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화 〉#17 협력을 요청한다. (2)
“나는 자네가 생각하는 그런 신 같은 존재가 아니네.”
‘…신은 그런 이미지가 아니었던가?’
역시 책의 모든 정보는 신뢰할 수가 없다.
대부분 맞기는 하겠지만, 틀리는 경우도 있기에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책에 있는 정보들을 곧이 그대로 믿는 것도 참 그렇기는 하다.
인간이 만들어낸 지식의 종합체가 온전히 정확하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 그럼… 당신은 누구신가요?”
내가 그 사람의 정체를 다시 한번 더 물었다.
“나는 아까 말했다시피 가지고 있는 유일한 이 능력으로 사람들을 구하는 사람이라네.”
“음… 그래서 지금 구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자네를 포함한 이 [세계]에 있는 사람들이네.”
“그 중에는 옳지 않은 사람도 있는데, 그 사람들은 어떻게 하려시고요?”
언젠가 내가 풀어야 할 숙제 이기도 했던 이 질문에 대한 힌트를, 그에게서 얻어보는 것은 어떤가 하고 생각해 보았다.
“모두 구하려고 한다네.”
“모두요?”
뜻 밖에도 욕심이 가득한 대답이 돌아왔다.
“왜? 불가능해 보이나?”
“그…렇죠?”
당연한 말이었다.
혼자서 어떻게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 나라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더해서 벽 밖의 미지의 구역에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까지 구할 생각을 한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대의를 위해 소수의 사람들을 희생해야 할지도 모른다.
시간도 많이 들을 것이다.
자원도 적잖게 들어갈 것이다.
밖에도 괴물들이 즐비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처리할 때 사용할 무기들을 만들기 위해서는 철강이 많이 필요하다.
더 단단하고 살상력이 좋은 것을 만들기 위해서 많은 시행착오를 해야 하며, 그것을 개발하기 위해서도 많은 재료가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나라에 존재할 재료들의 양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만약 턱없이 부족한 상태라면 상당히 난감한 상태가 되어버리고 만다.
방어도 공격도 할 수 없는 매우 취약한 상태가 되며 사람들은 시한부 인생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러면 희망이 없다.
그런 결과 만큼은 절대로 피하고 싶을 뿐이다.
“아하하핫! 자네는 그렇게 생각하는가?”
“음… 현실적으로 보자면 그렇다는 거죠.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런가?”
그가 갈피를 못잡는 듯한 나를 바라보았다.
“저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려고 합니다. 다른 더 좋은 방법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의 시선이 나를 훑기 시작했기 때문에, 왠지 모르게 자신에 대해 변명하고 말았다.
“흐음… 꽤나 난해하군. 자네는 그 방법이 가장 오래 걸리고 노력이 많이 드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가?”
“그렇죠. 실패를 해도 그것이 경험이 되니까요?”
“호오….”
그는 나의 생각을 흥미롭게 듣기 시작했다.
“경험이 쌓이면 그게 실력이 되죠.”
“그렇다는 말은, 자네는 기본적으로 실패를 발판 삼아 성장하는 겐가?”
“아… 그렇게 되겠네요.”
그러자 그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너무 많은 실패는 마음의 상처가 될 수도 있는데….”
그는 혼잣말을 하듯이 중얼거렸다.
대놓고 나에게 말하기에는 거북했는지, 그는 돌려서 자신의 속마음을 꺼냈다.
“괜찮습니다. 실패는 익숙하니까요.”
이런 사실을 인정하며, 무덤덤한 내 자신이 싫었다.
“흐음… 아무튼, 나의 방법에 대해서 알려주자면… 아주 간단하네.”
“그래요? 딱 봐도 복잡한 일인데 간단하게 해낼 수 있을까요?”
나는 문제의 크기를 알고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쉽게 쉽게 풀어 지리라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네, 일단은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을 점점 늘려가는 것이라네.”
“네?”
의외의 방법에 나는 놀라고 말았다.
“그거야 말로 어렵고 시간이 많이 드는 방법 아닌가요…?”
“하하핫, 꼭 그렇지만은 않다네.”
그는 그 말을 마치고 더 이상 방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그 만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나는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말하려 하지 않는 것을 더 이상 캐묻고 싶은 마음은 안 들었다.
왠지, 내가 가야하는 방향으로 언질을 주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나를 너무나도 잘 아는 것처럼, 나의 생각을 바꾸는 아주 효과적인 방식으로 말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는 내 경계심을 풀고, 호기심을 자극하고, 열린 생각을 향해 새로운 것을 집어넣어 주었다.
“…더 묻지 않는 겐가?”
그가 말을 마치고 나서 잠시 동안 정적이 흐르자, 그는 웃으며 나에게 물었다.
“그럼요, 저는 관심이 아니라 간섭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거든요.”
나의 말에 그는 빙그레 웃었다.
그 뒤로 잠깐의 틈이 생기자, 나는 바지 주머니에 있던 종이가 생각이 났다.
하나는 분명 이 사람의 것이고, 비행장 창고에서 발견한 다른 하나는 무슨 종이인지 나는 모른다.
그래서 그에게 물어보는 것은 어떤가 하고 생각이 들자, 나는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이… 쪽지 좀 봐줄 수 있나요?”
“쪽지?”
나는 그에게 쪽지를 넘겼다.
“음…? 파기 하라했는데 아직도 가지고 있는건 무슨 이유에서 인가?”
“어… 아직 다 읽어보지는 못했거든요. 봐봐요, 무슨 말인지 못알아 먹겠어요.”
나는 쪽지 안에 적혀있는 글씨를 가리키며 말했다.
“…? 으핫! 으하하핫! 이것 역시 내가 적어 놓아둔 거네.”
“네?”
어쩌면 이 사람이 모든 것의 흑막 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말고….’
“그럼… 무슨 말을 적어 놓아두신 거에요?”
나는 도서관에서 그 문자를 해석할 수 있는 책이 있는지 찾아보려고 했지만, 트러블에 휘말려 그런 책을 찾지 못한채로 돌아와버렸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미지의 단어들을 나는 바라만 볼 수 밖에 없었다.
“이 쪽지, 무슨 기계안에 있었지 않았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무슨 단추를 건드리자 증기를 내 뿜으며 그 종이가 나왔던 것 같았다.
‘그리고는 폭발했지.’
“어… 네…. 이상한 기계라 호기심에 만져보다가….”
“으하핫! 그렇나? 그건… 내 오랜 친구가 만들어 준 걸세. 긴 여행을 하면서 심심하지 말라고 준 선물이네.”
‘긴… 여행….’
나는 그 사람이 누군지 모르지만, 눈앞에 있는 이 사람처럼 부드러운 사람일거라고 생각이든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마치자, 나는 상당히 시간이 흘렀음을 느꼈다.
“그것보다… 언제 보내주시나요?”
나는 한쪽 바닥 구석에 널부러져 있는 시계의 시간을 보며 말했다.
“아, 벌써 이런 시간이구만….”
어느새 저녁 식사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밤까지 이야기 하고 싶은데… 제가 감시를….”
“알고 있다네. 점점 다가오는 군. 다음에 또 보게, 이것 하나 말해주고 싶었던게 있었네만… 나는, 언제나 자네를 도와줄 준비가 되어있네.”
그는 황급히 나에게 인사를 하고는 서둘러 손을 들어 그가 말한 [공간 이동]이라는 것을 시작했다.
부드럽게 웃으며 나를 격려하는 노인의 모습을 나는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내 등 뒤로 빛이 나더니 작별 인사를 할 시간도 없이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그 때문에 점점 멀어져가는 그의 미소를 향해 크게 소리쳤다.
“고맙습니다!”
쿵!
* * *
똑- 똑-
나는 바닥에 그대로 떨어져 멍한 상태로 노크 소리를 들었다.
“페스틴?”
밖에서 차분한 테리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나갈게요.”
나는 지끈 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나, 휘청휘청 문으로 걸어갔다.
문고리를 겨우 붙잡아 돌렸다.
‘것참… 친절 하더니만 이동시킬 때는 아니구만….’
내가 문 밖으로 나가며 뒷통수를 긁적이자, 테리스가 약간 한심하다는 듯한 시선을 보내왔다.
“대체 뭘하고 있었습니까? 큰 소리가 나던데….”
‘…나름 그녀도 나를 걱정해 주는 것인가?’
“또 사고 쳤나 싶었습니다.”
‘아니었다….’
괜한 기대를 한 것 같아서 나는 기분이 쭉 빠져버렸다.
“…그냥 심심해서 날뛰다 침대에서 떨어진 것 뿐입니다.”
나는 괜히 심통을 부리며 말했다.
“하… 그렇군요. 어서 식사나 하러 가시죠.”
“아, 넵.”
나는 식당으로 향하는 그녀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 * *
“오, 왠지 오랜만.”
줄리가 손을 흔들며 나를 반겼다.
“어, 그렇네.”
나는 덤덤하게 받아쳤다.
“뭐야, 전혀 안 그래 보이는데?”
“기분탓.”
그녀는 괜히 꼬투리를 잡으며 신경질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줄리의 물음에 대충 둘러대며 자리에 앉았다.
“뭐야~ 걱정한 것 치고는 괜찮아 보이는데?”
마리도 거들며 내 옆구리를 툭툭 쳤다.
“걱정해? 누구를? 나를?”
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좌우로 까딱거렸다.
“너를 말이야~”
마리가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 넌 우리 없으면 안 되잖아?”
내 맞은편에 앉은 페퍼가 으스대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이건 또 뭔 비상식적인 말인가.’
나는 그녀의 말에 강한 부정을 하며 정색을 했다.
“음… 평소에 페스틴의 행동 분석을 보면 그럴 듯한 의견입니다.”
언제 왔는지, 테리스가 진지하게 받아치기 시작했다.
‘예?’
나는 이 정신 나간 상황에 어이가 없어지려고 했다.
음흉한 여자들의 시선을 한번에 받으며, 나는 이를 꽉 문 상태로 권유를 했다.
“…다들 시장하실테니, 어서 드시지요.”
때로는 토니와 안토리오에게 같이 식사를 하자고 권유를 해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포드가 그들과 함께 있어도 말이다.
이렇게 여자들에게 둘러쌓여 공격받는 것보다, 차라리 포드에게 한 소리 듣는 것이 더 나아보였다.
적은 한명으로 족하니 말이다.
포드.
…그는 정말 왕궁을 의심하고 있는 것 일까?
아니면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나의 속마음을 캐려고 하는 것 일까?
선택의 기로에 놓였었던 나는 동료를 찾는 것보다, 직감을 믿었다.
왠지, 그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아서는 안된다고 느껴졌다.
어쩌면 그때의 내가 경계라는 것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나의 마음에 외친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시간이 해결 해주리라 믿고, 나는 앞으로 나 자신에게만 신경써야 겠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일단 나에게 신뢰할 만한 사람들이 생겼다.
아직 시간은 많으니, 차근차근 해 나가는 것이 좋겠다.
성급하게 하려고 하면 실수가 많아진다.
나는 천천히, 그리고 철저하게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이다.
“말돌리기는~”
줄리가 마리의 말투를 따라하며 나를 놀렸다.
얼굴을 마구 구기며 얄미운 표정을 짓는 것을 보니, 화가 나기 보다는 한심해 보였다.
…그녀에게는 미안하지만 말이다.
“그래… 나는 너희 없으면 안되는 것 같다….”
이럴 때는 그냥 인정하고 놀림을 받는 것이 좋은 것 같았다.
그러면 놀림이 금세 사그라들기 때문이다.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만, 그냥 나는 귀찮아 지는 것 보다 차라리 내 자존심을 깎는게 낫다고 생각할 뿐이다.
…의외의 대답이었는지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뭐야 뭐야~" 라며 점점 텐션이 올라가더니, 끝끝내 식당은 소란스러워졌다.
‘…그러면 이제 식사 끝나고 뭘해야 할까나.’
나는 사방에서 들리는 웃음소리를 무시한 채로 생각에 잠겼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