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화 〉#17 협력을 요청한다. (1)
어린아이.
성인에 가까운 내가 어린아이라는 말을 듣기에는 조금 징그러운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내 눈 앞에 있는 이 남성은 나라에 몇없는 늙은 사람이다.
그의 입장에서는 내가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심지어 그는 타지의 사람인 듯 했다.
그렇다면 그는 벽 밖에 있는 어떤 나라에 살고 있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는 말은 사물을 보는 것에 대한 견해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니 충분히 어린아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 음….”
나는 무엇부터 그에게 이야기를 해야할지 막막했다.
그가 낯선 타인 이기도 하며, 그가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확신할 만한 한가지는 그가 나쁜 사람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째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렇게 빨리 경계의 끈을 풀었는지 나도 이해가 가질 않았다.
“자네 이름이 어떻게 되는가?”
“저요?”
인자해보이는 그의 미소에 자꾸만 마음이 편안 해져만 갔다.
‘이래서는 위험한데….’
머리는 그렇게 마음에게 소리치고 있지만, 내 마음은 걷잡을 수도 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일단은 나의 이름을 밝히는 것이 예의이기도 하니, 더 이상 이 노인을 기다리게 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페스틴…. 이라고 합니다.”
“솔직한 아이네.”
내 이름을 알려주자 마자, 그는 전보다 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솔직하게 말해준 착한 아이에게는 선물을 줘야지….”
그렇게 말한 그는 무언가를 찾는듯이 허공에 손을 허우적 거렸다.
‘…?’
나는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는 그의 행동에 사고가 멈추어 진채로 멀뚱멀뚱 바라만 보고 있었다.
“아, 여기 있군.”
그렇게 말한 그는 허공에 손짓을 했다.
그가 손짓을 하자, 빛이 나기 시작했다.
눈이 부시지 않으며, 그렇다고 금방 꺼질 듯한 불씨도 아니었다.
그 불빛은 그의 성격을 말해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고요하게 방 안을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곧 이어서 그 빛 안에서 무언가 툭 떨어졌다.
“어이쿠. 조심해야 하는데.”
그렇게 말한 그는 수수께끼의 물건을 집어 들었다.
“그건…. 뭔가요?”
나는 그만두라는 이성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호기심에 못이겨 그에게 물었다.
“이거 말인가? 음… 아… 코어. 코어라고 생각하게.”
그는 설명하기가 애매한 것인지 머리를 굴리다가 내가 알법한 단어를 꺼냈다.
“코어요…? 어디에 쓰는 건가요?”
“자네, 장갑 비슷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던데, 그것에 대해 먼저 물어보아도 되겠는가?”
“음…?”
‘건틀렛에 대해 이 사람에게 말한 적이 있었나?’
“뭐… 괜찮습니다. 조금 설명하자면, 그건 그냥 단순히 밖에 있는 괴물들을 잡기 위해서 만든 겁니다.”
“그런가?”
그는 부드럽게 웃으며 차를 홀짝였다.
“증기 기관의 폭발력을 이용해서 인간의 근력을 배로 증가시키는 원리로 만들어보기는 했습니다만….”
“다만?”
“오직 괴물에게만 대응할 수 있는 것이라서요.”
“자네가 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마녀라는 아이들을 그것으로 잡으려는 생각은 안하는 겐가?”
“네?”
이 사람은 정말 수수께끼 같았다.
심지어 그는 나라 전채를 통틀어 아는 사람이 몇 없는 마녀의 존재에 이미 알고 있는 듯이 말을 했다.
나에게 선뜻 다가와 주는 그 사람에게 미안한 말이 되겠지만, 나에게 의심을 하게 만드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
“아… 일단은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보다….”
“아! 자네는 신중한 아이였지?”
내가 말을 돌리자, 그가 잊고 있었다는 듯이 이마를 쳤다.
“우선 질문을 하나 하겠네, 자네는… 이 세계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네?”
대체 되묻기를 몇번이나 하는 것인지 나도 이제는 모르겠다.
“왕궁이 의심스럽지 않은 겐가?”
그의 질문이 단순히 궁금해서인지 아니면 나의 속마음을 캐기 위해서 하는 유도질문인지 나는 짧은 시간에 파악을 했어야 했다.
심지어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하는 그는 속마음을 당최 알 수가 없는 상태였다.
사실, 이 시점에서 나는 정보를 어떤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찾고 싶어서 발을 들였던….
아니, 무료한 시간을 해소하기 위해서 들어온 것이 후회가 되었다.
나는 결국 더는 어찌 해야할 방도가 떠오르지 않아서 자포자기 심정으로 대답했다.
“네… 의심스럽습니다.”
“으하하핫! 좋네! 아주 좋아!”
내가 힘이 쭉 빠진채로 대답하자 마자, 바로 그 사람이 기쁨을 표현하며 외쳤다.
신나게 웃어 제끼던 그 사람은 나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정말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아하핫….”
나는 어찌할 도리가 없어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일 뿐이었다.
“자네와 같은 사람은 없을 줄 알았네.”
“그런가요?”
“자네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이런 세계 즈음은 포기하고 떠나버릴 생각이었네.”
“떠난다고요…?”
‘세계를 떠난다고…?’
“그렇다네, 보다시피 나는 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네. 지금껏 평생을 바쳐 많은 사람들을 구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고 싶네만… 사람에게는 한정된 시간이 있는 법이라네.”
“…그렇군요.”
그의 짧은 설명을 듣고, 오랜 세월 동안 올바른 일을 하기 위해서 자신이 가진 힘을 다해 최선을 다해온 이 노인은 존경 받기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있던 소량의 의심이라는 덩어리를 던져버릴 수 있게 되었다.
“아까 보여준 당신의 힘은 무엇인가요?”
나는 이제 더 이상 사리지 않았다.
“내 힘? 아…. 자네는 그렇게 부르나?”
“아…? 따로 명칭이 있었나요?”
“아니네, 그런 것만은 아니네, 각자의 관점은 다르니 말이네.”
“그렇기는 하죠, 그래도 기준이 정해져 있다면 따르는 편이라서요.”
“하하핫! 성실하구만 자네.”
“…그래서 몇명의 마녀를 만나보았는데요. 그들에게는 특별한 힘이 하나씩 있더라고요.”
“그렇지, 그것은 섭리야. 하나 이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불합리하지.”
“…그런 특별한 힘이 없는 저로서는 충분히 불합리 하지만요.”
“으하핫! 그렇게 생각하나?”
“대개 자신 이외의 것들을 조종하는 힘을 가졌던 것 같던데요?”
“음! 잘 보고 있는 것 같군. 확실히 자네 말처럼 그 마녀들은 그렇지.”
“…조금 다른 부류가 있나요?”
흥미로웠다.
자신의 정보를 이기적이나, 다른 어떤 이유 때문에 숨기는 일 없이 서로의 생각을 털어놓는 대화는 처음이었다.
“그 아이들은 실은, 음… 이것은 나중에 알려주겠네. 그것보다 나의 능력이 궁금하지 않은가?”
“능력…이요? 그럼요, 정보는 많을 수록 좋으니까요.”
“으하핫! 그래 그래 알겠네. 잘 보게.”
그는 기분좋게 웃고는 양손을 들며 자세를 잡았다.
“나의 능력은 아주 심… 아니 간단하네.”
그리고는 손뼉을 쳤다.
그 순간 눈 앞에 있던 그 사람은 사라졌다.
“어…?”
거짓말 처럼 사라진 그가 무언가를 이용해 자신의 몸을 숨긴 것인지 확인 하기 위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가 앉아있던 의자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어떤 요소가 있었는지 찾아보았다.
…하지만 찾지 못했다.
“찾지 못했나?”
등 뒤에서 그 사람의 목소리가 바로 들렀다.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지만,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그가 자신의 몸을 분리해 조종하는 그 마녀와도 같은 힘이 있지는 않을까 하고 바닥이나 천장을 잘 둘러보았다.
하지만 그곳에는 밝은 색의 나무로 된 바닥과 끝없는 어둠만 있을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허허… 전혀요.”
나는 난관에 봉착해 턱을 매만졌다.
“으하하핫!”
그런 내 모습이 웃겼던 것인지 크게 웃으며 그 사람은 다시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예의 그 빛이 나면서 말이다.
“공간 이동.”
“네?”
자신의 몸 전체가 내 앞에 생기자, 그는 나지막히 말했다.
“아무런 제약 없이 공간을 이동하지, 나를 포함한 전부의 것들을 말이네.”
“예…?”
“물론, 기본적으로 내가 들 수 없는 것은 옮기지 못하네만, 응용이라는 것을 한다면 충분히 내가 들 수 없는 무거운 것도 옮길 수 있다네.”
“…그렇군요.”
나는 뭔 소리인지 이해가 잘 가지 않았지만, 아무튼 대단해 보였다.
“이 능력을 몇십년을 사용해 오니, 어디론가 가지 않아도 감각이 생기더군. 심지어 집중을 하면 마음속까지 들어갈 수 있지.”
그는 검지 손가락을 내 명치에 살며시 가져다 대었다.
“흥미로워 하는군, 그리고 두려움이 전혀 없군.”
그렇게 말한 그는 만족했다는 듯이 의자에 다시 앉았다.
“당신이 말하는 공간…이란 것은 뭐죠?”
“아, 여기는 그런 세계였던가? 미안하네, 일단 자네가 있는 곳과 내가 있는 곳. 전부 ‘공간’에 포함 되네.”
“아….”
“자네가 여기로 오기 전에 있었던 방도 포함되고, 자네가 예전에 살았던 그 허름한 집도 포함 되네.”
“네?”
살짝 소름이 돋았다.
그에게 악의는 없었지만, 의도적으로 여기 저기를 둘러볼 수 있다는 점이 말이다.
“하핫, 그 장소에 있던 물건들도 공간에 포함 되네.”
“정말 광범위 하네요.”
“호오... 이해가 빨라서 좋군.”
“아무튼, 좋아 보이는 이 능력에는 한가지 단점이 있다네.”
“단점이요? 다 좋아 보이는데요?”
“안전한 곳으로 사람들을 옮기지 못해.”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말 그대로, 내 염원을 이룰 수가 없다는 말이네….”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말했다.
‘이게 세월의 연륜 이라는 것인가…?’
그런 그의 모습을 보니, 나보다 몇배는 많은 경험을 해왔을 그는 어딘가 지쳐보였다.
“그래도, 자네같은 사람을 발견해서 다행이라네! 자네는 내 희망일세.”
언제 우울해 하고 있었냐는 듯이 활짝 웃는 그는 어린아이 같았다.
나는 그런 그가 정말 대단해 보였다.
지금껏 만났던 사람들 중에서 단연 훌륭한 사람이었다.
전까지는 팜 아저씨가 나의 존경하는 인물 목록 1순위 였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조금 팜 아저씨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러다가 문득, 신화에 관련된 책의 내용이 떠올랐다.
신은 간혹가다 인간의 모습으로 내려와 인간을 도운다는 말을 떠올리자 그에 대한 시선이 달라졌다.
그래서 나는 갈데까지 가버린 이 상황에 더 무언가를 던졌다.
“혹시… 당신은 신이신가요?”
“엉?”
편안하게 차를 들이키던 그 사람은 나의 말에 정말 놀랐는지 사래에 걸려 콜록 거렸다.
“콜록! 콜록! 자네… 지금 콜록!”
눈이 둥그래진 그 사람은 턱 막힌 자신의 가슴을 퍽퍽 쳐댔다.
“후….”
한참을 그러다가 그는 숨을 고르고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내가… 신이라고 생각하나?”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신은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가 아닌가요? 사람들 보다 지식이 월등히 많고, 상냥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상냥…?”
그는 나의 생각을 듣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마, 나를 보고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닌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그냥… 그렇게 생각할 뿐입니다.”
나는 아무리 생각을 터놓고 말하는 사이라고는 해도 절대로 속마음 만큼은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았다.
“흠… 이건 그만두겠네. 이것은 자네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니까 말이네.”
그는 손을 뻗으려다가 말았다.
아마 그는 나의 마음속을 읽는 것을 그만둔 것일지도 모른다.
‘역시 신은 상냥하다.’
“정말… 자네는 나를 신으로 생각하나?”
“네.”
그의 물음에 나는 확신에 차서 대답했다.
보통 재차 묻는 것은 정답을 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실을 뒷받침 하는 증거는 없지만 말이다.
“흠….”
그는 잠시 동안 고민하더니, 나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나는 자네가 생각하는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