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5화 〉#14 숨통을 조여오는 손아귀. (5) (65/128)



〈 65화 〉#14 숨통을 조여오는 손아귀. (5)


“마리이이!”

나는 굳어있는 마리의 팔을 다급하게 붙잡아 배가 있는 방향으로 잡아 끌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루어진 나의 행동이었다.
나의 긴장된 팔의 힘에 경직되어 있던 팔과 다리가 순간적으로 움직였다.
나는 어딘가에서 이런 말을 읽은  같았다.
사람은 위험한 순간에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는 말을, 지금에서야 떠올렸다.
마리는 나의 등 뒤로 이끌려 그대로 배의 문에 도달했을 것이다.

“페, 페스틴!”

마리의 다급한 외침에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나는 괜찮아! 어서 배로 들어가!”

나는 아까와 같은 말을 외쳐댔다.

“크르르릉….”

 앞에 있는 괴물은 작게 으르렁 거리며 침을 바닥에 뚝뚝 흘렸다.
이성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은 모습이었다.
일촉즉발.
이 상황에 적절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쩌지…? 마땅한게 있으려나…?’

일단은 마리를 구하기 위해 충동적으로 움직였지만, 그 다음은 전혀 생각하지 못한터라 나도 역시 위험에 처했다.
사람만 바뀌었을 뿐, 아까와 상황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그리고 신속하게  품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나는 분명 냉각수 외에도 여러가지를 넣었을 터이다.

‘아… 그건 가죽 가방에….’

손에 잡히는 것은 빈 유리병 밖에 없었다.
늘 항상 가방을 가지고 다닐 생각으로 가방에 다 넣어버린 것이 이제와서 영향을 받을지 나도 전혀 몰랐다.

‘빈손으로 오지만 않았더라도…!’

후회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단언컨대  괴물은 상당히 빠르다.
지금 땅에 내려오고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지만, 우리의 앞에 나타난 것은  순간 이었다.
그리고 눈 앞에 보이는 이것은 벽 밖에서 괴물들을 제거하는 일을 할  한번도 본적이 없는 개체였다.
그러다 갑자기 나는 제시 아주머니의 여관에서 만난 그 사람이 떠올랐다.

“그는 이런 녀석들을 봐왔던 것인가….”

이런 개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거대한 녀석을 어떻게 무기 없이 제압한단 말인가.
나는 중얼거리며 도망칠 곳이 있는지 이리저리 살폈다.
애석하게도 몸을 안전하게 피할  있는 곳으로 적합한 곳은 배가 가장 좋아보였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일단 마리는 안전하다는 것이다.
그 다음 문제는 내가 어디로 도망쳐야 하냐는 것이다.
마리와 같은 장소로 도망치게 된다면, 분명  괴물은 우리가 애써 가꾼 배를 산산조각 내버릴 것이다.
저 검고 두툼해 보이는 괴물의 근육은 그러고도 충분히 남을  같았다.

‘…절망에 빠질만 한데?’

나는 그의 말에 거짓은 전혀 없었다는 사실을 몸소 실감하고 있었다.
역시, 처음에 아니라고 생각했던 창고로 도망쳐야 했다.
배와 달리 조금 거리가 있었지만, 주위의 물건을 활용하면 충분할 듯 했다.
우선,  품속에 있는 유리병이다.
이것들을 깨트리면 나는 소음으로 괴물의 주의를 분산시켜보기로 했다.

“좋아, 해보자고!”

나의 마음속은 투지로 불타올랐다.
마음만 먹으면 없던 용기도 생기며 몸을 지배하던 두려움마저 없애준다.
상상한다.
현실로 받아들인다.
실행한다.
단순하고도, 단순한 나의 생각과 행동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전혀 예측이 되질 않았다.

“어이! 뇌근육! 인간을 공격하기에는 아직, 한참 멀었다고!”

내가 큰소리로 외치며 유리병을 던졌다.
그 괴물은 큰 소리에 반응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나의 움직임에 반응을 하는 것인지 자신의 근육을 움찔 거렸다.

“끄으으으….”

그 괴물은 괴로운 듯 신음소리를 내며 온 몸의 근육을 응축시켰다.

“…!”

나는 필시 그것은 도약의 준비라고 생각했다.
나에게로인지, 하늘로인지 전혀 분간이 가질 않았지만, 위험해 보이는 것은 분명했다.

“젠장…!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으면!”

조금의 여유가 나에게 있었다면 이 상황을 이겨나가는 것은 식은 스프 먹기 였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창고 쪽으로 몸을 날려 떨어져 있는 나무 합판을 주워들었다.

쾅—!

타이밍 좋게도  괴물은 내가 있던 자리에 주먹을 내리쳤다.

‘뭐…?’

하마터면 죽을뻔 했다.
나의 희망은 여기까지 인 듯 했다.
아직 죽기에 너무 빠르다.
나는 합판을 집어들고 무릎에 내리쳐 반토막을 냈다.
겉보기와 다르게 튼튼했다.
덕분에 무릎이 욱씬거렸다.

‘뭐이리 단단해!’

어쩌면 내가 약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좀  훈련해야 겠는걸?”

나는 양손으로 나뉘어진 합판에 튀어나와 있는 부분을 꽉 쥐었다.
그리고 조금 뒷걸음질을 쳐서 창고 쪽으로 더욱더 다가갔다.
그 괴물은 천천히 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끄흐으으으….”

아까의 괴성보다  괴로워 보였다.
문득,  괴물에게는 하늘을 날고 싶은 꿈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기분탓 일수도 있겠지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떠올라 버렸다.
아마도 괴물의 신음소리가 슬프게 들렸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끄아아아아!”

마치 사람의 울부짖음 처럼  괴물은 울부짖으며 나에게 달려들었다.
증기차 크기의  괴물은 등 뒤에 달린 거대한 천을 펄럭이며 나를 위협했다.
이딴 것에 나는 겁을 먹지 않는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며, 마음을 굳게 먹는다.

‘마음 단단히 먹어라, 페스틴…!’

나는 의지를 굳게 다잡았고, 끝까지 관찰하며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습관.
사람이든 무생물이든 기계이든 크고 작은 습관을 한두가지 가지고 있다.
설령 완벽한 것이라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은 좋게 작용하기도, 좋지 않게 작용하기도 한다.
이 괴로워하는 괴물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그 괴물에게서 나에게 유리한 습관을 하나 발견하고 말았다.
그것은….
나는 좀더 거리를 벌리며 창고로 가까이 갔다.
괴물은 더 나에게 다가오며 자신의 흉폭성을 나타냈다.
찢어질 듯이 크게 벌려진 입은 조금 떨어져 있어도 악취가 났고, 딱 봐도 더러워 보이는 침을 질질 흘렸다.
하지만 나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두렵지도 겁 먹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잘가라.”

나는 확신을 했다.
이 괴물은 유별나게, 움직일 때마다 근육을 크게 응축한다.
그리고 발목이 틀어져 뛰쳐나갈 방향을 정한다.
비행에 적합하지만 지상에서는 오히려 방해만 되는  뒤에 달려있는 한쌍의 천은 크게 흔들리며 중심을 잃게 하고 있다.
처음 나에게로 돌진 했을  그 괴물은 몸을 크게 휘청였었다.
하지만 다리의 힘이 굉장한 것인지, 두어 발자국이 지나면 금세 중심을 되찾았다.
내가 들고있는 나무 합판은 꽤나 미끄럽다.
나도 방심해서 언제 한번 밟아 미끄러진 적이 있다.
합판은 두개이며, 일단 시간을 벌기 위해 한개를 쓸 필요가 있어보였다.
나는 시험삼아 방향을 크게 틀어보았다.
꽤나 위험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했다.
방향을 틀자, 그 괴물은 크게 한번 휘청이고 얼마안가 다시 중심을 잡았다.

‘…! 정답이다!’

나는 나의 생각이 입증되자 마자 바로 실행에 옮겼다.

“좋아! 이대로 하면 타개할  있겠어!”

나의 기분은 좋았다.
내가 해결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장애물을 내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내는 것만큼 기분 좋은 것은 없었다.
당연한 것이지만, 나에게는 지금 껏 살아오면서 다섯 손가락에 손꼽을 정도로 매우 적은 결과였다.
단순한 성공에 나는 기쁨과 비슷한 기분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 * *

쿵—!

괴물이 커다란 덩치의 무게를 못이겨 넘어지는 소리가 나서야 나는 안심하고 창고에 들어갈  있었다.

“휴….”

일단은 시간을 벌었기는 하지만 매우 짧은 시간이다.
그 괴물은 금세 일어나 이 창고로 돌진할 것이다.
그러면 약해보이는 벽을 뚫거나 아예 그냥 무너뜨릴 수도 있다.
잘못하다가는 건물의 잔해에 깔려 그대로 죽을 수도 있다.
여기로 오는 것이 정말로 정답 이었을까?

“조오오오았어!”

나는 약해져가는 나의 마음을 힘주며 움켜쥐었다.
나는 보이는 날붙이와 각종 물건들을 집어 들었다.
자그마한 박스에서 수명이 거의 다해  수 없는 코어를 집어들었다.
아까 본 기계를 떠올리며 재빨리 개조시킨다.
통할지는 나로서는 모르는 것이었지만 분명 통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나는 나를 신용하지 않지만, 눈썰미는 좋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관찰 하면서 살아 왔으니까 말이다.
나는 건물의 잔해에 깔릴 것을 대비해서 서둘러 나왔다.
나오기 전에 창문으로 괴물의 동태를 살폈다.
괴물은 자신의 육중한 무게에 못이겨 다리를 접질렀는지 쉽게 일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다행 중의 다행인가…?’

나는 우선 이 괴물을 쓰러뜨리기 전에 무엇에 반응하는지 알아낼 필요가 있어보였다.
나는 양철로 되어있는 통을 바닥에 냅다 던져버렸다.
물론 나와 거리가 많이 떨어지게 말이다.

“으에에에엑!”

그 괴물은 소리가 났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며 그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주머니에 넣어둔 스위치를 눌렀다.

웅- 웅- 웅-

자그마한 기계가 움직이며 양철 통에서 기어 나왔다.

“으흐으으…?”

그 괴물은 자그마하게 꼬물거리는 움직임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호오….”

나는 자그마하게 감탄사를 표했다.
그리고 박수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자 그 괴물은 이제 내 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시력이 좋지 않군.’

연속으로 일이 잘풀리니 기분이 안좋을 수가 없었다.

“하하하하!”

내가 승리의 확신을 생각하며 크게 웃자, 그 괴물은 멈추어버린 다리를 낑낑대며 끌면서 나에게 점점 다가왔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젠… 작별이다.”

나는 방금 보급한 휘발유가 담긴 유리병을 서너개 던졌다.
그리고 아까 조금씩 움직이던 기계가 그 괴물에게 도달하자, 나는 스위치를 한번더 눌렀다.

쾅!

그 자그마한 기계는 큰 소음을 내면서 폭발했다.
괴물의 살점도 같이 떨어져 나갔다.

촤악!

거무튀튀한 괴물의 피가 사방에 흐르기 시작했다.
청결한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다지 유쾌한 상황은 아니었다.

‘설마 여기도 청소 하라고 하지는 않겠지?’

나는 힘없이 엎드려 있는 괴물에게 다가가 확실하게 끝을 내기 위해서, 아까 폭발을 기다릴 동안 만들어둔 창으로 머리를 노려 힘껏 찔렀다.

“캬아아아아아아아!?!!”

그 괴물은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 굉음을 내더니 힘없이 고개를 늘어뜨렸다.
아마도 이게 마지막 인 듯 했다.

“페… 페스틴, 너…!”
“하아… 하아….”

내가 내려 찍은 창이 괴물의 머리를 관통하자 마리는 놀란 표정으로 나를 불렀다.
고개를 돌려보니, 마리가 황급히 배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얼마나 눈이 동그래졌는지, 잘못하면 눈이 빠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친 곳은?”

내가 마리의 안전을 묻자, 마리는 내 어깨를 팍 때리면서 말했다.

“다치기는 네가 다쳤겠지!”
“아?”

마리의 손바닥이 내 어깨를 치자 나는 시야가 희미해졌다.
무릎쪽이 뜨끈해진다….

‘음…?’

나는 영문도 모른채로 정신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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