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화 〉#18 암순응. (2)
“그럼 저는 배고프니… 식사를….”
나는 귀찮은 일이 맡겨질 것만 같아서 서둘러 자리를 뜨려고 했다.
하지만 토니의 도와달라는 듯한 눈빛이 내 눈에 들어와 버렸다.
상기된 얼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니, 왠지 죄를 짓는 듯한 기분이다.
“아… 음….”
여전히 나를 바라보는 그의 모습에 그만 마음이 약해져버리고 말았다.
“그래, 가자.”
나는 꼬르륵 거리는 배를 움켜잡고 힘없이 들것을 들어올렸다.
‘…?’
다행이도 소피의 몸은 가벼웠다.
‘뭐야… 보기보다 완전 가볍잖아?’
토니의 체구로도 그녀를 보좌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정도면 혼자서도 들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데 들것은 둘이 들게 되어있잖아.”
“안그러면 중심을 잃어 바닥으로 곤두박치게 될 것입니다.”
‘압니다. 테리스.’
“…가시죠.”
둘의 맹공에 나는 표정이 굳어지며 들것을 들기 위해 쭈그렸다.
* * *
“허억… 허억….”
“하아… 하아….”
“둘 다 체력을 더 기를 필요가 있는 것 같군요.”
나와 토니가 숨을 헐떡이는 와중에 테리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것참… 안돕는 거였냐고….’
소피가 아무리 가볍다고 해도, 사람을 들고 수많은 계단을 오르기에는 상당한 체력을 소비했다.
가뜩이나 아무것도 먹지 않았기 때문에, 속에서 힘을 복돋아주는 무언가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나 지쳐있는 것이다.
“그, 그럼 이제 식사를 하러 가도 되는 것이겠지?”
“어… 어…. 그래도 돼, 나도 같이 가자….”
“그럼 저도 동승하죠, 깜빡하고 먹지를 못했거든요.”
“아, 아까 먹었으면 되지 않았을까요?”
“…동료가 걱정되는 와중에는 내키지 않습니다.”
‘…동료라….’
“아하… 제가 속깊은 뜻을 알아채지 못했네요.”
“그것보다, 얼른 가자. 페스틴.”
“응, 그러자고.”
우리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움직여 계단을 다시 내려갔다.
잠깐 뒤돌아 보니, 닫혀지는 문틈 사이로 소피는 침대에서 잘 자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뻗으셨구만….’
* * *
“오….”
내 눈 앞에 차려진 푸짐하고 고소한 냄새가 나는 빵들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메이드 아주머니의 말에 의하면, 우리가 마지막에 와서 남아있는 빵들을 독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배고팠던 우리는 그저 기뻤다.
그런데 식사 시간이 시작된 시간으로 부터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페퍼는 여전히 식당에 남아있었다.
“페퍼, 아직 다 안먹은거야?”
“아니, 너희가 먹을 빵을 좀 뺏어먹으려고.”
“하핫…. 그렇게나 배고팠던 거야?”
“…그럼 그릇을 들고 잠시 와볼래?”
“응?”
나의 부드러운 미소에, 그녀는 살짝 당황한 기색이었다.
“그, 너를 위한 쿠기도 있고 말이야.”
“그래, 뭐, 그러지.”
쿠키라는 단어가 들리자 마자, 그녀는 눈을 빤짝거렸다.
언행은 침착함을 유지하려 했지만, 그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기쁨을 온전히 가리지는 못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페퍼는 내 뒤를 졸졸 따라오기 시작했다.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토니와 테리스에게 나는 미소를 지었다.
“곧 돌아오겠습니다.”
* * *
“쿠키는 어디에 있어?”
“쉿….”
“어?”
“이야기할 시간이 별로 없어, 서두르자고.”
“무슨….”
“단도입적으로 말할게, 테리스가 수상해, 그녀의 정강이 쪽의 상태를 살펴주었으면 해.”
“정강이?”
그 단어가 신경쓰였는지, 페퍼는 오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어, 상처 같은게 없는지… 예를 들어 화상 자국이라던지…?”
“아…! 응? 왜?”
“그냥, 긴가민가한 것을 확실히 하고싶어서?”
“그, 그렇구나…. 알겠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에게 빵을 건넸다.
표정에 큰 변화가 없어서 하나를 더 얹어주었다.
“고, 고마워…. 그런데… 쿠키는?”
“……나중에 줄게.”
“너무하네.”
퍽ㅡ
아프다.
그녀는 심통난 표정으로 내 어깨를 때렸다.
갑작스러운 충격으로인해 나는 뒤로 밀려났고, 중심을 잡느라 필사적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페퍼를 바라보니, 나에게 혀를 내밀고는 숙소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것참….”
웬만한 문제들은 스스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한 내가, 남에게 도움을 청했다.
흔하지 않은 상황에 나는 어색함을 느끼고 있었다.
얼얼해진 어깨를 어루만지며, 불안함을 잠재운다.
‘부디, 몸조심하라고….’
나는 속에서 들려오는 말을 내뱉지 못하고 돌아섰다.
‘음…?’
분명, 나는 빵을 많이 받았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페퍼에게 건네준 것보다 더 많은 양이 사라져 있었다.
설마, 아까 넘어질 뻔 했을 때….
“페퍼…!”
“파하하핫!”
멀리서 그녀의 장난기 가득한 그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 * *
“그럼, 푹 쉬어요.”
“네, 테리스도요.”
테리스는 내 방의 문 앞까지 바래다 주고는 몸을 돌려 희미하게 빛나는 복도의 끝으로 사라져 갔다.
“휴….”
최근 그녀의 모습은 '굉장하다.' 라고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보니, 그녀가 꽤나 관찰력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내가 눈치채지 못하게 어디에선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이 된다.
그렇지 않고서야, 대화를 통해서 나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조근조근 말하는게 설명이 안된다.
…참으로 소름이 돋는다.
내가 인지하지 못한 곳에서 나를 관찰하고 있었다는게 사실이라면.
물론, 얼마 전에 만난 인자했던 그 사람도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고 했었다.
심지어 집중하면 내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도 알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그가 나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나를 적으로 생각했었다면, 그렇게 나에게 사실대로 털어놓지 않았을 것이다.
굉장한 힘을 가진 사람이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며, 내 생각에 동의해주는 사람이라는 것이 정말 나에게는 다행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나는 그가 가진 힘이 부럽다.
몇몇 사람들이 사람의 능력을 뛰어넘은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나는 질투가 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있지만, 나에게는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단순히 특정한 사람이 우월하다거나, 특별하다는 이유에서 얻게된 힘이라는 것 일까?
개인적으로 나는 그런 것이 정말 치사하다고 생각한다.
그건 어찌보면 순전히 우연으로 생긴 것이 아닌가?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는 시선이 어떨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본 나는 정말로 잘 풀리는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비록, 나보다 더 없어보이는 사람들을 더러 만나게 되지만, 어중간한 곳에 위치한 나는… 어찌보면 그들보다 덜 나아보일 때가 많다.
이도저도 아닌 나는, 높은 곳에 올라가 세상의 정점을 취하지도, 저 아래의 깊은 구덩이 속으로 떨어져 절망하지도 못한다.
애초에 내가 절망에 빠져 아무런 희망도 가지려고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있을 것이다.
희망이라는 것을 철저히 무시한채로 하루하루를 죽은 듯이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래서 꿈이라는 달콤한 것들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 틈에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면서, 마음 속으로 느껴지는 생각과 감정들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그에 반해, 내가 남들보다 월등히 뛰어났다면, 내가 골머리를 썩히고 있는 문제들을 단번에 풀어버려 내가 고뇌하는 시간을 단축했을 것이다.
그 누구도 고통받지 않게 만들 수도 있고, 어쩌면 내가 희망을 가지고 있는 것들을 남들에게 내어 보일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실패로 인해 나 자신을 욕하지도, 비탄에 빠지지도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포기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쟁취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들의 정점에 서서 그 위치만의 쾌감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언제나 하위의 것들의 위협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게 되며, 더 이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이라는 것을 하지 않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말이다.
나는 어정쩡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하는 것이다.
어중간한 상태로, 최선을 다해 노력해온 결과는 여전히 남아있는 숙제들 뿐이다.
외적인 여러가지 문제들이 나를 에워싸지만, 내부적인 여러가지 문제들이 나를 몰아세운다.
안과 밖에서 나를 짓누르는 무게에 나는 버티고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힘겨운 투쟁을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는 지치게 되고 말 것이다.
나는 눈 앞에 선한 나의 미래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의 나부터 열심히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여기서 포기하기에는 지금까지 해온 노력이 너무 아깝다.
지금 포기하기에는 얻은게 의외로 많아서, 욕심쟁이인 나로서는 잃고 싶지 않다.
나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여전히 나를 지탱해 주는 사람이 있다.
페퍼처럼 말이다.
신이라는 작자는 역시 상냥한게 분명하다.
사람 개개인은 전부 다르지만, 전부 어디에선가 희망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 * *
오랜만에 잠이 잘 안오는 밤이 찾아왔다.
생각보다 복잡한 현실에 나는 이런저런 생각에 잠이 들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어린 나이라고 할 수 있는 내가, 이런 문제들을 혼자서 해결한다는 것은 상당히 무게감이 있는 것이었다.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홀로 고된 싸움을 해온 나로서는 뒤죽박죽인 이 마음의 상태를 어찌해야 할 방도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절망에 빠지자니, 성장해버린 내가 금세 제정신을 차린다.
희망을 뒤쫓자니, 지금까지 소비해온 나의 시간과 힘이 빠져나가 내 몸에는 부실하고 나약한 영혼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나는 지친 몸을 이끌며 정처없는 여행을 떠나는 것 같았다.
어디로 가든, 나를 옭아매는 덫이 즐비했다.
그럴 때 마다 누군가가 덫에서 스스로 빠져나올 수 있게 힘을 주는 것 같기도 하다.
내 개인의 의지로 이겨내리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후….”
나는 잠을 자려고 눈을 감지만, 묵직한 무게가 가슴 언저리를 짓누르고 있는 바람에 다시 떠지고 만다.
연거푸 그런 상황이 계속되자, 나는 답답한 마음을 풀어내고자, 깊은 한숨을 내쉴 뿐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깊은 밤의 고요함을 깨고 문을 두드렸다.
똑- 똑- 똑-
조용하지만 다급하게 느껴지는 소리에 나의 정신은 또렷해졌다.
나는 문으로 조심히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
“…누구세요.”
최대한 목에 힘을 작게 주며 기어들어 가듯이 말하는 나의 목소리에 누군가가 대답했다.
“페스틴, 접니다.”
“…예?”
누군가 일부러 목소리를 꼬아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었다.
가뜩이나 작은 목소리로 말해서 나는 재차 물을 수 밖에 없었다.
“으흠, 야밤에 저를 불러 놓고는… 너무하는거 아닙니까…?”
‘음?’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차분하게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이상한 말을 했다.
“…언제 제가 불렀다는 겁니까?”
“…참… 다 알면서도…. 정말 짓궂으세요.”
“…하아…. 엘리스… 무슨 일이에요?”
저런식으로 나에게 농담하는 사람은 엘리스 밖에 없다.
별 시덥잖은 농담을 하려고 온 것인지, 긴장이 풀려버린 나는 기운이 쭉 빠져버렸다.
“후훗… 금세 알아채네요. 얼마나 저를 기다린 건가요?”
“하핫… 기다리긴요, 그런 적은 없습니다.”
나는 그렇게 농담에 어울려 줄 수 없다는 듯이 말하고는 다시 침대로 가기 위해서 몸을 돌렸다.
“그것보다… 지금 왕궁이 살짝 소란스러워요.”
‘음…?’
“소란스럽다뇨?”
“왜인지 모르겠는데, 평소와 같이 왕궁을 둘러보다가 분위기가 조금 이상함을 느꼈어요.”
“…그래요? 그럼 어서 선생님들에게….”
“선생님들은 안돼요. 야간 순찰을 돌기 위해 배를 타고 나갔거든요.”
‘…밤에…? 우리도 그렇게 해야 되는 것인가?’
“음… 잠시만 기다려 봐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살짝 쌀쌀해진 밤을 대비해 얇은 겉옷 하나를 집어 들었다.
똑- 똑- 똑- 똑- 똑-
“페스틴…?”
그러다 갑자기 다급해진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 지금 갈게요…!”
어디에선가 쿵쿵 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그 울림은 공명했다.
“페스틴…! 빨리…!”
엘리스의 다급한 목소리도 들렀다.
나는 잠겨진 문을 열기 위해 필사적으로 뛰어갔다.
굉장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조짐이 나의 직감의 문을 두드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