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14 숨통을 조여오는 손아귀. (3)
“아… 그래서 어디로 가는 거죠?”
이상하게도, 나는 특정 사람에게는 소극적이 되는 것 같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 사람의 특유의 분위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가보면 알아.”
그녀는 팔짱을 낀채로 사뿐사뿐 걸어올라갔다.
우리는 현재, 배를 타기 위해 거치는 나선 계단을 오르고 있다.
“아하하… 그렇군요.”
나는 좀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는 분위기에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또각— 또각— 또각—
터벅— 터벅— 터벅—
그러다 말이 끊겨, 우리는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페스틴?”
“아, 네!”
우리의 발걸음 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지만 그녀가 적막을 깨며 나를 불렀다.
“어찌 되든 간에 잘 지내다 온 것 같네.”
“…일단은 말이죠.”
베피는 여전히 계단을 오르는 속도를 늦추지 않으며 걸어 올라갔다.
“그나저나 네가 인형을 쓰러뜨렸다고?”
“네? 음… 그렇다고 말하기에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조금 받았다고 해야 하나….”
“음?”
베피는 발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팔짱을 낀채로 도도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아, 그러니까 저 혼자서는 할 수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도움을 받아서 해결 했네요.”
나는 괜히 잔뜩 긴장을 해버려 허둥지둥 대답했다.
내가 두 손을 갈길을 잃은채로 허공을 허우적 대며 이야기 하자, 그녀는 조금 인상을 구겼다.
‘자꾸 그런 표정 지으면 심장이 쫄깃 해진단 말입니다!’
“누가 도와줬는데?”
“네?”
“누가 도와줬냐고.”
“앗.”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다고 하면 그 누군가에 대해 당연히 추궁 당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아… 그게… 말이죠…?”
함부로 그들에 대해 언급 해서는 안되었다.
설령 나의 선생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녀를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도 말이다.
내가 좀처럼 대답하려고 하지 않자, 그녀는 나를 째려 보기 시작했다.
“그, 일단은 말이죠…?”
“응, 그래서?”
내가 나의 눈동자를 이리저리 바삐 움직이니, 베피가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음… 좀 생각을 정리하고 말해도 될까요?”
“고작 사람이름 말하는 것 때문에?”
“아무래도 그 사람의 인권이 달려있기 때문에….”
“인권은 지금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니잖아?”
“그렇기는 하겠지만요, 음… 솔직히 말하자면… 그 사람의 이름을 대면 난감해 질 것 같아서 말입니다.”
“하… 그래….”
계속 내가 대답을 회피하려고 노력하니, 그녀는 조금은 지친 듯해 보였다.
어쩔 수 없다.
루이스는 그녀의 오빠로 추측된다.
베피에게 알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한 이유는, 히터의 반응을 생각하면 몸서리처진다.
“그럼 네 마음대로 내킬 때 이야기 하라고, 딱히 지금 알아낼 필요는 없어보이니 말이야.”
“아핫, 네, 그럴게요. 감사합니다.”
나는 몸을 돌려 다시 계단을 올라가는 베피의 등에 고개를 꾸벅 숙였다.
“서두르자고.”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아까 보다 조금 빨라진 속도로 계단을 올라갔다.
아마, 내가 그녀의 기분을 언짢게 한듯 했다.
‘오, 내 몸은 곧 지칠게 분명하다.’
나는 마지못해 속도를 조금 올려 베피의 페이스에 나 자신을 맞춰나갔다.
* * *
“그래서 여기는….”
“맞아, 비행장이지.”
“아, 비행장이라고 하는군요.”
나는 저번에 배를 처음 탔었던 그 장소에 서있다.
그때는 배를 보았다는 흥분과 배를 탄다는 기대감 때문에 시야가 좁아져 보지 못했던 것들이, 이제는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음… 여기를 청소하나요?”
대개 토니가 하는 일을 보니 청소와 관련된 일이 많았다.
조수로서 스스로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가 그런 일을 자주 하는 것을 보아왔다.
아마도 소피가 정리정돈을 잘 못 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음? 하려면 해. 나는 굳이 말리진 않아.”
나를 어이 없다는 표정으로 보는 베피를 보아하니, 청소 일은 아닌 듯 했다.
어쩌면 천만 다행 일지도 모르겠다.
비행장의 바닥은 너무나도 더러워 보였고, 곳곳에 물때가 가득했다.
아무래도 천장이 뻥 뚫려있어 비가 오거나 이슬이 내릴 때 쉽게 더러워지게 생겼다.
게다가 배를 잠시 정차해 놓는 곳이라 크기도 보통 크기가 아니었다.
여기를 혼자서 쓸고 닦는다는 생각을 하니 아주 끔찍했다.
“아… 그럼 사양 하겠습니다.”
나는 살짝 뒷걸음질 치며 말했다.
나의 그런 태도에 그녀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한쪽 구석에 자리 잡은 배로 다가갔다.
그 배는 보아하니 꽤나 오래되어 보였다.
곳곳에 잔상처가 많아보였다.
오랫동안 사용 되어온 배 답게, 외관은 허름했다.
어떤 곳은 창문이 깨져 있는 곳도 있었다.
나는 베피처럼 다가가 배의 겉 표면을 손으로 쓸어보았다.
“오호….”
오래되어 표면이 벗겨질대로 벗겨진 배의 겉 껍질은 까슬까슬했다.
관리가 잘 되어있지 않은 탓에 곳곳에 기름때도 보였다.
한참 동안 이리저리 관찰하고 있을 때즈음 베피가 나를 불렀다.
“어이! 그만 보고 이쪽으로 와라.”
“아, 넵!”
나는 그때서야 허둥지둥 배 안으로 들어가있던 베피 에게로 달려갔다.
“이야… 여기는 이렇게 되어있네요.”
나는 구식인 내부에 감탄하며 말했다.
“그렇지, 꽤나 오래전의 디자인 이니까.”
베피도 배 안의 구석 구석을 살피며 말했다.
마치 추억을 더듬는 듯이 말이다.
지그시 감긴 그녀의 두 눈에서 알 수 없는 고요함이 느껴졌다.
“좌석도 나름 편한데요?”
나는 가까운 의자에 풀썩 주저 앉으며 말했다.
하지만 내부 역시 오랫동안 관리가 되어있지 않았는지, 내가 의자에 앉는 충격의 여파로 먼지가 일었다.
“콜록! 콜록!”
나는 뿌연 먼지를 그대로 들이켜 버려 목이 괴로웠다.
“하….”
그런 나의 어리석은 모습에 베피는 분명 한심하게 쳐다보고 있겠지.
나는 눈에도 들어가 버려 눈물을 흘리며 눈에 들어간 이물질들을 밖으로 흘려 보냈다.
“먼지가 콜록! 엄청 많네요….”
나는 눈가의 눈물을 조심히 닦으며 말했다.
“그러게 누가 그렇게 세게 앉으라고 했나?”
“그치만 푹신해 보였던 걸요….”
나는 방금 전까지 앉아있던 의자를 원망스럽다는 듯이 쏘아보았다.
“그래 그래 알았다. 앞의 조종석은 나름 깨끗하니 괜찮을거다.”
그녀는 등 뒤에 작은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조종…석이요?”
“그래, 이 배를 조종하는 방 말이야.”
그렇게 말한 그녀는 작은 문을 옆으로 열어 재꼈다.
“오….”
사람 한명이 겨우 들어갈 문 틈 사이로 반짝 반짝 빛나는 기계가 보였다.
“오오…!”
나는 처음 보는 기계에 잔뜩 흥미를 가지며 기뻐했다.
“그래 그래~ 들어가자.”
그녀는 어린아이를 달래듯 나에게 조금 부드럽게 말하고는 내 등을 두드렸다.
“드, 들어가도 됩니까?”
“그래, 어차피 움직이지도 않는 녀석 이니까.”
“아… 그래요…?”
나는 더 이상 쓸모가 없는 배라고 들리는 그녀의 말에 조금은 슬퍼졌다.
조종석의 방 내부를 둘러보니 사람의 손을 탔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었다.
이곳도 상당히 낡아보였지만 어째서인지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뭔가… 좋네요….”
나는 이 방안의 분위기가 어찌나 좋았는지, 무의식적으로 나의 느낌을 말해버렸다.
“그렇지? 내가 기분 전환 할 때 가끔 여기로 와.”
“아, 그래요? 그렇구나…! 이렇게 좋은 장소를 이제서야 알려주다니요!”
나는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
“이렇게 좋은 장소를 쉽게 알려줄 수야 없지.”
그녀는 나의 반응을 보며 만족을 했는지 살며시 웃었다.
흐릿한 미소는 흐뭇함을 머금고 있었다.
“오! 이건 뭡니까?”
나는 어두운 회색빛으로 가득찬 기계의 자판 속에서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건, 손대지 않는게 좋을거야.”
“네? 왜요?”
나는 어떤 용도인 것인지, 어째서 취급 주의인지 궁금해 졌다.
물론, 손대지 말라는 그녀의 말을 잘 듣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건, 비상 탈출 장치다. 잘못하면 한순간에 하늘로 날아가 버릴 수도 있어.”
“날아… 간다고요…?”
나는 조종석 앞부분에 큼지막하게 달려있는 창문을 통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죽을 수도 있으니까, 함부로 손대지 않는게 좋을거야.”
“그, 그렇군요….”
나의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말에, 왕성했던 호기심은 어느새 쭈글해져서 마음 한구석으로 쫓겨나 버렸다.
“아무튼 이런 좋은 곳을 알려주려고 저를 부른 건가요?”
나는 볼거는 다 봤다는 듯이 한 번 더 내부를 마지막으로 싹 훑어보고는 물었다.
“아직 너의 할일은 남았다.”
“네?”
“여기 청소를 해.”
“여기요?”
“보수도 하고.”
“보수도 하라고요?”
“그래.”
“아하… 네….”
한순간에 좋았던 기분이 바닥으로 깔아 앉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 나는 잠깐 갈 곳이 있어서, 내가 돌아오기 전까지 다 마무리를 하도록.”
“아….”
나는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허둥대고 있었다.
“필요한 공구나 재료는 나가서 왼쪽의 창고에 있고, 청소 도구는 오른쪽에 쌓여있어.”
“그, 그렇군요.”
나는 밖을 내다보는 척 하면서 나름대로의 성의를 내보였다.
“그럼, 부탁할게?”
그녀는 나를 보며 싱긋 웃고는 그대로 배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 미소로 나에게 다른 상냥한 말을 해주기를 바랐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그, 그럼… 해볼까?”
나는 애써 웃으며 조종실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위험한 건 저 비상 탈출 장치밖에 없나….’
나는 기필코 저 비상탈출 장치 만큼은 손대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절대로 말이다. 그리고 나는 일단 보수에 필요한 자재들을 찾으러 밖으로 향했다.
* * *
창고에는 없는 것 빼고 다 있었다.
배를 수리하는데 필요한 자재들은 다 구비되어 있어서 큰 걱정거리는 덜었다.
“굉장히 많잖아?”
종류와 가짓수가 상당했던 공구들을 보며 감탄했다.
“근데, 수리를 왜 내가 하냐….”
나는 긍정적 이었던 것도 잠시, 금세 기운이 빠지기 시작했다.
“아냐! 잘 해 보자고!”
짝! 짝!
나는 내 뺨을 때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면… 천장부터 하는게 좋겠지?”
부스럭- 부스럭-
나는 한쪽 구석에 몰려있는 페인트와 가죽 커버를 챙겼다.
보기와 다르게 꽤나 무게가 나가는 이것들은 나 혼자 들고가기에 너무나도 성가셨다.
“에휴….”
나는 다시 제자리에 내려놓고는 한숨을 쉬었다.
‘어디 뭐 없으려나?’
나는 괜찮은게 없는지 이쪽 저쪽을 살폈다.
“오?”
그러다가 한쪽 구석에 먼지덮인 기계가 보였다.
“이건 뭐지…?”
이것도 처음 보는 기계였다.
“어디에 쓰는거야….”
나는 몇번 탁탁 두들기고는 다른 곳에 시선을 옮겼다.
삐ㅡㅡㅡ! 피시이이익!
내가 고개를 돌리자 마자 기계가 소리를 내며 흔들렀다.
“뭐야!”
나는 당황하며 기계를 이리저리 만져보았지만, 그 소리를 멈추게 하는 방법은 보이지 않았다.
“뭐, 뭐냐고!”
나는 필사적으로 두리번 거리며 방법을 모색했다.
하지만 나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마땅한 도구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처음 오는 장소이기도 했고, 정리가 잘 되어있지 않았던 탓에 나는 대처가 늦고 말았다.
삐빅!
나는 여전히 대응할 방법을 찾지 못했지만, 기계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움찔거렸다.
“헉!”
피시이익!
기계 한쪽 구석에서 증기가 뿜어져 나왔고, 곧 이어서 큰 소리가 났다.
쾅—!
뜨거운 풍압이 나를 감싸안았다.
그 충격으로 나는 중심을 잃고 뒤로 밀어졌다.
‘아아, 정체모를 기계에 폭사 당하는 것이 나의 마지막인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