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13 다시, 주의를 돌려서. (4)
“너는 밖에 대한 로망을 품고 있나?”
“네?”
그 사람에게는 낯선 사람이었던 나를, 그는 밀치지도 경계 하지도 않았다.
“로망 말이다. 수많은 사람이 도전하는 그곳 말이다.”
그 사람은 아까와는 사뭇 다른 밝은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다.
‘원래… 이런 사람인가?’
아까와 예전에 보았던 분위기는 우울하고 절망 뿐이었지만, 꿈을 좇는 어린 아이처럼 보이는 그는 행복해 보였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주제에 대해 말하다 보면 방금 있었던 나쁜 일조차 잊어버리고 기뻐하는 것 같다.
그 사람이 보여주는 모습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늘 그렇듯 내가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네, 관심이 있고 말고요.”
나는 생각보다 잘 따라와주는 상황에 당황 해버려 소극적이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다시 정신을 차려서 우울한 감정을 이겨내고 꿈에 대해 말하는 그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내비치고 싶지 않았다.
그가 보여주는… 말하고 있는 내용을 생각해보니, 나는 아무래도 큰 건을 잡은 듯 했다.
그러니 경솔한 행동으로 기회를 차버리는 어리석은 행동을 나는 절대 하고 싶지 않다.
“자네는 그들과 다르군….”
그는 아련한 눈빛을 하며 살짝 웃었다.
그 웃음에는 긍정적인 느낌은 전혀 없었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색안경을 쓰고 있는 그들을 떠올렸다.
자신의 생존만을 위한 이기적인 마음과 어리석음과 두려움 뿐만 있는 그들은 희망을 찾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제 나가려 하는 것 같던데요?”
나는 현재의 상황에 대해 말했다.
“아니! 아니야!”
내 말을 들은 그 사람은 대뜸 상을 두 주먹으로 내리쳤다.
쾅-!
그 소리에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페퍼와 세티가 무슨 일인가 하고 달려왔다.
“손님! 무슨 일이신가요?”
세티가 이 여관의 직원 답게 발빠르게 대처했다.
하지만 지금은 나와 그는 발빠른 대처를 원하지 않는다.
그 의미로 나는 등 뒤에 있을 터인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었다.
내 앞의 그 사람은 이 상황에도 여의치 않는다는 듯이 계속 말했다.
“그들은 뭘 몰라!”
그의 눈동자에는 확신이 가득 차있었다.
“그건 로망이 아니라고! 그저 두려움에 쫓겨 도망칠 뿐이잖아!”
그리고 그는 힘없이 의자에 주저 앉았다.
“마치… 나처럼….”
저 눈이다.
무엇인가 사연이 있어보이는 두 눈.
“…맞아요. 당신 말처럼 사람들은 잘못되어 가고 있어요. 이대로는 안됩니다.”
나는 알 수 없는 투지가 마음속에 가득찼다.
그것들은 내 속에서 소용돌이를 치며 나의 심장을 빨리 뛰게 했다.
“너는 뭐야…? 이제와서 뭘 하겠다는 건가? 내가 찾아보았지만 밖은 절망 뿐 이었다….”
그는 절망에 빠져 이성적인 판단이 힘들어보였다.
아마, 그는 소중한 사람들을 잃는 고통을 맛 보았겠지.
그 경험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마음의 상처가 된다.
그것은 타인이 상처입힌 것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 또는 내면의 감정이 스스로를 해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결코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당연한 것이다.
사람은 감정이 풍부하다.
그 누구라고 해도 감정은 있다.
이 세상에는 감정이 없는 사람은 없다.
단지 이 세상에 지쳐 움직임을 멈추었을 뿐이다.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 받아서,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에게 까지 상처 받아서 충격을 받은 것이다.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을 하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사랑이 없는데 어떻게 정상적인 사람이 있겠는가?
내 앞의 이 사람을 포함한 모든 사람은 비정상이 아니다.
세상이 비정상인 것이다.
그런 세상에서 일어날 힘이 없는 사람은 내 앞의 이 사람처럼 무너지고 무너질 뿐이다.
강한 의지가 없으면 이겨내지를 못한다.
악의 굴레라는 커다란 쳇바퀴에 상처 입혀진 마음은 왠만한 힘으로는 이겨내기 힘들다.
때로는 혼자만의 힘으로는 이겨내지 못 해서 타인의 도움이 필요할 때도 있다.
약하다고?
어쩌겠는가 우리는 모두 약한 인간인데.
“절망 뿐 이었다고요?”
지금부터 내가 입밖에 꺼내는 말들은 이 사람에게 심한 말이 될지도 모르겠다.
“몇 번 도전했죠?”
“…8번 이다…. 수백명이 죽고, 가족을 잃었다…. 이제 더 이상 왕궁은 지원해주지 않는다 더군….”
‘그래서 우리가 배를 타고 밖으로 나가는 군.’
고작 8번 이라니, 믿었던 왕궁도 참으로 나약했다.
‘내가 부모의 품 밖에서 살아오면서 몇천번이나 일어났건만.’
고작 8번 만이라니…!
“무엇을 발견했죠?”
나는 위세를 그칠 줄 모르고 물었다.
“절망 뿐이라 말 했잖는가! 내 소중한 동료들만 죽어나갔다고!”
그는 거의 울다시피 말했다.
이내 씩씩해 보이는 남정네의 얼굴에서 눈물이 홍수같이 터져나왔다.
“무엇을… 발견했냐고…?”
그는 울먹 거리며 말했다.
“절망이다…. 인간의 한계다…, 그 괴물들 앞에서는 우리는 참으로 나약한 존재 였던 것이다….”
‘그 괴물들은 손 쉽게 처리 했는데… 이 사람에게는 그럴 만한 능력이 없는 것인가?’
“벽 안의 사람들은 꿈에도 모를 거다…. 벽 밖에는 괴물들이 있다고…. 심지어 멀리 가면 갈 수록 기괴하고 인간과 비교도 안되는 놈들이 가득하다고…!”
아무래도 내가 본 괴물은 빙산의 일각인 듯 했다.
“…너도 가려는 건가?”
그는 제발 부탁이라는 듯한, 밖으로 나가는 것을 그만두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여전히 무표정으로 맞은 편에 앉아있었다.
“…네, 사람은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하니까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간의 도전은 끝이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절대로 포기 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나는 울상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는 그 사람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얹었다.
“세대 교체입니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나의 말을 들은 그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의 오묘한 표정을 받아내며, 나는 등을 돌려서 여관을 나섰다.
* * *
나는 좋은 정보를 가르쳐준 그에게, 내가 알지 못하는 많은 일을 겪어온 그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페퍼는 중간 부터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았는지 세티를 다른 곳에 데려다 주었다고 한다.
“…그러게 말이야….”
나는 그 누구도 신뢰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은 너무나도 방해물이 많았다.
그래서 그 방해물에 걸리적 거리지 않도록 조금 줄여야 겠다는 생각 뿐이다.
“그럼… 우리가 저 사람들을 대신한다는 거야? 응? 그래서 우리가 싸우는거야?”
페퍼는 다시금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물었다.
“아니, ‘내’가 싸우는 거야.”
그리고 나는 왕궁으로 가는 발걸음을 더 빠르게 했다.
페퍼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이 내 이름을 몇번 더 부르고는 내 뒤를 서둘러 따라오기 시작했다.
* * *
“아! 페스틴 군! 페퍼 양! 일찍 왔네요?”
왕궁에 들어서자 조이드가 우리를 반겼다.
“어떻게 되었어요?”
페퍼는 그동안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 같았다.
“음… 푹 쉬고 오라고 했더니… 기특 하게도 걱정을 해주는 군요.”
조이드는 따뜻한 미소를 띄우며 페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역시 그는 사람인가 인형인가 고뇌하는 나를 보며 조이드가 말했다.
“일단, 왕을 알현하러 가죠. 다들 기다리고 있습니다.”
“왕… 이요?”
나는 조금 떨떠름한 기분이 들어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네! 그럼요!”
그렇게 말한 조이드는 앞장 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힘차게 걸어가는, 아니 걸어가려는 모습을 보이려는 조이드의 뒤를 따라갔다.
* * *
가보니 의외로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었다.
왕좌 근처에 정렬되어 있지도, 예의를 차리지도 않았다.
회의실 안에서 보았던 그런 분위기에 나는 조금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뭐냐, 자기 마음 다스리는 것도 못하나?”
포드가 팔짱을 끼며 시비를 걸어왔다.
아마, 남들 앞에서 큰소리 쳐놓고 제일 늦게 와서 그런 것일테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소한 문제에 일일이 반응하는 것은 시덥잖고,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나는 아직 어리니까.”
나는 두리 뭉실하게 대답하고는 다같이 모여있는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어? 페스틴 군 어서와.”
안토리오가 나를 반겼다.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그럼! 아직은… 조금 남았지만….”
내가 그동안 보아온 안토리오는 상냥한 사람이었다.
생각이 깊고 동정심이 많다.
그라면 오히려 나보다 더 오래 걸릴 줄 알았다.
“그리고… 안나도 기운 차리려면 멀었지만….”
그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안나를 바라보았다.
“…고생이 많구만?”
“그러는 너도.”
나는 페퍼를 바라보았다.
“…안녕.”
등 뒤에서 자그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어! 토니, 잘 지냈어?”
“응, 나는 괜찮아.”
토니는 내 얼굴을 찬찬히 살피고 나서, 내 몸을 위아래로 쭉 훑어보더니 고개를 끄덕 하며 소피에게로 걸어갔다.
‘검사 하는거냐….’
“애송이, 늦다.”
브란도가 성큼성큼 다가와 얼굴을 들이댔다.
“말 그대로 애송이잖아요.”
나는 덤덤하게 말했다.
그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는 코웃음을 치며 다시 제자리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걱정을 해주는거야 마는거야?”
나는 작게 투덜 거리며 그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그는 감정 표현이 조금 서투르니깐.”
히터가 손을 대충 흔들며 걸어왔다.
“잘 갔다 왔나?”
“네, 그런데… 어떻게 되었나요?”
“아아… 범인은 아직도 안잡혔어.”
그는 시선을 회피하며 대답했다.
“아… 그래요? 증거가 충분한데도요?”
나는 그날 본 것을 잊지 않고 최대한 날카롭게 질문하려고 했다.
나의 목적은 그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애송아, 어른이 신경써주면 눈치껏 행동하란 말이다.”
“앗, 아… 네… 경솔했습니다.”
마음만 앞서 괜히 일을 벌린 것은 아닌지 조금 후회가 되었다.
“것보다, 따라와라….”
그는 잠시 망설 이더니 나를 한쪽 구석으로 데리고 갔다.
“네, 무슨 일인가요?”
“너, 히로랑 아는 사이냐?”
그는 잔뜩 신경질난 듯이 눈을 부라렸다.
나는 솔직히 말할지 아니면 둘러댈지 조금 고민이 되었다.
“아… 뭐라고 해야할까….”
일단 마녀사냥에 대한 것은 숨기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어렸을 때부터 다녔던 책방을 운영하는… 사서…?”
“사서?”
그는 내 말을 다시 되새기듯이 물었다.
“예… 가끔 책을 추천해주는 것 말고는 없었는데요?”
사실의 일부 만을 그럴듯하게 말하면 대부분의 상황은 잘 흘러갔다.
“그 책이 심리학이라고?”
“아, 아뇨 그건 제가 흥미있어서….”
“알았다…. 별 일 있으면 말하고.”
그는 나에게 다시 자리로 돌아가도 좋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그리고 그는 품에서 기다란 막대를 꺼내 끝에 불을 붙였다.
처음 보는 것이라 나는 제자리에 멈추어 관찰했다.
“뭘 봐! 애송이에게는 아직 일러!”
그의 커다란 외침에 움찔했다.
그는 나를 쏘아보고는 작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아마도 외부에 있는 테라스라는 곳에 가려고 하는 것일 거다.
“뭐지….”
나는 자리로 돌아가 베피에게 다가갔다.
“뭐냐?”
역시나 감이 좋은 그녀였다.
내가 다가려고 할 때 바로 눈치채서 나에게 말 거는 것을 보면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인간은 때때로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무언가를 창조해 낸다.’
그게 맞는 말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정확한 것은 때때로 그녀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녀의 능력에 감탄하며 물었다.
“조금 말해주고 싶은게 있는데, 시간 괜찮나요?”
나의 물음에 그녀의 주위를 대충 둘러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미 눈치를 챘는지 사람들과 조금 떨어진 곳으로 사뿐사뿐 걸어갔다.
도도하게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자꾸 눈길이 갔다.
히로가 추천해준 책 중에는 [매력적인 사람이 되려면] 이라는 책이 있었다.
그 책 내용에는 이성에게 잘 보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서술되고 있는데, 그 중 한가지는 귀품있게 행동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 이상은 생략한다.
“제가… 제 5구역에서 인형을 봤어요.”
“뭐? 그래서 제거는 했고?”
“네?”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작품들을 없애버렸냐는 물음에 약간 벙찌고 말았다.
“예… 뭐 일단은요.”
“잘했어. 다음에도 발견하면 알아서 잘 없애.”
‘왜 내가 당신의 뒤치다 거리를…!’
나는 뒤늦게 내가 그녀의 노예라고 선언 되었다는 것을 가까스로 기억해 내고 그녀의 태도에 납득했다.
‘슬프구만….’
“자! 모두 모였으니! 중대한 이야기를 하겠어요!”
잔뜩 풀이 죽어있었는데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왕이 밝은 미소를 띄우며 왕좌로 걸어갔다.
‘중대한 이야기? 살인 사건?’
나는 그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조금은 기대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