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화 〉#18 암순응. (4)
“커흑…!”
분열의 마녀의 손이, 내 목을 움켜쥔다.
가뜩이나 잦은 움직임으로 숨이 턱 막혀있었던 나는, 거칠게 숨을 골랐다.
천천히 다가오는 괴물의 입을 바라보며, 아무런 반응조차 할 수 없었다.
최후의 움직임이라는 생각으로 내 두 손으로 저지해 보려고 했지만, 이상하게도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마도, 나는 마음이 꺾인 듯 했다.
촤악—
나의 의지가 사그라 들려던 그 순간, 무엇인가 번뜩였다.
그리고 깔끔하고 간결한 움직임에 그 괴물의 머리는 떨어져 나갔다.
쿵!
어두웠음에도 밝게 빛나는 그 칼날은 검붉은 피를 뚝뚝 흘리며 공중에 멈추어 있었다.
‘루이스…?’
하지만 나의 기대와는 달리 그곳에는 포드가 있었다.
“왜 나를 안부른 거냐.”
“…고맙다.”
‘왜 안부르냐니… 그럴 이유가 없는데?’
그에 대한 좋지 못한 인식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내 마음속에서는 그를 경계하고 있었다.
설령, 방금 나의 목숨을 구해주어도 말이다.
‘그보다…. 어떻게 여기에 온 거지?’
“뭐, 뭐야…! 혼자가 아니였잖아!”
분열의 마녀는 당황하며 소리쳤다.
“그야… 당연하죠, 저는 절대로 불리하게 싸우지 않습니다.”
“흠?”
나의 말에 포드는 의문을 표했다.
아마, 전혀 예상치 못한 이런 상황을 '원래 계획대로.' 라는 듯이 태연하게 반응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 그렇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으윽… 크으으… 고작… 칼잡이 한 명 더 늘었다고 해서 나를…! 나를ㅡ!”
그 마녀는 땅으로 떨어진 괴물 틈 사이에서 얼굴을 드러냈다.
어두운 밤보다 시커먼 그것의 머리카락은 분노로 인해 이리저리 휘날렸다.
“…! 뭐야, 잘려있는 머리가 말을 하다니…!”
그는 굉장히 당황한 듯 했다.
어찌보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여러번 보았음에도 소름끼친다는 느낌이 든다.
이 광경을 처음 본 사람이라면 그와 같은 반응을 나타내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이니 말이다.
‘잠깐만, 당황?’
포드와 분열의 마녀가 같은 편이었다면 서로 당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만약 왕궁의 내통자이며, 마녀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면, 오히려 그 마녀와 협력을 해서 나를 몰아 세웠을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가 나를 돕는 꼴이 되어버렸고, 심지어는 포드는 마녀의 힘을 보고 놀란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가 왕궁과 내통하고 있었더라면, 각 마녀의 힘을 모른다고 할지라도, 유추를 하며 금세 침착함을 되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그는 아닌 것인가?’
“그건 그렇고 어쩌다 여기까지 왔어?”
“너는 밤눈이 어두운 거냐…?”
“아니, 아주 잘 보여.”
“그런데 왜 그녀를 보지 못하는거냐.”
“…?”
그는 무슨 의미로 말하는 것 일까?
지금은 중요하지 않는 의문점이다.
머리를 세차게 흔들고 내가 나왔던 통로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그곳에는 익숙하고도, 묘한 느낌의 여성을 볼 수 있었다.
‘또 다른 마녀…?’
나는 알 수 없었다.
아니, 알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일단 눈 앞에 있는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될 뿐이다.
이미 분열의 마녀의 힘에 대해 이해했다.
충분히 관찰했고, 이면을 들여다 볼 준비가 되었다.
다만, 그가 아직 준비가 안되었기 때문에, 마녀를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는 그의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어보였다.
“괴물이야.”
“뭐…?”
“최근에 내가 기절해서 실려왔잖아?”
“그, 그랬었지….”
“나를 기절시킨게 저거야. 인간형 괴물.”
나는 내 발치에 굴러다니고 있는 그 마녀의 신체 부위를 가리켰다.
“…! 이건… 사람의 다리가 아닌가…!”
“맞아, 저 괴물이 조종하는 것이지.”
손가락을 옮겨서 우리를 보면서 살벌한 분위기를 표출하고 있는 분열의 마녀의 머리를 가리켰다.
“조종…? 창백… 아니, 생기가 없어보이는 토막난 사람의 신체 부위를….”
“뭘 그렇게 속닥거려! 아니, 어차피 죽을 테니까 상관 없으려나….”
그렇게 말한 그 마녀는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우리에게 슬금 슬금 다가왔다.
길고 구불구불한 머리카락을 다리 삼아서 말이다.
근처는 그녀의 신체부위로 추정되는 것들이 이리저리 휘날리기 시작했다.
그것의 속도는 눈으로 겨우 쫓을 수 있는 속도였다.
“어, 어떻게…!”
“꽤나 기괴한 모습이네.”
‘머리카락으로 걸어 다닌다고…? 꽤나 잘 활용하시는구만?’
“자, 포드, 잘 들어.”
나는 더욱더 당황하기 시작한 포드에게 침착하게 말했다.
“뭐,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
“저것은 자신의 분리된 신체를 조종한다. 그리고 약점은 체온을 식혀버릴 정도로 차가운 무언가.”
“차가운…?”
“아, 너는 베어버리면 그만이니까, 그건 잊어도 돼.”
“…일단, 너를 믿어보마.”
“그래, 나는 너를 믿지 못했지만 말이다.”
“뭐? 방금 뭐라고….”
“아니야! 가자고!”
내가 먼저 달려가자, 뒤늦게 포드가 따라왔다.
“조종할 수 있는 범위는 상당히 넓어.”
“범위라니…?”
“저 신체부위가 날아다니는 거리 말이야.”
“나를 뭘로 보는 거냐 XXXX XX들아!”
“…욕설은 나쁜거라고 하던데… 설마, 그런 기본적인 소양이 없으신건 아니죠?”
내가 그 마녀를 비꼬자, 그녀는 인상을 팍 구겼다.
그것과 동시에, 나를 향해서 무언가가 빠르게 날아왔다.
그 마녀의 신체 어딘가의 부위로 추측되는 것을 재빨리 주먹으로 쳐냈다.
퉁- 하는 소리와 함께 그것은 저 멀리 날아갔다.
“끄윽…, 아아아아아악!”
아프긴 아픈가 보다.
“지체하지 마! 안그러면 네가 죽는다!”
나는 주춤거리는 포드에게 소리쳤다.
“상대는…! 사, 사람이라고…!”
“뭔, 사람이 아니라니까! 저걸 보라고! 상식적으로 가능해?”
“네 말은 확실한 것이겠지…!”
“…당연하지!”
거짓말이다.
그녀는 엄연히 사람이다.
다만, 일반적인 상식을 뛰어넘는 무언가의 기술을 사용할 뿐이지.
…그렇게 우리는 사방에서 날아오는 그 마녀의 신체 부위를 쳐내고, 베어가며 점점더 다가갔다.
“호오… 그 장갑, 꽤나 쓸만한 것 같군.”
다시 침착해진 그는 내 장갑을 흘깃 보면서 말했다.
“그러는 너의 칼솜씨도, 꽤나 좋은걸?”
나도 솔직한 감정을 내비쳤다.
이것은 먼저 나를 믿어준 그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한다.
갑자기 내가, 스스로가 먼저 나서지 않고 남이 다가오길 기다리는… 꽤나 이기적인 사람 같았다.
“끄윽… 아윽….”
우리는 사색이 된 하나의 머리 앞에 도착했다.
“하아… 왜 괜히 가만히 있는 저를 건드리셨습니까?”
나는 고통스러워하는 머리 앞에 쭈구려 앉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네, 네놈…. 죽여버릴테다….”
“그렇게 하기에는 방도가 없어 보인다만….”
포드도 내 옆에 쭈구려 앉으며 말했다.
우리를 올려다보는 그녀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없었다.
오로지 광기와 분노에 가득찬 느낌이다.
깊은 밤의 어두운 하늘과 같은 색이, 그녀의 눈에서 부터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희미한 달빛에 눈동자가 비춰진 걸까.
…갑자기 우리의 몸이 공중에 뜨기 시작했다.
‘아…! 방심을…!’
우리는 뒷목을 잡혀 공중에서 팔다리를 허우적 거렸다.
“이, 이거 괜찮은 거냐…!”
포드도 위기감을 느꼈는지 다급한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물론, 괜찮고 말고…!”
나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나의 정신은 더욱더 고양 되어가며, 머리 회전이 빠르게 돌아갔다.
심장도 두근거렸고, 내 몸속의 혈액이 빠른 속도로 돌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있잖아 포드, 사람이 흥분할 때 나오는 것이 뭐라고 했었지?”
“아, 아드레날린.”
“…알겠어.”
“뭐라고?”
“아니야.”
“하, 하하…? 이건… 그분께 보고해야겠어…!”
우리가 대책을 세우며 대화하는 찰나에, 그 마녀는 실성을 하고는 황급히 어디론가 가기 시작했다.
우리를 붙잡고 있던 무언가도 같이 따라갔는지, 우리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으윽!”
“크윽….”
“아이고… 친절하지 않구만?”
“…이런 상황에도 능글맞은건 변함이 없구나.”
“…얼른 가자고.”
“…? 뭘 하려고?”
“어떻게 하긴, 저지해야지.”
“전의를 상실했다. 이 이상의 행동은 하지 않을거야.”
“…포드, 아까 못들은 거야? 보고를 한다고 하잖아.”
“보고…? 그런 건 못들었….”
보고라는 말에 그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것봐라, 얼른 가자고!”
그렇게 말하고 나는 부츠를 사용해서 도약했다.
부웅—
순간적으로 내 몸은 공중에 떴다.
분열의 마녀는 날아갈 생각이었는지, 자신의 신체부위에 힘겹게 올라탔다.
그리고는 비행장 끝을 향해 돌진했다.
그곳은 성인 남성의 정강이 즈음 오는 높이의 울타리가 있었다.
그것이 있었던 까닭은, 그 너머로는 낭떠러지였기 때문이다.
저번에 내가 떨어져 죽을 뻔한 그곳 말이다.
‘큰일이다…! 이러다간 계획이 틀어지겠어!’
“페스틴! 그건 뭐냐!”
멀어지는 포드의 목소리를 무시한채로 목표를 향해 돌진했다.
“어딜!”
나의 부츠가 내는 폭발력은 상당히 강했고, 두어번 만에 그 먀녀에게 도달했다.
그리고 봐주지 않고 주먹을 내리쳤다.
내가 근접한 것을 느꼈는지, 그녀는 공포에 사로잡힌 표정으로 내쪽을 돌아보았다.
…내 주먹은 그대로, 그녀의 얼굴에 명중했다.
꿍—!
“가학… 아윽….”
도약을 거듭하며 쌓였던 에너지가 한순간에 힘을 발산하자, 공중에 떠있던 그 마녀의 신체 부위들이 하나 둘씩 바닥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툭… 툭 투둑….
“…”
나는 내 발치에 힘없이 널부러져 있는 마녀의 머리를 가만히 내려다 보았다.
“…”
주먹을 그 머리에서 떼어내자, 끈적한 액체가 뚝뚝 떨어졌다.
…피.
검붉은 색의 액체가 잔뜩 묻어나왔다.
'의식이 없다.' 라고 바로 판단을 내릴 정도로 그것의 머리는 상당히 일그러져 있었다.
‘살인.’
나의 심장쪽에서 무언가가 툭-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그리고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보다 시체를 처리할 생각이 떠올랐다.
“목격자.”
등 뒤에서 포드의 발자국 소리가 들렀다.
“목격자를 제거하는 것은… 기각, 그는 공범이며, 입이 무겁다.”
“헉, 헉, 페스틴… 너… 발에 달린 그런거, 어떻게… 만든거냐….”
“소각? …합리적이다.”
“페스틴…?”
“또 다른 문제… 악취, 현재 위치 야외.”
“뭐, 뭐라고 하는거냐.”
“풍향은 어떻지? 현재 왕궁과 반대쪽.”
나는 내 등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몸으로 느끼며 그렇게 말했다.
“페스틴, 왜 그러는 거냐.”
“쉿, 포드… 혹시 너 말고 누가 따라왔어?”
“에, 엘리스…. 그녀는 여전히 통로에 있을 거다. 위험하니 나오지 말라고 말해 두었거든.”
‘엘리스…?’
그녀가 나의 위치를 어떻게 알았는지 알고 싶었지만, 지금은 우선순위에서 제외한다.
“그럼, 널부러져 있는 것들을 모아.”
“…뭐? 이 팔다리들을?”
“몸통도.”
“아… 일단, 그렇게 하지.”
그는 어안이 벙벙해진 상태로 뿔뿔이 흩어진 시체를 줍기 시작했다.
…선생들은 분명 배를 타고 벽 밖으로 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곧 이 비행장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 전에 태우고 흔적을 없앤다.
솔직히 그을림을 없앨 수는 없다.
그 부분은 그저, 포드와 친분을 쌓기 위해 모닥불을 피우고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둘러댈 수 밖에 없다.
“헉…. 헉…. 여기있다.”
“고마워.”
머리와 함께 다른 신체 부위들이 바닥에 놓여지자, 나는 망설임 없이 휘발유를 뿌렸다.
“너, 이거…!”
“어, 휘발유야.”
“선생들에게 보고해야지…! 이런 괴물이 있다니… 충격적이군. 사람과 똑같이 생긴….”
“포드, 나를 믿어?”
“아…? 일단은 말이지.”
“…절대로 발설하면 안돼, 선생님들 사이에서 이 괴물과 한패인 사람들이 있어.”
“선생들이…?”
“그 누구도 믿으면 안돼. 그래서 내가 저번에 너의 제안에 그런 태도를 보인거야.”
“그런데 왜 지금은….”
“내통자라면, 이것을 제거하는데 도움을 주지 않았겠지.”
나는 성냥에 불을 붙여 살포시 그 위에 던졌다.
그러자 구역질을 유도하는 심한 악취가 나며, 그것의 시체는 타들어갔다.
“우리는 여기서 모닥불을 피우며 친분을 쌓았을 뿐이야.”
“뭐?”
“말을 맞추자는 거야.”
“아… 알겠다.”
두근— 두근—
내 심장의 고동을 그가 듣지 않기를 바라고 바랐다.
붉고 영롱한 불빛은 내가 어둠의 길에 들어온 것을 환영하기라도 하듯, 흔들흔들 춤을 추었다.
그것은 기쁨의 춤인지, 애도의 춤인지는 나는 알 수가 없었다.
* * *
터벅— 터벅—
“너… 의외군.”
“아, 경험을 했으니까.”
“아니, 그런건 언제 만들었던거냐. 이거… 어디서 부터 물어야 할지 모르겠군.”
“…모르는게 나아.”
“…? 어째서? 우린 함께 괴물을 무찔렀잖아?”
“짐을 떠안는 것은 내 역할이야.”
“역할… 이라니…?”
“…솔직히, 모든 것이 끝났을 때, 사람들을 이끌 사람은 별로 없어.”
“끝났을 때라니….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군.”
나는 그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모르는게 낫다니까?”
“…알았다.”
그는 조용하고 무겁게 대답했다.
조금의 이야기로 그가 이해를 했기 바란다.
“…그럼, 나, 나중에 그… 그것 좀 자세히 보여줄 수 있나…?”
포드는 내 신발을 보며 눈을 빛내고 있었다.
이런게 신기한 모양이다.
“…좋아.”
“…! 페스틴, 포드 군…!”
통로에 다다르자, 엘리스가 우리를 반겼다.
“방에 있으랬잖아요.”
나는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내 시야는 흐려졌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