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화 〉#18 암순응. (6)
꿈뻑— 꿈뻑—
나는 그저 눈만 깜빡 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식사가 배달오기를 기다리는 나는 눈을 밝히며 문을 주시했다.
이 시간에 나를 찾아올 사람은 페퍼 외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나다.”
포드다.
‘…’
원치않던 그의 등장은 나의 눈쌀을 찌푸리게 만든다.
하지만 구태여 찾아온 그에게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영 좋지 않아보였다.
그래서 찡그린 얼굴을 바로 펴서 환한 미소를 띄웠다.
“그, 그래 어쩐 일이야?”
“괜찮은거냐.”
그는 무미건조한 위로의 말을 던졌다.
“어, 그래 그럭저럭 말이지.”
“그렇군, …그런데 말이야.”
그는 내가 앉아있는 침대 가까이 다가오며 말했다.
“어제의 너 말이야, 조금 특이하던데.”
‘…비인간적인 모습을 말하는건가.’
내가 생각하기로는, 유일하게 포드가 솔직한 나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 사람이다.
“너, 언제부터 그렇게까지….”
괜한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았다.
…나도 안다.
그런 내 모습은 그다지 유쾌하지 못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나는 다른사람들에게 나의 모습을 숨긴다.
“아, 아… 집중하면 그렇게 되더라고….”
“무슨 말도 안되는 집중력이냐….”
그는 약간의 대단하다는 듯한 어조를 띄웠다.
“아하하;; 그게… 말이야….”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어떻게든 상황을 무마해보려고 했다.
“페스틴, 내가 부탁을 하나 해도 되려나.”
하지만 나의 노력에도 그는 변함이 없이 태연하게 말하고 있었다.
“부, 부탁? …뭔데 그래?”
무리하게 둘러대려고 하기 보다 일단은 상황을 지켜보며 그의 부탁을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 같았다.
“신….”
“응?”
“신발…. 그 하늘을 날았던 신발을 다시 보여줄 수 있나?”
‘으응?’
나의 생각과는 많이 다른 그의 질문에 조금 당혹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까부터 해온 걱정은 아무래도 나의 괜한 걱정이었나 보다.
“신발이야 뭐, 당연히 보여줄 수는 있지.”
나는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말했다.
“오, 오! 부디 나에게 보여다오.”
그는 눈을 반짝이며 나에게 점차 얼굴을 들이댔다.
“그런데 지금 어디있는지 몰라.”
생각해보니 나는 다 입은 상태에서 기절을 했었다.
그런데 지금의 내 몸이 한결 가벼운 것을 보아 누군가가 나에게서 벗긴 것 같았다.
“아니, 그 전에 말이야, 내가 기절한 뒤로 어떻게 되었는지 말해줄 수 있어?”
나는 그동안의 관찰을 통해 그가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았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그가 바라는 말투로 정중하게 물었다.
“물론이지. 이따가 그 신발을 보여준다면.”
나의 말에 그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아마 그가 가진 호기심이 판단을 흐리게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 기분탓 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크흠, 일단 좀 떨어져 줄래?”
상당히 가까운 거리에서 남정네의 면상을 바라보고 있자니, 기분이 영 좋지 않아졌다.
이성에게 연애감정을 포함한 그렇고 그런 느낌은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엄연히 이성을 좋아하는 그런 성숙한 남성이다.
…으, 이런건 질색이란 말이다.
“아, 음…. 미안하군.”
그는 주춤거리며 나와의 거리를 다시 벌렸다.
‘이녀석… 귀찮은 녀석이네.’
또 다른 골칫거리에 나는 머리가 아파왔다.
물론, 나도 좋아하고 흥미있는 것이 생기면 몰두하는 편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과의 또는 대상과의 거리감을 신경쓴다.
왜냐하면, 나는 절도있게 선을 지키고 싶기 때문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누구나 다 알만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성숙한 사람이 가져야 할 생각이라고 나는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자신의 욕망에 몸을 맞겨 폭주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다른 사람들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채로 폭주해 버린다면, 그것 만큼의 민폐는 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리고 나는 즐기고 싶은 것이지, 남용해서 과도한 의견을 내세우고 싶은 것이 아니다.
나는 그와 같이 나의 호기심을 즐긴다.
절도 있는 호기심은 나에게 새로운 사실을 알게 해주며, 나를 성장시켜 주는 또 다른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친구와의 교우 관계도 적절하게 즐긴다면, 나에게 이익을 가져다 준다고도 생각한다.
그들과 친분을 쌓고 서로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장난을 치다보면, 그 상황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생긴다.
그것들은 나의 생각을 한 단계 더 성장시키며,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어 폭넓은 생각을 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
물론, 이리저리 남들의 말에 흔들리지 않게, 나 자신만의 신념을 굳히는 것도 중요하기는 하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이해해 유도리 있는 사람이 되게 해주는 이익이 있기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을 유심히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럼, 실례했군.”
그는 방금 전의 자신이 부끄럽기라도 한 듯 얼굴을 살짝 붉히며 서둘러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래라… 나는 널 붙잡지 않는다.’
내키지도 않은 일이며, 절대로 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다.
비굴하게, 애절하게 매달리지는 않는다.
미련없이 보내줘야지….
“그래, 조심히 가라.”
나는 형식적인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건성으로 하며 고개를 돌렸다.
문을 나서려는 그는 잠시 멈추고는 입을 열었다.
“…내가 엘리스에게 물어보마. 너의 그 무기들을 벗겼는지.”
‘적극적이네….’
포드는 내 부츠에 대해 어지간히 궁금한 듯 했다.
…그가 떠나고 나서 얼마의 시간이 흐르지 않아서, 내 뱃속에서 소리가 흘러 나왔다.
꼬르륵—
배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때 마침 페퍼가 들어왔다.
페퍼는 문 밖을 흘깃흘깃 보면서 나에게 물었다.
“포드가 웬일이래?”
“음? 포드? 내 부츠가 신기하대.”
“부츠?”
“아, 그러고 보니 말을 안 해줬구나. 요새 내가 개발한 거야. 용도는 도약을 해서 괴물과의 거리를 좁히는데 사용해.”
“도약…?”
“음… 아직 미완성 이기는 하지만, 이따가 포드랑 같이 봐볼래?”
“그래, 뭐 나야 괜찮지.”
그녀는 고개를 끄덕 거리며, 자신이 손수 들고온 식사를 나에게 넘겨주었다.
나는 고맙다는 표현보다 괜스레 부끄러운 마음에 다른 소리를 내뱉었다.
“…메이드 아주머니에게 부탁드리지 그랬어?”
“아냐 뭘, 내가 할 수 있는 건데.”
그녀는 개의치 않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
“메이드 아주머니들은 바쁘시잖아? 모두의 빨래도 담당하고 있고 말이야.”
‘…엘리스 것 보시죠, 다들 알고 있잖습니까?’
“그렇지, 왕궁에서 신세지지 않는 사람은 없지.”
“심지어, 이 넓은 왕궁 전체를 청소를 하고 관리를 하니…. 대단하다고 밖에 생각이 안난다 야.”
“하핫… 내가 예전 팜 아저씨 공장을 청소하는 거에 비할 수도 없이 굉장하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도서관은 생각보다 청소라는 것이 신경써서 해야 할 필요는 없었는데….”
“그래? 먼지 같은게 많이 쌓이지 않아?”
“으응~ 아니, 생각보다 많이 쌓이지는 않아.”
“히로의 책방은 많이 쌓여있던데…. 도서관이랑 책방이랑 다른가?”
“으음…. 아니, 거기는 조금 특별할 뿐이야.”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어지간히 더러웠나 보다….’
“하하핫, 그렇구만?”
“아무튼 주기적으로 가끔씩만 하면 되니까, 청소란건 참 쉽구나… 라고 생각했던 거지~”
“맞는 말이네.”
“근데 말이야.”
“응?”
“테리스 말이야.”
“응.”
“정강이에 상처가 없던데?”
“상처가 없다고? 흔적도?”
“응, 그러던데.”
“아하… 아, 암튼 고마워.”
“근데 그건 왜?”
그러고 보니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어서 였는지, 굳이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여긴 탓이었다.
그리고 설명할 시간이 없었기도 했었다.
“포크 아저씨 집 기억나? 네가 자고 있었을 때 마녀가 갑자기 들이 닥쳐서 말이야.”
“응응 기억하고 말고.”
“아니, 정확히 말하면, 모습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지닌 마녀가 시민 두 사람을 변형시켰지.”
“그, 그렇구나…. 자세히 잘 아네?”
“…나도 들은 거라 자세히는 몰라.”
이럴 때는 모르쇠 작전이 좋다고 생각한다.
…설명을 덧붙이겠다.
모르쇠 작전이란, ‘나는 들었지만 몰라요.’ 작전이다.
쉽게 말해서, 나는 어느정도 정확한 사실을 들었고, 이해했음에도 모른다고 답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내가 어떤 사실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매개체로 이용되어서 추후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과한 걱정일 수도 있겠지만, 미리 대비해서 안좋을 것은 없지 않은가?
거기에 더해 100%가 아니라면 확신하지 않는 탓에 언제나 애매모호 하게 말을 흐리게 되는 것 같다.
모든 가능성을 상정하다 보면, 지금처럼 겁쟁이가 되는 듯 하다.
“크흠, 아무튼 간에… 변형시킨 것과 마녀의 신체가 감각과 고통을 공유한다나봐, …내가 두 사람을 제압할 때 불을 좀… 썼거든.”
사실, 무고한 시민에게 폭력적인 일을 가한 것이기 때문에 나는 이 이야기를 페퍼에게 할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
“불? 어떻게?”
“정강이에 불을 붙여서… 발을 묶어두고, 제압하려고 했지.”
“제압? 아니, 그보다 불을 붙였다고…? 사람… 몸 에다가?”
역시,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아니, 페스틴! 사람 몸에 불을 붙이다니….”
보통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방식 일지도 모르겠다.
“아… 저기.”
“누구세요?”
“뭐니?”
문쪽에서 들리는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나와 페퍼는 거의 동시에 반응을 했다.
대화의 주제 때문에 살짝 과열되어 있던 감도 있기도 했지만, 둘의 대화를 방해하는 요소에 대한 감정은 동일한 듯 했다.
“아, 음… 뭔가 방해를 한 듯 하군.”
대화를 엿들은 모양이지만, 엿들은 사람이 포드라서 다행이었다.
어느정도 알고 있는 사람이고, 앞으로 …함께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건 둘째치고 이번에는 무슨 일이야?”
포드의 반응에 솔직하게 반응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런 이유 없는 단순한 심술이다.
“…엘리스를 데려왔다.”
“에, 엘리스를?”
‘굳이…? 왜…?’
“본인과 이야기를 나눠보는게 더 좋을 것 같아서다.”
“그, 그래 일단 들어와봐. 문은 꼭 닫고 말이야.”
나는 괜히 당혹스러운 감정 때문에 말을 더듬었다.
갑자기 옆에서 날아오는 시선이 따가움을 느꼈다.
‘응?’
페퍼 쪽을 바라보자, 그녀는 딴청을 피웠다.
‘…뭐지?’
일단, 엘리스와 이야기를 나눠서 나의 장비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얻는게 우선인 듯 했다.
그래야 개선을 하고, 눈 앞에 있는 두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겠지.
“일단, 앉을 의자가 없으니, 포드, 너는 서 있어.”
“무, 뭐라고? 힘들게 데려 왔건만… 아무리 손을 빌고 사정해도 따라오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을 데려오는 것에 대한 보상은 확실하겠지.”
‘힘들게…? 엘리스는 다른 사람의 부탁을 잘 들어주는 사람인데…?’
내가 가끔 옷의 수선을 부탁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옷을 뺏어가 깔끔하게 수선해주었던 것이다.
…방 안에 하나 밖에 없는 의자에 이미 페퍼가 앉아 있었다.
내 방에 온 세사람 모두 손님이 되겠지만, 조금 미안하지만 급을 나눠야 할 듯 했다.
우선순위를 정하겠다는 것이다.
“다리 아프면 바닥에 앉아.”
“이 무슨 대접인가…!”
얼굴이 붉어지는 포드를 내버려 두고서, 나는 페퍼에게 말했다.
“의자를 좀 내어줘야 겠어.”
“뭐어?”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거기에 엘리스를 앉히고, 네가 침대에 걸터앉아.”
“어? 어… 그, 그래….”
나는 페퍼와 더 편한 사이이기 때문에 내 침대에 앉는 것을 허용한 것이다.
침대는 나만의 공간이다.
훼손도, 침범도 불허한다.
다만, 사람에 따라 어느정도는 허가한다.
…만약 더럽힌다면, 불평에 대해 중얼거리면서 치우겠지.
“이, 이렇게 하면 되지?”
페퍼가 어색한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어, 이제 됐지?”
말은 태연하게 하고 있었지만, 페퍼와의 거리가 상당히 좁아졌다.
…제안한 내가 도리어 당황해 버렸다.
타인의 편의를 위해서 제 스스로 함정을 파다니.
우스운 꼴이다.
그런 나의 얼굴을 바라보던 엘리스는 싱긋 웃으며 페퍼가 내어 준 의자에 앉았다.
“특별히 바쁜 일은 없는 거죠? 좀 이야기가 길어질 듯 싶은데….”
“…있기를 바라요?”
“네?”
그녀는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것참, 또 나를 놀리려는 것인가?’
그런데 갑자기 방안의 분위기가 미묘해 졌다.
나는 딱히 신경을 안쓰는 것처럼 대화를 이끌어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흘러가지 않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