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7화 〉#10 잠시 멈추어 숨을 고르자. (2) (37/128)



〈 37화 〉#10 잠시 멈추어 숨을 고르자. (2)

달그락- 달그락-

“음~! 맛있어요!”

페퍼가 만족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러니?”

그런 그녀를 보면서 제시 아주머니는 매우 흡족해 했다.

“제시 아주머니 음식은 오랜만에 먹어보네요.”

나는 내 앞에 놓인 접시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말했다.

“하하핫! 많이 있으니 먹고 싶은 만큼 먹으렴!”

제시 아주머니는 방긋 웃으면서 말했다.

“세티도 더 먹으련? 무럭무럭 자라려면 많이 먹어둬야 해.”

제시 아주머니는 세티의 몸을 훑어보면서 말했다.
나도 제시 아주머니의 말에 세티의 체구를 살폈다.
조금 왜소한 편이긴 하다만, 그래도 그럭저럭 건강해 보였다.

“아, 아니에요….”

세티는 고개를 설래설래 저으면서 말했다.

‘뭐가 아니라는거지….’

나는 다시 음식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제시 아주머니의 간은 어찌 그리 절묘한지, 배가 불러도 계속 들어갔다.

* * *

“으아~ 잘먹었어요!”

페퍼가 뽈록 튀어나온 배를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저도 잘 먹었습니다.”

나는 입가를 닦으면서 말했다.

“그래~? 맛있게 먹어주니 나도 기분이 좋네~”

제시 아주머니가 환하게 웃었다.

“그나저나 손님이 별로 없네요?”

나는 여관 안을 두리번 거리면서 말했다.

“으응… 요새 흉한 소문이 돌고 있거든….”

제시 아주머니는 그릇들을 쟁반에 올려 놓으면서 말했다.

“소문이요?”

갑자기 흥미가 돋았는지 페퍼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면서 물었다.
우리들이 소문에 대해 이야기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는게 느껴졌는지 제시 아주머니는 주위를 살피며 이렇게 말했다.

“음… 다들 쉬쉬하고 있는데, 나라가 망할 거라는 소문이 돌고있어.”
“나라가… 망한다고요?”

페퍼의 눈이 휘둥그래지며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도 그럴게….

“…? 그런 소문은 이번이 처음인 듯 한데….”

나도 조곤조곤 말하면서 아무도 없을 주위를 살폈다.
제시 아주머니도 주변을 살피면서 조용히 말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여차하면 도망치려고 다들 짐을 싸고 있어….”

나는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는 이상하게도 소문이라는 것이 잘 돌지 않았다.
대사건이 일어났어도 수근거림은 오래가지 않았다.
분명, 왕궁에서 통제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  나라가 소문 때문에 사람들이 반응하기까지 하니,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그래요…? 그런데 어디로 갈만한 곳이 있나봐요?”

페퍼가 요점을 콕 집으면서 물었다.

“벽 너머로 갈만한 곳이 있나봐~  1구역에 있는 시계탑에 올라갔었던 사람이 말한 건데, 서쪽에 푸른 숲속이 있더래~”

제시 아주머니는 호들갑을 떨면서 말했다.
제 1구역은 산악지대라, 전체적으로 높다고 한다.
높은 곳에서의 관찰은 나름 신뢰할 만한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소문이 요즘 나라를 들썩이게 만들고 있다는 점을 이해했다.
사람들의 화젯거리는 오로지 그것 뿐일 것이다.

나는 제시 아주머니의 말을 듣고 페퍼와 눈을 마주쳤다.
나와 페퍼는 왠지 모르겠지만, 제시 아주머니에게 밖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숨겨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 마음이 어째 또 통하게 되었는지는 나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렇게 하려는 마음을 먹었다.

“그렇군요~? 몰랐네요!”

페퍼가 진심으로 놀랐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말했다.
 눈에는 그녀가 연기하고 있다는게 느껴졌다.

“어머, 왕궁에서 일하면서 그것도 몰랐어~?”

제시 아주머니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일한다고 해도 우리는 말단 이거든요.”

나는 고개를 으쓱 하면서 대답했다.
그렇게 나라를 떠들썩 하게 만드는 소문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있을 때 즈음 세티가 주방에서 걸어나왔다.

“설거지할  준비 다 했어요.”

그녀는 손에 있는 물기를 앞치마에 닦으면서 말했다.

“그래? 그럼 설거지를 해보자구~”

제시 아주머니는 그릇이 엄청 쌓여있는 쟁반을 번쩍 들어올리더니 주방으로 향했다.

“그럼 저도 도와드릴게요.”

페퍼가 팔을 걷어 붙이면서 제시 아주머니를 따라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럼… 나도?”

나도 페퍼를 따라 팔을 걷어 붙이면서 말했다.

“그렇게 하기에는 주방이 좁은걸?”

세티는 세침하게 말하고는 주방으로 홱 하고 들어가버렸다.
페퍼와 제시 아주머니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세티를 따라 들어갔다.

“확실히….”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홀로 여관 식당에 덩그러니 놓여지게 되었다.

“것참….”

갑자기 혼자가 되었고 마땅히 할일도 없었다.

“아!”

오랜만에 헨델을 만나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나는 주방을 향해 소리쳤다.

“헨델은 방에 있어?”

그릇이 달그락 거리는 소리만 나다가 제시 아주머니의 외침이 들렀다.

“그럴거야! 심심해 할테니 좀 놀아주련!”
“네!”

나는 힘차게 대답하고 윗층으로 올라갔다.


* * *


똑- 똑-

“…네~”

내가 문을 두드리자 잠시 뒤에 헨델이 나즈막히 대답했다.

“헨델~”

나는 반갑다는 듯이 헨델을 불렀다.

“어!”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에 헨델의 기쁨에 찬 외마디가 들렀다.

벌컥!

“형! 안녕!”

헨델은 문고리에 매달려있는 상태로 나를 반겼다.
나는 헨델이 활기차 보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잘 지냈어?”

나는 방긋 웃으면서 헨델에게 물었다.

“응! 형은?”

헨델 역시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응! 나도, 시간이 나서 한번 들려봤어.”

나는 베시시 웃는 헨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에헤헤….”

순수한 헨델의 웃음에 나의 마음이 편안해 졌다.

“뭐하고 있었어?”

나는 방안을 살펴보면서 물어보았다.

“책! 책 읽고 있었어.”

헨델은 몸을 돌려 책상으로 달려가더니, 두툼한 책 한권을 들고 나왔다.
책의 제목을 보니, 나이에 맞지 않게 꽤나 어려운 책을 읽고 있었다.

“오~ 요즘에는 이런  읽어?”

나는 책을 건네는 헨델에게서 책을 받아들고는 책을 뒤적거렸다.

“응! 사서 누나가 빌려줬어.”

“하하, 그래~?”

기쁘게 이것저것 말하는 헨델을 보니 소브가 생각이 났다.
그렇게 나와 헨델은 잠시 동안 이야기도 주고 받고 책도 같이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 * *

똑- 똑-

“네~”

한참 헨델과 같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페스틴, 슬슬 가야지.”

페퍼였다.

“어, 어 가야지….”

나의 목소리에는 분명 아쉬움이 묻어나왔을 것이다.
나는 헨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헨델은 말없이 베시시 웃었다.
분명, 이 아이도 아쉬운 마음이 들겠지만, 보기보다 성숙한 이 아이는 알것이다.
속깊은 헨델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 밖으로 걸어나갔다.

“누나, 오랜만이야!”

그리고 페퍼와도 인사를 했다.
나는 그런 헨델의 등을 보면서 은근히 능글맞은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 * *


“또 시간 나면 오렴~”

제시 아주머니는 여관을 떠나는 우리를 배웅해 주었다.
우리는 여관으로  때 선물을 사와서 선물을 건네주었지만, 제시 아주머니도 우리에게 선물을 건네 주었다.
그래서 올 때나  때나 양손이 가득했다.

* * *


우리는 상가를 걸으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결국 헤어져야만 하는 갈림길에 도달하고 말았다.
나와 페퍼는 그 갈림길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누구 먼저 발걸음을 떼거나 입을 열려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사람들이 오가는 번화가에서 망설이고 있었다.
나는 페퍼에게 어색한 웃음을 지으면서 뒷통수를 긁적였다.
아까까지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눴던 우리는 어디가고 어색한 공기의 흐름만 우리를 감싸고 돌았다.
잠시 뒤에 페퍼가 쭈뼛거리면서 물었다.

“그, 그럼 너는 팜 아저씨 공장으로 돌아가는거야?”
“그, 그렇지…?”

나는 멍청하게 두리번거리면서 대답이 아닌 대답을 했다.

“그, 그렇구나!”

페퍼는 갑자기 그렇게 외치고는 잠시 망설이는 듯 했다.

“음… 그럼….”

나는 이제 그만 페퍼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몸을 돌리려고 했다.

“페, 페스틴…!”

그런데 갑자기 페퍼가 나의 말을 끊고는 나를 크게 불렀다.

“어, 어! 왜그래?”

바로 앞에 있음에도 그렇게 까지 크게 부를 필요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 즈음, 페퍼는 결심했다는 듯이 말했다.

“나, 나도! 따라가도 될까?”

갑작스러운 그녀의 동행을 허락하는 질문에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어? 따라… 온다고?”

나는 분명 그녀가 도서관으로 돌아갈 줄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되려나…?”

페퍼는 우물쭈물 하면서 다시 물었다.

“아, 아니 뭐… 안될거야 없지.”

나는 딱히 신경을 쓰지 않는 터라 그렇게 대답했다.

“…그래?”

페퍼는 나의 대답에 안심 했는지 얼굴에 서서히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그럼… 들렀다 가려고?”

나는 여전히 그녀가 도서관에 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나의 질문에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말했다.

“으음~ 아니, 안갈래.”
“아… 그래…?”

나는 조금 어두워지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그렇게 하려는 이유가 대충 짐작이 갔다.

“음….”

그녀는 이것을 설명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는 듯 해보였다.
나는 구태여 분위기가 불편해지는 것은 별로라고 생각해서 그냥 대충 얼버무렸다.

“그럼…! 가자고…. 팜 아저씨도 너를 보면 좋아할 거야.”

페퍼는  말을 듣고 잠시 나를 쳐다보더니 이내 활짝 웃고는 말했다.

“그래!”


* * *

“호오~?”

페퍼는 전혀 와보지 못한 구역을 지나가면서 흥미로웠는지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딱히 이렇다할 것은 없었지만, 사소한 것에 그럭저럭 만족을 하는 듯 해 보였다.

“아, 있잖아 페퍼.”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응? 왜 그래?”

페퍼는 여전히 양 옆으로 퍼져있는 낯설지만 익숙한 풍경에 시선을 고정한채로 대답했다.

“내가 자주 갔었던 도서관…까지는 아니지만 서점에 가볼래?”

 아저씨 공장이 쉬는 날이면 나는 가끔씩 서점에 들렀다.
저번에 소피에게 말해준 히로의 책방이다.
나의 머릿속에 있는 웬만한 지식들은 그 책방에서 나왔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곳은 작고 허름했지만, 있을 것은 다 있었다.
동화 이야기 부터 유용한 정보들이 적혀있는 사전까지, 정말 다양한 책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그래! 그것도 좋지!”

페퍼는 흔쾌히 승낙하면서 웃었다.
그렇게 나와 페퍼는 팜 아저씨 공장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옮겼다.


* * *


“여기야?”

페퍼는 작은  주위를 두리번 거리면서 물었다.

“응.”

나는 자신만만해 하면서 대답했다.

“책방으로는 안보이는데….”

페퍼는 의심스럽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래…?”

나는 페퍼의 의심에 가득찬 말을 듣자 조금 흔들렀다.

“확실한거야?”

페퍼는 먼지가 가득 낀 창문 안을 들여다보면서 물었다.

“마, 맞아. 여기가….”

나는 페퍼의 물음에 자꾸만 움츨어들었다.

“후우…. 그럼! 안내 해 보라구?”

페퍼는 몸을 돌려 환하게 웃었다.
나는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그럼 발밑 조심하면서 잘 따라오라고?”

그렇게 말한 나는 그 조그마한 문을 열고 앞장서 들어섰다.

* * *


“안녕하세요~”

페퍼는 나를 따라 책방에 들어서면서 말했다.
하지만 안쪽에서는 응답이 없었다.

“허참.”

페퍼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혀를 찼다.

“여기는 그냥 책만 자유롭게 읽을  있어.”

나는 부연 설명을 했다.

“주인은?”

페퍼는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내빼며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글쎄? 어딘가 있지 않을까?”

나는 고개를 으쓱 하면서 대답했다.

“뭐야~ 무책임하게.”

무책임 하다는게 나인지 주인장인지 모르겠지만 페퍼는 심통이 난 모양이다.

“뭐, 계속 부르면 언젠가는 나타나지 않을까?”

나는 새로운 책이 들어왔나 두리번거리면서 말했다.

“그런가~?”

페퍼는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 물었다.

“뭣하면 내가 불러볼까?”

나는 처음 보는 표지에 둘러 쌓인 책을 집어들면서 말했다.

“아니야, 그럴 정도까지야….”

페퍼는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고는 내가 집어 들은 책에 눈길을 돌렸다.

“그건 무슨 책이야?”

페퍼는 요상한 표지를 유심히 바라보면서 물었다.

“글쎄, 나도 방금 찾아서 아직 펼쳐보진 않았어.”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책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뭐야~ 같이 보자구.”

페퍼는 심통난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렇게 우리는 이쪽 저쪽을 두리번 거리면서 흥미로운 책을 찾아보기도 하고, 머리를 맞대어 책을 같이 읽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 * *

“결국 주인은 만나지 못했네.”

페퍼는 아쉽다는 듯이 축 쳐져 있었다.

“다음에 오면 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다음에 또 기회가 있으니 실망하지 말라고 했다.

“너는 만난 적은 있어?”

페퍼는 이윽고 주인장의 존재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응, 전에 몇번.”
“흐음~ 그래~?”

그녀는 내 말이 믿기지가 않는지 실눈을 뜨면서 말했다.

“가끔씩 나에게 책도 추천해 주기도 했고, 빌려가도 된다고도 했어.”

나는 기억을 더듬으며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친절했던 그를 떠올렸다.

“꽤나 친절했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쳇, 혼자만 알고.”

페퍼는 혀를 차면서 툴툴대었다.

“하핫, 언제 한 번 또 오자고.”

나는 타이르듯 페퍼에게 말했다.
그리고 나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새파랬던 하늘은 어느새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나는 문득 그곳을 페퍼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페퍼.”
“응?”

페퍼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맹이를 발로 차면서 대답했다.

“있잖아, 팜 아저씨 공장에 가기 전에 한 군데 더 들려도 될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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