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14 숨통을 조여오는 손아귀. (2)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평소의 그는 나에게 으스대듯이 말하고는 하지만, 그의 감은 날카롭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완전히 믿을 만한 사람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에게 나의 생각을 털어놓아 나의 목표에 도달하는 시간을 단축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결과가 개운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심지어는 오히려 패망의 길로 들어서게 될 수도 있다.
잠시, 나의 옛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옛 기억이라고 해도 고작 몇년 전의 이야기 이지만 말이다.
* * *
“그래서? 돈은?”
“…가져왔습니다.”
나는 사악해보이는 미소를 정면으로 받아내며 방금 훔쳐온 지갑을 그에게 넘겼다.
“이야~”
“오~ 이제야 사람 구실하게 생겼는 걸?”
“넌 이제 정식 일원이다. 내일부터.”
나는 그들의 칭찬에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그 누구도 나에게 칭찬과 같은 긍정적인 말을 해주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 달게 느껴졌다.
“…가, 감사합니다.”
나는 그들의 허울 뿐인 칭찬을 들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괜스레 비실비실 웃음이 나왔고, 그때의 나는 내가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이제 나도….’
나는 잔상처를 입어가며 터득해온 소매치기의 노하우를 소중하게 여겨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눈빛이 달라 졌음에도 나는 여전히 그들과 함께했다.
얼마안가, 그들이 보였던 이전의 따뜻한 눈빛은 사라졌다.
나를 어떻게든 이용해 먹으려고 골똘히 머리를 굴리는 이기적인 눈빛이 가득해졌다.
‘…기분 탓이겠지.’
나는 내가 어리고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이 그런 시선으로 나를 보는 것은 다른 의미를 담고 있는 줄 알았었다.
아니, 착각했었다.
그때의 나는 어리숙했다.
눈치를 챘어도 그 의미를 알아채지 못했다.
경험 부족… 이라고 되지도 않는 변명을 해보지만, 자신의 나태함은 고스란히 내 기억속에 남아있을 뿐이다.
그것은 배신이라는 결과로, 내 마음속의 메꿔지지 않는 구멍으로 남고 말았다.
* * *
나는 그가 지금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침착하게 살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생각과 목적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대답을 성급하게 하지 않았다.
“…알아낸 뒤에 어떻게 하려고?”
나는 일부러 그의 생각에 이미 넘어간 것처럼 이야기 했다.
“음… 그건 그 때 가서 생각해 봐야겠지, 아직은 추측일 뿐이니까.”
“오호… 그렇구만….”
나는 흥미롭다는 듯이 턱을 매만졌다.
“그래서 언제 알아 볼건가? 최대한 빨리 알아 보는게 좋을 듯 한데.”
조금 주위를 환기시키고 그를 바라보니, 무언가 재촉 하고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람은 대개 눈으로 많은 정보를 분출시킨다.
눈 앞에 있는 포드처럼, 불안해 하며 긴장을 하고 있는 눈빛은 그가 다른 속내를 하고 있음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듯 했다.
나는 더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다.
왕궁이 의심스러워지는 순간, 아무도 믿을 수 없게된다.
어쩌면 나라 자체가 사람들의 인식을 컨트롤 하려고 한다고 친다면….
세뇌.
조종.
소문 억제.
통솔….
좀, 과한 추측일 수도 있다.
왕궁이 주변 사람을 이용해서 내 생각을 바꾸려고 한다면…?
“하하하… 미안하지만?”
나는 그에게 가소롭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부디, 내가 잘 캐치했기를 바란다.
“…?”
“나에게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는걸, 혼자서 잘 노력해 봐.”
나는 엉덩이 쪽에 묻었을 먼지를 툭툭 털어내며 일어났다.
“뭐, 뭐라고? 너 만큼은 다를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기가 차다는 듯이 나에게 외쳤다.
“…날 꼬드기려면 좀 더 달콤한 걸로 준비하라고?”
나는 등 뒤에 있을 그에게 손을 흔들고는 나의 방으로 향했다.
이제부터, 포드가 가진 나에 대한 호감은 반감된다.
만약, 그가 왕궁의 계략에 넘어가지 않는다면 그때 다시 조우하겠다.
* * *
과연, 내가 한 선택의 결과는 어떠할지 현재의 나로서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좋게 흘러가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자신의 미래는 자신이 개척해 나가는 것이라고 했나?
나는 그 말에 전혀 동의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모든 일이 사람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이다.
변수.
그것은 사람의 계획을 무참히 산산조각 내버린다.
설령 오랫동안 계획했고, 철저하게 그렇게 했음에도 말이다.
만약, 개척하려던 길이 온통 돌밭이라면?
아니면 험한 산이라면?
갑자기 폭풍우가 몰아 친다거나, 땅이 흔들린다면?
사람은 자연의 어떤 거대한 힘에 의해 자신의 인생이 개척되어 나가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할 뿐이다.
인간의 가능성은 무한에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만능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저 문제를 겨우 해결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인간은 진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연에서 오는 어떠한 작용은 사람이 이겨낼 만큼 나약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학자들은 사람이 ‘동물’이었고, 점차 모습과 형태가 변하게 되어 지금의 사람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지금의 ‘인간’이 최종진화인 것처럼 말을 하고 있다.
나는 전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왜 지금은 진화가 되고 있지 않은가?
더 이상 진화 할 필요가 없다고는 못한다.
조금이라도 춥거나 더워도 몸이 이상이 오고, 다른 어떤 것들에 비하면 인간의 몸은 약할 뿐이다.
너무나도 나약한 존재라는 것이다.
어째서 더 이상 진화하지 못하는 것인가?
나는 아마도 이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을 해줄 사람은 몇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이 질문을 마음속에 담아두려고 한다.
괜히 나섰다가는 내 목숨이 아까울 수도 있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아무튼, 내가 이야기 하고 싶은 인간의 진화는 육체적이 아니라 정신적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너무나도 나약하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말이다.
하지만 육체적으로 나약 하더라도, 정신적으로 강인하다면 어느정도 포장은 된다고 생각한다.
한번 즈음은 그런 일을 겪어보지 않았는가?
몸은 말을 듣지 않지만, 정신이 깨어서 몸을 움직일 수 있었던 경우 말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과거의 그들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서 추운 날씨에 독한 감기에 걸려버렸을 때도, 이를 빠득빠득 갈면서 걸어 나갔다.
결국 그날 일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는 기절해 버렸지만 말이다.
음, 어쩌면 정신이 강인한 사람은 몇 없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많은 사람들을 관찰해 오면서,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
모두 다르지만, 모두 비슷하다.
각자의 생각은 확연히 다르다.
하지만 비슷한 생각을 한다.
편해지려고 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행동이 감정에 휘둘리는 것 말이다.
사람은 정신적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너무 일차원적이다.
개개인 한사람의 성장으로는 판도를 바꿀 수가 없다.
몇몇은 깨닿지만,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게 된다.
모두가 모두에게 영향을 받으며 영향을 주고 있다.
이것은 나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나는 방금의 선택이 감정에 치우쳤다고 생각한다.
먼저, 그를 아니꼽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를 마음이 거부했다.
머리가 거부한 것이 아니었다.
나 역시 한참 부족한 것이다.
사람들을 희망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아직 내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똑- 똑- 똑-
“페스틴?”
한참 침대에 누워 편하게 내 생각을 쏟아내고 있었는데 누군가 나를 불렀다.
“음?”
나는 자리에서 슬그머니 일어나 문 앞으로 다가갔다.
차분한 목소리 인것을 보아 안토리오 같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나는 혹시라도 예상 밖의 다른 사람일 수 있으니까, 예의를 차리며 문을 열었다.
“나야, 혹시… 방해 되었으려나?”
…안토리오다.
“아니? 딱히… 방해되지는 않아. 오히려 조용해서 불안할 뿐이지.”
“하긴… 왕의 발언 때문에 분위기가 심상치 않지….”
그는 내 머리를 흘깃 보며 말했다.
나는 그세 나의 머리가 떴나 싶어 문 옆에 달린 조그마한 거울을 들여다 보았다.
“…조금 심심하네, 선생님들이 바빠서 관심이 싹 사라지니까.”
“하하하! 있다가도 없으면 쓸쓸한 법이니까.”
그는 자신의 팔을 매만지며 말했다.
안나의 공백에 어색해 하는 것 같다.
붙어있을 때는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 역시 의존하고 있는 듯 했다.
나는 거울로 부터 나의 머리 한 쪽이 삐죽 튀어나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대충 손으로 쓸어 넘겨보았지만 솟아오른 그 머리카락은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 책상 한쪽 구석에 놓여져 있는 과자를 집어 들었다.
“별거 아니지만, 먹어.”
“…그래? 고마워, 잘 먹을게.”
안토리오는 무척이나 어른스럽게 행동했다.
“…그나저나 무슨 일로 온거야?”
나도 과자 한 조각을 집어들며 물었다.
“음~ 나도 심심해서, 그래서 토니랑 같이 모여서 놀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그러고 보니 그녀들과 같이 시간을 보낸 적이 많아서, 이번에는 이쪽으로 합류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좋지. 나야 초대만 해준다면 언제든 괜찮아.”
“…하핫! 좋네, 그럼… 지금 가도 괜찮겠어?”
“음… 이거면 되겠지?”
나는 여전히 존재감을 뿜어내는 머리카락이 신경 쓰였지만 그리 막 튀지는 않아서 그대로 두기로 했다.
“오! 결단력 좋아 좋아!”
그는 기뻐하며 방문을 나섰다.
나는 천천히 그의 뒤를 따라가며 그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 * *
나는 분명히 논다고 해서 이렇게 잔뜩 기대감에 부풀어 올라서 있었건만, 내가 상상하던 그런 그림이 아니라서 조금 풀이 죽었다.
“분명, 논다고 하지 않았어?”
“음… 그렇지?”
“그런데 이게 뭐야.”
우리는 강의실을 쓸고 닦으며 청소를 하고 있었다.
나는 손에 들린 축축하고 더러워져 버린 걸레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하하! 미안해, 청소한다고 하면 안나올 것 같아서….”
“그야 뭐… 그러겠지만.”
확실히 마음 편히 누워버리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든다.
내게 할일이 있다면 애초에 편히 눕질 않으니 말이다.
불평을 해대는 나와는 달리 토니는 묵묵히 청소를 하고 있었다.
조용하게 강의실 이쪽 저쪽을 꼼꼼히 청소하는 모습을 잠시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토니는 부지런하지?”
안토리오는 토니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내 귀에 대고 말했다.
“확실히… 조금, 본 받아야 겠는걸?”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책상들을 열심히 닦기 시작했다.
“나하하하! 솔직해서 좋네.”
그도 나를 따라 바닥을 쓸어가며 쓰레기를 모았다.
이제 안 사실이지만, 안토리오는 웃음소리가 특이하다.
* * *
도대체 무슨 짓을 벌였길래, 이리도 많은 쓰레기가 나올 수 있나 싶었지만, 생각해보니 거의 반년 넘게 청소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자주 청소해야 겠는걸?”
나는 테리스가 끓여온 차와 갓 구운 쿠키를 음미했다.
“이것 때문에?”
안토리오는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쿠키를 흔들었다.
“맞아!”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런 맛있는 걸 먹을 수 있다면, 그렇게까지 나쁜 이야기는 아니지.”
안토리오는 토니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안토리오의 시선을 의식한 것인지 창 밖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서 일단 줘서 먹기는 하지만, 다음은 무엇을 할 계획이야?”
“음…. 아무래도 우리도 준비하는게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나의 질문에 안토리오는 조금 우리의 눈치를 보며 말하기 시작했다.
토니도 그의 행동이 신경쓰였는지 고개를 돌려 그를 유심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니, 그… 뭐야… 너희들은 나보다 손기술이 좋잖아?”
안토리오는 내심 부끄럽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이고는 자신의 손을 내밀어 보였다.
“그래서… 도와달라고?”
“응! 맞아!”
토니가 선뜻 나서자, 그는 기회는 이때다 싶어 낚아챘다.
“그래 뭐, 나도 도와줄게. 나도 슬슬 다시 재정비를 해야해서.”
“그럼, 정했네!”
그는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
* * *
“그래서?”
“그래서… 안토리오의 무기를 조금 만들어 주려고요.”
우리는 왕궁 외곽 쪽에 위치한 공방에 들어섰지만, 그 앞을 베피가 딱 가로막고 있었다.
“흠, 그게 왜 내가 비켜줘야 할 이유가 되지?”
“아니, 딱히 제 말은 강제성을 띄지는 않습니다만….”
나는 엉뚱한 곳에서 완강한 그녀의 태도에 오히려 기가 죽고 말았다.
이런 작디 작은 상황도 헤쳐나가지 못하는 내 자신이 불쌍하게 느껴졌다.
“그… 왕께서 그런 말씀도 하셨고 말이죠…. 조금 어떨까요?”
안토리오가 최대한 그녀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웃어보였다.
“흠… 노예 군이 나를 좀 도와준다면 생각해 볼지도?”
그녀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즉시 안좋은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럼… 결정이네….”
토니가 매정한 말을 하며 앞장섰다.
베피도 그런 그를 막지 않고 비켜주었다.
“그럼… 수고해 페스틴! 그리고 고마워!”
즐거워하는 것인지 미안해하는 것인지 모를 그의 인사에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안토리오를 보내주었다.
“정리는 똑바로 하렴.”
베피는 멀어져가는 두 사람의 등에 대고 말했다.
그리고는 돌아서서 의미심장한 웃음을 띄며 나에게 말했다.
“그럼, 노예 군. 나랑 잠깐 어디 좀 갈까?”
‘아… 본부대로 합죠….’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