퍼에게서 손수건을 감사한 듯이 받아 들고는 이마의 땀을 훔치기 시작했다.

“오! 너희들 왔니?”

우리가 자주 오는 과자가게의 부주방장이다.
우리는 이미 단골 손님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그녀의 눈에 우리는 익숙할 것이다.

‘단골 손님이라….’

우리는 과자의 포로가 되버린 것이다.

“저번처럼 주면 되니?”

이미 다 알고있다는 듯이 그녀가 말했다.

“그럼요 언니!”

마리가 어린아이 처럼 손을 번쩍 들면서 대답했다.

“하하하 그래그래! 그럼 조금만 기다리렴?”

그녀는 언니라는 말에 기분이 좋았는지 흥얼거리면서 주방으로 향했다.

“하~ 페스틴은 오늘도 커피야?”
“어….”
“커피를 무슨 맛으로 먹는건지….”

줄리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커피를 마시면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들어서 말이야.”
“그래~ 너나 많이 마시셔~”

마리의 말투를 따라하면서 빈정대는 줄리를 보니  수 없는 힘이  몸에 흘렀다.

‘이것이 분노라는 것인가…?’

문득 페퍼에게 눈길을 돌리니, 나를 보면서 웃고 있었다.
나도 따라 웃으면서 우리는 과자를 기다리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 * *

다시 왕궁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녀들의 방 앞에까지 물건들을 옮긴 후에 서야, 내 시간이 돌아왔다.
아직 통금 시간이 널널해서 부족한 부품을 사러 밖으로 다시 나가려고 했다.

“어머, 어딜 그렇게 가시려는 겁니까?”

그 메이드다.

“아, 안녕하세요. 필요한 부품을 사려고 합니다.”
“흠, 그렇군요. 저는 또 아리따운 여성과 밀회를 나가는  알았습니다.”

‘뭐라는거야….’

“아, 네…. 그럼 이만….”

나는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자리를 뜨려고 했다.

“아.”

그녀의 외마디에 움직이는 두 다리를 멈추었다.
고개를 돌려서 그녀의 얼굴을 보니,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은 사라지고, 근심에 가득찬 얼굴이 되어있었다.

“…무슨  있어요?”
“음… 페스틴 씨, 수리에 소질이 있나요?”
“…?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소질이 없다면 장인으로 지망하지 않았겠죠.”
“…그러겠죠.”
“왜… 그런가요?”
“음… 기계 부품이라는거… 오늘  사야하는 건가요?”

딱히 오늘 필요한 것은 아니다.
다만, 자재를 미리미리 준비해둬야 막힘없이 작업할 수 있다고 팜 아저씨가 말했기 때문에 미리 사려고 했을 뿐이다.

“아, 아뇨 그렇게까지 급한 것은 아닙니다.”
“그럼, 염치를 불구하고 도움을 요청해도 될까요?”
“네, 뭐 괜찮습니다. 그래서 제가 뭘하면 되죠?”
“일단, 저를 따라오세요.”

* * *


그녀를 따라서 걸어간 곳은 식사 때마다 자주 오는 곳이었다.

‘이런 곳에 기계가…?’

나는 식당을 지나 주방으로 향하는 메이드를 따라 계속 걸어갔다.
천막을 들춰 들어간 주방은 왕궁의 주방 답게 넓고 대단했다.
아니, 무슨 말로  곳을 설명해야 할까?
그냥 무슨 일이 일어나도 대처하고도 남을 정도로 준비가 잘 되어있었다.
다양한 요리 도구가 한쪽에 정렬되어 있었고, 식기들은  말려 정리가 되어있었다.

‘아… 편안하다….’

완벽하게 정돈되어 있는  공간에 들어서니 알 수 없는 편안함을 느꼈다.
내가 실컷 두리번 거리기만 하고 따라오지 않자, 그녀는 내 팔뚝을 찔러댔다.

“조금, 서두르죠.”
“아, 네.”

그녀를 따라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새하얀 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방이 보였다.

“어…?”
“그렇게 까지  소란을 피울 정도는 아닙니다만… 이대로 라면 저녁 식사를 준비하지 못 해서요….”
“…그렇군요, 일단 봐볼까요?”

나는 연기를 손으로 휘저으면서 안쪽으로 들어갔다.
다른 선생들은 바쁜가 보다.
엄연히 나도 배우는 입장이기에, 이렇게 흔쾌히 승낙해도 될련지….

“호오….”

방안에 들어서고 시야가 눈에 들어오자 커다란 기계가 보였다.

“…그런데, 당신을 신용해도 됩니까?”
“…”

내가 기계를 유심히 보느라 대답을 하지 못하니, 잔뜩 걱정스러운 마음이 담긴 한숨이 들려왔다.

“하아….”
“…언제 부터 이렇게 됐나요?”
“음… 아마 제 3시 즈음 일겁니다. 이상이 생긴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군요…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인지 혹시 원인을 알려줄 수 있나요?”
“모르겠습니다. 식기를 정리하고 있는데 갑자기 큰소리가 나더니… 작동을 멈췄어요. 아마, 오래된 기계라 노후가 와서 그러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게 정리한 사람이  사람이었던가….’

“기계가 상당히 오래되었나 보네요.”
“네, 제가 오기 전부터 쓰고 있었거든요.”
“흠… 것보기에는 관리가 잘 되고 있었던 것 같기도하고….”
“음… 그래서요?”
“자세한건, 일단 덮개를 열어서 확인해 봐야겠죠?”
“음~ 그렇습니까?”

그녀는 살짝 미심쩍다는 듯이 말했다.

“이 기계는 주로 어떤 용도로 쓰이죠?”

‘이 회로의 형식은 물을 뎁히는 용도인 것으로 알고있다.’

“식수와 욕탕의 물을 뎁히는데도 쓰이고, 요리할 때도 쓰이죠.”
“음식을 가열 할 때도 쓴다는 것인가….”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니 의심 반 걱정 반의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안심하라는 의미로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움직여볼까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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