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9화 〉#10 잠시 멈추어 숨을 고르자. (4) (39/128)



〈 39화 〉#10 잠시 멈추어 숨을 고르자. (4)


“뭐?”

나는 내가 잘 못 들은 것 같아 소브에게 다시 물었다.

“…만족하냐고.”

소브는 한쪽 턱을 괴면서 무관심한척 나에게 대답했다.

“만족했냐니… 뭐가?”

소브의 물음이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단지, 그 질문의 의도를 알고 싶었다.

“하… 왕궁으로 간거 말이야.”

소브는 내가 답답하기라도 한 것인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나는 그런 소브의 태도에 개의치 않고 말했다.

“왕궁?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나는 잔뜩 책으로 가득차 있는 방안을 두리번 거리면서 이쪽 저쪽을 들춰보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잘 모르겠다니… 몇달 동안 있었던거 아니었어?”

소브는 얼굴을 잔뜩 찡그리면서 짜증을 내었다.
나는 여전히 그런 소브의 태도에 동요하지 않으면서 대답했다.

“그렇지, 몇달동안 있었지.”

나는 책더미 속에서 어떤  한권을 집어 들었다.

“있었는데?”

소브의 목소리가 갈라졌고, 그가 슬슬 화가 나기 시작하려 한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펼쳐들은 책을 대충 훑어보고는 다시 내려놓았다.
그리고 소브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직이야.”
“뭐가.”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는 소브의 목소리에는 잔뜩 불만인 듯한 느낌이 가득했다.

“음….”

나는 일부러 뜸을 들이며 다른 책을 골라 집어 들었다.

“아, 그 책은 손대지마.”
“왜?”

나는 갑자기 당황하는 소브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 그냥.”

별다른 대답 없이 싱거운 이유에 나는 소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책을 폈다.

“아잇! 보지말라니깐!”

소브는 앉아있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외쳤다.
대충 넘기니, 선조 대대로 넘겨져 오는 학문과 연구자료가 간단히 정리되어 있었다.
나는 이 책의 내용을 대충 훑어보고는 의아해 하면서 소브에게 물었다.

“이 책이 왜?”

나는  이상이 없어보이는 이 책이 도대체 이 녀석에게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 그것보다 몇달동안 뭐  없었냐고.”

내가 황급히 말을 돌리려는 소브를 수상하다는 듯이 쳐다보자, 상당히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자신도 느꼈는지 헛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것참, 말돌리기는.”

나는 코웃음을 치고는 대충 책들을 옆에 옮겨 놓고 털썩 주저 앉았다.

“별것도 아닌거 가지고….”

소브는 작게 투덜거렸다.

“너야말로 별거 아닌 것 가지고 그러면서.”

나는 옆의 책더미에서  한권을 꺼내면서 말했다.

“뭐?”

소브는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말을 툭툭 던지는 나에게 짜증이 났는지 언성이 높아졌다.
그리고는 성큼성큼 나에게 다가와 씩씩거렸다.

‘애는 애다.’

나는 속으로 소브를 얕잡아 보면서, 다음으로 소브가 무엇을 할지 지켜보았다.

“짜증나!”

퍽!

갑자기 나에게 주먹을 휘두른 소브의 얼굴이 붉어졌다.
딱히 아프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 마음과는 달리 내 팔뚝은 얼얼하기는 했다.

“뭐, 뭐야?”

나는 한평생 동생인 소브에게 맞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적잖게 당황했다.
소브는 씩씩 거리더니 침대로 걸어가 그대로 누워버렸다.

“어이, 안씻어?”

나는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쓴 소브에게 소리쳤다.

“됐어!”

냅다 소리지르는 소브는 좀처럼 이불을 들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이가 없구만?’

나는 그런 소브를 보면서 기가 찼다.

“참으로 더럽게 느껴지네요.”

나는 나지막히 말했다.
그러자 소브가 이불을  들추면서 일어났다.
나름 작게 말한다고 한 것이지만 소브의 귀에까지 닿고 말은 것 같았다.
소브가 나를 분노에  눈빛으로 째려 보길래 나는 딴청을 피웠다.
옆에 있는 책들을 뒤적거리면서 언제 무슨 말이라도 했냐는 듯 모르는 척을 했던 것이다.

“참내.”

그런 내가 어이 없었는지, 소브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뒤에 다시 누웠다.

“잘자라.”

나는 무관심하게 말했다.

“됐네요. 얼어죽든 병걸리든 나는 몰라.”

소브가 이불을 더 꽁꽁 싸메면서 말했다.

“그르쎄요~”

나는 줄리와 페퍼에게서 배운 특유의 사람 짜증나게 하는 말투를 소브에게 써먹었다.
잠시 뒤에 얼핏 보인 소브의 얼굴은 거의 울지경이 되어서, 이제 그만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 *

소브를 먼저 재우고나서 소브가 읽었던, 아니면 읽고 있었던 책들을 읽고 있었다.
상당한 시간이 흘렀는지 앉아있던 내 몸이 뻐근했고, 눈꺼풀도 점점 뻑뻑해져 눈을 감고 뜨기가 힘겨웠다.
당연하게도 그렇게까지 심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 몸이 피곤하다는 것즈음은 알 수 있었다.

“흐음~”

나는 소브가 잠에서 깰새라 조용히 기지개를 폈다.
잠시 생각해보니 나는 씻지 않고 그대로 책을 읽고 있었다.
그래서 조금 찜찜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그럼, 씻으러 가볼까?’

나는 엉덩이를 툭툭 털어내고는 이내  안에서 먼지를 일으켜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괜찮…겠지?’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욕실로 향했다.


* * *


삐그덕!

나는 뒷꿈치를 들면서 까지 조용히 걷고 있건만, 이 바닥은 내가 야밤에 돌아다닌 다는 것을 온 세상에 알리고 싶은 것인지 내가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비명소리를 내었다.
낮과 밤의 온도차 때문인지 낮에는 몰랐던 소리가 고요한 밤이 되면 들려오는 것 같았다.
나는 욕실문을 조용히 열었다.
다행이도 여기 욕실문의 경첩은 기름칠이 잘 되어 있는  같았다.

“후….”

나는 조용히 한숨을 쉬면서, 조용히 걷기 위해 사력을 다해온 복도를 바라보았다.
창문 틈 사이로 비춰 들어오는 달빛을 보니 괜스레 마음이 편해졌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낮보다는 밤이 더 마음이 차분해 지는 것 같았다.
잠을 잘 시간이 가까워서 인지, 아니면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인지 몰라도 나는 밤만 되면 진정이 되고 머리가 맑아진다.
나는 좀처럼 답을 알  없는 의문점에 머리를 긁적이면서 터벅터벅 욕실로 걸어 들어 갔다.

* * *

아무래도 반신욕은 무리인 것 같아서 세수와 같은 간단한 것들만 하고 다시 침실로 돌아가야 겠다고 생각했다.

“푸하!”

뒤늦게 들은 생각이지만, 야밤에 찬물 세수는 오히려 잠을 깨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물을 나의 얼굴에 끼얹은 후라 어쩔 수 없이 나는 천으로 대충 얼굴의 물기를 닦아내었다.
나는 창문을 살짝 열어 차가운 밤공기를 마시기 위해 창문 틈 사이로  얼굴을 갖다 대었다.
날씨가 많이 풀려서 인지, 쌀쌀했던 밤공기가 이제는 시원했다.

“흠~ 좋구만?”

나는 감탄을 표하며 다시 창문을 닫았다.
그리고 다시 욕실을 나서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다시 험난한 여정을 떠나기 위해 마음을 단단히 먹고 발걸음을 떼었다.

삐그덕!

'아 좀….'

* *


나는 방문을 살짝 닫았다.
소브가 깨면 골치아파지기 때문에 발밑을 조심하면서 등불을 향해 걸어갔다.
방안을 환하게 밝혀줄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나름 환한 이 등불이 켜져있는데도 소브는  자고 있었다.

‘팔자 좋구만?’

나는 이불을 반즈음 걷어차고 자고 있는 소브가 병에 걸리지 않도록 이불을 잘 덮어주었다.
그리고 소브 혼자 쓰기에는 넓은 침대 한쪽에  몸을 뉘었다.
확실히 침대는 인간의 발명품 중에서 단연 최고였다.
나는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혁신적인 발명품을 만들면 떼돈 버는거 아냐?’

그리고 나는  좋은 아이디어가 없는지 머리를 굴려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늦은 밤이었고, 마땅히 좋은 생각은 떠오르지 않아서 금세 포기했다.

‘…잠이나 자자.’

그런데 내일은 무엇을 해야할까?


* * *


“…ㅎ….”

‘ㅁ…뭐야…….’

“…형…!”

‘흐음…?’

“형!”

나를 부르는 소브의 목소리에 나는 잠에서 깨었다.

“아니 무슨 잠을 그리 오래 자?”

나는 떠지지 않는 눈을 뜨려고 노력했다.
다행이도 귀는 정신을 차렸는지 소브의 목소리가 뚜렷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몇신데 그래….”

나는 잔뜩 잠겨있는 목에 힘 주면서 말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목소리는 소브에게 들리지 않을 것만 같았다.

“제 7시.”

원래 내가 평소에 일어나던 시간 보다 한 시간이나 늦은 시간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시간은 예전이다.
최근에는 별일이 많아서인지 몰라도 제 8시나  이후에 눈이 떠졌다.

“그래 그래….”

나는 어디있는지도 모르는 동생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형.”

동생의 부름에 나는 듣고 있다는 의미로 눈을 뜨려고 했지만, 눈썹만 치켜 올라갈 뿐이었다.
누가 접착제로 나의 눈꺼풀을 붙여놓았는지 눈이 좀처럼 떠지질 않았다.

“어제 몇시에 잤길래 정신을 못차려?”

소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나를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을 것이다.

“글쎄… 내 기억이… 맞다면… 제 5시…?”

어제 복도를 걸으면서 중간에 있었던 시계를 흘낏 보았을 때,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 즈음 이었을 것이다.

‘어두워가지고 보여야 말이지.’

나는 드디어 움직이는 양손으로 내 볼을 만지작 대기 시작했다.

“페퍼 누나는 벌써 일어나서 기다리고 있어.”

페퍼는 참으로 부지런하다고 생각했다.

‘나도 옛날엔 그랬지만….’

몇달 전의 내가 이미 먼 옛날의 이야기가 되었다는게 뭔가 슬픈 마음이 들었다.

“기다리다니… 누구를?”

나는 겨우 한쪽 눈을 뜨며 소브에게 물었다.

“하… 누구겠어….”

희미하게 보이는 소브가 잔뜩 답답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오늘 무슨 약속을 했던가…?”

나는 겨우 돌아가는 뇌 속을 헤집으면서 기억속에 내가 해야할 것이 있었는지 되새겼다.

“약속은 무슨 약속!”

푹!

소브가 화내면서 무언가를 내 얼굴에 던졌다.
나는 그 충격으로 겨우 일으켰던 상체가 다시 푹신한 침대로 눕혀졌다.

“형!”

내가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소브는 답답한지 발을 동동 굴렀다.
얼굴에 던져진게 푹신 했던 것을 보아 아마 배게가 아닐까 싶었다.

“그럼…. 대체 뭔데…?”

나는 떠듬떠듬 말을 하면서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듯이 말했다.

“하… 이 사람이 정신이 나갔나… 아침 먹어야지!”
“아…!”

나는 몇달 전에 팜 아저씨 공장에서 일하던 때를 생각했다.
분명 아침에 일찍 올 때면 항상  시간에 두분은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 그래 가야지….”

나는 다리를 땅에 내려놓고 엉거주춤 일어서기 시작했다.

“에휴….”

한숨을  소브는 내 어께 사이로 들어와 나를 부축해주기 시작했다.

“그러게 누가 늦게까지 잠 안자고 있으래?”

나는 동생의 타박에 아무런 대꾸도 못한채로 욕실로 향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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