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5화 〉#11 쓰다. 미치도록 쓰다. (5) (45/128)



〈 45화 〉#11 쓰다. 미치도록 쓰다. (5)



“이야….”

나는 오랜만에 들어와보는 친숙한 공간에서 고양감을 느끼며 감탄을 했다.

“오래간만이구만?”

나는 뒷짐을 지며 이쪽 저쪽을 둘러보았다.
늘 사용하던 공구는 제자리에 놓여져 있는지, 내가 없는 동안 달라진게 없는지 두리번 거렸다.
나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렌치를 집어 들었다.

“아이고… 누가 쓰고 정리를 안한거야?”

나는 렌치에 묻어있는 기름 때를 대충 떨어내고는 공구 보관함에 넣었다.
무거워서 미처  들고가지 못한 내 손에 익숙한 공구들이 보였다.

“오랜만이다 얘들아!”

나는 그 공구들이 사람인 것처럼 반가움을 표했다.
분명 남들이 보게 된다면 이상한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이건… 그대로 있구나?”

나는 하도 많이 써서 손잡이가 닳을 대로 닳아진 망치를 집어들었다.

“안써도  갈아주지….”

나는 애꿎은 팜 아저씨에게 불평을 했다.
물론 진심으로 하는 말은 아니었다.

“오?”

나는 한쪽 구석에 몇번이고 분해하고 조립해본 그녀석이 있었다.

“이봐! 요한슨!”

나는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처럼 팔을 잡고 흔들었다.

“이야~”

나는 내가 조립해두었던 모습 그대로 누워있는 의수와 의족들을 보며 감탄을 했다.

‘정말 내가 조립한 거 맞아?’

잘못 조립해 규격이 맞지 않아 삐죽 튀어나와 있는 부분을 빼고는 나름 정확하게 조립해내었던 것이 믿기질 않았다.

‘초짜 치고는 잘한거 아냐?’

나는 자화자찬을 하며 흡족해 했다.

“왕궁 들어갈만 했구만?”

나는 콧대를 점점 높이 세워가며 으쓱해지기 시작했다.

쿠당탕-!

갑자기 무언가가 무너지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소리가 난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무너져 있는 상자더미 뿐이었다.

‘음?’

나는 쌓여있던 상자가 무게를 못이겨 무너져 버린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마침 할 일도 없었기 때문에 시간 때우기 참 좋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정리를 해볼까?’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쓰러진 상자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무너진 상자 안에는 다양한 크기의 못들이 담아져 있었다.
요새는 그다지 쓰이지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다양한 곳에서 쓰이고 있는 것이다.
노장은 죽지 않는다고 했던가?
요즘은 못 보다는 육각 너트와 볼트를 더 많이 사용하는 것 같다.
기계를 연결하기 위해서는 흔들림 없는 고정이 필요 불가결하다.
하지만 못으로 고정을 하게 되면 흔들림이 생겨버리기 때문에, 정교하고 딱 맞는 기계의 완성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꽉꽉 조여질 수 있는 다른 체결용 부품들이 필요 하다는 것이다.
애초에 그것들의 용도는 기계의 부속품들을 연결하는 용도이긴 하다.
당연한 소리를 하는 내가 기가찼다.

‘정리나 하자.’

나는 그렇게 묵묵히 아무 생각 없이 정리하기 시작했다.
원래 일을 할 때는 아무 생각 없이 한다고 하던가?
물론 치수를 계산 한다거나, 일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생각이라는 것을 하겠지만, 막상 일을 하는 순간에는 집중을 해야한다.
나는 그렇게 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만, 아마도 쉽게 다칠 수 있는 일을 할 때는 그 일에만 집중하기 위해서 생각을 그만두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은 전혀 나쁠 것이 없지 않은가?
이렇게 나는 하루하루 납득해 간다.

나는 들을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을 알지만 누구에게 설명을 하는 것처럼 생각을 이어나갔다.
왠지 모르겠지만, 남들에게 말하는 것처럼 생각을 하는 것이 나는 편했다.
어쩌면 생각하는 방식의 유형 일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제각기 다르고, 다르기 때문에 자신에게 맞는 방법이 또 다르게 된다는 것이다.
비슷한 것은 있지만, 완전히 똑같은 것은 없다.
사람은 개개인의 고유한 무언가가 있다.
그것을 특별하게 여기든 그렇지 않든 사람은 그것에게 애정을 느끼는 것 같다.
그렇지 않는다면 욕심이라는 것이 생기지 않았을 터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분류를 하다보니, 어느새 정리정돈이 끝나있었다.
나는 체감상 시간이 많이 흘렀으리라, 생각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제 6시 26분….”

참으로 애매한 시간이었다.
앞으로 약속 시간까지 약 2시간  정도 남아있었다.
 아저씨 공장에서 히로의 책방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면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그냥 한 10분 정도? 인 것 같았다.
…추측일 뿐이다.
정확한 시간을 재기 위해서는  커다란 시계를 들고 다녀야 했기 때문에, 시간적으로 체력적으로 심히 부담이 되는 것이었다.
어림잡아 시간을 재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2,30 분 정도 여유를 두며 계획을 했다.
지나치게 여유를 가지고 계획한다고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냥 실패를 겪고 싶지 않기 때문에, 모든 문제에서 모든 상황에 대처 할 수 있도록 여유분의 시간을 계획하는 것일 뿐이다.
언제 부터 이런 습관이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내 많은 습관들 중에 하나였다.

실패.
그것은  스스로의 잘못으로 이루어지기도 하고, 타인의 영향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어쩔 때는 내가 손쓸 틈도 없이 속전속결로 실패를 맛보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경험이 여전히 적었고, 많은 문제들을 대처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실패는 쓰다.
하지만 쓰디  것을 계속해서 먹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다.
 맛을 느끼는 혀를 진정시키지도 못한채 계속해서  것을 먹게 되면 매우 고통스럽게 된다.
하지만 어느 정도 쓴 것을 계속해서 먹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맛이 익숙해진다.
나도 모르게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쓴 것을 계속해서 먹어대던 것의 결과는 고스란히 남아있다.
어리숙한 나는 그 결과를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여겨야 할지가 내가 살아가면서 해결해야  숙제다.
나는 그런 경험을 일찍하게 해준 세상을 원망하지 않는다.

물론 처음에는 화가났다.
하지만  화를 누구에게 내야할지 알 방도가 없었다.
나는 그 화를 마음속에 담아두며, 긴 시간을 방황했다.
그렇게 한 결과 나는 화를 참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세상을 탓하는 것은 무의미 하다는 것도 이해했다.
사람들은 이기적이다.
서로 살기위해 서로를 해치고, 자신의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어떤 일도 서슴지 않는다.
심지어 이미 배가 불렀음에도, 배를 움켜쥐며 도와달라는 요청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씨 좋은 누군가가 모든 사람의 배를 채워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모든 사람이 한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도와준다면 더 나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할 뿐이다.
나는 그저 희망을 찾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나 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고 몰색할 뿐이다.
하지만 현재로써는 알 방도가 없었다.
아까도 언급한 것처럼 나는 어리숙하고 경험이 부족하다.
아는 것도 적고, 이 도시가, 이 왕국이,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른다.
나는 경험을 최대한 많이 하며, 최대한 많은 정보를 습득해야 했다.
그러니 루이스를 만나 이야기를 할 것이다.
나는 배를 채웠음에도 나를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배를 채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생각이다.
왜냐하면, 나는 욕심이 많으니까?


* * *


숟가락과 그릇이 서로 부딪혀 달그락 거리는 소리만 날 뿐 우리는 아무말도 않고 있었다.
그런 적막을 깨며 팜 아저씨가 나에게 물었다.

“혼자 가도 괜찮겠나?”

팜 아저씨의 표정에서  무엇도 읽어낼 수 없었기 때문에,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인지 나는 몰랐다.
그냥 소신 껏 대답할 뿐이었다.

“네, 괜찮습니다.”

나는 내 앞가림 정도는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대답했다.

“음… 알겠네.”

팜 아저씨는 잠시 내 얼굴을 살피고는 먹던 음식을 마저 먹기 시작했다.

“어디가?”

우리의 대화를 귀기울여 듣던 페퍼가 물었다.
맞은편의 소브도 궁금했는지 손의 움직임을 멈추고 나를 보고 있었다.

“어… 뭐라고 해야할까?”

나는 난처하다는 눈빛을 팜 아저씨에게 쏘아대었지만,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세상을 뒤집을 방법을 찾으러 간다고 말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뒷골목에서 일어나는 뒤숭숭한 일을 알아보려고 간다고도  할 수도 없었다.
사람을  때 눈 깜짝하지 않으며, 거대한 괴물도 한순간에 베어버리는 냉혈안을 만나러 간다고 이야기 하는 것도 별로 일  같았다.
분명, 가지 말라고 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좀처럼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둘러대야 겠다고 생각했다.

“뭐… 자재도… 필요하고….”

나는 말 끝을 흐렸다.

“아~ 그렇구나? 그럼 그래야지. 가기 전에 수리는 해놓고 가야 하니깐.”

페퍼는 납득이 갔는지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나는 자재가 필요하다고만 했지 가지러 간다는 말은 없었다.
그리고 나는 천장을 수리 하지도 않을 것이고, 그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러 간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말끝을 흐리며 사실을 분명하게 하지 않으면 듣고 있었던 상대쪽에서 알아서 내가 해야  말을 해주었다.
조금 약삭바르다 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이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저씨의 눈치를 보았지만, 딱히 눈치를 준다거나 긍정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런대로  둘러 대었나보다 라고 생각이 들었다.

“이제서야 고쳐지는거야?”

소브는 답답했던 이가 쏙빠지는 것처럼 속 시원한지,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부를 땐 언제고 이제와서 웃는 얼굴을 보여주니 꽤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가려 할 때즈음 팜 아저씨가 나를 불러 세웠다.

‘뭐지? 아까 멋대로 둘러대서 그런가?’

나는 일말의 긴장감을 가지며 침을 꿀꺽 삼켰다.

“자네, 언제 그렇게 뱀같이 되었나?”

하지만 내 걱정과는 달리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뱀이요?”

분명 지금은 멸종 되었지만, 독성이 있는 것이 있고 없는 것도 있으며, 야생에서 작은 동물이나 벌레들을 잡아먹었다고 하는 긴 밧줄 형태의 동물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나랑 닮았다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얼굴이 갸름하지도, 몸매가 호리호리 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냥 어디에서나 볼법한 준수한 외모에 적당히 근육이 붙어있는 탄탄한 몸매일 뿐이었다.

“음… 언제 그렇게 비열하게 되었나 그말 일세.”

아, 뱀의 외모가 아니라 습성에 대한 것이었다.

“네? 비열하다뇨. 잔머리 굴릴  안다고 해줘요.”

나는 팜 아저씨의 직설적인 표현에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다.

“크하하하, 농담일세.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을 속이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자제하게.”

팜 아저씨는 웃다가도 금세 나에게 조언을 해주었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나는  아저씨가 진심으로 그러기를 바란다는 것을 알아챘기 때문에, 이 방법은 그만두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조심히 다녀오게나.”

팜 아저씨는 시계가 가리키고 있는 시간을 흘낏 보며 말했다.

“네, 늦게 오더라도 걱정 마요.”

나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시계는 제 8시 24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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