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8화 〉#15 죄. (2) (68/128)



〈 68화 〉#15 죄. (2)

어쩌다 보니 조금 미뤄지게 되었다.
언제나 그렇듯,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기 다반수다.
사람은 늘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마치 오늘의  상황처럼 굉장히 엇갈리기도 한다.

“페스틴, 어쩌지…?”
“음… 그러게….”

우리는 도서관에 도착했지만, 도서관의 상황은 영 좋지 않았다.

‘불변의 법칙이 깨진듯한 기분이다.’

나는 성가신 상황에 굳게 잡은 결심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일단은  들어가 볼까?”

도서관의 입구는 크게 붕괴되어 있었고 파손이 심했다.
그것이 방금 전에 일어난 일인 것인지 도서관 안쪽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계속해서 났다.

“아… 음, 그러자!”

페퍼도 마음을 다잡았는지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는 바닥의 잔해를 밟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걸었다.
해가 지평선을 향해 더 기울어졌기 때문에 그늘에 가려진 곳을 특히 유의하면서 걸었다.

‘실례….’

밖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도서관의 내부가 시야에 들어오자 저절로 탄식이 나왔다.

“아….”

그야말로 끔찍한 상황이었다.

“…!”

페퍼는 이 광경을 보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등 뒤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그녀가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알아채기에 충분했다.
나는 그녀가 침착성을 잃는 것은 아닌지 걱정 되었다.

“페퍼… 괜찮겠어?”

나는 여러가지 말을 생략하며 그녀의 동의를 구했다.

“…일단은.”

왠지 분을 좀 식힌 듯한 말투였다.
괜히 그녀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녀에게서 눈길을 돌려 주위의 잔해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그것들의 부서진 흔적들은 실수로 인한 화재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물건과 가구들은 인위적으로 파손되어 있었고, 곳곳에는 고의로 이루어진 불씨가 시들어가고 있었다.

“페퍼, 이것 좀 봐봐.”

나는 조용히 그녀를 불렀다.
그리고 어떤 잔해를 집어들어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그것은 반으로 찢겨져버린 책 한 권이었다.

“아.”

페퍼는 입을 떡 벌리고 멍을 때렸다.
나는 괜히 보여주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책을 좋아했다.
처음 만났을 때 읽었던 페퍼의 책은 그녀 스스로 일기를 소설처럼 쓴 책이었다.
나는 굳이 언급 하지는 않고 있지만, 그녀가 책을 엄청 나게 좋아한다는 점은 알고 있었다.
사서를 하게된 이유도 자신이 책을 좋아해서라고 말했던게 기억난다.
어쩌면 나의  행동이 그녀의 분노에 기름을 들이 붓는 꼴이 되는 것일 지도 모른다.
아니, 그래 보였다.
점점더 굳어져가는 페퍼의 얼굴을 보니, 방금 전의 내가 후회스러웠다.
아무튼, 대체 누가 이런 몰상식한 짓을 벌이고 있는 것인가.
나도 책을 존중한다.
그것이 헛된 기록이든 오해를 일삼는 기록이든 말이다.
그것은 필자의 생각이 담겨져 있는 것이고, 필자만의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모든 책을 존중한다.
단순히 필자가 만들어낸 이야기를 보는 것보다,  내면에 들어있는 필자의 심정을 알아가는 것을 좋아한다.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그 기록을 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들을 해왔는지 생각해 보는 것은 나에게 정말 즐거운 일이었다.
그런 책이라는 것을 이리도 참혹하게 만들어 놓는 족속들이 누구인지 나는 제대로 알아내야겠다고 생각할 뿐이다.

“페퍼, 누군지 꼭 알아내자고.”

나는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했다.

“어, 당연하지.”

페퍼의 말에는 강한 감정의 힘이 담겨져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살금살금 소리의 근원지를 항해 걸어갔다.

“문 열어!”

앙칼진 목소리가 도서관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쾅! 쾅!

둔탁한 무언가로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문을 부숩시다!”

또 다른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도 들렀다.
그러고 보니 밖의 거리는 무척이나 조용 했었다.

‘설마…?’

나는 서둘러 넘어진 책장에 몸을 숨기며, 소리가 나는 쪽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이다.
또 마녀의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그들 모두가 광기에 차있었다.
그들은 사서들이 휴식을 취하는 안쪽 방의 문을 부서뜨릴 정도로 힘차게 두드리고 있었다.

“페퍼… 들키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어.”

나는 페퍼에게 당부의 말을 꺼냈다.
하지만 등 뒤에 있어야 할 페퍼가 보이지 않았다.

“페퍼…?”

순간 온 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큰일났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잠시라도 방심한  자신이 치욕스러웠다.
한심했다.
나는 또 자신을 증오하고 말았다.
그렇게 격해진 상태로 한참을 두리번 거리다 페퍼를 발견했다.

‘하아….’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페퍼를 지켜보았다.

“음?”

페퍼는 그들의 머리 위에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윗층으로 올라가 그들의 머리 바로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도서관은 층이 있지만 가운데는  뚫려있는 구조였다.
그녀의 양손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무언가 들려있었다.

‘뭐야 저건…?’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그것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서 노력했다.
하지만 그럴 틈새도 없이  물체는 아래로 낙하했다.

“앗…!”

페퍼의 의도가 어떠했는지는 나는  모르겠지만, 그 물체는 사람들을 비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쿵!

나는 페퍼의 팔 힘을 다시금 느끼며 감탄할 틈도 없이  다음의 페퍼의 행동에 놀라고 말았다.

“감히 책을 찢다니! 용서 못해요!”
“저 바보가…!”

나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사람들은  층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일제히 달려갔다.

“젠장!”

나도 그들을 따라 몸을 틀며 달려가는 찰나에 분위기가 조금 이상함을 느꼈다.

“응?”

계단을 힘차게 올라가던 사람들이 차례대로 넘어지기 시작했다.

‘세뇌를 당하면 감각이 둔해지나?’

나는 간단한 계단 오르기를 못하는 그들이 의아하다 느껴졌다.

‘뭐야…?’

한번 넘어진 사람들은 좀처럼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음?”

그들이 페퍼에게 정신을 팔린 틈을 타서 쓰러진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들은 정신을 잃은  했다.

“호… 대단한데?”

계단 근처로 다가가니, 기름 냄새가 가득했다.
계단 바닥을 자세히 보니 검정색의 액체가 계단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어디서 구해온거야?’

나는 페퍼의 기지에 감탄하며 아까 그곳으로 향했다.

‘사람의 안전이 최우선이지….’

나는 등 뒤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무게에 깔려죽지 않기를 바라며 달려갔다.


* * *

“안에 괜찮으십니까!”

나는 아까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침착하게 문을 두드렸다.
 성급하게 두드렸다가는 오해를 사고 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네…? 누, 누구시죠…?”

안쪽에서 두려움이 섞인 차분한 목소리가 들렀다.

“아…! 지금은 괜찮습니다. 페퍼가 제압했거든요!”

페퍼는 왕궁에 오기 전까지 사서로서 일했다.
그렇다면 틀림없이 그녀의 이름을 알고있을 법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페, 페퍼가요?”

또 다른 겁먹은 소리가 문 안쪽에서 흘러나왔다.

“네, 페퍼가요.”

나는 고개를 들어 페퍼가 안전한지 살폈다.
페퍼는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것참… 뭐 저리 대담해?’

누가 누구를 지킨다는 것인지.
나는 알 수 없는 불합리함에 조금 기가 찼다.
계단 쪽을 돌아보니 상당수의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다.
한 두명이 남아 기름에 미끌 거리며 올라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고작 한 두명 정도는 페퍼가 알아서 해결해  것이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역시 한다고 하면 하는 사람이다.
내가 신뢰하는 사람은 다들 그랬다.
굳게 닫혔던 문이 스르르 열렸다.
충격에 의해 조금 틀어 졌는지 열리다 말았다.
문틀에 막혀 조금 밖에 열리지 않은 문틈 사이로 두려움에 가득찬 얼굴이 나왔다.

“아, 안녕하세요. 안의 상황은 어떤가요?”

나는 편안하게 물었다.

“예? 아… 안녕하세요…. 일단 한 명이 팔을 다치기는 했지만… 괜찮습니다.”

젊어보이는 사서는 태연한 나를 보며 조금 당황한  했지만 안의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다행입니다. 어느 정도 응급처치는 할 수 있어서… 상처 좀 봐도 될까요?”

나는 그들의 동의를 구하며 물었다.
극도로 긴장되어 있고 사람을 경계하는 듯한 그들을 배려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아… 네…! 부디.”

그는 내밀었던 고개를 넣고는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애초에 고개를 내밀었다는 것 부터 안심한  아닌가…?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조심히 들어섰다.

* * *


“아.”
“아.”

안으로 들어가보니 사람들이 겁에 질려있었다.
확실히 도망칠 곳도 없는 곳으로 몰려있는 상태에서 압박을 받는다면 누구나 두려워 할 만하다.
몇몇은 낯이 익었다.
그리고 그들 사이로 팔을 다친 것처럼 보이는 너무나도 익숙한 사람이 의자에 앉아있었다.
…라이브 씨다.

“으흠, 어디… 상처를 봐볼까요?”
“아… 음….”

라이브씨는 전에 보였던 태도가 생각난 것인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들 나름 응급처치를 했는지 그녀의 팔에 엉성하게 붕대가 감겨 있었다.

“아… 저희끼리 어떻게든 해봤는데 쉽지가… 않았네요…. 하하….”

아까 고개를 내밀은 그가 어색하게 웃으며 변명을 했다.
경험이 없다면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천재가 아닌 이상 누구나 처음은 서투른 것이 당연하다.

“…그래도 할거는 다 해놓으셨네요.”

나는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소독약과 붕대 쪼가리들을 내려다 보며 말했다.
중요한 상처가 잘 봉합이 되었는지 확인해 보려고 라이브 씨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그녀는 움찔하며 몸을 움츠렸다.

‘나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만….’

나는  사람의 경계의 움직임에 개의치 않으며 엉성하게 감긴 붕대를 살살 풀었다.
상처가 쓰라린지  사람은 인상을 썼다.

‘예 예 아픈 줄 압니다.’

나는 속마음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도록 조심하며 상처를 살폈다.
다행이 큰 상처는 아니었다.
나는 다시 새붕대로 상처를 봉합하고는 매듭을 확실히 지었다.

“됐네요, 제가 나설 필요는 없었네요.”

코끝에 스치는 알코올 냄새를 맡으며 나는 구부렸던 허리를 폈다.
역시 알코올 향은 은근히 중독성있다.

덜컹!
쾅!

문이 한번 걸리고 곧 이어 큰 소리와 함께 열리지 않을 터인 문이 열어 젖혀졌다.

“아!”

나는 황급히 몸을 돌려 문가를 바라보았다.
언제 방향을 틀었는지 눈에 광기가 서려있는  사람이 들이 닥쳤다.
그들의 몸에는 기름이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위험해요…!”

나는  근처에 있던 사서들에게 달려드는 그들을 제지하기 위해 뛰쳐나갔다.
한쪽은 젊은 사서가 알아서 대처 하리라 생각하며 조금 나이가 있어보이는 사서를 먼저 지키기 위해 달려갔다.
루이스와 마주한 세뇌당한 사람들을 떠올려보자.
그때 관찰하며 알게된 것은, 세뇌된 이들의 특징 중 한가지로, 시야가 좁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른 쪽으로 시선을 집중하고 달려가는 한 사람에게 몸을 날렸다.

쿵!

내가 몸의 무게를 그에게 실어버리자, 나의 무게에 못이겨 그는 옆으로 꼬구라지고 말았다.
나는 숨쉴 틈도 없이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다른 쪽으로 몸을 날렸다.
체중을 실어서 쓰러 뜨리기 위해서는 거리가 좀 있어서 다리를 뻗었다.

퍽!

그 사람은 나의 발에 맞아 반대쪽으로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이 두 사람은 큰 충격을 받아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세뇌된 이들은 충격을 받으면 세뇌에서 풀리며, 얼마 지나지 않아 제정신을 차리는 듯 하다.
다만, 조금 시간이 걸릴 뿐이다.

“…됐네요. 다들 괜찮으시죠?”

내가 안도의 한숨을 쉬자 방 안에 있던 사람들도 긴장을 풀었다.

“으윽! 다리도 좀….”

갑자기 라이브 씨가 다리를 움켜 잡았다.

“네?”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라이브 씨에게 다가갔다.
내 주변인의 가능성을 건드리는 악신호에, 무의식적으로 움직였다.

“아…?”

순간 얼굴을 마주한 라이브 씨의 눈이 녹색으로 변했다가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심한 어지러움을 느끼며 시야가 흐려졌다.

“괜찮아요?”

우당탕!

…의식이 흐릿해지며, 땅으로 머리가 떨어진다.
또 다른 누군가가 방안을 들어오는 소리가 들렀다.

“페스틴!”

이 목소리는 페퍼다.
…들어온 사람은 페퍼인 듯 하다.

“아….”

어디선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뭐…?”

‘증오해 증오해 증오해 증오해 증오해 증오해!’

작았던 소리가 점차 커지며 귀가 터질 듯이 울려퍼졌다.

“으읏….”

정신이 혼미해졌다.
이윽고 내 시야에는 페퍼 밖에 보이지 않았다.

“죽여…. 증오해….”

‘아…?’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서 들리는 소리를 중얼거렸다.
그리고  몸은 내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페퍼에게로 달려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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