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화 〉#18 암순응. (5)
“아….”
상당히 익숙한 천장이 보이자, 나는 저절로 탄식이 나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 방의 천장이라는 것이다.
‘또 기절한 것인가….’
나는 분명 체력을 기르고 있을 터인데, 어째서 이렇게 픽픽 쓰러지고 마는 것인지, 나로서는 답이 무엇인지 가늠이 오지 않았다.
“…아…! 페스틴, 눈을 떴군요….”
한참 탄식에 빠져 있을 때 즈음, 엘리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차분하게 말하려고 했지만, 감정이 동요되고 있음을 나는 알았다.
“아… 이거 또… 신세를 졌네요.”
“아,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더….”
나는 몸을 일으켜 당황하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꽤나 난처하다는 듯한 표정이다.
‘끄응….’
몸을 일으키는 것은 생각보다 힘겨운 일이었다.
착실한 그녀는 나를 매우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고 있었다.
“…것봐요, 죽지는 않는다고 했잖아요.”
“무, 물론…. 그렇기는 했지만요….”
그녀는 자신을 대신해서 순찰을 돌았던 내가, 이런 꼴이 되었으니 몸둘 바를 모르는 듯 했다.
“후… 그것보다… 왜 밖으로 나왔어요?”
나는 혹시나 나를 관찰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이 갔다.
아니면, …그저 무방비 상태인 나를 지켜준 것인가?
“예?”
“아니, 뭐… 덕분에 살았지만….”
“걱정 되어서요.”
“네?”
…의외다.
“왕궁은 저보다 당신을 더 필요로 해요.”
“제, 제가요?”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나는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이야기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남들과는 달리, 당신은 왕궁의 분위기를 잘 읽는 것 같아요.”
“네…?”
그저 착실하게 왕궁 일만 하고 있을 줄 알았던 엘리스가 의외의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문쪽을 흘깃 보더니, 하던 말을 계속 이어서 말했다.
“조… 아니, 그 사람을 만났나요?”
“그… 사람이요?”
“당신에게는 이름을 밝혀주지 않았으려나….”
그녀는 작게 중얼거렸다.
“아무튼, 그건 나중에 차차 알아가는게 좋을 것 같네요.”
“네…?”
“일단, 푹 쉬어두는게 좋을 것 같군요.”
“오늘 하루…요?”
창밖을 보니, 해가 떠있었다.
느낌상 오늘 새벽에 기절해 아침에 다시 눈을 뜬 모양이다.
“그럼요, 그 상태로 오늘 어떻게 버티려고 그래요?”
“아, 아… 네….”
그녀는 나의 어깨를 살포시 밀었다.
힘이 빠진 나는, 그녀의 힘에 의해 그대로 침대로 다시 넘어졌다.
나는 멀어져가는 엘리스를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럼, 푹 쉬어요, 페스틴?”
그녀는 방긋 웃고는 문을 닫고 나갔다.
‘…’
묘한 느낌이 드는 것을 무시하며, 나는 나의 체력회복에 집중했다.
눈이… 스르르 감긴다.
* * *
잠을 너무 많이 잤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본적이 있었던가?
아마, 내가 갓 태어나 어른의 손길이 필요한 그 때를 제외하고는 이렇게 태평하게 잠을 자본적이 없다.
그나저나, 이렇게 잠을 자고만 있어도 되는 것인지, 솔직히 겁이 났다.
하루의 시간은 길다.
어찌보면 짧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것은 자신이 하루의 계획을 얼마나 잘 짜는가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한계가 있으며, 늘 그렇듯 자신의 뜻대로 되는 날은 적다.
심지어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자신의 하루가 길고 짧음에 대한 것은 자신의 의지가 담겨져 있지 않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만약, 부지런하다면, 하루는 매우 짧을 것이다.
만약, 게으르다면, 하루는 매우 짧을 것이다.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게 느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게으르고 부지런한 것을 떠나서, 나는 길다고 느껴진다.
무언가를 계획하고 실행할 시간이 많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유익한 시간을 보내는 것은 겨우 반나절도 안된다.
사람의 성장을 위한 시간은 그것밖에 안된다는 것이다.
그 외의 시간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현재 왕궁에서 이뤄지는 교육에도 나는 시원찮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잘 하지도 못 하지도 않은, 어중간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의미 하고, 흥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루하다고 느끼며, 얼른 지나가기를 바란다.
물론, 필수적인 것을 해야 하는 시간이 있기도 하다.
청결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씻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식사를 꾸준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서 잠을 충분히 자두는 것도 좋다.
어느 정도 유익이 있는 시간은 나에게 너무나도 짧게 느껴진다.
나에게 무의미 하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소량의 이익이 있다면 괜찮겠지만, 그저 시간을 떠나 보내기만 한다면, 결코 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내가 이익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절실하다면 적극 추진한다.
그럼에도 원하는 일이 잘 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늘 뜻대로 되지 않을 뿐이다.
‘왕궁’이라는 체계에 속해 있다면, 당연히 따라야 할 무언가가 존재한다.
그것이 무의미하며, 형식적인 것이라고 해도 말이다.
선생들이 하는 교육은 기억에 담아둘 필요가 없을 정도로 무의미했다.
오히려 내 머릿속 공간을 차지할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늘 불필요한 이야기만 듣는 것도 아니다.
어떤 것들은 어느정도 유익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냥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을 위로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것참….’
한참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며, 무의미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네~”
나는 깨어있었기 때문에, 누군지 모를 사람을 방으로 초대하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정신도 멀정했기 때문에 청각 역시 깨어있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며 페퍼가 살며시 고개를 들이밀었다.
“오, 어쩐 일이야?”
“아니, 너 오늘 쉰다고 그래서… 어디 아픈가 해서 말이야….”
“아, 음… 조금 지쳤을 뿐이야.”
“지쳤다고?”
“어… 엘리스가 말하던데, 내가 몸살에 걸렸다…라고 하던데?”
이것은 아까 엘리스와 입을 맞추어둔 것이다.
“몸살? 하긴…. 요새 계속 무슨 일이 있었지….”
“어흠, 어… 그렇지….”
“아휴…. 그런데 포드랑 야밤에 캠프파이어라니….”
그녀는 한숨을 짧게 내 쉬고는 방으로 슬그머니 들어왔다.
나는 그녀의 움직임이 상당히 자연스럽다고 느꼈다.
남정네의 방에 너무 훅훅 들어오는거 아닌가. 라고….
“그래서, 솔직히 어제 무슨 일이 있었어?”
다시 한번 더 느끼지만, 그녀는 정말로 날카롭다.
여기서 둘러대 보았자, 이득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 어… 또 다른 마녀가 나타났어.”
“마녀가…?”
내가 숨 죽이며 말하자, 그녀 또한 숨을 죽이며 놀랐다.
“어, 어…. 밤에 엘리스 대신에 순찰 돌다가… 만났….”
“뭐?”
내가 말을 내뱉자 바로 페퍼가 인상을 구기며 소리쳤다.
“어, 어…. 왜, 왜 그래…?”
“…조심하라고 했잖아….”
“…아… 미안해.”
페퍼는 고개를 숙이며 여전히 애용하고 있는 이상한 장식이 달린 모자를 푹 눌러 썼다.
나는 시선을 돌리며 무거워진 분위기를 몸소 느끼며, 머리를 긁적였다.
“…뭘 먹기는 했어?”
“아, 아니…. 일어난지 얼마 안됐어.”
“그럼 이거 먹어….”
그녀가 종이에 잘 감싸진 쿠키를 건넸다.
이미 쿠키의 온기는 식어버렸지만, 나에게는 따뜻한 쿠키였다.
“…역시, 너밖에 없다.”
나는 베시시 웃으며 말했다.
“어, 어… 그래…. 머, 먹고 기운내.”
나는 농담 삼아 그렇게 말했는데 어째 분위기가 이상했다.
…화난 것인지, 그녀의 얼굴은 붉어져 있었다.
‘말 실수를 한 건가….’
나는 무안해져서 헛기침을 연신 해댔다.
“아, 아무튼 고, 고마워….”
“아니야… 그럼.”
그녀는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페퍼.”
내가 그녀를 부르자, 그녀는 동작을 멈추었다.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보이는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내쪽으로 돌렸다.
“저기… 요즘은 좀 어때?”
“요즘?”
나는 페퍼 앞에서 마녀에 대한 발언을 할 때 마다 심장이 졸여왔다.
그녀의 스승이자, 어머니가 되어주었던 라이브가, 사실은 마녀였다.
그 마녀는 어쩌면 나에 의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이 세상에서 떠났다.
그리고 그 시체는 도서관 지하에 고이 잠들어 있다.
그 위치를 아는 사람은 나와 루틴이라는 사서 뿐이다.
“음… 아니야.”
나는 내가 내뱉은 말들의 결과에 대한 것을 내 눈으로 보기 두려웠다.
‘말’ 이라는 것은 다양한 정보를 주고 받을 수 있으며, 누군가와 친분을 쌓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양날의 검처럼 남을 쉽게 상처 입히는 것 또한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조심스러워 지는 것이다.
나는 누누이 말하지만,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절대로 상처입히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도 사람이었다.
나는 대단한 존재가 아닌, 굉장한 힘을 가진 그 무엇도 아니었다.
그저 어디에나 널려있는 어리석고 무지한 인간들 중 하나일 뿐이다.
“…괜찮아, 말해도.”
태연하게 말하는 그녀의 눈은 포기한 기색이 역력했다.
들끓어 오르는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감정에 그대로 자신의 몸을 맞긴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나는… 중요할 때에 너를 상처 입혔어, 그리고 너를 지켜 주지도 못했지.”
“…그래?”
“육체적으로든지… 정신적으로든지 말이야….”
“괜찮아, 나는 신경 안써.”
“…나는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어.”
아까와는 변함없는 표정에 나는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말을 했다.
“페스틴.”
“응?”
“잊은거야?”
“…”
나는 그녀의 질문에 그 답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지만, 아무말도 않고 잠자코 있었다.
“나는 그냥… 네가 곁이 있어주기만 해주면 돼.”
“…응.”
나는 푹 숙인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번에도 그녀를 걱정하게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부족한 내 자신이 한심할 뿐이다.
“페퍼.”
“…응?”
“나는 왜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기절할까?”
무슨 일이 있으면 상담 하겠다고 다짐을 했던 것이 오늘에 와서 이루어 질지는 꿈에도 몰랐다.
“지쳐서 그런거 아닐까? …너는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하잖아.”
“어? 어, 어… 그래?”
갑작스런 칭찬에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칭찬은 나의 사기를 키워주었지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아, 암튼… 머리나 몸을 긴장된 상태에서 쓰면 체력이 빨리 다나봐?”
내가 부끄러워 하자, 페퍼도 덩달아 부끄러워 하면서 말했다.
그녀는 당황하면 말을 심하게 더듬기도 했지만, 이렇게 약하게 당황하면 말이 빨라진다.
그런 점이 나는….
“그, 그럴 수도… 아하하하…!”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뒷목을 매만졌다.
“그, 그럼 점심식사 시간이 다 되어서 말이야…. 오기 힘들면 갖다줄게.”
사실 그렇게 해주지 않아도 괜찮았다.
하지만 가끔은 응석을 부려보고 싶었다.
“그럼…. 부탁해도 될까?”
“그럼~ 누나만 믿으라구?”
그렇게 말한 그녀는 어색한지 어정쩡하게 걸으며 내 방을 빠져나갔다.
‘역시, 그녀는 자연스럽다.’
나는 그녀가 떠나간 자리를 그저 바라만 본다.
이 심장의 움찔거림은 뭘까.
머리로는 관찰하고 이해한 감정이다.
그렇지만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나의 어떤 행동이 그녀를 상처입히게 하지는 않을까?
“하아….”
나는 그 문제를 미래의 나에게 떠넘기며 이불을 뒤집어 썼다.
미안하게도, 그것은 너의 역할인 듯 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