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9 서서히 드러나는 쓴 맛 (5)
기계의 상태를 파악한 나는, 필요한 부품을 가져오기 위해서 공방으로 향했다.
메이드 씨는 여전히 내가 의심스러운지, 공방까지 따라왔다.
줄곧 무표정이고, 말이 적어서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채기 힘들었다.
“안녕하세요!”
내가 갑작스럽게 들이닥치자 소피는 당황해 했다.
“어, 어서와라.”
“…?”
“거참 심장 떨어지게 하는 놈일세.”
그녀는 당황한 자신을 숨기기라도 하려는 것인지 딴청을 피우면서 말했다.
“안녕하세요.”
옆에 따라왔던 메이드가 인사했다.
“오, 엘리스아냐? 여긴 어쩐 일로 왔어?”
어째선지 친근해 보이는 두 사람이다.
“그게….”
엘리스라 불린 메이드는 그렇게 말끝을 흐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무슨 잘못을 한거냐?”
소피는 시선이 옮겨진 나를 보면서 말했다.
“아뇨, 제가 그런 이미지인가요?”
“그렇고 말고.”
소피는 그렇게 말하고는 마저 하던 것에 집중하려는 듯 했다.
그러다가 손을 멈추고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면서 말했다.
“그런데, 둘이 아는 사이였어?”
“네, 유감스럽게도.”
“뭣…?”
소피의 물음에 대답하려는 나를 제치고 그 메이드가 대답했다.
“뭐가 유감스럽다는….”
그녀에게 딴지를 걸려고 했지만 소피가 내 말을 가로 막았다.
“그렇구만…. 그래서 무슨 일로 왔다고?”
“주방에서 쓰이던 기계가 고장나서요.”
“고장?”
‘의도적이지는 않았지만, 나에게 무시 당했던 페퍼의 심정을 알 것만도 같다….’
“원인은 대충 알겠습니다만, 어떻게 해야할지….”
“그러면, 일단 가보자구.”
착착 진행되는 대화 속에서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멀뚱멀뚱 서있고만 있었다.
“아,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응? 나 말고 다른 누군가가 봐준대?”
“네.”
“흐음~ 누구려나? 베피는 지금 순찰도는 시간일 텐데….”
나는 그들의 대화에 흥미를 잃고 기계를 고치기 위한 공구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
“…응?”
“아까 까지 같이 기계를 보다가 여기로 왔습니다.”
‘분명 여기 어딘가 있을텐데….’
“그렇군, 그런데 고칠 수 있기나 하대?”
“글쎄요, 자신 있어보이길래 일단.”
“흠~ 혹시 모르니까 내가 따라가 볼까?”
“아! 찾았다.”
“그래도 됩니다.”
“그래? 네가 상관 안한다면야 괜찮지.”
‘공구 외에도 더 챙길게 있으려나…?’
“공구를 챙기나 봅니다.”
“그러게, 우리가 너무 심했나?”
“그러진 않을 겁니다. 의외로 둔하거든요.”
“확실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소피, 그거 어딨어요?”
“응?”
나는 아무리 찾아도 보이질 않아서 소피에게 물었다.
“어제 분명히 쓰고 남은 자재를 여기 모아뒀었는데….”
“아~ 그거? 저쪽 상자로 다 옮겨놨어, 제련소에 보내려고 했었지.”
“아하, 그렇군요.”
“너는 그런 쪼가리까지 활용하는구나….”
“뭐… 그렇죠. 제 눈에는 버릴게 하나도 없어요.”
나의 말에 두 사람은 말없이 나를 보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들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으며, 챙긴 것들을 가죽 가방에 쓸어담고는 등에 메었다.
“…그럼 가볼까요?”
“것 봐요.”
“그러네.”
“…?”
* * *
“굳이 따라오실 필요까지 없었는데….”
나는 조용히 뒤따라오는 소피에게 말했다.
“뭐? 내가 불필요한 존재라는 거냐?”
과잉 반응하는 소피의 말에 나는 당황하면서 대답했다.
“예? 아뇨 아뇨, 바쁘실 텐데 괜히 시간 뺏는 것은 아닌가 해서요.”
“하… 따분할 뿐이다.”
소피는 한숨을 쉬면서 귀찮다는 듯이 대답했다.
“뭐… 보통은 방해가 안된다면 크게 신경쓰진 않지만요….”
“않지만?”
“아….”
소피는 잠시 대답을 망설이는 나를 수상하게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설마, 엘리스에게 흑심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그런 소피의 말을 들은 엘리스라 불린 메이드는 나를 흘깃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예?”
나는 금시초문이라는 듯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흠… 아니면 아닌거고….”
소피는 앞으로 내뺐던 몸을 뒤로 집어넣고는 계속 말없이 걷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어색해진다.
내가 괜한 소리를 꺼낸 걸까?
“그냥… 뭔가 긴장이 되서요….”
나는 머뭇거리면서 말했다.
“긴장?”
“긴장… 입니까?”
두 사람은 나를 의아하게 쳐다 보았고, 나는 그들에게서 눈을 돌렸다.
“뭣 땜시 긴장하는데?”
“그러게요, 설마 당신 쑥맥입니까?”
“네? 아니… 팜 아저씨 외에는 처음이거든요.”
나는 골똘히 생각하듯이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런 내가 신기하게 보였는지 엘리스라 불린 메이드는 중얼거렸다.
“흠… 팜 아저씨?”
“팜? 아~ 그 팜저씨? 나참, 그 아저씨가 왜?”
소피는 기억을 더듬 듯이 손바닥에 자신의 손으로 무언가를 그려보고 있었다.
기억하려고 하는 모습에는 사람 각자의 개성이 묻어나오는 것 같다.
‘팜저씨?’
“아… 그, 설명을 잘 못하겠는데요. 소피도 선생님이잖아요?”
“…일단은 그렇지.”
“…저는 학생이니까, 선생님 앞에서 잘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긴장 된다는 거죠.”
“음~ 무슨 소린지 알겠어.”
소피는 내 말을 주의깊이 듣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녀는 잠시 골똘히 생각하더니 입을 열어 말했다.
“크게 신경 쓰지마, 나도 사람이고, 선생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나도 학생이야.”
나는 그녀가 겉보기와 다르게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러니, 부담 갖지 말고 한 번 고쳐봐.”
“…실수하면요?”
나는 살짝 조바심이 났다.
“걱정마, 그럴 땐 나도 있으니까 둘이 만회해 보면 되겠지 뭐.”
역시, 그녀는 좋은 사람이다.
“이쪽입니다.”
식당으로 들어온 우리를 엘리스가 안내했다.
물론, 나는 위치를 알고 있지만 그러지 못한 소피를 위한 배려일 것이다.
* * *
“으와~ 심하네~.”
소피가 연기를 손으로 휘저으면서 말했다.
“…빨리 고쳐야 하는데… 어떻게, 가능할까요?”
엘리스라 불린 메이드는 시간을 확인하고는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네, 그럼요. 일단 뜨거운 공기가 뿜어져 나올테니 좀 떨어져 있으세요.”
나는 화상을 입지 않도록 얼굴에 두꺼운 헝겊을 덮으면서 말했다.
“오~ 신경써주는 거냐?”
소피가 으스대면서 나에게 물었다.
“아뇨.”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기계속으로 들어갔다.
분명, 그녀는 얼빵한 표정으로 서있었을 것이다.
* * *
한참을 뒤적이다가 한 숨 돌리기 위해 기계에서 몸을 빼냈다.
“푸하….”
“어떻게 되었나요?”
계속 그 자리에 있었는지 엘리스라 불린 메이드는 나에게 땀을 닦을 만한 수건을 건네면서 말했다.
“거의 다 되었습니다. 제일 성가신 부분이 하나 남았긴 하지만요.”
나는 그녀에게서 수건을 받아 들면서 대답했다.
그리고 땀을 닦으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확실히 연기가 많이 걷혀있었다.
그런데 소피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소피는요?”
“잠시 볼일이 있다면서 나갔습니다.”
그녀는 방문 밖을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나는 한참 동안이나 구부정한 자세로 있었기 때문에 뻐근해진 팔다리를 돌려보았다.
두둑- 두둑-
굳어있었는지 소리를 내면서 돌아갔다.
“후….”
“잠시만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 나를 남겨두고는 밖으로 나갔다.
“음?”
그러고 보니 목이 탔다.
땀을 너무 흘린 탓일지도 모른다.
잠깐 사이에 다시 들어온 그녀의 손에는 시원해 보이는 음료가 들려있었다.
“별거 아니지만… 드세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나에게 음료를 건넸다.
마침 목도 말랐고, 덥기도 해서 나는 덥석 받았다.
“감사해요.”
나는 그 달짝지근하고 시원한 음료를 들이켰다.
“크~ 시원하다~.”
나는 팜 아저씨의 친구인 포크 아저씨 처럼 외쳤다.
이로써 나도 어엿한 아저씨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음료를 다 마시고 빈 컵을 메이드에게 건네었다.
그때 잠깐 보였지만 그 메이드는 입가에 미소가 띄어져 있었다.
* * *
“후아… 끝났다.”
몇번 고쳐본 경험이 있어서 인지 몰라도,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밖으로 몸을 빼보니 확실히 연기가 걷혀있었다.
‘이정도면 성공적인 것이려나…?’
나는 목에 둘러져있는 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짝- 짝- 짝- 짝-
갑자기 사람들이 박수를 치는 소리가 나서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신차려 보니, 메이드 차림의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이야~ 청년! 손재주가 좋구만?”
매번 우리에게 맛있는 식사를 만들어 주던 메이드 아주머니도 있었다.
“보상으로 오늘 저녁은 아주 맛있는 걸로 해야겠어요~.”
다른 아주머니가 부드러운 미소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당최 무슨 상황인가 하고 얼떨떨해 하고 있자, 그들 틈 사이로 엘리스라 불린 메이드가 나왔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아, 아뇨 아닙니다. 도울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나는 모두가 나를 지켜보는 상황 때문에 당황하고 말았다.
이런 분위기는 낯설다.
“메이드들을 대표해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엥…? 대표한다고?’
나는 상대적으로 젊어보이는 아니, 상당히 젊어보이는 그녀가 이 무리들을 대표한다는게 조금 의아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몇 사람이 쑥덕이고 있었다.
“실력이 좋았는 갑네….”
“그러게 말여… 메이드장까지 고개를 숙이다니….”
‘메이드장…?’
그녀는 숙였던 고개를 들면서 살짝 웃었다.
그녀의 미소에 나는 머리가 새하얘졌다.
“아, 그, 그럼 일단 시험 가동을….”
딸깍-
위이이잉-
내가 동작 스위치를 누르자 기계는 소리를 내면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럼, 욕탕에도 한 번 가보세요.”
엘리스라 불린 메이드는 몇몇 메이드에게 지시를 내렸다.
“네.”
그들은 근엄하게 대답하고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주방도 제대로 작동 되는지 확인하고, 정상적으로 돌아가면 그대로 저녁 준비를 시작하세요.”
“네.”
이번에도 그들은 그녀의 지시에 따라 서둘러 방을 빠져나갔다.
어느새 이 방안에는 나와 그녀 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딱히 뭐라 할 말이 없어서 웅웅 거리면서 돌아가는 기계를 바라보고 있었다.
“…젊은데 메이드장 이라니, 이상하지 않나요?”
갑작스러운 그녀의 물음에 나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아뇨, 이상하기 보다는 대단한게 아닌가요?”
“음, 그렇게 생각하는군요.”
그녀를 좋게 보지 않는 시선이 있었는지, 그녀의 얼굴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아까 보니까, 깔끔하게 정리정돈 잘 하시던데…. 충분히 메이드장이라고 하고 남을 정도로 말이죠.”
“후후…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그녀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러고 보니 서로 통성명을 해본적이 없군요.”
‘확실히.’
“제 이름은 엘리스 입니다. 어려서 부터 왕궁에서 일해왔고, 현재 메이드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오… 그렇군요. 이미 알고 있겠지만, 제 5구역에서 온 페스틴 입니다.”
그녀가 어린 나이에 일하게 된 것은 어째서 일까.
나는 왠지 모르게 그녀에게 동질감을 느끼게 되었다.
* * *
“페스틴! 네가 한 건 했다면서?”
줄리가 빵을 한입 베어물면서 말했다.
“아,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였어.”
나는 그녀의 칭찬에 괜스레 쑥쓰러워져서 딴청을 피우면서 말했다.
“그래도 네가 아니였으면~ 찬물에 씻어야 했을 거라고?”
마리가 입안의 음식을 삼키지도 않고 우물우물 거리면서 말했다.
“그래, 저녁 식사도 못할 뻔 했다면서?”
페퍼가 대단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니, 뭐… 그렇지.”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몰라서 일단은 긍정했다.
어째서 이렇게 상황이 흘러간 것인지 나는 이해가 안갔다.
아마, 내가 자리에 없는 동안 메이드들을 통해 소문이 퍼진 것 같았다.
* * *
그렇게 나름 기분은 좋지만 조금은 불편한 식사가 끝나고, 나는 방으로 곧장 왔다.
오늘 하루 종일 일어난 일이 너무 많아서인지 굉장히 지쳐있었다.
눈 앞에 보이는 포근한 침대가 어찌 그리 편안해 보이는지, 내가 옷이 깨끗했다면 곧장 달려들었을 것이다.
이부자리를 더럽혀 메이드 분들을 고생시킬 바에야 차라리 내가 한 번 참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내 몸을 청결하게 하기 위해서 갈아입을 잠옷을 대충 챙기고는 욕탕으로 향했다.
‘푹신한 침대여…. 조금만 기다려라! 곧 돌아오마!’
* * *
“흐아….”
뜨거운 물에 온 몸을 담그니 속에서 나오는 깊은 소리가 절로 나왔다.
하루 종일 지쳐있던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턱까지 잠기게 몸을 눕혔다.
온 몸을 물에 담구니, 내 몸의 근육들이 풀어졌다.
실제로는 긴장되어 있을지라도, 나는 그냥 그렇게 느꼈다.
천장에서 톡톡 떨어지는 식어버린 물방울이 내 머리에 떨어질 때면 나도 모르게 움츠러 들고 만다.
나는 두 손을 모아 물을 뜬 후에 풀어진 얼굴에 부었다.
일부러 나는 이렇게 고요하고 조용한 시간에 와서 목욕을 한다.
왜 그런지는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이유를 알 수가 없었지만, 아마도 이 적막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좋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오늘 따라 머리가 무거워서 잠시 동안 모든 생각을 멈추었다.
시야에 들어오면서 드는 모든 생각 조차도 머릿속에서 지워나갔다.
조금 멍한 느낌이 들면서 점차 내가 아무 감정이 없는 기계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웃어보았다.
“하하하.”
아무도 없는 욕탕에 내 목소리가 울려퍼져 나갔다
적막을 깨는 그 흔들림이 내 귀에 돌아오자, 나는 살아있음을 느꼈다.
시간이 꽤 흐른 것 같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찰팍- 찰팍-
바닥에 고인 물들을 밟으면 흩어졌다가 다시 모인다.
몇번을 그렇게 해봐도 결과가 같았다.
그렇게 할 수록 나의 체력은 소모 될 것이고, 언젠가 지쳐 그만두게 될지도 모른다.
만약, 혹시라도 이 작은 물 웅덩이를 없애려고 한다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물이 나오는 구멍을 막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물은 증발할 것이고, 이 욕탕은 마른 땅이 될 것이다.
나는 거기까지 생각하고 내가 걸어온 방향으로 쭉 둘러보았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그 괴물들 역시 그러할 것이다.
하루 빨리 밖으로 나가고픈 마음을 진정시킨 후에, 나는 몸을 말리기 위해 걸어나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