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8화 〉#10 잠시 멈추어 숨을 고르자. (3) (38/128)



〈 38화 〉#10 잠시 멈추어 숨을 고르자. (3)

나는 별일이 아닌 듯 설렁설렁 대답했다.
내가 좀처럼 말해주지 않으려고 하자 페퍼는 포기한 듯 조용히 내 뒤를 따라왔다.
우리는 한 쪽에 만들어져있는 계단으로 향했다.

“어디로 가는 거야….”

중얼거리는 페퍼를 뒤로하고 나는 계단을 한걸음 한걸음 올라가기 시작했다.

터벅- 터벅-

한걸음 한걸음 올라갈 수록 나의 마음은 붕-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풍경.
햇살이 강렬히 타오르며 사라지는 그 광경을 페퍼에게 보여줄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다.
어쩌면 기대감에 부풀어 올랐을지도 모른다.
페퍼의 반응은 어떨까?
나는 페퍼의 반응을 상상하면서 싱글벙글 웃었다.

“페스틴?”

페퍼는 갑자기 웃어버리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볼게 분명하다.
나는 개의치 않는다.
계단을 오르고 올라 어느새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에 도착하자 시원한 바람이 우리를 반겼다.
나름 계단의 경사가 심한 편이라 얼굴에 흐르던 구슬 같은 땀방울을 그 바람이 식혀주고 있는 것이었다.

“후아~ 은근히 가파르네.”

페퍼는 이마에 땀을 닦으면서 말했다.
원래는 이렇게 땀을 흘릴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내가 서두르는 바람에 숨을 조금 헐떡이게 된 것 같았다.
나는 얼른  풍경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숨을 고르고 있는 페퍼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엇.”

갑작스러운 행동에 페퍼는 놀란  했다.
나는 난간에 다다르자 붙잡았던 페퍼의 손을 슬그머니 놓았다.
그리고 아무말 없이 가만히 있었다.

두근- 두근-

확실히,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보아하니, 서두른게 분명했다.

“와~!”

페퍼는 환호성을 질렀다.
그녀가 그럭저럭 만족하는  같아 미소가 살며시 흘러나왔다.

“너무 예쁘다!”

페퍼는 눈을 반짝이면서 도시가 훤히 보이는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홍빛에 반사된 그녀의 모습은 내 마음을 옥죄는 듯한 느낌을 들게 했다.


* *

“뭐야.”

계단을 내려와 팜 아저씨 공장으로 향하려는 우리를 불러세우는 목소리가 들렀다.

“음?”

나는 소리가 난쪽을 바라보았다.
페퍼도 따라 내가 보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놀란 눈으로 어정쩡하게 서있었던 포크 아저씨가 보였다.

“…여, 여자…친구냐?”

포크 아저씨는 심하게 놀랐는지 말을 더듬으면서 말했다.

“예?”

나는 잘못 들은 것인가 싶어 되물었다.

“에이… 아니겠지…  코찔찔이가….”

포크 아저씨는 헛것을 본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 그럼….”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페퍼와 함께 자리를 떴다.
석고상 처럼 굳어 있는 포크 아저씨를 뒤로 한채로 우리는 발길을 서둘렀다.


* * *

“그나저나 그런 곳을 알고 있다니, 의외인걸?”

페퍼는 뒷짐을 진채로 걸어가면서 말했다.

“무슨 소리야, 이래 뵈도  많이 알고 있다고?”

나를 무시하는  같은 말에 나는 괜스레 툴툴대었다.

“파하하! 그랬쒀요~?”

페퍼는 나의 반응이 재미있었는지 계속 웃었다.
그렇게 투닥대면서 걷다보니 어느새 팜 아저씨 공장에 도착했다.

“도착했네.”

나는 커다란 문 앞에 서면서 말했다.

“여기야?”

페퍼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이쪽 저쪽을 살폈다.
나는 그런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잠시 뒤에 그녀는 탐색을 만족할 만큼 했는지 다시 내 옆으로 와서 섰다.

“다 둘러봤어?”

나는 어쩔 수 없다는 투로 말했다.

“응.”

페퍼는 그렇게 말하고 대문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런 그녀의 뒤를 나는 조용히 따라갔다.

* * *

끼익-

육중해 보이는 문이 비명을 지르면서 길을 비켜주었다.

“소리가 나네….”

나는 문을 매만지면서 말했다.
 아저씨 공장에서 일  때에는 내가 기름칠을 자주 해줘서 소리같은 것은 나지 않았다.

“내가 없으면 안되겠네.”

나는 미소를 지으면서 안쪽 깊숙히 들어갔다.
이 시간이라면 분명 저녁 식사를 하고 있을 것이다.
아니면 하려고 하고 있다거나.
나는 주방 문을 두드렸다.

똑- 똑- 똑-

도란도란 들려오는 말소리를 깨는 노크 소리에 주방 안쪽은 조용해 졌다.

“누구시오.”

오랜만에 듣는 반가운 목소리가 들렀다.
나는 괜스레 장난을 치고 싶어져서 목소리를 깔면서 말했다.

“크흠, 팜 씨 있나요?”

잠시 뒤에 뚜벅뚜벅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에 나는 숨죽여 웃으면서 페퍼를 바라보았다.
페퍼도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하고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아저씨가 말했다.

“내가 팜이요, 무슨….”

입가를 닦으면서 문을 열은 팜 아저씨는 내 얼굴을 보자 굳어버렸다.

“어… 자네…!”

 아저씨는 갑자기 말이 나오지 않아 버벅대었다.

“오랜만입니다.”

나는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이 녀석! 얼굴 잊어버리겠다!”

팜 아저씨는 반가운 마음에 내 머리를 사정없이 헝클어대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에요?”

팜 아저씨 부인이 무슨 일인가 하고 따라 나왔다.

“잘 지냈어요?”

나는 문틈 사이로 보이는  아저씨 부인에게 안부 인사를 했다.

“어머, 페스틴 아니에요!”

 아저씨 부인도 놀라셨는지 다물어지지 않는 입을 손으로 가리면서 말했다.

우당탕!

내 이름이 불리자 부엌 안쪽에서 큰소리가 났다.
곧이어 내 동생 소브가 얼굴을 비췄다.

“형!”

소브는 울먹이고 있었다.


* *

“나참, 편지만 보내고 얼굴은 안비추다니, 너무한거 아닌가 자네?”

팜 아저씨는 반가운 것도 잠시 얼굴을 찡그리면서 타박했다.

“맞아, 약속도 잊어버린거야?”

소브도 숟가락으로 탁자를 땅땅 때리면서 말했다.

“아하하… 잊은  아니고 바빠서….”

나는 미안한 마음에 어쩔줄 몰라하면서 말했다.

“페퍼라고 했지요? 많이 있으니 편히 먹으세요.”

팜 아저씨 부인은 페퍼에게 음식을 가져다 주면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페퍼는 부드러운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는지 기분이 좋아보였다.

“그나저나, 페스틴, 너무했어요~ 편지에 내 이야기는 별로 없구….”

주방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추고 팜 아저씨 부인이 말했다.

“아하하… 죄송합니다.”

나는 어색한 웃음을 띄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온화하던 팜 아저씨 부인까지 그런 소리를 하니까 내가 대역죄인 같이 느껴졌다.

“페스틴, 그거 드려야지.”

페퍼는 내 옆구리를 툭툭 치면서 말했다.

“아!”

나는 발치에 놓여져 있는 선물 꾸러미를 부스럭 거리면서 꺼내 들었다.
그러자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시고 있었던 팜 아저씨는 한쪽 눈썹을 치켜 뜨면서 내가 꺼내들은 물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건 뭐야?”

소브는 몸을 앞으로 내빼면서 나에게 물었다.

“그냥 오기 뭐하기도 하고 그동안 얼굴을 못 비췄으니… 내 작은 성의야.”

나는 그렇게 말하고 각자에게 물건을 건넸다.

“선물 고르는 건 페퍼가 도와줬어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페퍼가 째려 보았다.
그런건  말하냐는 눈빛이다
나는 그러면 안되냐는 표정으로 맞받아 쳤다.

“하아~”

페퍼는 대뜸 한숨을 쉬었다.
그런 우리가 사이 좋아 보였는지 흐뭇한 표정으로 팜 아저씨 부인이 선물을 받아 들었다.

“크흠, 그리고 쿠키도 좀 사왔어요.”

나는 발치에서 또 주섬주섬 쿠키를 꺼내들었다.

“어머, 그럼 차를 좀 더 내와야 겠는걸요?”

팜 아저씨 부인은 서둘러 주방으로 향하면서 말했다.

“뭘 이런걸 또 사오는 겐가.”

 아저씨는 내심 기쁘면서도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우와~ 이건 뭐야?”

소브는 포장을 뜯고는 기뻐하면서 말했다.
나는 관심 없는 척 소브를 흘낏 보면서 반응을 기대했다.

“책이야?”

엉덩이를 씰룩거리면서 기뻐하는 소브를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아저씨는 그런 소브를 흘낏 보면서 말했다.

“나는 이것 뿐인가?”

소브를 질투하는 것처럼 보이는 팜 아저씨를 보니 나는 웃음이 나왔다.

“원하는게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다음에  때 사오죠.”

나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으면서 말했다.

“허허… 나를 놀리는 겐가?”

 속마음을 알아챈 것인지 팜 아저씨는 눈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아뇨 아뇨 아뇨.”

나는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다.
은근히 팜 아저씨도 날카로웠다.

“그래서, 페스틴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호오… 이게 바로 코앞 조사인가.'

팜 아저씨는 무언가 말하려는 나를 제지하고 페퍼를 바라보았다.
오물오물 음식을 씹고 있던 페퍼는 황급히 삼키면서 대답했다.

“페스틴이요? 사고를 안친게 다행이죠.”

담담하게 험담을 하는 페퍼였다.

“뭣?”

나는 내가 불리해질 만한 말을 하는 그녀가 꽤심했다.
내가 원망하는 눈초리를 보이자 페퍼는 작게 웃었다.

“풋!”
“핫하, 말썽꾸러기는 어디 안가는 구만.”

 아저씨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말했다.

“아, 아니에요.”

나는 변명이라도 해보려고 머리를 굴렸다.

“살아 돌아온게 다행이네.”

소브가 팜 아저씨 말에 동조했다.

“것참,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나는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위험천만한 일들이 많았다는게 느껴졌다.
나는 발끈했던 마음을 추스르고 말했다.

“반겨주지는 못할 망정….”

하지만 여전히 심통한 마음이 남아있어서 그만 툴툴대고 말았다.

“파하하!”

페퍼는 더 이상 참지 못했는지 참았던 웃음을 터트렸다.
소브도 내 얼굴을 보고 씨익 웃었다.
팜 아저씨도 입가에 미소를 띄면서 차를 마셨다.

‘것참, 사방이 적이구만….’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오래 기다렸네요.”

그 때  아저씨 부인이 차를 내오면서 말했다.

“오~ 냄새가 좋네요.”

페퍼가 킁킁 거리면서 말했다.
확실히  아저씨 부인이 타주는 차는 냄새도 좋고 마음도 차분하게 해주는 신비한 차였다.

“부족하진 않았어요?”

팜 아저씨 부인은 깨끗이 빈 페퍼의 접시를 내려다 보면서 말했다.

“네! 정말 맛있었어요.”

페퍼는 만족했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맛있었다면 다행이네요. 이것도 들어요.”

팜 아저씨 부인은 쟁반에서 찻잔을 내려 놓으면서 말했다.

“부인도 같이 마셔요.”

나는 팜 아저씨 부인에게 같이 다과를 즐길 것을 권유했다.

“그래요, 마저 정리하고 얼른 돌아올게요.”

 아저씨 부인은 싱긋 웃으면서 주방으로 향했다.

“누나, 형이 힘들게 하지는 않아?”

소브는 갑자기 페퍼에게 질문을 했다.

“음~”

페퍼는 그 질문을 듣고 한참을 고민했다.
그리고 나를 흘낏 보면서 대답했다.

“그랬던 경우가 너무 많은데?”
“뭐라고?”

나는 페퍼의 말에 발끈하면서 말했다.

‘오히려 짜증나게 하는 것은 너희들이다!’

나는 속으로 외쳤다.

“아하하하!”

소브는 그녀의 대답이 만족했는지 즐거운 듯이 웃었다.

“페스틴~”

주방 쪽에서  아저씨 부인이 나를 불렀다.

“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답했다.

“잠깐  좀 도와줄래요?”

 아저씨 부인은 나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무엇인가 달그락 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뭐지?’

나는 주방을 항해 걸어갔다.
걸어가보니 팜 아저씨 부인이 커다란 솥을 들고 낑낑대고 있었다.

“아이고, 도와드릴게요.”

나는 서둘러 손을 보탰다.

“그나저나, 많이 변했구만.”
“그래요?”
“응, 많이 달라졌어.”

 뒤로, 내가 없는 탁자에서 말소리가 들렀다.

“이걸 씻으시려고요?”
“응, 지금 안하면 기름이 굳어버리거든요.”

 아저씨 부인은 그렇게 말하고 수세미로 거품을 내고  솥을 쓱쓱 닦기 시작했다.

“아마도, 자네의 덕분이겠지.”
“그런…가요?”
“응, 형의 저런 모습 흔치 않아.”
“이거 바닥도 닦아야 하죠?”

나는 잡고 있던 솥을 들추면서 말했다.

“그럼요, 이쪽으로 올래요?”

 아저씨 부인은 바가지로 물을 부어 거품을 씻어냈다.

“확... 형... 예전.... 든.”

소브의 말소리가 들렀다.

“페스틴을... 부....”

 아저씨의 목소리도 들렀다.

“...네...!”

힘찬 페퍼의 목소리도 들렀다.
청력은 사람에게 정보를 가져다 준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그 정보를 주는 양을 조절했으면 한다.

* * *


그동안 있었던 일도 이야기하고, 시덥잖은 농담도 섞어가면서 우리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오랜만에 이렇게 편안한 분위기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정말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우리는 슬슬 자기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여보. 페퍼 양이 잘 만한 곳이 있었던가요?”
“조금 먼지가 쌓였겠지만 잘 방은 있어요.”

팜 아저씨가  아저씨 부인의 물음에 조곤조곤 대답했다.

‘저런 말투로 말할 때가 있구나….’

나는 색다른  아저씨의 모습에 흥미를 가지며 유심히 바라보았다.

“형은 나랑 자자.”

소브가 내 팔을 잡아당기면서 말했다.

“그래, 그러지 뭐.”

나는 흔쾌히 승낙했다.

“그럼 페퍼 양은 나랑 같이 자요.”

팜 아저씨 부인이 페퍼를 이끌면서 말했다.

“뭐야, 그럼 나는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팜 아저씨는 배신을 당한 사람처럼 물었다.

“후후, 하루 즈음은 양보해도 되잖아요?”

그렇게 말한 팜 아저씨 부인은 페퍼를 욕실로 안내했다.

“힘내세요.”

나는 나즈막히 말하고는 소브와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에휴….”

등 뒤에서는  아저씨의 외로운 한숨이 들려왔다.


* *

방으로 들어서자 방안을 가득 채우는 책더미에 발을 걸려 넘어질 뻔 했다.

“어욱!”
“어우,  조심해.”

소브는 그렇게 말하고는 가까운 의자에 털썩 주저 앉았다.

“형.”
“응?”
“형은… 만족해?”
“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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