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화 〉#15 죄. (4)
“오호….”
“…?”
그의 갑작스러운 감탄사에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앗, 소리를 내 버렸군요.”
“아… 네….”
조금은… 이상한 사람인듯 했다.
“그런데, 라이브 씨, 아니… 이제는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 사람의 정체는 뭡니까?”
루틴은 내 앞서 올라가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그의 물음에 답하는 것을 하지 않았다.
그를 100% 신뢰하지 않고 있었다.
“음…정확한 칭호가 있지만, 당신에게 알려주는 것은 아직 이릅니다.”
“네…?”
“그냥 당신이 생각하는 그들과 한통속이라 생각하세요. 딱히 그들을 별개의 집단으로 나눠 부를 필요는 없습니다.”
“아… 네….”
조금 시무룩해 보이는 그의 모습에 내가 너무 차갑게 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 알려줄게요.”
그리고서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알겠습니다.”
아쉬운 듯한 그의 미소에 나는 서둘러 계단을 올라갔다.
* * *
“페퍼?”
“어….”
그녀의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기운이 쭉 빠져있는 듯한 모습에 나는 마음이 착잡 해졌다.
“괜찮은거야?”
“…응.”
“페퍼 양, 힘들면 쉬어도 됩니다. 제가 페스틴 씨와 같이 이야기 해볼 테니까요.”
루틴도 페퍼를 걱정하며 쉴것을 권유했다.
“…아니야. 괜찮아.”
그녀는 고개를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라이브… 씨, 아주 간단한 것만 묻겠습니다.”
나는 최대한 자극하지 않으려 하면서 대화를 시작하려 했다.
“…그분은 너희를….”
‘응…?’
그 사람이 뭐라고 중얼거렸다.
너무 작게 말해 가까이 있어도 전체를 알아 들을 수는 없었다.
“당신의 일원은 몇명입니까?”
“…”
나의 물음에도 그 사람은 전혀 미동하지 않았다.
더는 두려워 하지도, 긴장하지도 않았다.
나는 뭔가 이상함을 느끼며 질문을 계속해 나갔다.
“당신들의 힘의 근원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
이번의 질문에도 반응은 같았다.
“하… 그렇게 입을 다물고 있어도 득이 될것은 없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그 사람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나의 손이 얹어지자, 그 사람의 몸은 힘이 빠진채로 쓰러졌다.
“…! 뭐야!”
옆에 있던 루틴이 한껏 당황하여 서둘러 그 사람의 목 언저리에 손을 갖다 대었다.
‘…아?’
나는 그의 돌발적인 행동에 당황했지만, 그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곧 깨닿게 되었다.
그가 목에 손을 댄 채로 나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직… 정보를 다 얻지 못했는데…!’
나는 그 사람에게 다가가 눈을 가리고 있던 붕대를 풀었다.
눈은 크게 떠져있었고, 초점은 흐릿했다.
“페퍼! 눈감아!”
나의 외침과 동시에 귀를 찌르는 페퍼의 비명이 들렀다.
* * *
“하하… 이럴 수가….”
루틴의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그렇지 못했다.
‘내 실수다… 지하에서 시간을 너무 끌었어.’
페퍼는 정신을 잃어서 기다란 소파에 누인 참이었다.
“루틴… 어쩌죠?”
“저는… 잘 모르겠군요.”
“경비대에 들키면 큰일 입니다.”
“어쩌면 이미 여기로 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침착한 모습을 보여왔던 그가 동요하고 있었다.
“진정하세요! 아직은 시간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포크 아저씨 집에서 당황했던 적은 언제고, 이리도 침착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저 경험 했기 때문이다.' 라고 생각할 뿐이다.
“…어쩌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라이브 씨, 아니 그 마녀는 자결했다.
언제 입 안에 넣고 있었는지 자그마한 독약이 담긴 유리병이 있었다.
독약은 100여 년 전에 유통 되고 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왕을 독살 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던 어떤 사람이 그만 계획이 들통나 버렸다.
그 결과 모든 독약은 경비대에 압수되어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었다.
그것이 아직까지 존재해 왔고, 이런 용도로 사용 되어 온 것 같았다.
“하… 낭패군요.”
‘지하… 지하에 안갔더라면….’
나는 우리가 방금 전에 나온 지하로 통하는 비밀 문을 씁쓸하게 바라보았다.
‘지하…?’
나는 벌떡 일어나 다시 지하로 향하는 문을 열어 재꼈다.
“…페스틴 씨?”
“루틴 씨, 여기 지하실을 알고 사용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 인가요?”
“…아… 저랑… 라이브 씨 외에는….”
“여기의 용도는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창고 입니다.”
“어떤가요?”
나는 천천히 돌아보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의 시체를 그곳에 방치해 두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면요?”
“…네?”
그는 영문 모를 소리를 하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루틴 씨는 혹시 성벽 밖에 대해 알고 있나요?”
“네… 일단은요. 비옥한 평야가 펼쳐져 있고, 푸른 바다가 가득하다는 정도는 알고있죠.”
거짓된 사실.
왕궁은 시민들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윽고 그들은 시민들을 배신할 것이다.
이것은 거의 기정사실 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당연한 일처럼 느껴지고 있다.
현재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사람들의 소동에도 경비대는 움직이지 않는다.
예전에 첫 마녀를 만나게 되었을 때도 경비대는 뒤늦게 움직였다.
그것은 단순히 내가 난리를 피워서 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왕궁은 아니, 왕은 무책임 하다.
이 사실을 팜 아저씨는 알고 있을까?
나는 온갖 생각이 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 것을 그저 방관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도 정리가 되고 있지 않았다.
얼추 정리는 되어가고 있지만, 무언가 석연치 않을 뿐이다.
“루틴 씨,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만 알아 두세요. 밖에는 상식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네…? 위험한 것인가요?”
“그렇습니다.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가 있습니다.”
“인간을 위협 한다니요? 그것은 사람이 아닙니까?”
“…그것에 대해서는 굳이 알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저희의 역할 이니까요.”
“…알겠습니다. 알고 싶은 것은 많지만, 알아서는 안되는 것들이 너무 많군요.”
아까보다는 진정되어 보이는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최근들어 씁쓸함 이라는 감정을 많이 보고 느끼고 있다.
포기해서 일 수도 있다.
실망해서 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웃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웃는 것 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후… 그럼… 냄새가 새어나가지 않게 하고 싶은데…. 마땅한게 있으려나요?”
“아… 진짜로… 하는 겁니까?”
“힘들면 저 혼자 해도 됩니다. 무리는 하실 필요 없어요.”
망설이는 듯한 그의 모습에 나는 시선을 맞추려 하지 않으면서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내 기억이 맞다면… 여기에 다양한 물건이 있었지…?’
처음 이 도서관에 왔을 때도 차를 이 곳에서 꺼내 왔었다.
가끔씩 대접을 받게 되었을 때도 문 틈 사이로 다양한 것들이 보이곤 했다.
포대.
자루천으로 엮여있는 포대는 액체인 무언가를 담을 만한 곳이 없을 때 사용하는 것이다.
겉으로 보면 빈약해 보여도, 바느질이 촘촘히 되어있어 왠만한 일이 아닌 이상은 안의 액체가 새어나오지 않았다.
나도 가끔 버리기 아까운 기름을 담을 때 사용하고는 했다.
크기는 내 허리에 오는 정도로 챙기면 될 듯했다.
나는 한쪽 구석에 널부러져 있는 포대를 발견하고는 그것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나가면서 노끈을 챙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일단, 여기에 담죠.”
“…?”
루틴의 미간이 찡그려지며 얼굴색이 변해갔다.
비위가 상할만 하다.
나는 이해한다.
처음 사람이 죽는 것을 목격 했을 때도 지독한 피냄새를 맡아 속이 메스꺼웠다는 것을 기억한다.
안에서 무언가가 앞으로 쏟아지지는 않아서 천만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때를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해 지는구만?’
“쉬세요. 페퍼도 걱정되기도 하고….”
나는 페퍼가 누워있는 소파쪽을 흘깃 보면서 말했다.
“…그, 그러죠….”
그는 나를 잠시 쳐다보더니 페퍼의 이마에 얹을 손수건을 적시기 위해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가 제대로 된 사람이길 바라며, 차가워진 그 사람의 몸을 포대에 담기 위해 낑낑 댔다.
‘사후 경직이라고 했던가…?’
나는 의학 쪽으로의 지식은 아직 별로 없는 탓에 허둥대고 만다.
* * *
나는 맨정신으로는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조금 멍을 때리며 묵묵히 담았다.
한참의 사투 끝에 포대에 담겨지게 되었다.
다행이도 신축성이 큰 포대라서 다 들어갔다.
나는 입구를 노끈으로 묶으면서 나 자신에게 소름돋고 말았다.
‘이상할정도로 침착하네.’
시간이라도 멈춘 것처럼, 나의 사고가 정지되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이게 사람이 할 짓인가?”
참으로 아이러니 했다.
죽어 마땅할 정도로 살인을 조장하고 옳지 않은 짓거리들을 했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모두 마땅히 존중 받아야 할 지적생명체다.
하지만 그런 그들을 나는 몇번이고 죽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내가 직접적으로 나서지는 않았다지만, 원인을 따져보면 나부터 시작했던 것 같았다.
아무리 경험을 했고, 익숙해졌다고는 하지만 사람이다.
그렇다고 해도 그들은 악인이며, 악인을 처리한 나는 무엇이 되는가?
나도 악인이 되는 것인가?
이런 것도 내가 생각하는 악의 굴레라는 것에 포함되는 것인가?
아직 나로서는 판단할 것이 못되었다.
나는 이제 18년 남짓한 인생을 살아왔고, 많은 것을 경험 했다지만, 그것을 올바로 사용할 줄을 아직은 잘 모르고 있다.
털썩-!
“후…”
나는 지하 가장 깊숙한 곳에 포대를 집어 넣고는 주저 앉았다.
깊은 어둠이 나를 감싸안았다.
바닥을 뒹굴던 포대가 힘없이 굴러다닌다.
난생 처음으로 느끼는 당혹감에 다리의 힘이 풀린 까닭도 있겠지만, 왠지 지쳤다.
눈과 생각과 감정을 자극하는 붉은색은 보이지 않았지만, 창백한 피부를 보니 침착한 것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나는 정말 올바른가?’
이렇게 했어야만 했나?
나는 속으로 그렇게 되뇌이며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나의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래도 휴식이 필요한 듯 하다.
나의 감정은 이미 버려진 듯 하지만, 이런 곳에서 다시 되살아나고 말았다.
과거의 나는 이미 없는데도, 곳곳에서 나의 흔적이 새어나왔다.
더럽고 추악한 내 자신이, 정신차려보면 나를 보며 비웃고 있다.
마치 ‘나는 언제나 여기 있어.’ 라고 말하는 듯이….
* * *
루틴과 일단 헤어지고, 해가 떨어지기 전에 왕궁으로 돌아가기 위해 페퍼를 업고 가고 있다.
정신을 잃은지 많은 시간이 흐른 듯 하지만 전혀 깰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이러다 영영 깨어나지 않게 될 것 같다는 무서운 생각을 하며 나는 왕궁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저녁 노을이 우리의 등을 비춰주고 있었다.
해가 져감에 따라 우리의 그림자는 점점 더 자라나고 있다.
시간이 되어갈 수록 나의 어떤 내면이 점점 자라나고 있는 듯 했다.
하루 빨리 대처를 해야되겠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감도 잡히지 않아 어디서 부터 해야할지 정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눈 앞의 문제들을 해결해 가며 앞으로의 계획을 세울 뿐이다.
나는 해의 반대쪽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붉었던 등뒤의 풍경과는 달리 푸르렀다.
깊고 어두운 하늘은 곧이어 밤이 될 것을 예고 했다.
나는 루이스처럼 무감각해지게 되는 것인가?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어떤 느낌인가?
나는 왜 사람을 죽이려 하지 않는 것일까?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이건… 아니지….”
내가 원하던 희망과는 거리가 먼 방식에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부족하다… 여전히 약해.”
나는 자신의 무지함을 한탄하며 왕궁을 향해 계속해서 걸어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