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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화 〉#17 협력을 요청한다. (4) (80/128)



〈 80화 〉#17 협력을 요청한다. (4)


나의 눈 앞에 있는 토니는 아무말 없이 가만히 있었다.
마치, 내가 말하기를 기다리기도 하는 것처럼 미동도 하지않는 그의 표정은 내 마음속을 어지럽히기에 충분했다.

“…”

나는 섣불리 입을 열지 않았다.
아까전의 그녀들과의 대화에서는 페퍼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녀들에 대한 신뢰심 때문에 나 스스로가 발설할 뻔 했다.
지금도 여기서 잘못 판단 했다가는 나의 목표들이 전부 무산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정신이 올곧아졌다.

“페스틴?”

내가 잠자코 아무말도 않자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내가 이상해 보인다는 것이다.
충분히 그럴만도 하다.
하지만 그의 속마음에서 그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가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가 나의 적인지 아군인지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이었다.
나는 그가 아군이기를 바라고 있었다.
나의 이성은 그를 경계하라고 하지만,  마음은 실낱 같은 희망을 붙잡기라도 하듯 누그러워지고 있었다.
나는 역시 욕심쟁이인 것 같다.
늘 포기를 해왔지만, 늘 중요한 시점에서 다 가져가려고 한다.
나는 어째서 이렇게 포기를 해야만 하는가?
나는 씁쓸한 현실에 상상을 그만두고 눈 앞에 있는 토니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아… 사실, 잘 모르겠어. 잠이 덜 깼기도 했고, 어두워서 뭐가 보이지 않았거든. 헛것을 본걸지도 몰라. 이 손은 그냥 누군가의 장난이고….”
“…그래?”

나의 말에 그는 나를 잠시 동안 바라보더니, 다시 소피의 방으로 들어갔다.
사실대로 말을 하지 못하는 이 답답한 마음을 나는 그대로 마음속 깊숙이 내려 보냈다.
문이 닫히고 더 이상 토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나는 고개를 아래로 떨궜다.
사람의 마음은 정말 알 수가 없다.
어째서 이렇게 감정적인지 나는 알 수가 없다.
나는 여전히 부족하며 어리석다.

“하아….”

숙였던 고개를 들고 어두컴컴한 천장을 올려다 보았다.

“하아.”

한번 더 한숨을 쉬었다.
그것은 결코 힘이  빠져버려 하는 한숨이 아니다.
흩어지려고 하는 내 마음을 다시 다잡는 의미를 가진 한숨이다.
지쳐서 그런 것이 아니다.
다시 마음을 굳게 먹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힘을 실어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언제 부터 이런 결심을 해왔는지는 이미 잊은지 오래 되었지만, 내가 하고 싶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다.

어렸을 적부터 절망이라는 것을 너무 빨리 알아버린 탓에, 나는 이런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항상 희망을 뒤쫓고 포기를 하고 싶지 않아한다.
살아오면서 주위에서 보이는 환경은 나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할 뿐이다.
그 누구도 잘못한 사람은 없지만, 누구나 고통을 겪는다.
이 어찌 불합리한 현실인가?
그래서 나는 모두를 구하고 싶다.
내가 가진 모든 힘을 사용해 모두를 살리고, 나는 장렬히 죽고 싶다.
나는 행복한 삶을 동경하지만, 행복한 삶을 살고 싶지 않다.
따라서 나는 모두를 살리고 나는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는 것이다.

얼마전에 만난 특이한 그 사람은 이름도 아직 알지 못한다.
그가 보여준 짧은 시간의 모습은 외로움이 가득했다.
홀로 고독한 싸움을 하고 있는 듯 했다.
나에게 관록이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의 모습을 보고 누구나 알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어쩌면 그런 미래를 겪을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성공을  결과인지, 실패를  결과인지는 두고 봐야 알 것이다.
그러니 미래를 위해 지금부터 행동을 다짐할 뿐이다.
나는 내 지정된 작업공간에 걸어가서 풀썩 자리에 앉았다.

“하아….”

답답한 마음에 괜스레 한숨이 나왔다.

“나는… 언제나 하고 싶은 일이 많지만… 언제나 시도를 많이 하지만… 늘 실패만 겪는구나….”

갑자기 떠오르는 나의 과거들에 대해 나는 결론을 내렸다.
공구들로 향하는 나의 손이 멈추고 그대로 점점 아래로 내려간다.

“하… 젠장….”

또 휩싸인다.
내가 원치도 않은 이 더러운 감정은 순식간에 나를 에워싼다.
공허함을 느끼며  가슴은 찢어진다.
뭐라 표현을 더  수가 없다.
나는 언제나 이런 감정에 접어들 때 즈음이면, 슬픔보다는 분노가 내 안에 자리 잡는다.
그것은 나 자신에게 향하는 것이며,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거대한 굴레에 한탄하는 것이다.
내가 평범했더라면, 이런 상황은 없었을텐데….

한동안 그러지 않아서 안심이 되었었는데, 다시  돌아왔다.
계기, 계기는 과연 무엇일까?
나는 주먹을 꽉 쥐며 바닥을 내리쳤다.
내 손이 욱씬거리며 아픔을 토로했다.
하지만 그것이 아픈 줄을 나는 인지하지 못했다.
사람은 아픔을 겪다가  큰 아픔이 있으면  전의 아픔이 잊혀지는 것 같다.
지금의 나처럼 말이다.

나는 내 마음이 욱씬거려, 내 손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그다지 아프지 않았다.
복잡해진 마음을 달래기 위해 손에 힘을 주며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손을 뻗어 공구를 붙잡고, 자제를 주워다가 조립을 했다.
때로는 가공을, 때로는 제단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나는 그렇게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 * *


“페스틴.”

등 뒤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나는 진정된 마음을 매만지며 땀을 닦고 있었다.

“음?”

나는 지친 마음을 움직여 웃음이라는 것을 얼굴에 띄웠다.
토니가 내  뒤에 바로 서있었다.
언제부터 와있었는지 나는 눈치채지를 못했다.
몸집이 작기도 했고, 워낙 조용하게 움직이는 사람이라 집중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눈치채기 힘들기도 했다.

“아… 벌써 식사할 시간인가?”

창밖에 보이는 어둠을 바라보며 나는 그렇게 물어보았다.

“응, 가자.”

토니는 무표정으로 그렇게 말하고는 등을 돌려 먼저 나가려고 했다.
…나도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따라 걸어갔다.

* * *


“토니.”
“응?”
“무슨 할말 있는거 아니었어?”

공방을 나오기 직전, 그가 나를 부르고 뒤돌아 보았을 때, 입술 끝이 움찔거리는 것을 보았었다.
최근들어서 보이기 시작한 그의 습관인  한데, 아직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딱히.”

딱딱한 그의 단답에 나는 말문이 턱 막혀버렸다.
괜히  여기서 구차한 말을 붙였다가는, 겨우 쌓아놓은 그와의 친밀감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상황에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그렇구나.”


* * *


계단을 내려가면서 토니는 여느 때와는 달리 조용했다.
물론, 원채 말을  안하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분위기 라는 것이 있다.
나도 이런 분위기를 어찌할 생각은 없어서 그의 뒤를 따라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그는 나에게 실망을  것일까?
최대한 태연하게 말하기는 했지만, 그때의 나는 약간의 차가움을 나타냈기에 그는 그것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의외로 그는 그런 것에 민감한 것 같았다.
어쩌면 그가 소피와 친밀한 사이라서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우선 그들의 사이를 보면, 대개 소피가 도움을 받고 토니가 도움을 주는 듯한 분위기가 많다.
음… 그 점에 대한 의문은 나중에  생각해 보아야 한다.
도움을 제 때 주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어떤 것을 필요로 하고 있는지, 어떤 불편함을 겪고있는지 알고, 이해를 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처럼 민감한 것들에 반응을 해버릇 한다면, 다른 일에도 민감하게 대처하게 된다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경험은 쌓이고 쌓여 그것이 자신의 힘이 되니까 말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면, 일단 여성과 남성의 관계에 대해서다.

나는 왕궁에 오고 나서 혼성의 집단과 그렇지 못한 집단의 차이를 조금 느끼고 있다.
혼성의 경우에는 조금 감정이라는 것이 다르다.
변동이 심하고 다양하게 흘러간다.
다른 쪽은 별로 흐르지 않다.
차분하고 변동이 적다.
충돌 외에는 딱히 트러블도 적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들이 정신사나운 사람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감정이 풍부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물론, 내 주위의 그녀들은 조금 다르다….
그녀들은 단지, 나를 장난감으로만 보고 있을게 분명하다.
어쩌면 막 굴려먹기 좋은 호구?

‘으흠….’

아무튼, 토니 역시 여성과 얽히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감정의 풍부함을 저절로 익혀버린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동질감이라는 것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렇게 나는 인간의 마음에 신기함을 느끼며 식당으로 향했다.


* * *

“음?”

나는 조금 어수선한 식당의 분위기에 멈칫했다.

“…뭐지?”

토니도 이상함을 느꼈는지 발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가만히 서서 살피는 그와 달리 나는 몇걸음  걸어가서 주위를  둘러보고 관찰하고 돌아다녔다.
몇걸음을 떼고 난 뒤에는 테리스가 보였다.

“무슨 일이에요?”
“아, 드디어 공방에서 나온 겁니까?”
“네…? 그렇죠.”
“평소에는  돌아다니더니, 어째서 요즘에는 한 곳에 틀어박혀 있는 것입니까?”
“네? 그야… 감시… 아니, 관찰… 아니, 보호하시려면 가만히 있는게 편하지 않은가요?”
“…뭐…. 보통은 그렇죠. 단지 저는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할 뿐입니다.”
“네?”

갑작스러운 개인정보에 의문을 표했지만, 테리스는 고개를 돌려 나의 주의를 흐트렸다.

“아, 마침 잘 왔습니다. 이쪽으로 와보세요.”
“예? 아, 네.”

당황하는 나를 이끌며 사건의 장소로 걸어가는 그녀의 뒤를 따라가자, 조금… 아주 약간 충격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음…? 뭔가요?”
“보면 모릅니까?”
“아… 아뇨, 뭔지는 알죠. 무슨 상황인지 알고 싶을 뿐입니다.”
“음…. 하긴, 조금 상식과는 동떨어진 상황이니까 그럴 만도 하겠네요.”
“그렇죠? 저만 이상한게 아니죠?”
“아… 왜…?”

뒤따라온 토니가 못볼 것을 봤다는 듯한 한마디를 내뱉었다.

“음… 이 상황은…?”
“어제 무리하게 밤을 세더니….”
“토니… 너 고생이 많구나…?”
“음… 그렇지.”
“그럼 이건 어떻게 할 겁니까?”
“그야… 저는 모르죠.”
“…페스틴, 잠깐 나를 도와줘.”
“어? 어, 어… 나는….”
“한번 즈음 도와주는게 어디 덧납니까?”

테리스의 시선이 따갑다.
그냥, 함께하는게 토니 입장에서 거북하다 느껴지지 않을까 해서 하는 말이었는데….

“예? 아, 아뇨…. 딱히 그런건 아닌데요.”
“그럼, 얼른….”
“아, 알았어….”

나는 내키지 않아 하며 토니의 뒤를 터덜터덜 걸어갔다.

“소피, 여기에서 자면 입돌아가요.”
“하… 내가 들것 같은거 가져올까?”
“아무래도… 그럼, 부탁할게.”
“제가 따라가죠. 위치는 알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말한 우리는 토니와 바닥에서 기분 좋게 자고 있는 소피를 내버려두고 방을 나섰다.
등 뒤에서는 소피의 잠꼬대가 들렀다.

“아하…  더 없니 토니?”

우리는 토니의 깊은 한숨을 들으며 문을 닫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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