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12 마녀 사냥 (4)
나는 궁금한 마음에 히로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그럼, 히로 씨는….”
“아, 이런 너무 말을 많이 한 것 같군.”
나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페퍼의 눈치를 보며 얼렁뚱땅 넘어가 버렸다.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그는 진땀을 빼며 애써 모른척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굳이 더 캐묻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는 바람에 그냥 그만두었다.
나도 그도 싱겁게 그냥 끝나버렸다.
“그럼, 나는 위층에 있을게, 마음껏 읽고 가렴?”
히로는 상냥하게 말하며 사뿐사뿐 계단을 올라갔다.
‘사뿐사뿐?’
나는 그에게 신경쓰는 의미 없는 일은 그만두고 책들이 쌓여있는 밖으로 나갔다.
페퍼는… 나는 신경도 쓰지 않은채로 책을 열심히 읽고 있다.
‘슬프구만?’
* * *
나는 ‘지구와 중력에 관하여’ 라는 딱 봐도 재미없어 보이는 책을 들고 왔다.
페퍼는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은채로 책을 읽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한번도 눈을 마주치지 않는 그녀에게 서운함이 느껴지려고 한다.
옆에 앉으며 과연 그녀는 무슨 책을 읽고 있을지 궁금해져 책의 겉표지에 적혀있는 제목을 흘낏 살펴보았다.
거기에는 ‘과자의 역사’ 라는 글귀가 적혀있었다.
“음?”
나도 모르게 소리내서 말해버렸다.
그녀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과자의 역사]라니 뭐야?’
나는 내가 잘못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다시 유심히 바라보아도 그렇게 적혀있었다.
‘…뭐지?’
나는 그렇게나 과자가 좋은가 라고 생각했다.
하긴 과자 가게에 모두와 같이 가게 되는 날이면 이상할 정도로 텐션이 높았기는 했다.
사실은 나도 그렇긴 했다.
담백하고 고소한 쿠키와 함께 먹는 커피는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그래서 그녀들이나, ‘그녀들’이나, ‘그’에게서 얻는 피로는 그때 해소 하기도 했다.
그녀들이란 늘 항상 나를 놀려대며 마음껏 부려대는 그녀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녀들이란 늘 항상 나를 윽박지르며 잔뜩 기를 죽이며 역시 마음껏 부려대는 그녀들이다.
그란 사소한 일에 끼어들며 이것저것 토를 다는 짜증나는 그를 말하는 것이다.
더 이상의 설명은 하지 않으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뭔가… 암담한 기분이 들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별거 아닌일에 과민반응할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일상의 대부분이 그들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과 만나지 않는 시간은 목욕 시간과 취침 시간일 뿐, 항상 만나게 된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게 하루가 되고 일주일이 되고 한달이 되다보면, 슬퍼지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익숙해지려고 노력했지만, 그들은 방식을 바꾸며 나를 농락했다.
‘것참….’
어쩌면 팜 아저씨 공장에서 일했던게 나에게는 더 좋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페퍼, 얼마정도 읽었어?”
나는 적어도 그녀에게 만큼은 이쁨을 받고 싶었기에 좋은 모습을 보이려고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왜 나는 그녀에 한하여 그렇게 생각이 드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제일 먼저 만났고 상대적으로 오랫동안 지내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음.”
그녀는 그 책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인지, 대답하려다 말았다.
“아… 다름이 아니라, 조금 일찍 나서서 근처에 과자 가게가 있나 둘러보고 싶어서.”
내 말이 끝나자 마자 그녀는 책을 덮으며 환호성을 질렀다.
“좋아아아아아!”
“어…?”
생각보다 좋은 반응에 되려 내가 당황하고 말았다.
“그럼, 지금 갈래?”
방금까지 읽고 있었던 책이 언제 관심있게 읽었냐는 듯이 탁자에 내팽겨져 있었다.
‘불쌍한 녀석….’
그 책에게 왠지모를 동질감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번에 생각했던 지구와 관련된 지식을 조금이나마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다음을 기약해야 할 것 같았다.
“좋아, 가보자고.”
* * *
“딱히 좋아보이는 가게는 보이지 않네.”
눈에 들어오는 가게 마다 진열되어 있었던 과자들을 살펴보니 딱히 맛있어 보이는 것들은 보이지 않았다.
“흠… 그러네.”
뭔가 실망한 듯한 그녀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긴장되었다.
“곧 찾을 수 있겠지.”
“그러게 말이야, 이러다가 해가 지는 건 아닐까 몰라.”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잔뜩 우울해 하면서 말했다.
확실히 왕궁에서 지낼 떼는 거의 일주일에 한번씩 먹으러 가고는 했었다.
아마도 주기적으로 갔었던 날이 이맘때 즈음 아니었을까 싶다.
* * *
“하… 그냥… 돌아가자.”
잔뜩 풀죽은 모습으로 포기하고 팜 아저씨 공장으로 돌아가려는 페퍼였다.
“음….”
나는 괜한 이야기를 꺼내 그녀를 실망시킨 것은 아닐까 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저기만 둘러보고 갈까?”
나는 살짝 허름해 보이는, 가능성이 없어보이는 가게를 가리키며 말했다.
“음… 그래.”
그녀도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으려는 듯이 눈에 조금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 가게는 밖에서는 안쪽이 잘 보이지 않는 바람에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조심스레 문을 열고 머리를 문 안쪽으로 집어넣었다.
“실례합니다~”
그 가게안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긴장감이 맴돌고 있었기에, 나도 모르게 마른 침을 꿀꺽하고 삼켰다.
“어여 들어가자구.”
등 뒤에서 페퍼가 자꾸만 재촉했다.
콕- 콕- 콕-
분명 별로 힘을 안주고 찌르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압박감을 주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앞뒤로 샌드위치 처럼 압박감을 느끼며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겼다.
“누구야?”
잔뜩 신결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게 안쪽의 주방에서 중후반 느낌의 앙칼진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과자를… 보려고요.”
나는 여기 마저도 별로라면 낭패라고 생각했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가게에 들어와 버렸기 때문에 그냥 가버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소량이라도 과자를 사들고 나가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한다.
“흥, 맘대로 하라고.”
그렇게 말한 그녀는 다시 주방으로 향해 들어가 버렸다.
처음 느꼈던 가게의 느낌이 그녀로 부터 나오는 것을 확인하고 서둘러 고르고 가게를 나가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과자의 가짓수가 많았고, 주방 에서 흘러나오는 고소하고 달콤한 향기가 나의 발목을 붙잡았다.
페퍼 역시 그렇게 느꼈는지, 눈에 불을 키며 과자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늘 그랬듯이 과자의 선택은 그녀들이 해왔기 때문에 여느 때 처럼 그녀가 다 고를 때까지 가만히 서있었다.
“괜찮아?”
나는 재차 확인하며, 그녀가 만족할 만한 퀄리티인지 물었다.
“응, 향도 좋아.”
그렇게 말한 그녀는 거침없이 봉투에 담아져 있는 몇가지의 과자를 집어 들었다.
‘오호….’
나는 그녀의 안목을 신뢰하고 있기 때문에 분명 맛있으리라 생각했다.
“아주머니~”
그녀는 계산을 하기 위해 안쪽에 있던 그 사람을 불렀다.
“뭐, 사려고?”
전혀 손님을 배려하지 않는 말투에 떨떠름해 보이는 그녀는 과자를 왜 사냐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향이 좋네요.”
페퍼는 담백하고 진솔한 칭찬을 했다.
나는 옆에서 긍정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 우리를 그녀는 말없이 바라보았다.
“띄워 줘 봤자지.”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페퍼의 손에 들려있는 과자봉투를 낚아채 더 커다란 봉투에 담기 시작했다.
뭐 이런 불친절한 사람이 다 있나 싶은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이상하게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래서 얼마죠?”
페퍼는 자신의 허리춤을 뒤지며 물었다.
“얼마냐고? 은화 7개만 줘.”
그녀는 우리가 고른 양에 비해 터무니 없이 적은 양의 액수를 불렀다.
“싸네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자연스럽게 돈을 건넸다.
“하, 싸다고? 그러면 누가 먹는 다는 말이냐.”
그녀는 내가 건넨 돈을 받아들고는 콧방귀를 뀌었다.
“이것도 비싼 값이야….”
그녀는 아련하게 먼지가 잔뜩 낀 창문 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 생각이 짧았구나.’
나는 거리의 사람들을 잊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꽤 나가는 값일 것이다.
“가, 감사합니다.”
나는 고개를 꾸벅숙여 경의를 표했다.
자신의 몸 하나를 챙기기도 바쁜 이 세상에서 남을 위해 배려하고 끝까지 고수한다는 것은 멋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뭘? 네 여친 데리고 얼른 사라지기나 해.”
그녀는 내 감사인사를 이해 했으면서도 모르는 척 우리를 내쫓으려고 했다.
“앗, 저… 안녕히계세요.”
페퍼는 무언가 말을 꺼내려고 했지만, 그냥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했다.
“다음에 또 와도 될까요?”
나는 능청스럽게 물었다.
그녀가 나쁜 사람 만큼은 아니다 라는 것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뭘 또 쳐온다고 그래?”
그녀는 버럭 화를 내며 윽박질렀다.
“아앗, 아… 그, 그럼….”
생각보다 두터운 그녀의 외벽은 나의 다년간 갈고 닦아 온 능청스러움으로는 부족한 듯 했다.
그렇게 우리는 쭈뼛쭈뼛 가게를 나서려고 했다.
“잠깐!”
창문을 통해 가게 밖을 지켜보던 그녀는 황급히 우리를 불러 세웠다.
“네?”
나와 페퍼는 아까 전과는 확연히 다른 그녀의 분위기에 이상함을 느끼며 뒤돌아 보았다.
“안쪽으로 들어가라.”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창문을 두꺼운 헝겊으로 덮고, 등불 안에서 은은하게 타오르던 불꽃들을 입김을 불어 하나 둘씩 껐다.
“무슨 일인가요?”
나는 갑작스럽게 가게의 불을 끄며 빛이 한 가닥 이라도 밖으로 세어나가지 않게 하려는 그녀의 움직임에 당황하며 물었다.
“닥치고 안으로 들어가!”
다급해 보이는 그녀의 외침에 나와 페퍼는 망설이며 안쪽으로 들어갔다.
* * *
방 안으로 들어서자, 혼자 사는 듯한 분위기가 풍겼다.
나름 잘 꾸며놓았고, 정리를 해 놓았지만, 곳곳에 관리를 하지 못한 부분들이 남아있었다.
그녀의 키로는 닿지않아 그냥 방치해 두었던 상자더미와 장식들 위에 먼지들이 내려앉아 있었다.
그녀가 풍기던 분위기와 다르게 편안한 방안의 디자인에 나와 페퍼는 감탄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기다란 소파에 앉았다.
“됐군.”
그녀는 이마의 땀방울을 소매로 훔치며 안으로 들어왔다.
조금은 진정되어 보이는 듯한 그녀의 모습에 우리도 조금은 한시름 놓았다.
“어떻게 된 일인가요?”
나는 재차 물었다.
그녀는 밖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아 채었고, 무언가 알고 있는 듯한 눈치였다.
“됐다. 잠시 동안 여기 있어라.”
아까보다는 많이 누그러워진 듯한 그녀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편안해졌다.
“혹시… 마을 사람들이 이상한가요?”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히로나 루이스에게서 들은 단어들은 꺼내지도 않은채로 내가 알고 있는 정보들을 조금씩 흘렸다.
“으오아아!”
“어이! 어이!”
쾅!
콰직!
“와아아아!”
그 때 갑자기 밖에서 큰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사락…!
옆에 앉아있던 페퍼가 불안한지 내 소매를 붙잡았다.
나는 다른 한쪽 손으로 그 손을 붙잡았다.
“이상하다니? 이미 알고 있던 거냐?”
흥미롭다는 듯이 그녀가 내게 다가와 물었다.
“그러는 아주머니도 뭔가 알고 계신 듯 한데요?”
나는 알게 모르게 느껴지는 그녀의 카리스마에 휘둘리지 않도록 조심하며 되물었다.
“하, 건방지군. 나는 아주머니가 아니라….”
그녀는 얼굴을 가까이 하며, 험악한 얼굴을 했다.
“드릴린이다.”
나는 묘하게 카리스마가 넘치는 그 아주머니의 말을 듣고 침을 꿀꺽 삼켰다.
그녀는 신기했다.
‘이 사람은 대체…?’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