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화 〉#19 짐승은 곧 숨통을 조여댄다. (2)
“흠, 흠… 초대에 응해줘서 고맙네.”
“아뇨, 저도 만나뵙고 싶었습니다.”
나는 식사를 마치고 곧바로 방으로 돌아왔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일찍 잠에 들겠다고 둘러대고 말이다.
‘인자하다.’ 라는 표현을 사용해도 어색함이 없을 정도인 그 사람은 차분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천천히 눈이 감기고, 뜨기를 반복하니 나도 모르게 잠이 오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서둘러 하고 싶었던 말을 내뱉었다.
“그래서… 어땠습니까?”
“음? 뭘 말인가?”
“아까 저를 쭉 보셨을 것 같은데….”
“아까?”
그는 어린 아이를 대하듯 따뜻하고 부드러운 말투로 나의 말을 받아주었다.
“제가 만든 갖가지의 물건들을 말하는 거에요.”
“아~ 봤지, 봤고말고.”
그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에게 인정받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렇게 질문하게 되었던 것이다.
만약, 이런 사람에게 내가 잘 하고 있다는 확언을 듣게 된다면, 앞으로 더 잘하게 될 것만 같았다.
“흠~ 그런데 말이야, 그 사람들에게 쉽게 알려줘도 괜찮은 겐가?”
“그 사람들이라 함은… 페퍼, 포드, 소피를 말하는 것이겠죠?”
“…아마 그런 이름을 하고 있을 걸세.”
일순간 그의 표정이 굳었다가 풀어졌다.
“오늘은 먼저 제가 신뢰하고 있는 사람들을 말해주고 싶어요.”
“신뢰?”
“목적이 같으니까, 좋은 정보는 공유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요.”
“정보를 공유하자는 겐가? 하하하하!”
순간 요상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긴장되었던 몸이 풀어졌다.
“…? 자네, 감이 좋군.”
“네?”
“아니네, 혼잣말이네, 계속 해보게나.”
“페퍼, 7 구역에서 벗어난 후에 처음 만난 또래죠.”
“좋은 친구는 인생에서 후회할 만한 여지를 남기지 않지….”
“네, 이미 마녀에 대해 알고 있기도 하고… 페퍼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는 여전히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페퍼와는 무언가 이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어졌다라….”
그는 턱을 쓰다듬고는 밝은 미소를 띄우며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음~ 저번에 말한 나의 친구 말일세, 어디에 있든지, 우리는 자네처럼 이어져 있다는 것을 느끼네.”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말인가요?”
그는 편안해 보이는 미소를 지었지만, 조금의 슬픔이 그의 얼굴에 묻어 나왔다.
“그렇다네, 진정한 친구는 그렇다고 생각하네.”
“…사람의 감정은 특이한 것 같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다음은 포드입니다.”
“포드? 깔쌈하게 생긴 청년 말인가?”
“여러모로 짜증나는 녀석이지만, 실력하나는 좋죠. 그리고 생각이 깨어있습니다.”
나는 그의 모습을 떠올리기 싫었지만, 이야기를 함으로써 떠올리고 말았다.
나의 얼굴에는 씁쓸한 미소가 지어지면서 그에 대한 칭찬을 이어갔다.
“그리고 의학에 능통하기 때문에 충분한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얼마 전까지는 그를 멀리하지 않았나?”
“그 녀석이 보여주는 말과 행동은 그가 거짓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나의 말이 끝나자, 그는 밝게 미소를 지었다.
“정답이네.”
“네?”
“소피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빠르고 능숙하게 말을 돌렸다.
“아… 크흠, 사람을 겉으로 판단하지 말라고 하잖아요?”
“그렇지, 사람의 내면에는 그 사람의 진심이 담겨져 있기 마련이지.”
그는 나의 가슴깨를 검지로 짚었다.
“마치, 그 말이 맞다는 증거같은 사람입니다.”
“호오… 그렇다고 생각하나?”
“그럼요, …저는 사람의 진심을 빨리 알아 채더라고요.”
“그래서 소피라는 사람은?”
“정이 많습니다. 냉정하고 누군가를 버리는 것을 서슴지 않는 마녀와는 정반대의 사람입니다.”
“음~ 그렇군.”
“그래서 추후에 새로운 왕국을 세웠을 때, 그 사람을 데려 간다면, 유용하게 작용할 것 같습니다.”
“새, 새로운 왕국…?”
나는 처음으로 그가 당황하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이, 이곳에서 말인가…?”
“안되려나요?”
“아, 안되는 것은 아니네만… 자네, 진심인가?”
“…? 그렇죠? 저는 제가 결심한 것 외에 입에 담지 않습니다.”
“호호… 그렇구만….”
“제 스스로에게 하는 일종의 약속 같은 거죠.”
“결심… 같은 것 이구만….”
“목표라는 것은 좋은 것이죠.”
“하지만, 허황된 꿈은 오히려 독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겐가?”
“당연하죠, 저는 모든 악수를 예상하려고 노력하니까요.”
“그렇다고 그것이 악수라고는 하지 않았네만….”
“…당연한 반응인 걸요.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제가 반역을 도모하고 세상을 뒤엎을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요.”
“상당히 욕심이 많구만 자네….”
“…그런가요? 나름 겸손하다고 생각합니다.”
“겸손…?”
“그리고 신이 되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뭐, 뭐? 아니 아니, 자네 그것은 경솔한 발언이네.”
“압니다. 저는 그런 야망이 있을 뿐입니다.”
“그, 그렇군….”
그의 얼굴에는 한순간에 불안함이 수면 위로 떠올랐고, 그는 나의 감정을 읽으려고 했다.
“그 감정 읽는 것 말이죠.”
나의 말에 그는 흠칫했다.
“저는 굳이 그런 능력 없이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일리있네, 자네라면 말이지….”
“저는 많은 것을 모르지만, 많은 것을 알게 됩니다.”
“…”
나의 말에 그는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만약… 만약에 말이죠, 제가 신이 되어본다면, 세상은 달라질까요?”
나의 질문에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신이 된다거나, 세상의 왕이 되어본다거나 라는 그런 것들은 분명, 저에게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해줄 겁니다.”
그는 말없이 나의 말을 들어주고 있었다.
“물론, 그런 권위를 얻고 나서, 인간의 탐욕이 자라날 것이라는 것은 당연한 것 이겠죠.”
“탐욕 말인가?”
그의 질문에 나는 대답을 하지 않으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렇다고 제가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만, 분명한 것은 제가 신이 된다거나, 왕이 될 수가 없다는 거죠.”
“…? 그건 무슨 소리인가? 그렇게 한다는게 자네의 목표라 하지 않았었나…?”
“저는 저의 한계를 알고 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많은 가능성을 가졌다고 해도, 저는 한낱 자그마한 어린아이 인걸요?”
나는 씁쓸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나의 손가락들을 이리저리 꼼지락거렸다.
그렇게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상상입니다.”
“상상?”
“모든 것이 상상입니다.”
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의 본래 생각에 대해 말해보자면… 저의 모든 것은 상상입니다.”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 나는 알 수 가 없네.”
“당연하죠, 보통 사람으로서는 생각 조차 하지 않는 것이니까요.”
나의 말에 그는 동요하고 있었다.
눈동자의 흔들림을 보면 아주 쉽게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상상하는 겁니다. 신이 된 나를, 왕이 된 나를.”
‘이 사람에게 나의 모든 것을 솔직하게 말해도 될까?’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계획들과 목표들은 상상이며, 허구입니다.”
나는 차분하게 나의 진의를 밝혔다.
이 사람이라면 왠지 다 털어놓아도 좋을 것만 같았다.
“애석하게도, 당신을 포함한 저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저라는 사람은 허구입니다.”
“…”
그는 뭔가 알아챘는지 아까와는 사뭇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저는 착한 사람인 저를 상상하는 것입니다.”
그의 동공은 무척이나 진동하고 있었으며, 약간의 슬픔이 묻어나왔다.
“모두에게 친절 하려고 노력하며, 때로는 덤벙대며, 어쩌다가 크게 사건을 일으키는 평범한 왕궁 학생.”
“자, 자네는… 평소에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해 지는군….”
나는 그를 보며 씨익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암흑 밖에 보이지 않은 천장을 올려다 보았다.
“…이 이상은 그 누구에게도 발설할 생각은 없습니다. 제 자신 조차도 확신이 서지 않았고, 제 자신을 연구하는 일은 지금도 진행중이니까요.”
“나에게 다 털어놓아도 괜찮다네….”
“괜찮습니다. 어차피 이해하지 못할 뿐더러, 제 깊은 곳에 잠재되어 있는 내면을 아는 것은 오직 신 밖에 없을 거라 생각하니까요.”
그는 무언가 아쉽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나는 그의 시선을 온몸으로 담아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착한 아이가 되고 싶은, 속이 뒤틀린 아이.”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손목에 차여진 작은 기계를 내려다 보았다.
“…”
“시간은 유한하죠. 오늘은 여기서 마칠까요?”
“…자네, 만약에 말이네.”
나는 그를 내려다 보았다.
“이 세계의 왕이 된다면… 자네의 생각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찾아와도 되는가?”
‘…’
“…당신은 겸손하시군요. 오만한 저와는 달리.”
나의 말에 그는 묵묵무답이었다.
“당연히 알려드리죠, 저도 당신의 친구가 되고 싶으니까요. 일단, 그러기 전에….”
“전에…?”
“이름을 알려주세요.”
나는 그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 *
나는 침대에 누워 알 수 없는 고양감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나의 본 모습에 대해 누구에게 이야기를 해본 적이 있었나?
왠지 마음이 개운해지며, 짐을 내려놓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내가 왕이 될 생각은 없다.
다만, 왕이 되었으면 어땠을까 라고 생각할 뿐이다.
내가 생각하는 계획에는 내가 왕이 되는 시나리오는 전혀 없다.
나는 그런 귀찮은 일은 질색이다.
그저, 나를 사랑해주는 특별한 사람과 평화롭게 지내고 싶을 뿐이다.
단순한 망상이다.
하지만, 나는 망상뿐인 그것을 실현시킬 의지를 가지고 있다.
허황된 꿈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다.
나는 방금 전의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 본다.
* * *
“하하핫… 그러고 보니 슬슬 내 이름을 알려줄 때가 되긴 하다만….”
그는 약간 뜸을 들이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는 무언가 찾아냈다는 듯이 기쁘게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잭… 잭이라고 부르게!”
‘잭…?’
그는 감상에 젖어있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든, ‘잭’이라는 이름은 그에게 특별한 듯 했다.
‘나의 미래는 저런 모습 일까?’
* * *
“하아… 속이 시원하면서도… 답답하네.”
오묘하다.
언제나 나의 머릿속에는 두가지의 상반된 무언가가 생긴다.
대조.
쉽게 말하면 대조되는 무언가가 나를 앞 뒤로 끌어당긴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나는 그것들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중간을 유지할 뿐이다.
이도저도 아닌, 회색 인간…이라고 나는 나 자신을 결론 내린다.
검고 붉은 그들은 나의 적이다.
밝고 부드러운 그들은 나의 아군이다.
검고 붉은 그들과 나는 닮았다.
밝고 부드러운 그들은 나와 전혀 닮지 않았다.
슬프게도 말이다.
처음부터 나는 올바른 사람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처음부터 나는 대단한 집안에서 태어났다면 얼마나 편했을까?
처음부터 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더 빨리 목표를 달성하지 않았을까?
나는 제련이 되어지지 않은 불순물이 섞인 철강을 떠올렸다.
왜 처음부터 다이아몬드가 되지 못했을까?
왜 처음부터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순철이 되지 못했을까?
왜 처음부터 제련을 해야만 했을까?
나는 나의 삶에 묻어있는 불합리함에 한숨을 내쉬고는, 잠시 동안 뒤척이다 잠을 청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