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7화 〉#18 암순응. (7) (87/128)



〈 87화 〉#18 암순응. (7)


“일단은, 묻겠습니다. 어젯밤 제가 몸에 착용하고 있었던 장비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나는 이상하게 변해가는 분위기를 애써 무시하며, 엘리스에게 물었다.

“…장비 말입니까?”

나의 질문에 그녀는 의문을 표하며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내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것 일까.

“아… 그러니까…. 어제 입고 있던 거추장스러운 것들이요.”
“…아, 아~ 그거 말입니까?”

이제서야 알아 들었다는 듯이 엘리스는 고개를 연신 끄덕여댔다.
어쩌면 일부러 못알아 들은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희미하게 올라가는 입꼬리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엘리스는 티를 안내고 있지만, 그녀의 두뇌는 명석할지도 모른다.
…사람을 놀리는 쪽으로.
고도의 테크닉에 나는 혀를 내두를 뿐이다.
그녀는 턱에 검지 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기억을 더듬는  했다.
어쩌면 이것은 일부러 뜸을 들이는 것일 수도 있겠다.
페퍼를 포함한 내 또래들의 장난은 어느정도 예상이 가는 것 들이 었지만, 엘리스가 하는 장난은 예상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몇번이나 당한 나로서는 반사적으로 그런 반응을 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일단, 기절한 페스틴을 포드 군이 방까지 업고 왔었죠.”
“그리고요?”

페퍼가 나를 흘깃 보았다.
딱히 이상해 보이지 않았기에 단순한 눈 옮김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사용하는 표현인, 눈 옮김의 의미에 대해… 설명을 덧붙인다면….
쉽게 말해, 사람의 시선을 맞추며 대화에 참여하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대화를 참여하는 사람들 중에서 그런 적극적이라고 할  있는 태도는 쉽사리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친하다고 생각해도 타인이기 때문에 벽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 벽이 얇을 수도 있고, 두꺼울 수도 있다.
이 눈 옮김 이라는 것을 잘 사용하는 사람은  벽에 구애받지 않고 대화에 참여한다는 말이 되겠다.
대개 모르는 사람의 눈과 눈이 마주치는 상황은 어색한 분위기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이  옮김의 의도는 상대방의 의사를 빨리 알아채고, 상대방의 말을 이해한 즉시 반응을 나타내고 싶어서 그렇게 할 수도 있다.
내가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정의를 내린 것이다.
언뜻보면 좋은 대화의 기술 같아 보이지만, 그렇다고 늘 좋은 결과를 얻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상대방이 자신의 시선을 부담스럽게 생각할 수도 있고, 감시를 받는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상대방이 조금 불편해 하기 전에 눈을 옮긴다.
나는 그들을 관찰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그들을 위해 배려라는 것을 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너무 또 감시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만들어 버리면, 다음에 관찰할 때에는 쉽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야기 도중에 생각의 저편으로 멀리  버렸기도 했고, 모두의 시선이 따가워 생각을 정리하는 것을 나중으로 미뤘다.

“제 말 들었어요?”
“…죄송합니다. 몸 상태가 안좋아서 집중하기 힘드네요.”

엘리스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면서 묻자 나는 서둘러 변명했다.
아까도 말했듯이 나의 이미지란 정말 굉장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번 더 말해줄  있나요?”
“흠흠, 그러니까, 당신을 방에 누이려고  때, 페스틴이 입고 있던… 편하게 거추장스러운 것들 이라고 할게요.”

‘…다른 사람이 그리 말하니 기분이 좀….’

실은 내가 먼저 그런 표현을 꺼냈기는 했다.

“아니, 아니, 아니, 그것들은 나름대로의 이름이 있습니다.”
“하아… 뭐죠?”

엘리스는 귀찮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옆의 페퍼의 시선도 따가웠다.

‘그냥 잠자코 있을 걸 그랬나.’

“저… 각각 이름이 있기는 한데… 일일이 설명하기에는 길어질 것 같으니, 합쳐서 ‘아이들’ 이라고 해주세요.”
“…네.”

그녀는 차가운 대답을 한 뒤에 다시 설명을 이어갔다.
…너무 열을 올렸다.
아비의 마음은 이런 건가.

“포드 군이 떠나고, 저 홀로 당신이 입고 있던 아이들을 벗겼습니다.”
“꽤나 무거워 보이는 것을 말인가.”

포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설명에 살을 붙였다.

“전부 벗기고 시계를 보니, 아침 식사 준비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서둘러서 페스틴의 장비들을 한쪽에 잘 정리해 두고는 방을 나섰습니다.”
“…그럼?  안보이는 거죠?”

포드의 표정이 굳어지자, 일이 귀찮게 될 것을 감지한 나는 재빨리 물었다.

“글쎄요?”
“…그 뒤로 내 방에 들어오거나 들어온 사람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 있나요?”
“나는 잠이 부족해서 바로 내 방으로 가서 잤다.”

포드는 기분이 상했는지, 팔짱을 끼고는 뚱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엘리스는요?”
“저는….”

시원하게 대답해줄 줄 알고 있었던 엘리스가 쉽사리 입을 열지 않았다.

‘뭔가… 말하기 힘든게 있나?’

어쩌면 그녀 만의 사생활에 관련된 일 일지도 모른다.
그런 민감한 주제를 꺼내는 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아직 그녀와 친해지지 않았음을 이해하고 있었다.
간혹가다 느껴지는 미묘한 관계가 그것을 확신시켜 주고 있었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인가.
약간, 뭐라고 해야 하나….
좋은 의미의 긴장감?
서로를 탐색하는 느낌의 긴장감이 흐르고는 한다.

“아… 말하기  그렇다면,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나는 그녀가 마녀이거나, 그들과 한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냥 감이다.
겉으로는 무표정한 얼굴이었겠지만, 속으로는 나 자신을 비웃었다.

‘욕심쟁이, 그런 색안경을 쓰고 있으면, 진짜를 가려내지 못한다고?’

나는 이기적인 나를 질책했다.

‘정신 똑바로 차려라… 보이는게 다가 아니다….’

내가 늘 생각을 새롭게 하려는 마음을 가져서 다행이라고 생각되는 순간이었다.

“음… 아닙니다. 사실대로 말하는게 좋겠네요.”

그녀는 오랫동안 고민을 하다가 페퍼를 흘깃 보고는 이어서 말하기 시작했다.

‘음…?’

“흠흠, 저는 식사 준비를 마치고, 다시 페스틴의 방으로 왔습니다.”
“예?”

…아니, 누구나 당황할 만한 것이 아닌가?

“으흠!”

페퍼가 갑자기 헛기침을 크게 했다.
그런 둘을 포드가 실눈을 뜨며 번갈아 보고 있었다.
나는 그냥 엘리스의 입에서 무슨 말이 튀어나올지 심장을 졸이고 있을 뿐이었다.

“페스틴이 저를 대신해 순찰을 돌아주었기 때문에,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였습니다.”

솔직한 것은 좋은 것이다.

“그, 그래서요?”

솔직하게 말해서 좋긴하다만, 어째 자꾸만 불안해져 가는 이유에 대한 답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당신이 입고 있던 장비를 공방에 옮겨 놓고는”
“그걸?”

포드가 화들짝 놀라면서 물었다.

“놓고는요?”

페퍼가 말한 한마디는 아주 약간의 따지는 듯한 느낌을 나에게 주었다.

“…페스틴의 옷이 더러워 보이길래, 갈아 입혔습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 마자, 나는 내 옷을 자세히 살폈다.
분명, 기절할 때 입고 있던 옷이 아니었다.
페퍼는 나를 쏘아보기 시작했다.
왜, 왜 그렇게 나를 보는 것인가.
나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무의미한 헛기침을 계속 해댔다.
타인이 나의 몸에 손대는 것은 거부감이 든다.
내가 그런 손길에 대한 경험이 터무니 없이 적어서 어색하다 느껴지는 까닭이었다.

“커흠, 음, 으흠…. 아… 음….”
“끝입니다.”

태연하게 설명을 마친 엘리스는 속이 후련하다는 듯이 개운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메이드 인것을 생각해 본다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젊은 남녀의 관계로 생각해 본다면, 이야기는 뒤엎어 진다.
그렇다는 것을 페퍼는 이해해 버리고 만 것인지, 나를 한번도 말을 섞지 않은 낯선 사람처럼 바라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해한다.
유쾌한 이야기가 아님을 알고 있지만, 나는 그런 쪽으로 생각하지 않았을 뿐이다.

“아, 아무튼 감사합니다.”

나는 서둘러 감사를 표하고는 둘에게 말했다.

“…위치는 알았으니까, 보여줄게. 위로 올라가자.”

나는 애써 웃으며 말했지만, 두 사람은 그러지 않았던 모양이다.

“페스틴, 몸이 성치 않을텐데….”

엘리스는 그런 분위기를 자극 시키듯, 잔뜩 걱정하는 듯이 말했다.

‘…그 표정 표정. 일부러 그러셨구만? 아아앙?’

덕분에 나는 공방으로  때 까지, 따가운 두 사람의 시선을 받아야만 했다.

* *

“그럼, 좋은 시간 되세요.”

엘리스는 공손하게 말을 했지만, 두 사람이 안보는 사이에 음흉한 미소를 짓고는 어디론가 빠르게 사라졌다.

‘저 사람이 진짜….’

나를 놀려 먹으려고 하는 사람이 왜 이리 많은 것인지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누가 제발 좀 알려줘라….’

그냥 내가 사람을 잘못 사귀었거니 하고 납득할 수밖에 없어 보였다.

‘그래도… 토니가 있잖아?’

그렇다, 아직 안식처가 남아있었다.

* *

“자, 자 이쪽으로….”

나는 잔뜩 움츠러든 상태로 둘을 나의 공방으로 안내했다.
나는 딱히 잘못한게 없음에도 그들의 눈 앞에 서면, 자꾸만 자신감이 작아져만 갔다.
엘리스가 이것을 노렸다면, 그녀는 굉장한 전략가라고 할 수 있겠다.

“호오… 여기가 너의 공방인가?”
“어, 어… 정리가 잘 안되어 있지만 말이야”

이것저것 실험해 보느라, 잡동사니가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페퍼, 발 밑 조심해.”
“…어.”

반응이 매우 차갑다.
눈빛 또한….

‘…뭘 해야 하는거지….’

세티에 비하면 쉽게 화를 내지 않은 성격이라고 생각했던 페퍼는 의외의 방면에서 세티처럼 되는 것 같았다.
단순하게 행동하면 어찌되든 흘러가는 남성과는 달리, 여성들은 신경쓸게 너무 많았다.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그저 어려운 난제일 뿐이다.

‘그것보다 왜 화내는 거야?’

“아, 아무튼 간에 말이야. 네가 보고 싶다던게 이거야.”

나는 부츠를 들어올려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호오…. 네가 만든거냐? 뭐냐?  보여줘봐라.”

문 틈 사이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는지, 어느새 방안에 들어와 눈을 반짝이는 소피였다.

“아, 아… 네 그럽죠….”

‘것참 성가시게 되겠구먼.’

그래서 나는 그들이 보는 앞에서 챙길 것은 챙기고는 비행장으로 올라갈 것을 권했다.

“…좋아.”

페퍼도 동의 하는 듯 했고, 포드도 별다른 이상은 없어보였다.

“올라가자고~?”

소피는 굉장히 귀찮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거부 의사를 확실히 했다.
축 쳐지는 양 어깨는 무척이나 피곤해 보였다.

“하지만 올라가지 않으면 보여줄 수가 없는 걸요.”
“그, 그러냐….”

평소의 소피는 기계에 관련해서 자신의 호기심을 억제하지 못한채로 폭주해 버리곤 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심리를 어느정도 이해했기 때문에 좀더 그녀를 구슬려 보기로 했다.

“물론 이 부츠 말고도 굉장한 기능이 있는 장비들도 많아요.”
“그, 그래…?”
“하나같이 버릴 수 없는 것이라, 이렇게 미완성인 채로 남겨둘 수밖에 없더라고요.”

평소에 나의 아이디어를 과대평가하는 소피로서는 그냥 넘어갈 만한 일이 아닌 것처럼 보였던 것 같았다.
그녀는 내 얼굴 한번, 갖가지 물건이 들어있는 박스를 한번 보더니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뭐… 그래, 좋아! 너희를 지켜볼 선생도 필요할 듯 하니까 말이야….”
“그럼 가자고요?”

성공이다.
이런 사소한 일들로 부터, 나는 경험을 쌓는다.
언어를 사용하여, 사람의 감정을 컨트롤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인간 관계를 장악한다.
나는 상층부로 향하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다시금 깨닿는다.
나는 그림자이며, 그들은 빛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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