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11 쓰다. 미치도록 쓰다. (6)
이제 막 해가져서 얼마 지나지 않았을 텐데, 거리에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
고요한 거리를 혼자 걸어가니, 괜스레 오싹해지기 까지 했다.
나는 별것도 아닌 상황에 겁을 먹고 있는 내가 한심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두렵던 감정은 사그라 들었다.
체면 때문일까?
때때로 감정에 휩싸였을 때 그 감정을 혐오하는 생각이 들 때면 내 몸을 휘감고 있던 감정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없어졌다.
사람의 감정이란 참 특이한 것 같았다.
만약에 우리 사람들에게 감정이 없었더라면, 누가 다쳐도 마음이 움찔거리지 않고, 남을 해하려 들지도 않고 해를 끼치는 것도 서슴지 않게 될 것이다.
감정은 사람이 죽을 때까지도 사람을 지배한다.
슬픈 감정.
그것은 자신이 제어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무뚝뚝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가슴 언저리가 욱씬 거리는 것을 감지한다.
당연히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만 과거에는 감정이 태어날 때 부터 고장이 난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그들을 싸이코패스라고 했었던 것 같다.
이 점에 대해서는 지금도 별반 다를게 없다고 느낀다.
따라서 그 부분은 흥미 있게 읽은 것이 아니라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
아무튼 그런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아주 작은 점 만큼의 감정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사람이 살아가면서 선택을 하게 되었을 때 완전히 배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감정에 충실해 감정이 이끌리는 대로 선택하는 사람이 있다.
그 어느 것도 좋은 선택 방법 이라고는 하지 못한다.
지나치게 감정적이면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하다.
지나치게 이성적이면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고려하지 못해 문제를 해결 했어도 좋은 결과는 아닐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적당히 하는 것.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현명한 선택을 해야 성공을 한다.
하지만 말이 쉽지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도 나는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불가능 한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어렵고 신경을 많이 써야할 뿐이지, 조금만 더 생각을 한다면 스스로 성공을 따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확신한다.
만약 그게 정답이 아니라면 나는 또 방황할 것이다.
방법을 찾기위해, 방식을 찾기위해 넓디 넓은 미로 속을 헤맬 뿐이다.
아무튼 나는 오늘 현명한 선택을 해서, 좋은 결과를 얻고 싶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으리란 것도 이해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으로 최선을 다해 사력을 다할 뿐이다.
‘…?’
한참 동안 나의 생각을 정리하면서, 마음을 다잡으면서 걷고 있는데 거리의 분위기가 이상했다.
아까부터 느낀 것이지만, 지나치게 조용하다.
그리고 너무나도 이상하다.
확실시 된 것은 아니다만, 그냥 직감적으로 묘하다.
나는 좌우를 살폈다.
고요하고 어두운 골목길만 보일 뿐, 특별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흠….’
입밖으로 혼잣말을 했다가는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아 속으로만 중얼거리기로 결정했다.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으니까 말이다.
나는 뒤를 돌아보며 특별한 것은 없는지 구석구석 살폈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마감한 가게와 쌓인 쓰레기 더미일 뿐이다.
별다른 것이 보이지는 않아서 나는 안심했다.
또 이상한 일에 휘말려 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고 걱정하고 있을 때즈음 위에서 소리가 났다.
덜그럭-
‘…위?’
나는 황급히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젠장!”
나는 지붕에 올라타 붉은 빛의 눈동자를 빛내고 있는 괴물을 보며 외쳤다.
“에너지 탐지, 괴물을 처치합니다.”
목소리의 주인은 괴물, 아니 베피의 손에서 달아난 인형이다.
역시 제어를 못해 닥치는대로 살인을 벌이고 있었다.
나는 황급히 눈알을 굴리며, 도망칠 곳은 없는지 찾았다.
하지만 지붕 위에 자리잡은 인형이 시야 확보를 하고 있는 바람에 어디로 도망쳤다고 해도 바로 따라잡힐 것이 분명했다.
나는 품에 있는 냉각수를 만지작 거렸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길까 해서 미리 챙겨둔게 여기서 도움이 될 줄은 나도 몰랐다.
‘역시 사람은 준비성이 철저해야해.’
내가 자화자찬을 하고 있을 때 즈음, 그 인형은 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관찰을 마쳤는지 지붕에서 뛰어내리려는 제스쳐를 취했다.
“…뛰어내린다는 것인가?”
상당한 높이였기 때문에 사람이 그냥 떨어진다면 바로 죽을 정도의 높이였다.
‘대체 얼마나 튼튼하게 만들은 거야?’
나는 베피의 실력에 경의를 표하며 다음 동작에 대비하기 위해 자세를 고쳐잡았다.
피시익―!
증기가 빠져나가는 소리가 나며 그 인형은 거짓말처럼 지붕에서 풀쩍 뛰어내렸다.
쾅!
인형의 덩치에 맞게 지면에 큰 충격이 가해지면서 큰 소리가 났다.
그 인형은 저번의 그 때처럼 무미건조한 목소리를 내었다.
“괴물 발견, 제거합니다.”
그 인형은 팔뚝에서 칼을 꺼내 하늘로 향해 쳐들었다.
피시익―!
그 인형의 입가에 콧김을 내뿜듯이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있잖아, 나는 괴물이 아닐 뿐더러, 너는 나를 제거하지 못해.”
나는 잠깐의 틈에 사람의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는 인형에게 말했다.
그리고 나는 지체없이 그 인형의 머리 부분에 냉각수를 던졌다.
챙그랑!
인형의 단단한 얼굴에 부딪쳐 산산조각이 난 유리병의 파편이 사방으로 퍼졌다.
“괴… 거… 아….”
감정이라고는 털끝 만큼도 없는 인형의 목소리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시야를 확보하는 무언가가 손상이 갔는지 허공에 있던 팔이 갈길을 잃고 헤매었다.
‘이거 가까이 있으면 큰일 나겠는데?’
그 인형은 닥치는대로 팔을 휘둘러 대었다.
마치 어린 아이가 떼쓰는 것처럼 붕붕 흔들리는 팔을 보며 나는 거리를 두었다.
‘그나저나 정답이었네.’
팜 아저씨가 베피와 함께 인형들을 제작했다고 했던 것을 기억한다.
분명 설계를 할 때 팜 아저씨도 한 몫을 거들었을 것이다.
팜 아저씨 공장에서 의수와 의족들을 수없이 봐온 나로서는, 이 크고 단단해 보이는 인형의 팔다리에 던져도 별 효력이 없을 것이라 생각 되었다.
내가 본 팜 아저씨의 의수와 의족은 단순했다.
뇌의 신호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해주는 코어가 의수의 손목과 팔꿈치 그리고 손가락 사이 사이에 베치되어 있었다.
그것들은 아주 단순한 움직임만 취할 수 있게 해준다.
의족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코어가 밀집되어 있는 중심부는 다름아닌 명령을 내리는 머리 쪽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던 것이다.
다행이게도 결과는 좋았다.
나는 그 인형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거리를 두며 안심을 하고 있었다
또 이상하게도 일에 휘말려 버린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어째서냐 나는…!’
내가 내 주먹으로 내 몸을 때리는 것과 같은 자해를 하고 있는 자신이 하찮아졌다.
“탐…지….”
한참 딴생각에 빠져있을 때즈음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들렀다.
내가 그 인형을 바라보니, 그것이 멀찍이 떨어져 있었던 내 쪽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나는 소리를 낸적도 없었고 거리를 둘 때도 소리에 주의하며 움직였다.
그랬을 터였다.
하지만 그 인형은 귀신 같게도 나를 찾아내고 만 것이다.
“젠장, 이럴 때가 아니었네!”
나는 방심하고 있었던 나 자신을 자책했다.
‘어쩌지?’
나는 호신용 무기라도 만들어서 가져 왔으면 참 좋았을 텐데 하며 뒤늦게 후회를 해보지만, 이미 시간은 흘렀고 현재에 이르렀다.
나는 다행이도 냉각수를 두개나 챙겨와서 아직 하나가 남아있었다.
이것으로 다리를 못쓰게 해서 일단 도망치는 것이 나아보였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더듬거리며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인형을 주시했다.
“마무리가 어설퍼.”
갑자기 들려오는 차가운 목소리에 나는 얼어붙고 말았다.
촤아악!
그는 인형의 등 뒤에서 갑자기 나타나 크고 육중한 몸을 반으로 갈라버렸다.
쿵!
잘린 인형의 절단면에서 기름이 뿜어져 나왔다.
그 기름은 바닥을 흘러흘러 거리의 도로를 잔뜩 적셨다.
“아….”
나의 딱 벌어진 입은 다물어질 낌세가 보이지 않았다.
“흠… 일단 가자.”
그는 나에게 고개를 까딱하고는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인형의 잔해를 내버려 두고 가려고 했다.
그 때 그의 등 뒤에서 붉은 색의 빛이 났다.
“제거합니다!”
아까와는 다른 얇은 목소리었다.
“조심하세요!”
나는 루이스에게 소리치며 냉각수를 그의 등 뒤로 재빨리 던졌다.
챙그랑!
촤악!
내가 냉각수를 던지자 마자, 그가 등을 돌려 그 인형을 베어버렸다.
‘빠, 빠르다….’
인간을 초월한 것 같은 그의 움직임에 감탄하고 있을 때 즈음 그가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나도 따라 주위를 둘러보자, 어느 순간 부터 보고 있었는지, 굳게 닫혀있던 창문들이 열려있었다.
회색빛의 어두운 거리에 노란빛의 색갈이 칠해져 있었다.
크기와 모양이 다양한 그 노란 도형들 사이에 사람의 머리처럼 보이는 그림자가 한둘이 보였다.
어느새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인형을 없앤 꼴이 된 것이다.
나는 사람들을 구했기 때문에 그들의 칭찬 소리가 들릴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상상과는 다르게 그들의 반응은 정반대 였다.
“사탄…!”
자그맣게 들린 외마디는 거리의 벽을 타고 울려퍼졌다.
인형의 속에 있었던 기계가 작동을 멈추는 소리가 멈추고 적막이 흐르던 그 공간에서 누군가가 흐름을 깬 것이다.
“악마…!”
처음 소리를 내었던 사람의 용기에 전염이 되듯 하나 둘씩 우리에게 폭언을 내뱉기 시작했다.
시작이 어렵지 익숙해 지면 간단하다는 말이 맞는 말이라고 인정하는 순간이었다.
“감히 천사를!”
“천벌을 받을게야!”
남녀노소 관계없이 창문을 열고 기름이 튄 우리들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들에게는 두려움이 없었는지, 루이스의 실력을 보지 못하였는지 그렇게 말하던 것이었다.
옆에서는 루이스의 짜증이 섞인 한숨소리가 들렀다.
“다들 단단히 미쳤군.”
그는 그들이 하는 폭언과 그들이 나타내는 무언의 압력은 가소롭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그가 멋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다수의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만 다른 생각을 하며, 말할 수 있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잘못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 수 있고 심지어, 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기까지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사실을 말하더라도 엉터리 선동이라고 주장하며, 올바른 말을 하더라도 그들은 대꾸는 커녕 들은 척도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신념이 더 중요한 것처럼 당당하게 말했다.
“촌장님, 어서 죽입시다!”
누군가 크게 외쳤다.
그 말이 결정타 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럽시다!”
“천사들을 모욕하다니! 죽입시다!”
“신님의 도움이라면 가능합니다!”
그들은 함성을 지르며 집안에서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들의 손에는 집안에서 갖가지 무기가 될 만한 것들이 들려 있었다.
“하하… 이거 난감하게 되었네요.”
나는 쓴 웃음을 지으며 루이스를 바라보았다.
“조용! 조용!”
사람들을 큰 소리로 진정 시키며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분위기상 그는 촌장 인 것 같았다.
“이래서는 편히 이야기 할 수가 없겠군.”
루이스는 착잡한 표정으로 조용히 말했다.
“저자들은 신과 천사들을 모욕한 죄로 죽어 마땅합니다.”
어처구니 없는 말로 주장을 펼치는 촌장처럼 보이는 사내는 그닥 유식해 보이지 않았다.
“맞습니다!”
“맞아요!”
사람들은 그의 말이 무슨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적인 연설을 한 것 처럼 환호성을 질렀다.
‘일이 어떻게 되어가는 거야…?’
나는 당혹스러울 뿐이었다.
이웃에 사는 누군가가, 거리에서 지나다니다 스쳐지나간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나를 죽이려 한다니, 조금 어이가 없어지려고 한다.
“신의 사도가 분명! 우리에게 강력한 힘을 줄 것입니다!”
그 사내의 말에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일렁이는 횃불의 불빛에 비춰지던 흑색의 눈동자가, 광기에 가득찬 눈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조금 거리가 있었지만 분명 어디에 선가 봤었던 눈빛이었다.
잠깐이지만, 눈동자의 색이….
‘라이브 씨…?’
순간 뒤동수를 한대 맞은 것처럼 머리가 띵해지려는 찰나에 루이스가 외쳤다.
“일단, 장소를 바꿔야 겠다.”
나는 결의에 찬 그의 목소리에 덩달아 마음이 달아올랐다.
“네!”
“너, 벽은 잘 타나?”
뜬금없는 그의 물음에 나는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어, 어… 어느… 정도는요?”
그는 조금 신뢰할 수가 없다는 듯한 눈초리를 하고서는 몸을 재빨리 틀어 골목길로 뛰어들어 갔다.
“도망간다! 쫒아라!”
“와아아!”
그가 움직이자 마자 사람들이 반응했다.
나도 서둘러 그의 뒤를 쫒아갔다.
그는 달리기도 빨랐다.
순식간에 그와의 거리가 벌어지려고 했기 때문이다.
‘나도 나름 빠른데….’
과거에 도둑질을 할 때를 떠올리며 나는 궁시렁 대었다.
나는 그 때 달리기가 빠른 편이라 자주 훔치는 역할을 했었다.
어린 나이에 이리저리 도망치며 주위의 사물들을 활용하는 법을 익혔다.
그 때의 경험이 지금에 와서야 도움이 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그와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힘차게 뛰기 시작했다.
그는 재빠르게 달리며 나에게 외쳤다.
“이대로는 잡힌다! 이제 지붕으로 올라가자!”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벽에 튀어나와 있는 벽돌과 나무들을 밟고 훌쩍 훌쩍 지붕위로 올라가 버렸다.
‘와… 사람이야?’
나는 그의 벽타기 실력에 감탄할 새도 없이 사람들이 골목길로 들이닥쳤다.
“이거 잡히겠는데?”
나는 나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 심장이 쫄깃해지며, 나도 모르게 즐기기 시작했다.
“그럼! 어디 한 번 따라와 보라고!”
나는 벽을 훑어본 뒤에 이쪽 저쪽을 살피며 벽을 탔다.
우지끈!
그런데 갑자기 오른쪽 발이 쭉 아래로 미끌어지며 중심이 흔들렀다.
“아!”
아무래도 내가 밟은 벽은 꽝이었던 모양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