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화 〉#13 다시, 주의를 돌려서. (1)
“7 구역이 없어진다고요…?”
기억을 되짚어 히로의 책방에서 읽은 책의 구절을 떠올렸다.
그 기록의 일부분은 나라의 구성에 관한 것이었다.
도시의 중심부에는 왕궁이 위치해 있다.
그 왕궁을 둘러싸며, 7개의 구역이 시계방향 대로 다닥다닥 붙어져 있었다.
각 구역은 지형과 문화의 특성에 따라 나라를 지탱하는 역할이 맡겨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이상의 내용은 알 수 없었다.
그 페이지는 누군가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뜯겨져 나가고 없었기 때문이다.
히로에게 그 부분에 대해 물어보기는 했었지만, 본래 자신의 책이 아니었기 때문에 모른다는 대답 밖에 얻지 못했다.
또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각 도시들은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었지만, 그 경계를 나타내는 표지판 마저 없었다.
각 도시별로 중앙에 위치한 경비대의 본부가 도시를 알릴 뿐이었다.
거기에 더해 어디를 가든지, 바닥은 기름때가 가득했고, 역한 냄새도 가득했다.
중심가, 상가, 그 외의 교류의 중심지는 나름 깔끔했다.
귀족의 존재가 그런 부분에서 청결함을 요구하였다.
그 외 미천한 신분의 사람들은 어둠이 익숙해져 있는 상태였다.
그러니까, 각 구역의 역할에 맞게 사람들은 소모되고 있었다.
의도치 않은 자기 희생.
그것이 왕궁에서 부터의 지시라면….
각 구역에서 무언가 역할이 있다고 한다치자.
경제 활동, 치안, 환경 조성 및 유지관리.
그러한 역할을 맡은 기관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것이 뜬구름잡듯 허무맹랑한 주장이 아님을 나는 생각한다.
내가 아주 예전에 신기한 경험을 했었기 때문이다.
언제 한번 중심가에서 연료로 사용할 기름을 운반하다가 접촉 사고가 일어나서, 바닥이 기름으로 흥건하게 되었던 적이 있었다.
나름 상당히 큰 일이었기 때문에 그 때 당시에도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었다.
그들 틈에서 나 역시 호기심에 따라 그 모습을 관찰했었다.
다음 날, 나는 그곳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고 싶었다.
별 흥미없는 척을 하며 그 거리를 본 순간.
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기름은 한방울도 존재하지 않았다.
애초에 없던 것처럼, 그곳에는 평범한 길목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 많던 기름이 말이다.
고작 반나절 만에 흔적도, 냄새도 남지 않고 사라지다니.
많은 사람들은 의아해 하고 신기해 했지만, 그들의 관심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그 의문점을 잊지 않은채로 감추어두고 있다.
아직 이 도시들의 역할과 의미에 대해서는 알아내지 못했다.
이 나라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았다.
무지함을 자각하며, 끝없는 호기심을 충족시키려는 나의 탐욕은 그 사건을 내 뇌속에 기억하게 만들었다.
그 말은 즉은, 그러한 정보가 지금에서야 연관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구역이 없어진다.
그 말의 의미는 더이상 정부 즉, 왕궁은 그러한 역할을 맡았을지도 모르는 기관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했다.
여전히, 나는 내 지식욕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왕궁이 없어지는 것은 미래의 내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보를 얻을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런건 원치 않는다.
“음… 어디서 부터 설명해야 할지….”
히로는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눈알이 빠르게 좌우로 움직이면서 우리의 주위를 걸어 다녔다.
평소의 습관 같았던 과장된 행동은 긴급하고 중요한 상황에서도 적용되는 것 같았다.
그런 인위적인 제스처를 사용해 뜸을 들이는 모습은 내 눈에 탐탁치 않았다.
보다못한 루이스가 대뜸 말했다.
“…사건이 너무 눈에 띄어, 왕궁에까지 흘러들어갔다. 진압이든, 반란이든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아.”
‘갑자기?’
“그럼… 결국 그렇게 되는겐가….”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팜.”
루이스와 팜은 무언가 알고있는 듯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음… 과거에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인가?’
진하게 묻어나오는 그들의 감정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그들의 과거에 대해서 추측하기 시작했다.
마녀.
왕궁.
괴물.
사람의 감정.
벽 밖.
제한적인 자원.
그것들은 한데 모여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수레바퀴 처럼 돌고돌아, 서로가 서로에게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듯 했다.
사람은 사회의 동물이다.
라고 어떤 책에서는 쓰여있었다.
사람은 소통을 하며, 모든 일의 시작점 또한 대화, 즉 언어로써 오가는 정보 수집이다.
그러는 와중에서, 그 말을 전달하는 화자의 심정이 얼굴 표정, 풍기는 분위기, 억양, 말투, 말하는 음량과 속도에서 드러난다.
그러한 정보들은, 수많은 추측들을 할 수 있게 해주며, 언제나 나를 남들보다 한발 앞서서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고는 한다.
그러니, 나는 눈 앞의 과거의 사람들을 1초의 낭비도 없이 관찰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그런 것처럼.
그런 정보의 순환은 과거에도 이루어졌다.
그 당시에 있었던 사람들이 눈 앞에 있다.
그들에게는 그 때의 기억이 남아있으며, 그 때의 정보가 잔존해 있을 가능성이 꽤나 높다는 의미다.
직접적인 말은 꺼내고 있지 않지만, 그 단편적인 부분 외의 것들은….
나의 [상상력]으로 채우면 된다.
현실적이고, 이치적이고,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들로 구성된 나의 문제 예지와 파악 능력은 지금껏 나를 무수히 많은 문제들로 부터 구원해 주었다.
정보를 얻는 방법은 다양하다.
나의 목적을 위해 행동할 수 있는 수단 또한 다양하다.
고로, 나는 이제 그들을 이해하고자 한다.
이 나라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알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내 자신을 아낌없이 사용하겠다.
나는 도구로써, 사람들에게 희망을 선사하겠다.
이것은 내 비뚤어진 탐욕이다.
* * *
과거에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는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했다.
지금 나는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나와 페퍼, 소브와 팜 아저씨 부인은 갓 구운 빵을 베어물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페퍼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대화를 시도했지만, 나의 모든 신경은 내 뒷쪽에 위치한 그들의 말소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내 등 뒤 너머에는 세 사람이 조용히 속삭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진심을 발휘하면, 두 상황을 부드럽게 해결할 정도로 내 자신이 유능해진다.
…그냥 자랑이다.
뭐 어떤가.
잘난 게 없는 내가 그나마 자랑할 수 있는건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팜 아저씨와 두 사람은 왕궁과 경비대들을 쉬쉬하는 분위기이다.
그들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아예 적대적인 느낌이었다.
한마디로 그들에게 경비대란, 적이라는 것인데….
마녀 역시 그들에게 있어서 적이다.
그렇다면 왕궁은…?
‘하지만, 왕은 팜 아저씨와 절실한 친구라고 했었는데?’
나는 그들 사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
그들에게서 캐묻기도 애매한 상황이기도 해서, 잠자코 있을 수 밖에는 없는 것 같았다.
"페퍼, 슬슬 돌아갈까?"
"응? 어딜?"
"왕궁."
"시간이 조금 늦었는데…?"
"굳이 지금 가자는 건 아니야."
나는 그녀가 마음의 정리를 마친 듯 한 것 같아서 내심 안심이 되었다.
곧, 라이브 씨와 충돌 예정인 그녀의 감정적인 안전이 걱정되었다.
나는 의사도 아니며, 남에게 무언가를 베풀 정도로 풍부하게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런데 우리, 뭔가 잊고 있지 않아?”
“아… 그러게?”
페퍼가 차를 홀짝 홀짝 마셨다.
“뭐였더라…?”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페퍼의 착각이거나, 아니면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흠.
“아….”
나는 허공을 바라보며 혹시라도 진짜 우리가 뭔가 잊고 있는 게 있는지 떠올려 보았다.
한참 동안 생각하고 있는데 코끝에 고소한 쿠키 냄새가 났다.
‘음…?’
“쿠키 먹을래요?”
팜 아저씨 부인이 우리에게 쿠키를 권했다.
오븐에 넣어진 것이 다 되었나 보다.
“당연하죠!”
어제 제대로 먹지 못 해서 쿠키 배를 채우지 못한 페퍼가 눈을 반짝였다.
우리 앞에 놓인 고소한 쿠키와 향긋한 차가 놓이자 나는 불현듯 떠올랐다.
“아, 페퍼 우리 쿠키 샀잖아.”
“그랬지?”
페퍼는 벌써 쿠키를 집어 들어 입에 넣고 있었다.
‘어지간히 먹고 싶었나 보다….’
페퍼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연거푸 쿠키를 집어먹는 것을 보니 밤동안 어떻게 참았을까 싶다.
“천천히 먹어, 어차피 사둔거 많이 있잖아.”
“근데 가지러 가야되잖아.”
페퍼가 오독오독 쿠키를 먹으며 말했다.
쿠키를 향한 올망졸망한 눈망울도 빠지지 않고서 말이다.
살면서 이렇게 쿠키에 눈이 초롱초롱 해지는 사람은 처음 봤다.
“그렇지, 지금 부터 가려고 하는데….”
지금은 해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히로와 루이스가 그들은 밤에만 움직인다고 했으니 안전할 것이다.
나는 아직 접시에 남아있는 쿠키를 보았다.
그리고 페퍼의 얼굴을 보았다.
약간 망설이며, 앞에 있는 쿠키를 아까워하고 있는 그녀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저 먹고 가자.”
나의 말에 그녀는 활짝 웃으며 기분좋게 먹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기분이 좋은 것은 그녀지만, 보고 있는 나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 * *
나는 팜 아저씨와 그들에게 일단 왕궁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그들은 지금은 몸을 피하며 최대한 조용하게 있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하니, 차라리 제일 안전한 왕궁에 있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며 우리를 배웅해 주었다.
안전.
그들에게는 왕궁이 안전한 곳으로 인식되는 듯 했다.
왕궁은….
사실, 짧은 기간에 겪고, 들었던 정보에 의하면, 왕궁도 의심해 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이게… 반역에 해당하는 대역죄라고 해도 말이다.
개인적으로 대역죄라고 한다면, 타인을 배신하고, 속에 있는 깊은 욕망을 숨기고 웃음을 띄우는 악인들이 저지르는 모든 행동들이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몇몇 사람들은 그런 탐욕을 숨기고있는 죄인이다.
그들과는 달리, 나는 형용할 수 없는 크기의 탐욕을 가지고 있다.
선행을 베푸는 것 역시, 추후에 얻게될 이득이라 생각하며 감내하고 버텨낸다.
옆을 보니 페퍼가 말없이 걷고 있었다.
확실히 어색해 할 만한 상황이 여럿 있었다.
은근히 흐르고 있는 이 어색한 공기.
음, 원인은 이렇게 딴생각에 빠지며 무표정으로 걷고있는 나의 태도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나는 구태여 무언가를 하려하지 않았다.
나는 의심한다.
우리 사이에 이렇게 어색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하지만 곧 페퍼의 어색한 몸짓을 보며 '불편하다.' 라고 느끼며 현실을 마주했다.
정말이지, 신경써야 하는 점이 한둘이 아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점.
현재 어제의 드릴린 씨의 과자가게에 도착했다.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어… 이거, 어쩌지?”
나는 난감해 하며 페퍼에게 물었다.
페퍼 역시도 동요하며 말을 더듬거렸다.
“엇, 어어… 어, 일단! 기다려보자! 잠깐 외출하신 걸지도 몰라!”
“그, 그래….”
이렇게 까지 동요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하지만 이미 오랫동안 기다린 터라 약간 이성을 잃은 듯했다.
과자를 향한 페퍼의 탐심은 마리가 혀를 내두를 정도다.
물론 과장이긴 하다만.
“뒷문이 있으려나?”
“엥? 그럴 수도 있겠는데… 설마, 들어가려고?”
나름 명쾌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했지만, 정색하는 페퍼를 보고는 위축되고 말았다.
최근들어 뒷문으로 오가는 일이 있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최근의 경험들을 참고 하다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영향을 받고 말았다.
“아, 역시 좀 그런가?”
“음… 아무래도 실례가 되겠지.”
“아, 그렇겠네.”
어째 분위기가 더 어색해지는 것 같다.
“뭐야, 멀쩡하네?”
굳게 닫혀있는 문앞에 서성거리는 우리에게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뒤를 돌아보니 드릴린 씨가 있었다.
“오, 오옷!”
페퍼는 이상한 감탄사를 내뿜며 얼굴이 환해졌다.
그녀의 품 안에는 온갓 식재료가 들려있었다.
아마도 쿠키를 구울 때 쓰는 것들로 보였다.
“아! 잘 지내셨어요?”
나는 실없이 웃으며 안부 인사를 했다.
“…고작 하루 가지고.”
드릴린 씨는 툴툴대며 나에게 짐을 떠맡겼다.
‘…굉장히 자연스럽잖아?’
나는 엉겁결에 받아들어 양팔이 무거워졌다.
드릴린 씨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문의 열쇠 구멍에 느릿느릿 열쇠를 끼워 돌렸다.
나는 함부로 말을 내뱉을 수는 없었다.
드릴린 씨와 같은 부류는 아무렇게나 말을 꺼냈을 때는 상당히 귀찮아지는 부류였다.
“왜? 불만 있어?”
그녀는 퉁명스럽게 말하고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페퍼도 신난듯이 발을 동동 구르면서 들어갔다.
‘못말린다. 애도 아니고.’
나는 동심으로 돌아가본지 꽤, 아니 애초에 그랬던 적이 없었다.
어렸을 적의 나는 그럴 여유가 없었으니까.
무엇인가를 좋아해 본적도 없고, 꿈을 꾸어본 적도 없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알 시간도 없었고, 주위를 살필 여유도 없었다.
단지, 하루하루를 필사적으로 살아가며 성장하고 배워왔을 뿐이다.
그 누구도 나에게 조언을 베풀거나, 선행을 베풀지도 않았다.
그들 역시 자신의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살아가며, 자기를 돌보기 바빴다는 것을 나는 이해한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도 그랬을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다.
나는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여유가 있어서 생각할 틈도 있었고, 자신을 성장시킬 기회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늦게 출발했다.
아직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뒤쳐져 있다.
세상은 모르는 것 투성이다.
그들은 아이처럼 행동할지 모르지만, 나는 아이같이 생각한다.
언제나 부족하고 생각이 짧다.
따라서 나는 성장하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뭐해? 안들어오고.”
드딜린 씨는 팔짱을 끼고 문틈에 기대있었다.
잠깐이지만, 생각의 나락으로 떨어질 뻔 했다.
“그렇게나 돕기 싫었나?”
“네? 아뇨 아뇨 잠시 딴생각에 빠져서….”
“하! 그럼 그렇지, 아무튼 내가 너희를 위해 친히 포장을 다시 해줬는데, 그것 즈음은 해줄 수 있겠지?”
“아! 감사합니다!”
나는 우리를 위해 수고를 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채고는 방금 전의 내가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뭘, 됐다. 그런 구차한 인사 받으려고 한게 아니니깐.”
그녀는 홱 돌아 가게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나 역시 그녀를 따라 가게로 들어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