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11 쓰다. 미치도록 쓰다. (1)
터벅- 터벅- 터벅-
우리는 말없이 걸었다.
나는 아직 포크 아저씨의 집을 모르는 상태 이었기 때문에 잠자코 팜 아저씨의 뒤를 따라갔다.
나는 주위의 오가는 사람들을 흘낏 흘낏 보면서 걸었다.
그러다가 그 사람들과 눈 마주치면 괜스레 어색해 한다.
나도 은근히 이상한 사람인 것 같다.
“페스틴.”
팜 아저씨가 나를 불렀다.
나는 두리번 거리던 것을 멈추고 팜 아저씨 곁으로 갔다.
“왜 그러세요?”
나는 팜 아저씨의 얼굴을 살피면서 물었다.
“자네, 왕궁으로 가니까 어떤가.”
팜 아저씨는 나를 흘낏 보고는 다시 앞을 보며 걸었다.
“음~ 뭔가 바쁘네요.”
나는 그동안 있었던 일을 생각하며 말했다.
“바쁘다고?”
팜 아저씨는 내가 무엇인가 더 말해주기를 바랐는지 재차 물었다.
“네, 뭐…. 어제도 말했지만요.”
“흐음….”
어제의 이야기를 통해서 충분하지 않았냐는 나의 태도에 팜 아저씨는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뭔가 탐탁치 않아했다.
그래서 나는 이 대답으로는 불충분한 것 같다고 느꼈다.
분명 나는 어제 왕궁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다.
그런데도 그보다 더 깊이있는 나의 대답을 원한다고 한다면, 무엇을 말해야 할지 나로서는 감이 오지 않았다.
나는 팜 아저씨의 얼굴을 더 살폈다.
그의 마음은 어떠한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추측하기 위해서다.
팜 아저씨의 얼굴은 아까의 반응과 별 다를게 없었다.
그래서 일단 나는 주저리 주저리 떠들기 시작했다.
“음, 왕궁에서 특이한 일이 많았던 것 같아요.”
내가 무언가 말하려고 말문을 열자, 팜 아저씨는 아까처럼 나를 흘낏 보았다.
그리고 나는 계속해서 두서없는 말을 이어나갔다.
“굳이 몇개의 일을 뽑자면….”
나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메이드라는 직업을 처음 알았어요.”
나는 검은색의 복장을 입은 메이드들을 떠올리면서 말했다.
“메이드?”
팜 아저씨는 흥미롭다는 듯이 맞장구를 쳐주었다.
“왕궁에서 식사도 챙기고 청소나 그 밖의 일들을 하는 것 같더라고요.”
나는 그들을 관찰하면서 보았던 일들을 생각했다.
“흐흠, 그렇구만.”
팜 아저씨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알고 있었어요?”
나는 팜 아저씨를 올려다 보면서 물었다.
“당연하지.”
알고 있다는 팜 아저씨의 대답에 순간 당황했지만, 그 역시 왕궁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금세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데 묻고 싶은게 있었어요.”
나는 화제를 돌리면서 말했다.
“뭔가?”
팜 아저씨는 뒤를 흘낏 돌아보면서 물었다.
“조이드 어떻게 만든 거에요?”
나는 팜 아저씨의 두툼하고 큼지막한 양손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어떻게 만들었긴, 아주 잘 만들었다네.”
비결을 알려줄 생각이 전혀 없었는지, 팜 아저씨는 일절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코어를 천개나 썼다면서요?”
나는 베피가 말한 것을 기억해내며 말했다.
“천개? 베피가 그러던가?”
팜 아저씨는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아닌가요?”
나는 긴가민가 하면서 물었다.
“맞는 말이긴 하다만… 그게 다가 아니네.”
그렇게 말한 팜 아저씨는 내 눈치를 살피고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다가 아니라뇨?”
나는 아마 호기심이 가득한 눈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자, 다 왔네.”
타이밍 좋게도 팜 아저씨는 포크 아저씨의 집으로 보이는 집 앞에 서면서 말했다.
“아하… 여기인가요?”
나는 아쉬움을 토로하며 팜 아저씨에게 물었다.
“그렇다네.”
그렇게 대답한 팜 아저씨는 어딘가 근심이 있어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어제 봤던 포크 아저씨는 별 문제 없었는데….’
나는 어제 마주쳤던 포크 아저씨의 떠올렸다.
딱히 이상 하다거나, 특별한 것은 없었다.
“그나저나 포크 아저씨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나는 문 앞에 한발자국 더 다가가며 물었다.
“…문제? 보면 알게 될거다.”
팜 아저씨는 굳게 닫힌 문을 힘을 주며 열었다.
“포크, 자네 있는가?”
팜 아저씨는 집 문을 열고 들어서며 포크 아저씨를 불렀다.
나도 따라 들어가 집 안을 두리번 거렸다.
집 내부는 이상하리 만치 넓었다.
밖에서 볼 때 전혀 상상조차도 하지 못했던 형태였다.
“넓다…,”
“포크, 있는가?”
팜 아저씨의 부름에 별 반응이 없었는지 팜 아저씨는 더 큰 목소리로 포크 아저씨를 부르기 시작했다.
잠시 뒤에 한쪽 구석에 낡은 문짝이 달려있는 방에서 포크 아저씨가 눈을 비비면서 나왔다.
“팜?”
포크 아저씨는 자신의 눈 앞에 있는 거구의 사나이의 얼굴을 들여다 보고는 반가운 얼굴로 우리를 맞았다.
“어쩐 일인가?”
포크 아저씨는 어제도 술을 거하게 마셨었는지 비틀 거리며 팜 아저씨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러자 팜 아저씨는 못마땅해 하면서 뻗어진 포크 아저씨의 손을 붙잡았다.
“또 술마셨나 자네.”
팜 아저씨가 비틀거리는 포크 아저씨를 내려다 보면서 말했다.
“뭐~ 어쩔 수 없었지~”
팜 아저씨의 타박에 포크 아저씨는 어쩔 수가 없었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포크 아저씨가 팜 아저씨의 시선을 회피하려하는 것을 보니 숨기고픈게 있어 보였다.
“술을 어쩔 수 없이 마시나요?”
나의 정직한 물음에 포크 아저씨는 움찔하며 버벅거리며 말했다.
“어, 어… 어! 너는 또 어쩐일이냐.”
이제서야 나를 본 듯한 포크 아저씨의 말에 나도 모르게 기가차고 말았다.
“후… 일단 자네가 정신을 차려야 되겠구만.”
팜 아저씨는 한숨을 쉬고는 욕실로 가서 씻고 오라는 뜻으로 손을 휘휘 저었다.
“이예~ 이예~“
포크 아저씨는 건들 거리면서 어딘가로 향해 걸어 들어갔다.
“자네, 저 녀석이 씻을 동안 잠깐 이야기 좀 할텐가?”
“네, 저야 좋죠.”
나는 지루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하는 팜 아저씨의 물음에 흔쾌히 대답하면서 아까 물어보려 했던 것을 이어가려고 했다.
“자네, 그 소식 들었나?”
“무슨 소식이요?”
나는 팜 아저씨에게 물어보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마음속에 꾹꾹 눌러담았다.
“이 나라가 멸망한다는 소문 말이네.”
팜 아저씨가 가까운 낡은 소파에 몸을 앉히면서 말했다.
“멸망…이라뇨?”
나는 얼마 전의 제시 아주머니의 말을 떠올리면서 물었다.
“사실은 어떠한지 모르겠다만, 요새 나라 전체에 그런 소문이 떠돌고 있다네.”
팜 아저씨는 여느 때처럼 턱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흠… 저도 얼핏 듣기는 들었어요.”
나는 팜 아저씨를 따라 소파에 앉았다.
“그런가? 아무튼 그 소문을 저 녀석이 단단히 믿고 있어서 말이네.”
팜 아저씨는 이것을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아~ 그래요?”
나는 팜 아저씨 어깨 너머로 보이는 포크 아저씨가 들어간 방의 문을 흘낏 보았다.
“그래서 제 마누라도 버리고 하던 사업도 내팽겨 쳤다네.”
“마누라를요?”
나는 깜짝 놀랐다.
포크 아저씨에게 부인이 있었을 줄도 몰랐고, 심지어 버렸다는 말까지 들어서 놀랐다.
“어떻게 그런 일이….”
나는 이 소문의 심각성을 이제서야 느꼈다.
“그러게 말이네, 지금 그렇게 하는 사람이 포크 외에도 아주 많다네.”
‘그래서 마을 분위기가 이상했구나.’
나는 걸어오면서 약간의 위화감을 느꼈지만, 단순히 오랜만에 와보는 마음에 향수병 이라도 도진 줄 알아서 그냥 넘겼었다.
하지만 나의 [직감]은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
“제가 들은 건요, 사람들이 벽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는 거에요.”
“밖으로?”
팜 아저씨는 처음 들은 것처럼 물었다.
턱수염을 매만지던 손을 멈추는 모습에, 팜 아저씨도 적잖게 당황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밖은 안보다 심하던데….”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그렇게 중얼거렸다.
“음? 자네, 밖으로 나가 본 적이 있는가? 어째서 말해주지 않았는가?”
팜 아저씨는 왜 말을 해주지 않았는지 알고 싶은 마음에 나의 대답을 보챘다.
“아, 깜빡 했네요.”
분명, 어제 이야기를 나눌 때 왕궁 안에서 일어난 일만 이야기 했지, 밖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아무튼… 어쩌죠?”
나는 그것은 둘째치고 현재 사람들이 혼란스러워 하는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할지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그러게 말이네.”
팜 아저씨도 명쾌한 해답이 떠오르지 않는지, 머리를 긁적였다.
그때 포크 아저씨가 들어간 문이 벌컥 하고 열렸다.
“으아~ 시원하구만?”
아직 말리지 않아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흔들면서 나오는 포크 아저씨의 태평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욱하고 말았다.
“아니, 포크 아저씨 그게 말이 됩니까?”
“…페스틴!”
흥분하는 나를 옆에서 말리는 팜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렀다.
인생의 반쪽을 버리다니, 나로서는 절대로 있어선 아니되는 일이었다.
사람을 버린다는 것은 상당히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오랜 시간 함께 해왔을 그 사람과의 소중한 시간들을 전부 기억속에서 없애버리는 것이다.
심지어 그 사람에게 품었던 애정과 사랑까지도 버리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한다는 것을 기억한다.
심리학의 책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사람은 어리석기 때문에, 겁이 많기 때문에 때때로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게 된다.
그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고 버려버린 대가는 상당하게 큰 대가일 것이다.
그 상대방의 마음속에도, 그리고 자신의 마음속에도 상처를 입혀버리는 것이다.
나는 라이브 씨를 떠올렸다.
그녀 역시 자신의 억제되지 못하는 분노 때문에 소중한 딸과 같은 그녀와의 사이가 벌어져 버린 것이다.
그녀는 과거의 일 때문에 현재의 중요한 것을 망각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그녀와 똑 닮은 사람이 눈 앞에 보이자 참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그 팜 아저씨의 친구가 그런다니,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느낌이 들었다.
배신, 분명 버림 받은 포크 아저씨의 아내도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나 역시 그 배신감을 뼈져리게 느껴 봤기에, 그녀의 마음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가 있었다.
믿었던 것들에게 배신당하는 것은 마음에 가득찬 것들을 도둑맞는 것과도 같았다.
그동안 쌓아왔던 모든 것들이 무너져 버리는 마음이 얼마나 허무할지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더군다나 눈에 선히 보이는 배신의 현장에서 나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이 화가나게 만들어버린다.
나를 배신한 상대에게 화를 내고, 나를 방치 해둔채로 관심도 안가지는 사람들에게 화를 내고, 심지어 나 자신에게 까지 화를 내버리고 만다.
그렇게 되면 내 마음은 상처를 입게 되어버리고, 나를 지켜보던 사람들도 상처를 입고 말아버린다.
그리고 나는 격해진 감정을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있던 포크 아저씨에게 표출해 버렸다.
“어째서 아내를 버릴 수가 있습니까!”
나는 언성을 높이면서 포크 아저씨를 다그쳤다.
“어, 어떻게 알았… 그보다… 버리는게 뭐 어때서?”
포크 아저씨는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지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 어째서….”
나는 포크 아저씨의 눈을 보며 그가 공포심에 가득차 있던 것을 보게 되었다.
“어차피 곧 멸망될 나라에서 뭘 더 하겠어!”
포크 아저씨는 자포자기 한 사람처럼 소리쳤다.
“포크!”
팜 아저씨가 다급하게 외쳤다.
“언제까지 멍청하게 벽안에서 살아야 하냐고!”
포크 아저씨는 언성을 높이면서 불만을 토로 했다.
“왕궁은 뭐해? 굶어 죽는 사람들은 차고 넘치는데, 어떤 조치도 안취하고.”
얼굴을 찡그리면서 고통스러워하는 포크 아저씨였다.
“병들고 죽는데 관심도 가지지도 않고.”
거의 절규에 가깝게 외쳐대는 포크 아저씨에게서 왠지 모르게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자기들 끼리만 배 채우는 왕궁을 누가 믿고 따르겠어…!”
왕궁을 사정없이 비난하는 포크 아저씨를 보니 그의 사정이 딱하게 느껴졌다.
“포크, 페스틴! 그만하게…!”
팜 아저씨는 흥분하고 있는 우리를 진정시키면서 말했다.
“하지만…!”
나는 팜 아저씨를 돌아보며 외쳤다.
팜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단은 진정하란 듯이 내 어깨를 붙잡았다.
내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한 팜 아저씨의 태도에 나의 마음은 조금 누그러워졌다.
하지만 포크 아저씨는 아니었는지, 잠깐 진정되었던 나의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들었다.
“역시, 이 나라는 멸망해야해.”
그 말을 들은 팜 아저씨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의 가장 친한 친구는 아마도 이 나라의 국왕일 것이 분명하다.
“멸망… 되어야 한다고?”
팜 아저씨는 포크 아저씨의 폭언에 그의 말을 믿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 그렇게 되야하고 말고!”
포크 아저씨가 힘차게 양팔을 들어 올리면서 말했다.
“무슨 소립니까…!”
나는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을 잘못 들은 것이라고 속으로 빌었다.
“[은색의 천사]가 우리를 구원해 줄거다!”
포크 아저씨의 눈은 광기로 가득찼다.
“은색의 천사…?”
나는 포크 아저씨의 말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은색의 천사라…고… 했나 자네?”
팜 아저씨를 바라보니 잔뜩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헤헤! 그래!”
내가 왕궁에 가있는 몇달 동안, 부드럽고 포근했던 포크 아저씨가 이상해져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