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9화 〉#13 다시, 주의를 돌려서. (5) (59/128)



〈 59화 〉#13 다시, 주의를 돌려서. (5)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밝음을 유지한다는 것은 참 대단한 일인 것 같아.”

안토리오가 왕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조용이 말했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 받아들이는 것도…. 그래서 그런걸지도.”

나는 그의 생각에 동의 했다.
 왕이라는 사람은 대단한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은 잘들 추스렸나요?”

마치 어린 아이들에게 부드럽게 말하는 말투는 잔뜩 긴장되어 있는 분위기를 풀어주기에 충분했다.

“이번 사건을 통해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겁니다.”

왕은 진지한 눈빛을 하며 우리를 내려다 보며 말했다.
우리가  있음에도 높아보이는 그 왕좌는 고귀해 보였다.
그렇게 까지 화려하지는 않지만 기품과 품위가 우러나와  자리에 앉아있는 인물의 풍채를 더욱 돋보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이렇게 소집하게 하려고 했습니다만… 우연치 않게 다들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네요.”

그는 안도를 하는 것인지 기뻐하는 것인지 모를 환한 표정을 하고는 우리의 안부를 묻기 시작했다.

‘아… 현기증이 나려고 하네….’

나는 얼른 본론으로 들어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디인지 알려주었으면 했다.
하지만 그런 성급한 내 마음을 애써 진정 시키며 꿋꿋이 서있으려고 노력했다.

그렇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왕의 안부 묻기 시간은 너무 지루했다.
한 사람에게 어림잡아 30분 정도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오늘 안에는 끝나지 않을  같았다.
잠깐의 텀이 생겨서 나는 다시 생각을 정리하려고 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두뇌회전이 느리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르겠다.
계획을 세우기 위해 생각을 차분히 하려는 경향이 있다보니까, 생각 만큼은 남들이 답답하다고 느낄 정도로 한다.
나는 다른 사람의 뇌에 들어가보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모르겠다.
일단, 나는 당연한 사실에도 의심을 하고, 이미 확정 되다시피  일도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상정해 두며 생각한다.
그 이유는 모든 가능성은 현실로 일어날 수 있으며, 그 어떤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별로 신경쓰지 않았던 것이 나에게 치명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늘 의심하며 생각한다.
심지어 나에 대해서도 말이다.

그나저나 아까 베피와 이야기를 하면서 느낀 점이 있었다.
그녀는 이상하리만치 침착했다.
자신이 살아온 인생 중에서 가장 큰 오점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런 일에 대해 말했음에도 의외로 침착했다.
회의실에서 이야기를 나눴을 때는 그 사실을 드러내는 것을 조금 꺼려하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과는 무척이나 대조적인 모습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나는 착각한 것이려나….
베피가 상심한 듯한 모습은 인형이 그런 일을 저질러서가 아니라, 다른 요인에 의해서….
아무튼, 누구나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을 다른 누군가에게 들켜버린다면 인생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절망에 빠지게 된다.
나도 뭐 그런 과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아주 예전에 떠올렸던 적이 있기는 하지만.
나는 좀처럼 과거의 부끄러운 내 자신을 좀처럼 떠올리지 않았다.
그런 과거를 숨기고 싶은 인간의 본능이라고 해야 하나, 자신의 잘못을 숨기고 싶어하는 그런 충동적인 반응에 휩싸여 그렇게 되었을 수도 있다.

저번에 떠올린 것을 이어서 생각해 보자면, 그날 귀티가 났던  여자 아이에게 역한 냄새가 난다고 들었을 때 말이다.
별거 아닌 일이었지만 그 당시 나에게  상처가 되었다.
그날 밤 나는 소브에게 들리지 않도록 숨을 죽이며 끅끅 대며 울었던 기억이 있다.
어쩌면 좋은 경험 일지도 모르겠다.
그 때 이후로 몸을 단정하게 유지하는 습관이 생겼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든 깔끔하게 하는 것이 좋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의 경우에는 과거를 딛고 일어섰다.
그렇지만, 베피의 경우는 또 다를지도 모른다.
나에 비하면 스케일이 상당히 큰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고작 한 소녀에게 쓴소리를 들었던 상황이지만, 그녀는 달랐다.
한 나라를 혼란 시킨, 어쩌면 나라의 반역죄로 끌려나가게 되어도 무색할 정도의 일이다.
나라면 죄책감에 집어 삼켜져 이렇게 서있지도 못할 것 같다.
겉으로는 태연해 보일지라도 속은 검은 폭풍에 휩싸여 괴로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아까 추측한 것처럼 내가  못 생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회의실의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자신의 과거를 모두에게 까발려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 과거의 일을 말하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입으로 말하지 못한 것에 치욕을 느끼는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그녀는 과거를 딛고 일어서는 부류라는 것이다.
그녀의 마음 역시 강하다는 것이다.
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홀로 싸워온 그녀에게 경외심이 들었다.
설령 내가 오해를 해서 전혀 다르게 해석 했어도 말이다.
그녀의 그 의지에는 경의를 표할 만한 가치가 있다.
…기나긴 생각 끝에, 드디어  차례가 되었다.

“페스틴 군? 잘 지내다 왔나요?”

부드러운 그의 물음에 마음이 풀어지려고 하는 내 자신을 채찍질 했다.

“그렇다고 해야할까요?”
“…음? 그렇지 못했나요?”

 쉬다 왔다는 다른 사람들의 대답과는 다른 나의 대답에 그는 의아해 하며 물었다.
…여기서 나는 사실대로 말할 것인지, 아니면 둘러대야 할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왕궁과 국민들 간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베피의 부모가 죽고 다른 사람들도 피해를 입고, 마녀라는 집단이 지금도 영향을 미쳐오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마녀는 과거에 무슨 일을 해 왔는지는 모르지만, 분명 왕궁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의 기원은 어디서 부터 나온 것인지 조차 알 수가 없지만, 뒤가 구린  상황에 나는 왕궁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
그래서 나는 사실대로 둘러대었다.

“신기한 것을 발견해서 말이죠.”

나는 순진한 척을 했다.

“뭔가를 발견 했나요?”

잔뜩 흥분해서 말하려는 나를 보고 있는 왕의 눈빛은 의미를 알 수 없는 오묘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의 반응을 보니, 그의 주의를 이끄는 것은 성공했다고 봐야겠다.

“사람의 모습을  짐승을 봤어요.”

나는 한 마녀의 힘에 의해 포크 아저씨가 변해버린 것을 기억한다.
지금은 죽고 없지만, 현장에서 직접 보았고, 그 모습을 여전히 기억한다.
그 인상적인 상황은 내 머리를 자극 하고도 남을 정도다.

“호호…? 그래요?”

왕은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이 되었다.
그 순간의 찰나에 어떤 반응을 하고 가면을 썼는지는 그와의 거리 때문에 잡아내지는 못했지만, 살짝 떨렸던 목소리를 보아 뭔가 이상했다.
그도 마녀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요?”

그는 평정심을 되찾고 나에게 질문을 했다.

‘평정심을 되찾고라…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다만….’

내가 헛된 추리를 하는 것인지 의심이 갔지만, 나는 100%의 확률이 아니라면 절대로 내 속마음을 내비치지 않는다.
설령 내비쳤다고 해도, 내가 신뢰할 만하고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구태여 입 밖으로 내지 않는다.
나는 그럴 듯하게 꾸며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내 말이 거짓이라고 생각하게 해서는 절대 안되었다.
경비대에게 끌려 갔다고?
절대 안된다.
경비대는 왕궁의 종이다.
과거로 부터 늘, 왕궁은 경비대를 통해 은근히 도시들을 통제해 왔다.
압제와는 전혀 다른 무언가로 우리를 압박해 왔다.
…하지만 지금은 어떨지 모른다.
지금은 어떠한 소문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러 통제를 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지금은 그럴 만한 힘이 없어진 것인지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경비대에 연관지어서 말한다면 나중에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따라서 나는 그 힘을 가졌던 마녀가 죽은 장소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 장소는 번화가도 아닌, 빈민가다.
왕궁의 권력에 맞게 나름 강력한 지위를 가지고 있는 경비대 마저도 손을 대려고 하지 않는 장소이다.
나는 그 심연에 깊이를 알지 못하지만, 몸을 던져보았던 경험이 있을 것 같은 경비대의 반응을 보면 어느 정도 유추해 볼 수는 있다.

“어… 빈민가로 달려가던데요? 그  완전 깜짝 놀랐다니깐요?”

놀랐다는 사실은 거짓이 아니다.
실제로 놀랐고, 많은 것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나의 활동 범위도 늘리게 되는 반환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얼굴에 가면을 쓰고 있다.
 마음이 흐트러져 가면이 벗겨지는 일이 없도록 단단히 했다.
무언가 더 질문을 하려는 왕을 보며 내가 흥분해 있다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해, 그리고 철없는  성숙한 아이처럼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굉장했어요~ 공구점에서 필요한 것을 사고 집으로 가는데, 갑자기 튀어나와서 저를 밀치고 가더라고요.”

나는 그때를 회상 하듯이 손으로 턱을 받쳤다.
그리고 위를 올려다 보며 말했다.

“사람은 보통 두발로 뛰잖아요? 그런데 네발로 뛰더라고요.”

나는 몸으로 흉내까지 내면서 말했다.

“그래서 호기심에 얼굴을 자세히 보니 침을 뚝뚝 흘리고 있었어요. 마치 벽 밖의 괴물처럼 말이죠.”

나는 고개를 끄덕 거리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연기라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내가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는 것을 마음속에 박아 놓는다면 간단했다.
나는 그것을 사실이라고 생각하며,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상상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어땠을까? 라고 말이다.

“호호… 그런 일이 있었군요…. 이것 참, 흥미롭군요…!”

왕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생각에 잠겨있는 듯한 그를 보며, 나는 그를 혼란스럽게 하는데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내가 말을 끝마치고 왕은 생각에 잠기자 알현실은 한순간에 조용해 졌다.
방금 전의 흥분은 거짓말 처럼 사그라 든 것이다.
옆에서 페퍼가 내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나는 그대로 몸이 옆으로 기울어 졌다.
그리고 페퍼가 내 귀에 속삭였다.

“어떻게 된 일이야? …무슨 생각 인거야?”

조금은 흥분한 듯하지만 걱정하는 마음이 뒤섞인 그녀의 거친 숨결에 내 귀가 간지러워 졌다.
다시 자세를 고쳐잡으며 페퍼의 얼굴을 바라보자 그녀는 잔뜩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올려다 보았다.

“다 생각이 있어. 각자의  일을 하자구?”

나는 많은 것을 생략한 말을 내뱉었다.

“…그래? 너무 위험한 짓은 하지 말구….”

그녀는 짤막한 나의 몇마디에 이해를 한 것인지 납득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짝-!

한참 페퍼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큰 박수소리가 들렀다.

“아무튼! 그 점은~ 나중에 또 토론을 해보자고요~”

그는 생각을 정리한 것인지 한껏 얼굴이 밝아졌다.

“페스틴 군까지 잘 지내다 온 것 같군요~ 물론 마지막의 페스틴 군은 특별한? 경험을 했지만요?”

체통에 맞지않게 활기차고 발랄한 그는 너무나도 가벼웠다.

“그래서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여러분은 이제 배를 타고 밖으로 나갈 겁니다.”

그는  말을 마치고 미소를 지어보였다.

“음? 원래 그러지 않았나?”

히터가 의문을 표하며 물었다.

“음… 조금 다릅니다!”

왕은 일부러 뜸을 들이며 우리의 애간장을 태웠다.

“밖으로 나가는 겁니다! 현재 국민들은 혼란스러워 하고 있어요!”

그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눈을 반짝였다.
그는 누가 보아도 잔뜩 흥분한 듯했다.

‘밖으로 나간다니…? 그리고 국민들이 혼란스러워 한다고…?’

이미 알고 있었는  한 그의 발언에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 그 소문은 일부러 통제하지 않았다는 것인가?’

나는 그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 하고 기대하게 되었다.

“이 나라를 버립니다!  전에! [밖]의 위협을 모조리 없애버릴 것입니다!”

왕의 입에서 나온 말은 엄청난 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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