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9화 〉#15 죄. (3) (69/128)



〈 69화 〉#15 죄. (3)

‘아….’

내 몸이 제멋대로 움직여 페퍼에게 달려들고 있다.

‘젠…장…….’

양쪽 귀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머리는 지끈거렸고 여전히 시야는 흐렸다.

‘이런게 세뇌 당한다는 것인가…?’

나의 두 손은 페퍼의 목을 향해 다가갔고, 손에 무언가 잡히는 듯한 감촉이 느껴졌다.

“커흑!”

절대로 듣고 싶지 않았던 목소리가 들렀다.
페퍼의 고통스러워 하는 목소리가 들리자, 속에 불이 붙은 듯 들끓어 올랐다.
참을 수가 없었다.
 시야에 보이는 것은 오로지 그녀의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 뿐이었다.
등에도 감촉이 느껴졌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의 손일 것이다.
나를 말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크흑….”

머릿속에 맴도는 온갖 더러운 단어들이 내 정신을 흩뜨려 놓고 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치욕스러운 이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
소중한 사람을 상처입히는 행동은 결코 하고 싶지 않았다.

‘누구냐….’

정신을 차려야 한다.

‘누구냐고….’

정신을 차려야 한다.

‘누구야!!!!!’

분노를 넘어선 증오가 내 온몸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죽여버려!’

그래, 죽이면 된다.
 앞길을 막는 어떤 것이든 제거하면 된다.
나의 머릿속에 멤돌고 있는 수수께끼의 목소리를 죽이려고 노력했다.
그러는 도중에 그녀의 눈에서 한줄기의 물이 흘렀다.

‘아.’

나란 사람은 정말 어쩔 도리가 없는 사람이다.
살며시 올라가는 페퍼의 입꼬리에 나는 들끓던 마음이 고요해졌다.
여전히 분노라는 감정은 내 안에 남아있었지만, 눈물을 흘리며 미소를 짓는 그녀의 모습에, 알 수 없는 침착함이 내 뇌를 감쌌다.
그 때 시야가 환해지고 지끈거리던 머리의 통증이 사라졌다.

“뭐…? 이럴 수가!”

등 뒤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몸의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몸이 말을 듣기 시작했다.
나는 팔에 생기가 돌자, 서둘러 콱 움켜쥐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주저 앉았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나는 숨을 고를 틈도 없이 페퍼에게 사과하고 사과했다.

“콜록! 콜록! 콜록!”

페퍼는 빨개진 목을 움켜 잡으며 숨을 토해냈다.
그녀가 띄고있는 오묘한 미소가 뇌리에 깊이 박힌다.
더 선명하고 확실하게 그녀의 얼굴이 보여지기 시작했다.
무슨, 감정이려나.
저건.
무언가를 통달한 듯한 미소.
그것을 웃도는 기쁨과 괴로움이 공존하는 미소.
…역시, 사람의 감정은 이해할 수 없다.

그녀의 주위에 있던 사서들이 나에게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그들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감정은 분위기로부터 충분히 전달되었다.
나는 그들로 부터 거리를 두기 위해서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으며 뒤를 돌아 걸어갔다.

“젠장… 젠장… 젠장….”

이윽고 나는 라이브 씨, 아니 라이브 그 사람의 눈이 잠시 동안 빛났던 것을 기억한다.

“…라이브! 당신은 내게 무슨 짓을 저지른거지?”

나는 바닥을 내려치며 뒤돌아 보았다.
그곳에는 겁먹은 한 사람의 영혼이 바들바들 떨고 있을 뿐이었다.
사람인가?
이리도 잔인한 짓을 벌이는 그 사람은, 정말 사람이라고 생각해도 되는 것인가?
괴물이다.
이런 것이야 말로 괴물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 믿을 수 없지만 그 사람은 [마녀]가 확실했다.

“라이브… 저는 그렇게 안봤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거죠?”

나는 현실을 부정하려고 하며 애써 내가 잘못 보았기를 바랐다.
그 사람 역시 페퍼의 소중한 사람이다.
제발 단순한 오해이기를 바라고 바랐다.

“페퍼!”

등 뒤에서 다급한 외침이 들렀다.
잔뜩 힘이 들어간 내 몸을 등에서 누가 감싸안았다.
하지만 내 분노를 잠재우기에는 너무나도 역부족인 속박이었다.

“페스틴…! 진정해!”
“저 사람이 저지른 일이라고!”

나의 외침에 방안은 적막이 흘렀다.
 뒤에서 느껴지는 소란스러움과 페퍼의 부들거리는 마음마저도 조용해졌다.
오로지 나의 분노와 그 사람의 두려움 만이 남아있었다.

“하…. 그만 두라고? 나는 그렇게까지 착한 사람은 아니야.”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역시, 나도 어리석은 사람들 중의  명이다.
 스스로 악의 굴레에 들어서려고 하고 있다.
나 역시 어리석은 사람이라, 이렇게 상황이 닥치면 이성을 잃고 만다.
갑자기 몸을 휘감던 속박이 풀리고 페퍼가 내 앞으로 왔다.

“그만하라고 했잖아!”

짝!

그녀의 외침이 들리는 순간, 내 고개는 외부의 힘에 의해 돌려져 버렸다.
왼쪽 뺨에 얼얼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눈물로 얼룩진 그녀의 얼굴에 나는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 * *

“아깐… 미안했어….”

현재는 아까보다는 진정된 분위기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다들 침착함을 되찾은 탓이었다.
우리는 의자를 주워다가 빙 둘러 앉아 있었다.
우리의 중심에는  사람이 앉아 있었고, 모두가 그 사람을 응시했다.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보는 사람도 있었고, 여전히 그 사람을 믿고 있는 것인지 침착한 표정으로 보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냥 멍때리고 있다.
페퍼는 내 오른편에 앉아있었고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게 된거죠?”
“뭘… 말인가요?”

그 사람, 아니 마녀는 소리가 난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의문을 표했다.
다시 세뇌에 걸릴 걱정은 없다.
그 이유는  사람의 눈을 붕대로 빙 둘러 막았기 때문이다.
세뇌를 당하는 조건이 있었던 것 같았다.
그 사람이 모두에 의해 눈이 틀어막힌 이후로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눈을 보면 세뇌를 당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의 눈을 보아야만 세뇌를 당하는 것인지 알 방법은 없어보였지만, 그것은 지금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일단, 알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팔에  상처는 어쩌다 생겼죠?”

사실은 마음 속에 화가 들끓고 있었지만 옆의 페퍼 때문에 차마 겉으로 드러내지는 못했다.

“…사람들이… 갑자기 들이 닥쳐서… 도망치다가 다친 것입니다.”

라이브는 손을 자꾸만 만지작 거리며 말했다.
나는 사람의 감정을 잘 알려주는 눈을 볼 수가 없어서 안타까웠다.
하지만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아직 많았기에 나는 안도하고 있었다.

“맞아요… 저도 봤어요….”

다른 사서가 그 사람의 말을 뒷받침 해주면서 말했다.
그 사서는 내 눈치를 보며 조심조심 말하자, 나는 조금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물론, 내가 방금전에 보여준 난폭한 모습을 보면, 누구나 그런 생각이 들기는 하겠지만….
나는 결백하단 말이다.
 의지와 상관없이 이상한 힘에 의해서 움직였을 뿐이었다.

“제가 신경쓰는 것은 이 사람 뿐입니다. 저는 관계없는 사람은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조금은 포근한 눈빛으로 말해서인지,  사서는 조금이라도 긴장을 푸는 것처럼 보였다.
표정이 한결 나아졌기 때문이다.

“다친 원인이 책장인가요? 아니면 사람들인가요?”

나의 설명을 잘 들어준 침착해 보이는 사서가 질문을 했다.

“사, 사람들입니다.”

라이브는 우물쭈물하면서 대답했다.

사람들…?
그 사람이 다른 모든 사람들을 세뇌 했다면, 어째서 세뇌된 사람들이 자신을 공격하게 되었다는 것인가?
세뇌시킨 사람은 세세한 조종이 못한다는 것인가?
아니면 전의  마녀처럼 직접적인 조종이 아니라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게 만드는 것인가?

“세뇌… 그것이 당신의 힘인가?”
“…!”

 사람은 나의 질문에 흠칫했다.
그렇다고 순순히 대답하지도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차분히 다가갔다.
그리고 그 사람의 귀에 대고 말했다.

“이름은 모르겠지만… 당신 외의 두 명을 확인했습니다. 그들의 결말을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이 되는데… 그들과 같은 결말을 당신이 맺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러니… 협조를.”

나의 말에 그녀는 입술을 바들바들 떨었다.

[라이브의 눈에는 페스틴이 매우 두려운 존재로 보였다.]
[초근거리에서 보여지는 노란 눈빛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포심을 갖게 했다.]

두려움인가?
아니면 치욕스러움인가?
나로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이어서 조용히 말을 내뱉었다.

“…한명은 사람을 짐승으로 변화시킬 수 있고, 다른 한명은 어떠한 매개체로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변화시켜 조종할 수 있다. 맞습니까?”

나의 물음에 그 사람은 마른 침을 삼킬 뿐이었다.

“…아무래도 대답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입니다.”

나는 굽혔던 허리를 피며 모두에게 말했다.

“여기서, 저의 생각을 말하기 앞서… 한가지 충고할 것이 있습니다.”

나는 차분하게 뒷짐을 지며 모두의 표정을 살폈다.

“지금부터 제가 말할 것은 국가의 기밀입니다. 어쩌면 발설한 사람은 처형당할지도 모릅니다.”

나의 말에 방안은 긴장감이 멤돌기 시작했다.

“저는 여러분의 생명을 존중합니다. 그래서 결심을 한 사람 외에는 듣지 않았으면 합니다.”

내가 말을 마치자, 침착한 모습을 보였던 사서는 자리에 일어서며 말했다.

“으흠, 사실, 당신이 페퍼의 믿을 만한 친구일지라도… 우리에게는 처음 보는 낯선 사람에 가깝습니다.”
“…인정합니다. 그래서 강요할 생각은 없습니다.”
“…저희는 나라의 상황을 잘 모릅니다. 왕궁 내부의 사정은… 더더욱 말이죠.”

뜻밖의 말에 나는 조금 주춤했다.
그들은 정보가 많아 분명, 왕궁에 관한 것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너무 과한 지식은 재앙을 불러오기 마련이죠.”

그는 모두의 얼굴을 둘러 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서들이 이 방을 나섰으면 합니다. 내키지는… 않겠지만요.”

‘아…?’

이리도 순조롭게 일이 흘러가니 오히려 내가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모두에게 권유하는 그 역시 내키지 않는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만… 라이브 사서님은….”
“아닙니다! 이 사람의 말을 못 들었습니까? 그들과 한통속 이었습니다!”

누군가의 불평에 차분했던 그 사서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들…?’

그 사서는 아차 싶었는지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는 나의 눈을 회피하며 서둘러 나가려고 했다.

“…갑시다. 여기서 이러고 있을 시간도 없고요.”
“잠깐만요.”

나는 나가려는 그들을 불러 세웠다.

“그들이라뇨? 자세히 말해 주실 수 있습니까?”

나의 물음에 그는 다른 사서들에게 손짓을 해서 내보낸 뒤에 나에게 가까이 왔다.

“괜찮다면 말씀드릴 수 있지만… 여기서는 조금 그렇습니다. 외부로 흘러나갈 수 있으니까요.”
“…좋은 장소가 있을까요?”
“일단은….”

그는 바닥 한쪽 구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


* * *


놀랍게도 지하로 가는 비밀문이 있었다.

‘지하에도… 방을 만들구나….’

나는 습하고 어두운 곳을 조심 조심 내려가며 구석구석을 살폈다.
그는 얼마 가지 않아 멈추어섰다.

“이즈음이면  겁니다.”

나는 뒤를 돌아 우리가 내려온 길을 올려다 보았다.
나름 깊게 내려온 듯 했다.

“그래서… 그들이란 누구죠?”
“…말씀드리기 전에, 한가지 여쭤보죠. 당신은 제가 확실하게 신뢰할 만한 사람인가요?”
“…그건 제가 할 말입니다.”
“왜, 왜 그렇죠?”
“…신중해야 하니까… 라고 하면 이해하시려나요?”
“아… 신중이라…. 상대는 꽤나 권력이 있나보죠?”
“저는 왕궁 소속 입니다만, 믿을 거는 저 밖에 없죠.”

나는 그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음, 경비대.”
“네?”
“경비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아하, 역시 그랬군요.”
“…뭔가 알고 계셨습니까?”
“혹시,  말을 다른 사람에게 했습니까?”
“아… 아뇨? 그럴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절대…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마세요. 지금 왕궁은 시민을 버리려 하고 있습니다. 수단은 경비대와… 그 사람과 같은 사람들을 사용합니다.”
“그 사람이라 함은… 라이브 씨를 말하는 겁니까?”
“당신의 안전을 위해 여기까지만 말하겠습니다.  알고 싶다면 밤거리를 돌아다녀 보세요. 특이한 사람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나는 그의 마음속에 강렬한 호기심이 있다면 분명 루이스와 만나게 되지 않을까 하며 생각했다.

“…특이한…사람…. 알겠습니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서 좋았습니다.”
“뭘요, 페스틴 입니다.”

나는 손을 뻗어 악수를 청했다.

“루틴입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도서관으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뜻 밖의 곳에서 믿을 만한 동료를 찾았다.
나는 그가 나를 속이려하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바랐다.

“…감사합니다. 그럼 위로 올라가서 마저 할까요?”

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부드럽게 휘는 그의 눈동자는 회색빛으로 빛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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