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4화 〉#11 쓰다. 미치도록 쓰다. (4) (44/128)



〈 44화 〉#11 쓰다. 미치도록 쓰다. (4)

나는 위층으로 올라가 소브가 잘 있는지 확인했다.
심상치 않은 일을 겪어서 그런가.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을 확인하러 와버렸다.
그만큼 불안함을 느끼고 있는게 분명했다.
나는 한숨을 돌리고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좀 괜찮아요?”

나는 의자에 힘없이 축 늘어져 계시는 팜 아저씨를 보면서 말했다.

“아, 자네 왔는가?”

눈가에 천을 올려놓고 있었던  아저씨가 한쪽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실눈을 뜨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팜 아저씨 발치 언저리에 있었던 의자를 끌고와 팜 아저씨 옆에 앉았다.

“나는 괜찮다네.”

팜 아저씨는 팔에 힘을 불끈 쥐며 말했다.
하지만 지쳐보이는 눈가는 그가 아직 덜 회복 되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래요?”

나는 굳이 나를 안심 시키려는  아저씨의 수고를 무시하지 않으며 웃으며 화답했다.

“그나저나, 다 컸구만 자네. 나를 걱정해줄 줄도 알고.”

팜 아저씨가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아하핫… 뭘요….”

나는 쑥쓰러워져서 팜 아저씨의 시선을 피했다.

“으하하핫!”

팜 아저씨는 만족하다는 듯한 호탕한 웃음소리를 내며 기분 좋게 웃었다.
나는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무척이나 불안해졌다.
신경쓰지 않았던 주변 사람들의 현실을 직시하고 나니, 발판이 없어진 것처럼 불안함을 느끼는 것이다.

* *

윗층으로 다시 올라왔다.
 아저씨의 안전함을 확인하니, 한결 나아진 기분이다.
숨을 돌리기 위해서 소브의 방으로 향했다.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다.

“페퍼.”

나는 소브의  한쪽 구석에서 책을 읽고 있는 페퍼를 불렀다.

“…”

페퍼는 집중하고 있었는지, 나의 부름에 대답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페퍼?”

똑- 똑- 똑-

나는 열어 젖힌 방문을 두드리며 페퍼를 불렀다.
주의를 이끄는 나의 말과 행동에도 불구하고 페퍼의 고개는 전혀 이쪽으로 돌려지지 않았다.

“것참….”

나는 페퍼에게 다가가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들여다 보았다.

“…자연에… 관하여…?”

페퍼가 읽고 있는 책은 과거 세상이 아직 푸르렀을 때의 기록을 서술하고 있는 책이었다.

“흠….”

가까이 와서 얼굴을 들이댔음에도, 그녀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그녀가 참으로 굳건 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흥미를 잃고 소브에게 눈길을 돌렸다.
나는 조심 조심 걸어가 의자에 앉아있는 소브 옆에 섰다.

“소브?”

나는 눈을 내리깔고 글씨만 읽고 있는 소브의 흥미를 이끌어보려고 했다.
소브가 읽고 있는 책을 들여다 보니, 과거의 생물들에 대해 적혀져 있었다.

‘이런 것을 좋아하나?’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발자국 떨어져 소브의 얼굴을 유심히 보았다.

“크흡!”

어디에 선가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아?’

고개를 돌려보니 웃고있던 페퍼가 급하게 얼굴을 무표정으로 바꾸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뭐야?”

‘이 사람들이 지금 뭐하자는 거야?’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져 그만 방을 나서버렸다.
문을 닫자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일부러 무시하기냐… 것참 굉장하네.’

* * *

페퍼가 내 말을 들어주었다면 밖으로 나가서 시간을 때울 텐데, 그러지 않아서 조금 심심해 졌다.

“것참 왜 그러는거야?”

틈만 나면 나를 놀리려는 페퍼가 얄밉다고 느껴졌다.

“에휴….”

나는 팜 아저씨 부인이 달여준 은은한 향이 멤도는 차를 마시며, 창 밖을 보고 있었다.

‘제 21시 까지 뭐하면서 기다리지?’

나는 흑색 빛의 거리를 바라보며 한참 고민을 했다.
나름 행복한 고민이지 않을까 싶다.
남들은 지금 이순간에도 살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지만, 나는 이렇게 여유를 부리고 있다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하핫…. 왠지 미안해지네.”

나는 내 일이 아님에도 한숨이 절로 나왔다.
타인의 불행에  내가 씁쓸해 하는 것인지, 내 스스로도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아마도, 그들이 나와 같은 ‘사람’이기 때문은 아닐까?
동정심.
추악한 나의 내면에 그것이 남아있었다.
그들의 상황을 이해 하기라도 한다는 것인가.
문득, 그들을 위해서 내가 무언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단지, 외부의 위험세력을 제거하는 것 이외에도, 내가  수 있는 일 말이다.
분명, 포드가 그랬었지, 자신의 목표는 세상을 바로잡는 것.
내가 느끼는 건 그 엇비슷한 무언가겠지.
사람 한명이 모두를 교정할 수 있을까?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불가능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누군가를 판단하기 이전에, 본인 스스로가 그에 대응하는 실용적인 제안이 있는지 스스로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단순한 트집잡기가 아닌가?

아무튼, 나의 생각을 좁혀둘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와 전혀 다른 혁신적인 방안 말이다.
문제 해결력 만큼은 그를 압도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라이벌.
사람이 크게 성장하기 위한 소스. 라고 예의 그 심리학 책에서 기술되어 있었다.
어쩌면 지금의 내가 자존심을 버리고 변화하려고 한다면, 나는 ‘변태’하여 새로운 ‘내’가 되지 않을까?
내가 뭘 할  있을까?
고통받고, 소외되고, 갈증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말이다.
이것  오만한 생각이다.
어디에나  수 있을 흔한 내가 사람들을 구한다는 생각을 한다니.
어떻게? 언제부터? 무엇으로부터?

사람에게는 각자 ‘가능성’ 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내가 모두의 앞에서 나의 속마음을 말한 것이다.
나 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서 듣고 있던 사람들도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나는 구태여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전부 의미심장하게 말했고, 나의 속마음을 숨기며 말했다.
깊은 생각을 하고 간파할 수 있는 사람은 눈치채고 움직일 것이다.

나는 모든 일을 하기 전에 계획을 세우는 편이다.
그렇다고 하루 일정의 모든  까지 생각하지 않는다.
변칙적인 문제들을 일일이 신경쓰는  귀찮으니까.
흘러가는 세상의 흐름에 거스를 생각은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나는 미래를 간파하고 싶다.
그래서 모든 일들을 계획하기에 앞서서 최악의 결말을 생각한다.
그래야만 실패를 겪을  덜 충격을 먹을 테니까 말이다.
참고로 이것은 나의 경험.
나의 마음을 깎아내리는 판단이다.
그런 판단을 하면서 까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답은 아주, 아주아주 간단하다.
내가 가진 것들로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돕겠다.
그들에게 희망을 선사하겠다.
그들에게 행복을 선사하겠다.
그들에게 만족감을 선사하겠다.
사람의 마음을 만족시키는 것 만큼 어려운 것은 없다고 생각하나, 나는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이 든다.
나의 가능성을 은연중에 내비치면,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찾기 쉬울 것이다.

내가 무엇을 가졌을까?
나는 단지, 쓸모없는 몸뚱어리와 어줍잖은 생각을 하는 머리 뿐이다.
고작 이런 걸 가지고 사람들을 돕겠다니.
젊음은 참 무서운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솔직히 말해서, 그때  자리에 있었던 내가, 주위 사람들의 전율을 타고  자리에서 바로 생각을 바꿨다.
나는 아직 젊은 모양이다.
정신은 한없이 늙고 늙어버린 주제에 말이다.

“하핫… 머리가 맑아지는 구만.”

홀로 주방에 앉아있으면서, 나는 묘한 격동감을 느꼈다.
고요하게 심장이 뛰고 있다.
나는 심장에 자신의 손을 가져다 대었다.
두근거리는 소리에 나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사람은 제멋대로인  같다.
어쩔 때는 이랬다가 또 어쩔 때는 저랬다가 하다보니 줏대가 없는 경우도 꽤 있는  같다.
하지만 나로서는 어찌할 방도가 없는 것이라 생각하기를 그만 두었다.

나는 그간 있었던 일들을 다시 곱씹었다.
그러면서 느낀 것이 있는데, 나는 이상하리만치 상황이 좋게 흘러갔던 것이다.
시궁창에서 빠져나올 수가 있었고, 심지어 더 으리 으리 한 곳까지 가보게 되었다.
남들과 달리 나는 기회가 있었고, 여유로웠다.
누가 먹고살 걱정을 안하는가?
누가 필사적으로 이 세상에서 살아가지 않는 것인가?
뭐, 내가 그런 것들에 주의를 돌리고 있지 않다는 것은 확실하다.

“흠….”

나는 오묘한 기분이 들며, 마음이 차분해 지는 차를 홀짝였다.

* *

“그래서 결국 책만 읽을 거야?”

아예 자리를 잡고 책을 읽고 있는 페퍼를 내려다 보며 말했다.

“…응.”

그녀는 한박자 느리게 대답하며 책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것참….”

나는 요새 부쩍 자주 쓰고 있는 말을 내뱉으며 탄식을 했다.

“것참이 형.”

소브가 책을 읽는 것을 잠시 멈추고 나를? 불렀다.

“뭐?”

나는 내가 잘못들은 것인가 싶었다.

“왜 형은 것참 것참 거리는거야?”

소브는 별게  궁금한 것 같다.

“그러면 안돼?”

나는 나의 정체성에  일축이 되는 말버릇에 나름대로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이 표현은 복잡한 내 심정을 표현하는데 더할나위 없이 적절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런 나에게 의문을 표한다면, 나는 그저  의문을 되돌려 줄 뿐이었다.

“그래, 형 마음대로 해.”

소브가 고개를 돌려 사람 짜증나게 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뭣이?”

나는 그대로 소브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 * *


“형이 참아야지.”

씩씩거리고 있는 나에게 페퍼가 말했다.

‘당신도 한패 거든요?’

나는 페퍼를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파하하! 미안해 미안해!”

페퍼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사과를 했다.
웃으며 말하는 그녀에게는 진심 이라고는 요만큼도 없었다.

“됐네, 됐어요.”

나는 손을 내저으며, 고개를 돌렸다.
내가 그런 반응을 보이면 보일 수록 그녀는 더 크게 웃어만 갔다.

‘참으로 속이 시커멓고 시커먼 사람이군.’

나는 어쩌다 이런 신세가  것인지 고개를 풀썩 숙였다.

“아니 그것보다 아까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거야?”

페퍼는  멘탈은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나에게 물었다.
하지만 내 감정 때문에 사람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는 것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냥… 밖에 산책 가자고.”

나는 별것 아닌 이야기에 우물쭈물 거리며 말했다.

“아~ …그래?”

페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거실에 놓여져 있는 시계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시간이?”

나도 시계를 바라보았다.

“음~ 공부할 시간이네?”

페퍼는 나를 놀리려는 생각이 가득해 보였다.
그녀의 입꼬리가 움찔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고 있지만, 그녀 모르게 웃음이 튀어나와 버리는 것이다.
사람은 역시 제멋대로이다.

* * *

“그럼~ 나중에 봐?”

페퍼는 손을 살랑살랑 흔들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진짜로 공부하네….’

나는 그녀가 농담을 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믿었던 것만큼, 기대 했던 것만큼 실망 또한 컸다.

“하하….”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발길을 돌렸다.

“내일!”
“응?”

페퍼의 목소리에 나는 뒤돌아 보았다.
방문을 열고 얼굴을 빼꼼 하고 있는 페퍼가 보였다.

“내일 나가자구~?”

페퍼는 어린 아이를 어르고 달래듯이 부드럽게 말했다.
어린 아이를 타이르듯이 말하는 그녀의 말에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 그래!”

나도 모르게 들떠버려 소리치고 말았다.

“그럼!”

페퍼는 손을 흔들고 방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나는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을 느끼며 거실로 향했다.


* * *


“아~ 무엇을 할까나~”

시계를 보니 제 14시 였다.
좀처럼 가지 않는 시간 속에서 나는 소파에 앉아 빈둥거리고 있었다.

“흠~”

나도 책을 읽어볼까 해서 소브의 방에 있는 책들을 들춰보았지만, 이미 내가 읽었던 것이나 딱히 끌리지 않는 주제를 가지고 있던 책들 뿐이라 다시 거실로 나와있던 상태였다.
조금 전에  아저씨 부인이 지나가서, 내가 뭐 도울 일이 있는지 물었다.
하지만 딱히 없다고 하는 팜 아저씨 부인의 대답에 나는 기분이 급 하락했다.
물론 천장이 새는 바람에 일거리가 생겨났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자재도 얻지 못하고 푹 젖어있는 나무 판자들을 멀뚱멀뚱 바라볼  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아!”

나는 한참 동안 고민하고 있다가 문득 팜 아저씨 공장에 오랜만에 가봐야 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왜 이제서야 생각해 낸 것이냐!’

둔한 나의 머리에게 한 소리를 하고는 집 바로 옆에 붙어있는 공장으로 향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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