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12 마녀 사냥 (1)
“앗…!”
갑자기 쑥 빠져버린 발에, 내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젠장! 거의 다 올라왔는데!’
발 밑에서 노란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손을 뻗어 닥치는 대로 아무거나 붙잡았다.
“허억!”
쿵!
커다란 나무 조각이 아래로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떨어질 뻔 했네…!’
나는 놀란 가슴을 진정 시키며, 슬슬 한계점이 다다르고 있는 내 팔을 쉬게 해주기 위해 다른 붙잡을 곳을 물색했다.
‘어디냐! 어디야!’
나는 어두컴컴한 벽을 신중하게 살피며, 다시는 떨어질 뻔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아까는 진짜 그대로 떨어지는 줄로만 알아서 심장이 철렁 했었다.
‘아! 저기!’
나는 눈 바로 앞에 툭 튀어나와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속으로 기뻐 외쳤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던가?
실제로 겪어보니 짜증이 팍 밀려오는 말이었다.
턱!
나는 가까스로 살아남아 지붕 위에 올라왔다.
나는 몸을 돌려 얼굴을 빼꼼 내밀고는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내려다 보았다.
그들 중에는 벽을 탈 수 있는 사람이 없었는지, 목이 빠져라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의 횃불에 그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의 눈에서 녹색 빛이 났다.
내 착각인가 하고 눈을 비벼 그들을 내려다 보자, 빛은 없어졌다.
“얼른 가자고.”
어느새 내 등 뒤에 와있었던 루이스가 말했다.
“아, 네.”
* * *
“여기에 뒷문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나는 루이스의 뒤를 따라가면서 말했다.
우리는 히로의 책방 뒷문으로 가기위해 어둡고 좁은 골목길을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몰랐다고? 처음이 아닌가 보군.”
루이스는 감사하게도 나의 말에 대꾸를 해주면서 걸었다.
“네, 뭐… 자주 책을 읽으러 갔었거든요.”
나는 틈만 나면 그 책방으로 갔기 때문에 그 책방에 가는 것은 거의 내 일상이 되어있었다.
조금 부풀려 말하자면, 눈을 감고도 갈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럼, 히로와는 구면이겠군.”
그는 조금의 텀을 두며 내 말을 받아줬다.
그 잠깐의 텀이 내가 실수라도 한 것은 아닌가 하고 나를 조마조마하게 만들었다.
차갑고 무감정해 보이는 그는 조금이라도 잘못을 했다가는 평생 나를 쳐다보지도 않을 것만 같았다.
“히로요?”
나는 그 이름을 자주 보기는 했지만, 정작 그 이름의 주인과는 이야기 해본적이 없는 것 같다.
“책방의 주인.”
나의 물음에 그는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
최대한 말을 적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들렀다.
‘설마 내가 싫어져서 말을 섞는 것을 꺼려하게 된 것은 아닐까?’
나는 괜한 걱정을 하며 그를 따라갔다.
갑자기 그가 멈추어 섰고, 나도 따라 멈추었다.
“무슨 일 있어요?”
나는 작은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무슨 일이 또 생긴 것인가 하고 가슴을 졸였다.
그는 나를 경멸의 시선으로 보더니 문을 열고 건물로 들어갔다.
‘아, 도착 했구나.’
* * *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안으로 들어왔다.
안은 생각보다 어두웠다.
방 한가운데에 있는 탁자 위에 랜턴이 은은하게 방안을 밝히고 있었다.
겨울에 왔었다면 분위기가 정말 좋았을 것이다. 이 장소에서 따뜻한 차를 한 잔 홀짝 이며 멍을 때리고 있는 내 자신을 상상했다.
“아휴… 이제 왔구만?”
두번째로 시야에 들어온 것은 상당히 피곤해 보이는 사림이 소파에 걸쳐 앉아 있었다.
그는 기다리다 지쳤는지 눈이 벌게져 있었고 피곤에 절여져 있었다.
그리고 그가 컵에 담겨져 있는 갈색의 액체를 들이켰다.
익숙한 향기에 나는 그것이 커피 라는 것임을 알아챘다.
그는 억지로 잠을 참으며 우리를 기다렸던 것 같았다.
“오다가 일이 생겼다.”
루이스는 인형이 말하는 것처럼 딱딱하게 말했다.
기다리고 있었던 그는 기가 찼는지 콧방귀를 뀌었다.
“참나, 너는 변함이 없구만?”
그는 잔뜩 충혈되어 있는 눈으로 루이스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리고는 그의 등 뒤에 쭈뼛 쭈뼛 서있던 나를 보며 말했다.
“어이고, 이렇게 보니 감회가 새롭네? 어쩌다 여기로 끌려온거야?”
그는 루이스가 나쁜 사람인 양 나를 잔뜩 걱정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가 말하는 내용을 보니 아마도 그가 히로인 것 같았다.
“역시, 그는 우리와 함께 일할 거야.”
“네?”
“뭐?”
그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이런 꼬맹이가?”
히로가 벌떡 일어나며 큰 동작으로 나를 가리켰다.
“그건 또 무슨 소리에요?”
나는 루이스를 보며 외쳤다.
“싫은가?”
그는 딱딱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 아뇨… 딱히 그런 것은 아니지만 무슨 말인지 당최 이해가 가지 않아서요.”
나는 눈을 껌뻑거리며 당혹스러워 했다.
그와 동시에 그가 화라도 났나 싶어 조심스러워 졌다.
“다행이군, 그것은 차차 말해주지.”
그는 안심 했다는 듯이 팔짱을 끼고서 의자에 앉았다.
사뿐히 앉는 그는 무척이나 가볍게 느껴졌다.
나는 깔끔하고도 가벼운 그의 움직임에 속으로 감탄했다.
“하… 루이스…? 내가 혼자 결정하지 말라고 말했잖아…?”
히로는 크게 한숨을 쉬며 몸에 힘을 쭉 뺐다.
루이스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 고개를 돌려 보니, 그는 나는 잘못 없다는 듯이 히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루이스가 아무런 반응이 없이 앉아있자, 히로가 숙였던 허리를 피고서 말했다.
“뭐! 그럴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은?”
그렇게 말한 그는 웃으며 허리에 손을 얹었다.
아무래도 그는 지기 싫어하는 성격인 것 같았다.
필사적으로 웃는 그를 보니 한편으로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보다 무슨 일을 하길래 저를 여기로 데리고 온 건가요?”
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루이스는 잠깐 나를 보더니 눈을 감고 말했다.
“원래 여기로 오고 싶어한 건 너 잖아?”
“아, 그렇네요.”
나는 바보 같은 질문을 했다는게 나 자신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다.
“그럼! 내가 설명해 주는 게 낫겠지?”
언제 회복 했는지 히로가 신나하며 물었다.
그의 물음에 루이스는 고개를 끄덕했다.
“이쪽은 루이스, 자기 소개를 잘 안하니까 이름은 모를 거라고 생각해서 말이야.”
그는 루이스와 다르게 말에 사견이 마구마구 섞여있는 사람인 듯 했다.
“나는 이미 알겠지만, 히로야. 내가 권해준 책을 다 읽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해두고 싶었어.”
그는 친근하게 말하며 말했다.
가만히 지켜보니 그는 손짓 발짓까지 사용하며 말했다.
그의 얼굴도 그의 말과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뭔가 필사적으로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튼! 우리는 ‘마녀사냥’을 하고 있어.”
‘마녀…?’
동화에만 나오던 그 단어가 뇌리에 박혔다.
“음… 쉽게 말해 이상한 힘으로 사람들을 괴롭히는 부류인데,”
“빨리 끝내지.”
히로가 말을 하고 있을 때 루이스가 끼어들었다.
“어, 그래 내 피로를 생각해줘서 고맙네.”
루이스의 말에 화를 낼법 한데도 그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고마움을 표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그 마녀들이 은빛 천사라 불리는 인형들을 숭배하는 종교를 주도하고 있어, 그래서 우리가 없앨거야.”
“너무 간단한데요…?”
뭔가 많은 것들이 생략되어 보이는 그의 설명에 나는 얼떨떨했다.
하지만 그 간단명료한 말에 나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신기했다.
“우리만으로는 부족해서 사람을 찾고 있었어, 네가 알고 있는 팜 씨 말고는 없거든.”
히로는 정말 슬프다는 듯이 입꼬리가 턱 아래까지 내려갔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그랬다.
얼마나 얼굴 근육을 사용했기에 묘기에 가까운 표정을 지울 수 있는지 신기했다.
생각해보니 그 둘은 기묘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루이스가 대뜸 사람을 소개시켜 준다네? 그 루이스가?”
자기도 믿을 수 없었다는 듯이 눈을 휘둥그래 뜨면서 말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조금 흥분 한 듯했다.
나였어도 그랬을 것 같았다.
무뚝뚝하고 차가운 사람이 사실은 친한 친구가 많은 마당발 이었다는 상상을 하니 조금이나마 히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니? 소개시켜준 사람이 내가 알고 있던 애라니? 이건 또 무슨 우연의 일치냐 이말이야.”
그는 아까보다 더 흥분해 하며 말했다.
“아무튼 반가워.”
그러고선 뜬금없이 악수를 청했다.
나도 얼떨결에 악수까지하고 포옹까지 해버렸다.
“아, 이제 늦었으니 집으로 돌아가 봐.”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졸린 눈을 비비며 우리에게 가라는 손짓을 했다.
“아… 조금 더 설명해 주었으면 하는데….”
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정보는 최대한 많은 것이 좋았다.
그래야 생각을 하고 계획을 더 철저하게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음… 그냥 다음에 차근차근 설명해 줄게.”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다음을 기약했다.
그의 피곤해 보이는 얼굴에 나는 더 매달리지 못했다.
“알겠어요. 그럼, 가보겠습니다.”
나는 아쉬운 마음은 잠시 접어두고 빠른 시일 내에 다시 와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가만히 눈만 깜빡이고 있던 루이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도 집으로 향하려는 듯 했다.
‘그런데 집이란 게 있을까?’
“아, 그런데 사람들이 저희를 죽이려 하던데요?”
나는 갑자기 그 사람들이 생각났다.
‘내일 낮에도 그러면 어쩌지…?’
다른 사람이 내 얼굴을 본다면 필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을 것이다.
“음음, 아니야 걱정 안해도 돼.”
히로는 방으로 돌아가려는 발길을 돌려 나를 안심시켜 줬다.
“일시적인 집단 환각이다.”
루이스도 설명을 덧붙였다.
“그러니까 안심해도 돼, 그리고 마녀들은 밤에만 활동 하거든. 그들도 먹고는 살아야지.”
히로는 그들의 노고를 이해라도 하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설명이 이정도로 충분 할 것이라 생각했는지 루이스는 문을 열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참 붙임성이 없지?”
히로가 내 어깨를 두들겼다.
“나도 처음에는 인형인 줄 알았다니까?”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움직임도 사람을 뛰어넘은 것 같아요.”
나는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쟤는 어릴 때 부터 그랬어. 뭐든 곧 잘했지.”
히로는 그리운 과거를 회상 하듯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럼, 저도 가볼게요.”
왠지 히로의 말이 길어질 것 같아서 나도 서둘러 나가기로 했다.
“그래! 조심히 가고!”
대화를 끊고 떠나려는 나를 별탈 없이 보내주려는 그는 시원시원 했다.
“그럼! 잘자요~”
나도 방긋 웃으며 인사를 했다.
그가 나에게 친근하게 대하는데 내가 가까이 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나는 뒷문을 열고 집을 나섰고, 주위를 살피며 집으로 돌아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