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0화 〉#13 다시, 주의를 돌려서. (6) (60/128)



〈 60화 〉#13 다시, 주의를 돌려서. (6)

상당히 골때리는 그의 발언에 나를 포함한 다른 모든 사람들이 굳어버리고 말았다.

‘나라를 버린다니…?’

기억을 더듬어 본다.
이 나라의 역사서를 보았던 기억을 말이다.
현재 거주하고 있는 나라는 500년이 넘는 세월을 굳건히 버텨온 유서깊은 나라였다.
나로서는 조금 의아한 발상인 것이다.
나는 굳이 따지자면, 보존하는 방식이다.
형태는 그대로지만, 가진 것을 토대로 개발하고 성장시키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왕은 나와 정반대의 일을 벌이려고 하는 것 같았다.
익숙해져있고 오랜 시간을 보내온 이 왕국을 버린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예 처음으로 다시 되돌아 간다는 발상은 나는 하지 못했다.
…나도 언젠가는 그런 방법을 사용해야 할까.

“뭐…? 갑자기 그런….”

왠만한 일이 있어도 냉정함을 잃지 않았던 포드 조차도 동요하고 있었다.

“…허참, 상의도 없이 결정을 내린다는 거야?”

브란도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팔장을 끼며 삐딱하게 섰다.

“나라를 버린다니, 또 많은 희생을 하라는겐가?”

힐다가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했다.

“아뇨 아뇨, 목표가 그렇다는 거죠. 아직 우리는 준비를 시작할 뿐입니다.”

그는 그녀의 매서운 눈초리에 살짝 겁이 나버린 것인지, 기세에 눌려 진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어째 그의 미소는 이 상황을 즐기는 듯한 느낌이 든다.'

“밖의 괴물들을 다 토벌하겠다는 말인가요?”

페퍼가 손을 들며 물었다.

“그럼요, 그렇지 않으면 안심하고 살 수는 없을 겁니다.”

그녀의 질문에도 그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마치 자신은 그 사실을 확고하게 믿고 있으며,  일어날 일인 것처럼 말했다.
무슨 자신감이 있기에 그를 그렇게 당당하게 만들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볼만했다.

‘마녀…? 그들의 힘이 안심이 되는 것인가? 아니면, 각 구역에 비치된 경비대의 힘을 믿고 있는 것 일까.’

나는 그가 가지고 있는 희망의 근원을 알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 지금 나서는 것은 위험해 보였다.
반역을 도모 한다는 것은 크나큰 죄이며, 사형을 선고 받아도 뭐라 할  없는 죄목이다.
이 나라에서는 그렇다.
다른 나라의 통치 체계는 어떻게 되어있는지는 모른다.
과거에 대한 기록은 있어도 다른 경우의 기록은 전혀 없었다.
왕궁은 타국의 정보에 대한 것마저 통제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 심연에 무엇이 존재 하든지 간에 나는 일단 쉽지않은  길을 선택한 그의 심정을 듣고 싶었다.

“국민들이 심히 불안에 떨고 있는데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나는 한 나라의 왕인 그의 품위를 지켜주기 위해 존칭을 썼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다들 감정적으로 말하고 있었지만, 나는 차분히 그리 물었다.
괜한 동요는 문제를 해결하고 상황을 파악하는 일에서 불필요하다.

“조금 조사를 해보니, 다들 밖으로 나갈 생각이더군요. 그래서 그들을 배에 태워 이송할 생각입니다.”

그는 나의 질문에 태연하게 대답했다.
위험 요소가 아직 존재한다.
그 위험을 제거한다 한들, 그들의 안전성을 누가 보장하지?
평범한 인간인 그들로서는 불안하고 무책임한 계획이라고 느껴졌다.
무엇을 신뢰하기에, 그런 대담한 결정을  수 있었던 걸까.

“그건 국민을 위험에 그대로 노출 시킨다는  아닙니까?”

소피가 잔뜩 인상을 쓰며 왕에게 쏘아붙였다.

‘확실히… 근처의 괴물만 해도 그들에게는 큰 위협이 되겠지.’

사람 대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제압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한다.
근력이든, 기술이든, 사람을 무력화 시키는 것은 누구나 가능하다.
상대를 제압한다는 것은 사람들 사이에서의 이야기지, 인간이 아닌 다른 무언가의 존재가 나타났을 때는 적용되지 않는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이라고 해도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바느질을 잘한다고 해도,  괴물을 무력으로 제압해 쓰러뜨릴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성인 남성 대부분이 괴물을 제압할 수 있다고 상황을 정해 보아도 여성과 어린아이들과 소수의 노인들은 어떻게 되는가?
여성 중에서도 극히 일부가 그럴 능력이 있다고 쳐도, 전체 국민의 반절 정도는 그 괴물과 싸울 힘은 없다.
더군다나, 누군가를 지키며 싸운다는 것은 신경이 매우 많이 쓰이는 일이다.
나 하나 조차도 안다치게 조심 하기도 바쁜데 어떻게 누군가를 지키면서 그것들과 맞서겠는가?
솔직히 최근에 겪었던 습격은 수는 많더라도 그들은 사람이기 때문에 나름 걱정은 덜했다.
하지만 괴물은 다르다.
본능적인 움직임을 보이지만 심플하고도 강력한 그들의 움직임은 인간에게 치명적이다.
방심했다가는 목숨을 잃을 위험도 있기 때문에, 모든 위험 요소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희망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슬픔이 동반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앞에 당당하게 말하는 이 왕께서는 대체 무슨 방안이 있길래 저렇게 태연한지 궁금할 따름이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나름의 대책이 있거든요.”

우리의 애간장을 태우는 왕이 가소롭다는 표정을 짓자 나는 슬슬 한계가 오기 시작했다.

“그 대책은 나중에 천천히 말씀 드릴겁니다.”

옆에서 테리스가 품에 있는 서류를 떠들어 보며 왕을 쳐다보았다.

‘그녀도 뭔가 알고 있는 건가?’

그녀의 말에 다들 뭔가 납득하는 분위기였다.

‘…음? 납득 한다고? 뭐?’

나는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수긍하는 모습이 굉장히 이질적이게 다가왔다.
온 몸으로 느껴지는 수상함은 나를 경계의 늪에 빠져들게 했다.
더 날카로운 느낌으로 나는 주변 사람들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들 사이에서 붕뜬 존재가 되어, 어울리지 못한다.
내가, 평범하지 못 해서 그런가.
굉장히, 굉장히, 굉장하게도… 몸으로 부터 뜻을  수 없는 경고가 울린다.
내 직감은 무언가 크게 잘못되어감을 느꼈다.
희망을 바라는 나의 과한 욕망을 통해서, 알아채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알아간다.
그러한 [지식]은 후에 나를 어떤 곳으로 인도하려고 하는 것 일까….

심호흡을 하고, 그들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서 머리를 굴려본다.
겉으로 보이는 그녀의 성격을 생각해보자.
그녀는 왕에 비해 체계적이기는 하다.
지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며, 어쩌면 드러내지 않다 해도, 그에게 든든한 지원군으로써 움직이고 있을 수도 있다.
그의 말만 들으면 긴가민가 하는 마음이 들겠지만, 그녀의 후원이 있다면 어느 정도 납득은  만하다.
인식에 따른 신뢰심은 불합리… 한 걸까….
신뢰감에 대해 왕에게 심심한 위로를 던질 뿐이다.
가벼운 분위기의 그는 좀처럼 신뢰가 가지 않는 사람이다.
거기에 더해, 그의 눈빛은 어딘가 범상치 않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그만의 나름대로의 이점은 있다.
어쩌면 부드럽고 온화한 그의 특성이 이렇게 자유로운 궁정의 모습을 취할  있게 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그를 보며, 애매하게 할 바에 차라리 뚝심있게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음… 그러면 일단은 마수를 토벌하는 것에 집중 하라는 건가요?”

조이드가 턱을 쓰다듬으며 말하자 왕은 무릎을 탁 치며 기뻐하며 말했다.

“맞습니다! 맞아요! 아주  이해해 줬어요. 조이드 군~”

자신의 뜻대로 흘러가주는 조이드가 마음에 들었는지 그는 싱글벙글 웃기 시작했다.

‘참으로 가벼운 사내이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내비치는 사람이 신기했다.
나 같은 경우는 내 감정을 표현하기에 앞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느낄지 생각해버리고 만다.
이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습관들 중에 하나이다.
다른 사람이 느끼기에는 별거 아닌 이야기가 되겠지만, 은근히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나로서는 꽤나 민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애초에 내가 신경을 쓰는 것은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시선에 내가 어떻게 비춰질까?' 이다.
내가 어리석어 보여도 좋다.
이성적이지 못해 가끔식 자신을 제어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도 괜찮다.
무엇보다도 제일 꺼려지는 것은 나의 깊은 곳에 잠재되어있는 무언가가 드러나는 것을 꺼려할 뿐이다.
나는 좀처럼 속마음을 남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심지어 제일 가까운 사람이어도, 소중한 사람이어도 말이다.
그런 표현을 갖다 붙이며 특정 사람에게 애정을 표현하고 있지만, 정작  깊은 마음속에서는 그들을 타인이라고 생각해 버리고 만다.

만약, 그들을 별거 아닌 존재로 생각하며, 단순히 문제를 해결할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들키는 날에는 인간관계가 흐트려 질 수도 있다.
그러니 나는 항상 모자란 내 자신을 내비친다.
그러면 사람들은 어리석은 나를 보며 경계를 낮출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나에게 이익이 돌아올 때도 있다.

사실, 엘리스나 페퍼나 세티의 반응을 보며 무언가를 느끼곤 하지만, 겉으로 내색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그냥 모르는 척 하는 것이다.
그렇게 확정 지으며 내 자신에게 속삭이고 있을 뿐이다.
나는 그들에게 가면을 보여주며 순진한 척을 하는 것이다.
그것에 솔직하게 반응하고 행동 해버린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무서울 뿐이다.
경험을 하지 못했으며, 주위로 부터의 정보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계속 문제 해결을 미루고 있을 뿐이다.

사랑.
그것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으며, 나에게 많은 것을 앗아간 것이다.
일찍이 부모를 잃은 나로서는 그것이 나에게 괴롭힘이 되어돌아왔다.
물론 몇년 지나지 않아 다시 마음에 물을 뿌려주는 고마운 사람을 만났긴 했다만,  시간의 공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부모로 부터의 사랑을 받지 못하며 겪어온 모든 일들은, 남들에게 어떻게 다가왔을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몇배나 커다란 괴물로 다가왔다.
별거 아닌 일에도 두려움을 느끼며 공포를 느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해답을 찾지 못하는 문제일수록 그랬다.
나는 그래서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저 사람, 아니 저 왕좌에 앉아있는 권위있는 왕처럼 솔직하게 자신을 내비치질 못하겠다.
그들을 수단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에게서 잘 보이려고 하는, 그들을 잃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을 가지고있는 나 또한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고로,  수상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그들과 동질감을 찾아내며 스며들려고 한다.
내 속에 있는 뒤틀어진 짐승을 숨기고, 그들과 같은 [사람]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상대적인 약자.
어리숙한 사람.
놀리기 딱 좋은 인간.
그런 수식어가  나를 따라다니도록 의도하겠다는 것이다.

* * *

“괴물들을 이제 처리하러 가는거야?”

마리가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너무 투지에 불타오르지는 마라.”

옆에서 장난 반 걱정 반으로 줄리는 마리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래도 즐겁게 하자구! 사람들을 위해 하는 일이잖아?”

페퍼는 본래의 목적을 잃지 말자는 듯한 말을 꺼냈다.
어쩌면 그녀 자신에게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그녀는 라이브와 어떤 진전이 있었을까.
어떤 말이 오갔을까.
아니, 실제로는 아무런 진전이 없을 수도 있다.
이런 시간이 필요한 문제는 차분히 기다리는게 상책이다.

“안전이 최우선이야. 약해보일지라도 살상력은 충분해.”

나는 나름 진지하게 말했지만, 오히려 그녀들의 눈에는 애어른 같은 모습처럼 보였나보다.

“파하하! 알겠습니다 어르신~”

페퍼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를 비웃었다.
페퍼의 웃음에, 다른 두사람 역시 따라 웃었다.
나는 그녀들로 부터 느껴지는 오묘함에 대해 파헤쳤다.
사람들을 위한 일.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정의로운 마음.
…뭔가.
떠오르지 않는다.
무척이나  오묘함에 대해 거부감이 드는 기분은 왜 일까.

‘사람이 걱정을 해주는데…. 다들 심각성을 모르는구만.’

조금 짜증이 나는 바람에 페퍼에게 한 소리 하려고 했지만 포드가 나를 막아섰다.

“페스틴, 잠깐 나 좀 볼까?”

포드는 고개를 까딱 하며 자신의 등 뒤에 있는 비어있는 공터를 가리켰다.

‘포드 씨는 참 타이밍 하나는 잘 맞추시네요~’

나는 속으로 그를 비아냥 거리며 그를 따라 나섰다.


* *

“있잖아, 페스틴.”

웬일로 포드의 말투는 무척이나 나긋나긋했다.
것참, 이거나 저거나 믿질 못하겠다.

“무슨 일인데?”

나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나의 그런 아니꼬운 태도에도 그는 신경 하나 쓰지도 않고 신중하게 주위를 둘러보고는 나에게 귓속말을 했다.
순간 역겨운 기분이 들어 고개를 내빼려고 했지만, 나름 그에게 상처가 될 것 같아 참았다.

“…왕이, 조금 수상한 것 같다.”
“뭐?”

나와 엇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괜스레 안심이 되었다.
설령, 앙숙이라고 해도 말이다.

“왕이 가지고 있는 모순점은 한두가지가 아니야.”

그도 나름대로 조사를 마쳤는지 품 안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잠깐.”

나는 황급히 그의 움직임을 저지하고는 그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뭐야, 너? 무슨 꿍꿍이야 포드?”

확실히 수상한 상황이 아니라고는 못한다.
갑자기, 뜬금없이 왕이 수상 하다는 발언을 하는 그가 더 수상해 보였다.
내가 그를 경계하는 듯한 표정을 짓자, 그는 오묘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아무렴 어떤가?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서 미리 경계하고 정보를 모으는 것 말이다.
어쩔 수 없다.
이것이 나의 생존 방법이니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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