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1화 〉#18 암순응. (1) (81/128)



〈 81화 〉#18 암순응. (1)

또각- 또각- 또각-

차분한 발걸음은 아주 조금의 초조함을 담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 건가요?”

나는 앞서가는 테리스의 뒤를 따라가며 물었다.

“거의 다 도착 했습니다.”

테리스는 그렇게 무미건조하게 대답을 했다.

“그렇군요.”

잠시 뒤에 테리스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나도 따라 멈추었고, 우리의 앞에는 의무실이 있었다.

‘아, 당연한 건가?’

의료에 관련된 것들은 의무실에 있디는 당연한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채로 있던 것이다.

‘멍청하구만….’

아주 간단한 것도 추리해내지 못한 내가 멍청하게 느껴졌다.

“하아… 여기군요.”

그래서 나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중요한 시기에 긴장을 푼다는 것은 거의 자살 행위나 같다고 느껴지는 바람에 나는 그렇게 반응을 해버리게  것이다.

“…? 네, 여기입니다.”

그녀는  한숨에 대해 별다른 질문은 하지 않고 문을 열었다.

* * *


“으으읏….”

테리스가 팔을 쭉 뻗으며 높은 곳에 놓여져 있는 들것을 꺼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닿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의자를 밟고 올라갔음에도 그녀에게는 멀었다.

“어… 그냥 제가 할까요?”
“아, 아닙니다. 제가 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불필요한 고집을 피우며 뻗은  팔을 접으려 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아… 넵….”

워낙 강한 고집이라 제풀에 지쳐 그만두기를 바라며, 나는 나의 의견을 강요하기를 그만두었다.
그래서 나는 가만히 있기 뭐해서 적어도 불안해 보이는 의자를 잡아주고 있을 뿐이다.

‘음… 어떻게 하면 생각을 바꾸게 할  있을까….’

하지만 그녀가 보여주는 평소의 모습은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들게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그저 침묵을 유지하며 보조를 하고 있을 뿐이다.

“앗.”

그러자 갑자기 테리스가 중심을 잃고 옆으로 넘어지려고 했다.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을 던져 넘어지는 그녀를 잡았다.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손바닥 전체에서 느껴졌다.

“흐읏….”
“하아… 괜찮은가요?”
“아… 네… 가, 감사합니다….”

순간적으로 어색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저거 하나만 꺼내면 되는거죠?”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네.”

나는 말없이 의자를 다시 정돈하고, 그 위를 올라가 어렵지 않게 들것을 내려왔다.

“…감사합니다.”

테리스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별말씀을요. 어서 움직이죠.”

나는 어색한 분위기를 어찌하지 못한채로 서둘러 걸어나갔다.
서두르는 나의 발걸음 뒤로 주춤거리는 작은 발걸음 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다.


* * *

“…”

테리스는 아무런 말도없이 걸어가고 있었다.
아까보다 더 어색한 분위기에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아, 페스틴 군.”
“아…! 네, 네, 네….”

갑자기 그녀가 나를 불렀다.

“궁금한게 있었습니다.”
“궁금한거요?”

‘이런 분위기에서? 이런 상황에서?’

나는 속으로 온갖 생각을 떠올리면서 그녀의 말에 귀기울였다.

“음… 어쩌다보니 보게 되었습니다만….”
“네, 그런데요?”
“당신의 주머니에 있는 구겨진 종이들은 대체 뭔가요?”
“네?”

예상 외로 위험한 질문이 들어왔다.

‘조, 종이? 종이라고…?’

느닷없이 들어온 질문에 나는 심히 당황하고 말았다.
아무래도 내가 의자에 올라가는 순간, 내 주머니를 보여져 버린 모양이다.

“아, 저… 저, 저, 그게….”
“음…? 제가 민감한 것을 건드렸나요?”
“예? 아, 아뇨…. 그런거는 아닌데요.”
“음…. 그게 너무나도 궁금해서 말이죠. 왜 어째서….”

‘꿀꺽….’

섣부른 대답은 금물이다.
대개 가만히 있으면 상대방쪽에서 알아서 답을 찾아준다.
그러니  듣고, 잘 둘러대자.

“낡아서 버릴만도 한 종이를 그렇게 소중히 다루고 있는지 궁금해서 말이죠.”
“아… 네, 네.”
“무슨 내용이 적혀있는 것 이길래 그렇게 하는 것인지 염치를 불구하고 묻고 싶네요.”
“크흠.”

나는 그녀의 말에 아무런 말도 꺼내지도 못하고 있다.

“혹시, 중요한 정보라도 적혀있습니까?”

‘뜨끔….’

정확히 말하자면, 다른 하나의 쪽지의 내용은 여전히 모르는채였기는 하다.
시간이 없는 바람에 그것까지는 이야기를 못 나눴지만 지금은 상관없는 이야기다.
그녀의 질문에도 나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은채로 가만히 있었다.
입도 불필요하게 놀리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녀는 나의 반응을 보고 조금 고민을 하더니 또 다시 질문을 했다.

“아니면 집에서 온 편지인가요? 동생이 있다고 들었으니… 아마도 동생에 관한 것인가요?”
“아, 아뇨. 아닙니다.”

그녀의 질문에 나는 그저 그녀의 눈만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다.

“흠… 그러면…. 페퍼에게 보내거나 받은 편지 같은 건가요?”

‘이거다.’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페퍼를 사랑하는 아니, 연모하는 내 자신을 상상했다.

“아, 아앗… 아… 페퍼요?”

뜻밖의 이름이 불린 것에 대해 당황하는 나 자신을 상상했다.
그러자 테리스는 걸려 들었다는 만족감이 가득한 미소를 살며시 지으며 말했다.

“하하하… 그렇군요, 그 편지의 내용은 무엇인가요?”

‘…당신의 유도 질문이 성공한 듯 하네요?’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뒷통수를 긁었다.

“아, 아뇨…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끝까지 모른 척을 하며 대답하기를 꺼려했다.

“후훗…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페퍼 양에게는 비밀로 해드리죠.”

그녀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아…. 감사합니다?”

‘엘리스…?’

순간적으로 그녀의 미소를 보며, 나는 엘리스가 가끔 보여주는 특유의 미소를 닮았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몸을 돌려 앞장서는 테리스가 보고 있지 않음에도 벙찐 표정을 지었다.
 표정은 내가 의도한 것이 아니다.
반사적으로, 그 찰나의 순간에 무언가를 내가 봄으로써 느낀 당혹감이다.

“…그러면, 아까의 일도 비밀로 해주는 거겠죠?”

살며시 돌아보는 그녀는 어딘가 능글맞았다.

“…네, 네! 당연하죠!”

나는 계속해서 멍청해 보이는 내 자신을 연기했다.
그녀는 아까의 부끄러운 상황을 이겨내어서 기뻐하는 것인지, 아까보다 동작을 크게 하면서 걸어가기 시작했고, 나는 들것을 고쳐잡으며 뒤따라갔다.

이 사람은 단순히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 나에게 질문을 한 것 일까?
아니면 감시하는 입장에서 수상해 보였기에 알아내려고 질문을 했을 것인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나는 눈 앞에 있는  사람의 숨은 의도가 과연 무엇 일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아까부터 보여주는 직감에 나는 의문을 느끼고 있다.
무엇인가 석연치 않았다.

“테, 테리스… 씨?”
“네?”

내가 주춤거리며 그녀를 불렀다.
이것은 아까의 당황스러움이  안에 있다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해서 의도한 것이다.

“혹시… 언니나 동생 분이 계신가요?”

그녀가 보여주는 행동과 성격은 인위적임을 나는 느끼고 있었다.
무엇인가를 따라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다른 사람들의 특징들을 닮은 듯한 모습이 자주 보였다.
…생각해보니까 이상했다.
나와는 다른 느낌의 도둑질이다.
나는 나의 성장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장점들을 눈여겨 보고 훔친다.
그리고 나만의 방식으로 바꾼 뒤에 그것을 사용한다.
하지만 그녀는 뭔가 다르다.
의도적으로 닮으려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분석능력이 뛰어나 보였다.
덤으로 관찰력도 좋은 것 같았다.
그녀는 주위 사람들을 관찰하며, 그대로 따라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와 닮은, 하지만 다른, 개성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어…?’

갑자기 불현듯 떠오르는 안좋은 추측에 나는 몸이 경직되어감을 느꼈다.

‘…그녀의 정강이는 화상을 입었을까?’

여기까지 생각하자, 나의 머릿속은 새하얘졌다.
마녀는 조종하는 물체의 고통을 공유한다.
그것이 심리적인 작용인지, 물질적인 작용인지는 모르겠다만, 불에 의한 화상은 틀림없이 흔적이 남았을 것이다.

“자매요?”
“네, 네….”

불안한 예감이 떠올라버려, 의도치 않게 어색한 미소를 띄워버렸다.
아까의 감정이 남아있다는 듯한 느낌을 주었기에 망정이지, 다른 상황 이었다면 상당히 수상해 보이는 얼굴이었을 것이다.

“음… 자매라고 하면 한명 있긴 있습니다.”
“그렇군요…?”

자꾸만 긴 치마로 가려진 그녀의 정강이 부위에 눈길이 가는 바람에 나의 시선을 그녀의 얼굴에 고정하기 위해서 힘써야 했다.

‘아까의 그 상황이 기회였구나…!’

나는 아까의 상황이 떠올랐다.
조금 사람으로써 눈꼴시려지는 그런 행위이기는 했지만, 좀 더 일찍 눈치 챘더라면 그녀의 정강이를 확인했을 것이다.
여성의 치맛자락 속 너머를 살펴보는 것은 절대로 해서 한되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릴 때가 아니다.
내가 기회를 놓쳐버린 것은 아닐까 하며 나를 자책하기 시작했다.
점차 나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자매가 있는 것은 어떻게 알았습니까?”
“…경비대 본부 의무실에서 테리스 씨와 비슷한 사람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아서요.”
“아마, 맞을 겁니다. 쌍둥이거든요.”
“아하….”
“그 사람이 제 언니, 테레사에요.”

‘역시… 분위기가 비슷했다.’

사무적이고, 때로는 상냥한 사람.
그것이 그녀들의 공통점이다.

‘아니, 어쩌면 테리스가 테레사의 모습을 따라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나의 의심은 걷잡을 수도 없이 빠르게 흘러갔다.

“아~ 그래요?”
“들어보거나 만난 적이 있어요?”

아마 그녀는 나의 반응을 통해 유추했을 것이다.

“몇번 보기는 했어요.”

사실이다.
하지만 그녀와는 친분을 쌓지 못했다.

“하하하… 그렇군요. 언니는 정말 존경스러워요.”

별안간 얼굴을 붉히며 말하는 테리스였다.
나의 의심은 더 커져만 갔고, 이 의문점을 해결하고 싶었지만, 어느새 사건의 현장에 도착해 버리고 말았다.

“흐음~ 만난 적이 있구나?”

분명, 천천히 문을 열며 작게 중얼거린 것이었지만, 내 두 귀에는 똑똑히 들렀다.

‘…!’

측면으로 잠깐 보인 그녀의 눈빛을 보고 나는 소름돋고 말았다.
비행장에서 만난 그 분열의 마녀라는 사람과 비슷한 눈빛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감정을 숨기며,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멍청한 나 자신을 그들에게 보여줄 것이다.
안심하고, 방심하게 하기 위해서다.

* *


“소피… 슬슬 일어나세요….”

식당에 들어서자, 다들 식사를 하는 분위기였다.
단지 두 사람만 제외하고 말이다.

“호오… 왔는가?”

여전히 나에게 적의를 드러내며 포드가 반겼다.

“어, 어… 왔다.”

나는 어색하게 대답하며 들것을 들고 토니에게 다가갔다.

“우리 왔어 토니.”
“오….”

얼굴은 지쳐보였지만, 눈은 생기가 돌았다.

‘여러모로 고생이 많구만….’

언젠가 한번 토니와 진지하게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수발을 들면서 겪은  같은 것이나, 위로를 주고 받는 것과 같은 그런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 좋을  해보였다.

“몰골이 장난 아니군요, 소피.”

여전히 바닥에 누워있는 소피에게 몸을 숙이며 테리스가 말했다.
나는 그런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며 생각에 빠졌다.
만약, 만약에 그녀가 마녀라고 한다면,
그녀는 아마도 나에게서 정강이를 당한 마녀일 것이다.
사람의 모습을 바꾸어 조종을 할 수 있다는 마녀 말이다.
그녀의 성격과 그 때 본 힘을 비교하면, 타당하리라 생각이 든다.

혹시나 하면서 어떤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녀가 자신의 모습을 엘리스의 모습으로 바꿀 수 있다고 한다면 어떤가?
그럼, 이미 쪽지의 내용을 알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경계를 해야겠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의 모습으로 바꾸고, 정밀하게 나에 대해 캐물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 저 사람의 정강이를 확인해야 한다.
상처가 아물기 전에,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채기 힘든 작은 흉터로 바뀌기 전에 말이다.
누군가를 섭외해야 한다.
믿을 만하고, 여성이며, 욕탕에서 자연스럽게 상처를 확인 할 수 있는 사람말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에 잠기며, 꼬르륵 거리는 배의 아우성을 무시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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