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화 〉#19 짐승은 곧 숨통을 조여댄다. (1)
“크, 크흠!”
나는 괜스레 긴장이 되어서 모두가 보는 앞에서 헛기침을 해댔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어색한 기분을 어찌할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나는 세사람이 보는 앞에서 나의 개발 중인 여러 도구들을 보여줘야 한다는 이 상황이 너무나도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언제 시작하는거냐.”
일단 기분을 진정시키고 나서 설명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며 뜸을 들이고 있으니, 소피가 인상을 구기며 나에게 신경질을 부렸다.
‘네, 네 곧 합니다요.’
성질급한 숙녀분을 위해 아무래도 슬슬 발동을 걸어야 할 듯 했다.
“그러면, 궁금한 것이 떠오르거든 나중에 질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처음으로 건틀렛을 꺼내들었다.
“…뭔가 부끄럽네요.”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짓고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건틀렛을 양손에 끼웠다.
“이건, 건틀렛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제 모든 장비들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건데요.”
나는 세밀한 구조를 볼 수 있게 그들이 서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가서 앞뒤로 살피게 해주었다.
“퀄리티가 대단하군…!”
포드가 상당히 놀랐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페퍼도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이게 기본이라고…?”
소피도 내 손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녀의 호기심을 꽤나 자극시키는 것인가 보다.
…이게 그렇게 반응할 정도로의 작품인가….
“…일단, 이 상태로는 그냥 제 신체가 가지고 있는 주먹의 위력이 강해질 뿐입니다.”
나는 손을 쥐었다 폈다 했다.
“쉽게 말해서 쇠 막대기 하나 쥐고 있는 것과 다름 없어요.”
그렇게 말하며 상자 더미에서 한층 더 작아진 기계를 꺼냈다.
“이걸 본 분도 있을 겁니다. 이걸… 건틀렛에 연결을 하면….”
나는 그것을 등에 메고 빈틈없이 공압 호스를 건틀렛에 잘 체결했다.
그리고 기계를 작동시켰다.
“포드, 내가 가져오라고 한거 들고 왔지? 그걸 세우고 내쪽으로 살짝 밀어봐.”
올라올 때, 포드에게 철판 몇장을 가져오도록 부탁했었다.
“이 무거운걸 잔뜩 들고오라니 제정신이 아닌 듯 했지만…. 이제서야 용도를 알겠군.”
그는 합판 한 장을 힘겹게 들어서 세우고는 나에게 밀었다.
피시익—!
기계는 증기를 뿜어내며, 건틀렛에 힘을 실어주었다.
“비켜, 포드!”
나의 외침에 그는 재빨리 자리에서 비켜섰고, 나는 그대로 주먹을 합판 한가운데에 적중시켰다.
펑——!
얇은 편이긴 하다만, 나름 두꺼운 두께를 한 합판이 내가 내지른 주먹에 구멍이 뚫렸다.
그리고 합판은 힘없이 쓰러지며 큰 소리를 내었다.
쾅!
“…일단 보시다시피 이런 위력을 가지게 해줍니다.”
나의 태연한 태도에 그들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니까… 이게 그렇게 놀랄 일이냐고요….’
나는 저릿거리는 팔을 살짝 움켜쥐고는 이어서 설명했다.
“이것의 단점은 충격의 반발력 때문에 팔에 무리를 준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박스를 뒤져서 외골격을 꺼냈다.
전보다 훨씬 더 부드럽고 실용성을 높여주기 위해서 몸에 착 달라붙는 옷처럼 만들었다.
충격의 중심부가 되는 팔.
폭발적인 힘을 내기도 하며, 지지해주는 역할도 하는 허리.
결정적으로 반발력을 버티게 해주는 다리를 감싸고 있는 듯한 디자인은 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던 모양이다.
반짝이기 시작한 그들의 눈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따끔한 시선을 내쏘았다.
“…이게 그것을 전체적으로 보완해주고, 신체기능을 아주 조금 향상시켜주는 외골격 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나에게 다가와 내 몸 이곳저곳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이런 느낌이구나….’
누군가에게 구석구석 관찰 당한다는 것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다음에 누군가를 관찰할 때 유의해야 할 점이 생긴 듯 했다.
“단점이, 통풍이 잘 안되어서 덥다는 거죠. 그건 나중에 다시 개량하면 되는거니 넘어가고….”
나는 어제 괴물과 마녀를 잡는데 도움을 주었던 부츠를 꺼내들었다.
“이건 단순히 사람의 도약력을 높여주는 신발입니다.”
나는 신발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말보다 보여주는 게 더 이해가 빠르겠죠?”
그렇게 하고서는 심호흡을 하고 기계를 다시 작동시켰다.
푸쉬이익—!
나는 일순간 몸이 붕 떴고, 어느새 나는 공중에 떠있었다.
곧 아래로 다시 떨어지기는 하다만, 일정 높이에 다다르면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해주는 것 같았다.
쾅!
‘역시 착지할 때는 아프네….’
나는 저릿거리는 발의 감각을 무시하며, 그들이 서있는 방향으로 돌아보았다.
상당한 거리를 온 것 같았다.
“뭐, 뭐… 이정도 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리를 좁히거나 도주에 용이하죠.”
나는 멋쩍은 듯이 뒷통수를 긁었다.
“우, 우와….”
페퍼가 정적을 깨며 감탄을 했다.
박수도 잊지 않았다.
“…그럼 다음 거로 가봅시다.”
왠지 질문 공세가 잔뜩 쏟아질 것 같아서 나는 서둘러 다음으로 넘어가려 했다.
“너… 왜 이제서야 보여주는 거냐!”
소피는 치사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아, 그, 그게 말이죠.”
“어서 다음 걸로.”
설명을 하려는 찰나, 포드가 눈을 반짝이며 재촉했다.
“그, 그럼 다음은 이겁니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작은 돌멩이와 같은 크기를 가진 유리병들을 꺼내서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이건 뭐야?”
페퍼가 내 손안에 잔뜩 놓여져 있는 동그란 구체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일단, 지금 꺼낸 것은 냉각수 입니다.”
“냉각수…? 아~ 그거 말인가?”
소피는 역시 재빨리 알아챘다.
“아, 그거?”
페퍼도 어느 정도 지식이 있었는지 바로 알아 들었다.
“음… 모르는 사람이 있으니까, 설명을 해보자면… 이건 기계의 폭주를 잠재우는 약같은거야.”
나는 포드를 의식하며 말했다.
포드는 의학에 대한 지식을 지향하고 있으며, 그쪽으로 예를 들어 설명을 한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호오… 그런가?”
나의 설명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그 약 같은 것을 개량해서 적은 양으로 최대의 효과를 볼 수 있도록 비율을 좀 신경써 보았죠.”
“아~ 그래서 작았구나?”
소피는 그때서야 이해가 된다는 듯이 손뼉을 쳤다.
“지금의 위력이 어느정도 나면….”
나는 그들에게 살짝 비켜보라는 제스처를 취한 뒤에 바닥에 냅다 던졌다.
챙!
무언가 깨지는 작은 소리가 난 뒤에 바닥의 어느 부분이 얼기 시작했다.
“뭐야…! 너 어떻게 한거야!”
소피가 큰 소리로 당황하며 나에게 물었지만,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이것은 나의 정체성에 포함되기도 하니, 쉽사리 알려주고 싶은 마음은 없다.
“비밀입니다.”
여기서 엘리스의 음흉한 미소를 쓰게 될 줄은 몰랐다.
“다음은 비슷한 것이지만, 완전히 반대되는 것입니다.”
보통 나는 휘발유를 먼저 뿌리고 성냥이나 다른 무언가로 불을 붙였지만, 그게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이 느껴져, 개량을 조금 해보았다.
나는 자그마한 스위치를 누르고, 바닥이 얼었던 부분에 던졌다.
화륵—
“원래 이건 휘발유가 담긴 유리병을 먼저 던지고 성냥이나 다른 걸로 불을 붙이는 방식이었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고요.”
나는 영롱하게 타오르는 불꽃을 내려다 보았다.
“그래서 둘을 합쳤죠.”
나는 그들에게 하나씩 꺼내 주었다.
“스위치 보이죠?”
나의 질문에 세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르고 셋을 세면, 발화가 시작됩니다.”
셋은 어벙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한번 해보세요.”
세 사람은 얼떨떨해 하면서 내가 하라는 대로 곧잘 했다.
“간단하죠?”
그들이 다 던진 후에 나를 바라보자,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 그렇군….”
“이, 이거면 괜찮다….”
“호오….”
나는 등 뒤로 놓여진 박스 안에 있는 것들 중에서 무엇을 더 말해 줄까 고민하다가 그만 두기로 했다.
아직 아무도 못본 나의 소중한 녀석들을 미리 알릴 필요는 없지 않은가?
“다음을 대비해 저는 개량에 개량을 할 겁니다.”
“여기서 더 말이야?”
페퍼가 깜짝 놀라 하면서 나에게 물었다.
“당연하지, 당연하고 말고….”
‘예고는 여기까지 입니다.’
세 사람 중에서 누군가 마녀나 왕궁에 내통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상관이 없다.
단순히 그들이 나를 경계하는 수준이 높아질 뿐, 내가 가진 것들을 다 이해하고 알지는 못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쳐도, 이들은 믿을만 하니까 내가 섣불리 보여준 것이다.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나는 느낀 것이다.
공간을 이동하는 힘, 아니 능력을 가진 사람을 만나고 나서 부터다.
‘어떻습니까?’
나는 어디에 선가 지켜보고 있을 듯한 그에게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다른 것은 개발중이라 위험한게 많아서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보여주겠습니다.”
나는 내가 꺼낸 것들을 주섬주섬 다시 주워 담았다.
“엥~ 끝이야?”
나의 발명품 쇼에 만족했는지, 소피는 아쉽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하하… 곧 다시 찾아 뵙죠.”
“다음에도 꼭 불러 주기를 바란다.”
포드도 여전히 반짝이는 눈을 들이대며 말했다.
“아… 나, 나도…!”
“너는 당연하지.”
주춤거리는 페퍼를 보며 확신을 주었다.
“그럼 이제… 피곤하기도 하니… 이제 좀 쉬어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말하고는 나는 기절해 버리고 말았다.
* * *
‘응?’
눈이 떠짐과 동시에 나는 소리쳤다.
“또냐아아!!!”
창밖을 보니 기절한 뒤로 시간이 많이 흐른 것 같지가 않았다.
“…이거 또 실례를 범해 버렸네.”
나는 옆에서 놀란 표정으로 앉아있는 페퍼를 보며 말했다.
“엇, 어… 일어났어? 미안해… 괜히 우리가 보여달라고 해서….”
“아, 아니야. 그보다 소리쳐서 미안.”
너무 시끄럽게 한 것은 아닌가 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장비… 들은 네 공방에 다 가져다 놓았어.”
“고마워.”
“그런데 페스틴.”
“응?”
“이렇게 다 알려줘도 괜찮은거야?”
“…괜찮고 말고.”
걱정스런 마음을 내비치는 페퍼의 표정에 나의 마음이 흔들렀다.
그녀의 핑크빛 눈동자가 뇌리에 깊이 박힌다.
“내가 보여준 건 극히 일부라서, 괜찮을 것 같았어.”
“이, 일부…?”
“그리고 소피와 포드는 어느정도 신뢰할 만한 사람이니까 괜찮아.”
“…진짜로?”
“…네가 봤을지는 모르겠지만, 눈빛이 달라.”
“눈빛? 마녀랑 보통 사람이랑?”
“어, 진짜 마녀는 달라.”
“그, 그렇구나… 다르다고? …일단 믿어 보겠어.”
“아하하, 너까지 나를 의심하면 어떻게 해?”
[순수한 마음]을 가진 그녀가 두 주먹을 불끈 쥐는 모습을 보니….
“으흠, 그건 그렇다 치고, 페퍼는 지금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하면 좋겠어.”
“엥? …음, 사실 아무것도 모르기는 해.”
솔직하게 인정하는 그녀의 모습에 왜인지 안심이 되었다.
‘…솔직하게 라….’
“크흠, 아무튼 간에, 혹시라도 일이 틀어지면 나 혼자로 충분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뭐가?”
“어? 그… 짐을 지는거 말이야.”
“하하… 그래요?”
“…너를 못믿는다 그런게 아니라.”
사나워지려고 하는 눈꼬리를 보니 괜스레 무서워졌다.
“그런게 아니라?”
“너 만큼은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절대로.”
나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 그래….”
그녀도 고개를 돌리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똑- 똑- 똑-
벌컥—!
“방해해서 미안합니다만, 슬슬 식사를 하러 가시죠.”
엘리스가 문 틈 사이로 고개를 집어 넣으며 말했다.
“아, 네 네 알겠습니다.”
“…”
허둥지둥 대답하는 나와는 달리, 그녀는 아무말이 없었다.
방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어서 어떤 감정인지는 알아채지 못했지만, 그녀 또한 당황해서 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갈까?”
조용히 말하는 페퍼의 말에 나는 기꺼이 응했다.
“좋아.”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방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러자 내 귀에 대고 누군가가 속삭였다.
“나라네, 오늘 밤 괜찮겠는가?”
그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