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3화 〉#19 짐승은 곧 숨통을 조여댄다. (6) (93/128)



〈 93화 〉#19 짐승은 곧 숨통을 조여댄다. (6)

꽤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래서 나는 별 대꾸도 안하고 그저 손만 흔들었다.
조금 지치기도 했고, 통통 튀는 매력은 지금의 나에게는 버거웠기 때문이다.

“오~ 어쩐 일이야~”

그녀의 등장에 페퍼는 기쁜 듯이 그녀와 손을 맞잡고 인사를 나눴다.

“심부름 때문에 지나가다 두 사람이 보여서 와봤어~”

그녀도 즐겁게 반기며 말했다.

“오빠는 내가 안반가워?”

그녀들보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내가 미동조차 하지 않자,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목소리의 주인은 세티다.

“아니, 좀 피곤해서.”

나는 숨길 필요도 없이 솔직하게 나의 상태를 말했다.

“뭐? 내가 피곤한 사람이라는 거야?”

단순히 나의 상태에 대해 간략하게 말했을 뿐인데,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
…어찌나 눈치가 빠른지, 아마 페퍼의 영향이 컸으리라 생각한다.
최근 들어 몸의 성장이 빨라졌는지, 처음 봤을 때보다 많이 성장해 있었다.
더 이상 소녀가 아니라 숙녀라고 불러야 될 것 같았다.
…세티가 앙칼진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니, 내 두 귀가 아파왔다.

“아니… 그게 아니라….”

좀처럼  마음을 알아주지를 않는 슬픈 현실에 내 마음이 울렸다.

“페스틴이 요새 많이 바쁘거든~ 그래서 피곤할 뿐이라는거야~”

성난 세티에게 페퍼는 조용히 타이르듯이 말했다.

“…그래? 그렇구나… 미안해 오빠.”

역시  부러지는 사람이다.
…둘 다 말이다.

“아니야, 내가 말을 짧게 했는 걸.”
“헤헤헤… 그건 그렇고, 지금 뭐하는 중이었어?”
“응? 아~ 페스틴이 입을 옷좀 사려고.”
“옷?”

진정이 된 듯한 그녀의 모습에 특별한 일이 일어날 것 같지 않겠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만약 그녀가 발칵 뒤집어져 버렸다면, 지금의 나에게는 자극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그녀의 물음에도 잠자코 있었다.
페퍼가 나의 대변자라도 되기라도 하듯, 그저 그렇게 입을 다물고 있자, 세티가 나를 흘겨보기 시작했다.

‘하긴… 너무 말을 안하는 것도 안좋으니….’

“지금 입고 있는 옷이 대부분 작업복이라… 자주 외출하려면 옷이 좀 필요 하겠더라고.”
“자주…?”

세티는 내가 말한 여러 단어들 중에 하나를 짚어 꼬투리를 물었다.

“응, 오늘처럼 자재도 사고, 기분 전환을 하려고 산책할 때, 구질구질한 옷을 입을 수는 없잖아?”

나는 일부러 그녀들과 다과를 즐긴다는 이야기를 안했다.
사실, 나는 그냥 옷 한벌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단벌신사라는 말을 들어본적 있는가?
굳이 꾸밀 필요도 없는 것 같아서 그렇게 했건만, 최근에 그 과자가게의 누나가 뭐라고 한 소리를 했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위축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녀의 말을 차마  입으로 못하겠지만, 그녀의 말을 듣고 주위를 둘러보니 내 옷이 너무나 평범했다.
평범하면 평범하다  수 있겠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어떨지 모른다.
그리고 나 혼자라면 어떻게 입었든 신경을 쓰지 않았겠지만, 나는 집단에 속해있었다.
나의 그런 옷차림 때문에 ‘과자 연맹’이라는 집단에 흠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이유를 근거로 들어 좀처럼 열지 않는 나의 지갑을 열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그럼~ 나도 고를래!”

세티가 갑자기 흥분하며 말했다.

‘어, 어라…. 큰일이다….’

이것은 백발백중으로 귀찮은 일이 일어날 조짐을 보였다.

“아, 아니야. 그래줄 필요는 없어.”
“하지만 너의 센스는 별로인걸?”

내게 치명타를 입히는 페퍼였다.

“크흠, 너희가 뭘 몰라서 그래.”

나는 불보듯 뻔한 상황이 전개 되는 것이 싫었기 때문에 극구 사양했다.

“다른 사람의 시선도 중요한거야 오빠~”
“그럼 그럼, 이 누나에게 맡기라고?”

하지만 나의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보다, 그녀들의 옷을 골라주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는지, 나는 그만 밀려나고 말았다.

“하아… 그래…. 마음대로들 하세요….”

그냥 나중에 홀로 나와서 옷을 다시 한번 더 골라야 겠다고 생각했다.

‘골라주는 옷은 그냥… 성의를 봐서 입든지 하자….’

나는 타당한 이유가 없다면 흘러가는 상황에 순응하는 편이다.
물론, 이번에도 거절할 만한 타당한 이유는 없었다.
단지, 그냥 내가 싫었기 때문이다.
나는 둘의 센스를, 아니 페퍼의 센스를 믿지 않는다.
아까부터 흔들리는 이상한 모양의 장식은 의문만 생기게 만들어진  같았다.

‘흐음….’

나는 내심 불안해 졌다.
그렇다고 그녀를 완전히  믿는다는 것은 아니다.
보는 눈도 꽤나 좋은 편이고, 무엇보다도 감각이 뛰어나다.
감각이라 함은, 무어라 설명을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그냥 감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무언가 신경을 쓰며 하려고 한다거나, 계획을 해서 다듬는 것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직감적으로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조금이나마 설명할 수 있겠다.
그런적 없는가?
아무생각 없이 던진 공구나 물건이 어딘가로 쏙 들어 간다거나, 그것이 있어야  자리에 툭 하고 떨어진 적이 있지 않은가?
나도 몇번 있었다.
단순한 우연의 산물일 뿐인데  그렇게 기분을 좋게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것의 의미를 조금 크게 두면, 본능적으로 위험으로 부터 몸을 피한다거나, 그저 의미없이 잠깐 멈추었는데 바로 앞으로 무언가가 떨어진다거나 하는 일을 예로  수 있겠다.
더욱더 크게 둔다면, 잠깐 봤는데 눈치를 챈다거나, 무언가 다른 점을 찾는다거나, 눈대중으로 거리를 때려 맞춘다거나 하는 대단하다 라고밖에 할 수 없는 일들도 할 수 있다고 본다.

그것이 개인의 순발력이든, 관찰력이든, 지적 능력이든 나는 그것이 우연에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순간 당장은 생각을 하거나, 몸을 잘 움직인다는 행동과 같은 것을 하겠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정해진 것들에 대한 것이다.
우연으로 인해 우리는 개개인의 가능성이 다르다.
태어날 때는 동등하게 태어나도, 살면서 얻게되는 능력들이 다 다르다는 이야기다.
조금 말이 많아진  같지만, 페퍼의 경우에는 비율에 대한 감각이 좋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아이가 어른 옷을 입으면 어색하듯이,  사람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으면 그 사람의 이미지를 단숨에 추락시켜 버린다고 생각한다.
페퍼는 신기하게도, 이상한 장식이 된 옷을 입어도 전체적으로 보면 상당히 괜찮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페퍼는 그런 쪽의 감각이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를 신뢰…  수 있다고 하겠지만, 이것 하나 만큼은 말해 두어야 겠다.

“페퍼.”
“응?”
“장식은 필요 없으니 옷만 골라줘.”
“파하하하! 알겠어~”

페퍼는 뭐가 그렇게 기쁜지 밝게 웃으며 세티에게 걸어갔다.

“것참….”

나는 뒷통수를 긁적이며 근처에 앉을 곳을 찾았다.


* * *

‘무책임 하다.’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나의 옷을 고르는 일을 그 둘에게 떠맡기고는 이렇게 편하게 앉아있다니, 내가 생각해도 좀 그렇다고 생각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는게, 옷을 고르는 것은 그 둘이 하는 것이다.
나도 따라다니며 이런저런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그녀들의 생각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계속해서 따라다니고, 말하고, 두리번거릴 수 있는 충분한 체력이 없다는 것즈음은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쓰러질 지경은 아니지만, 나중에 자재를 옮길 때를 위한 체력 비축을 하기 위해서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귀찮기 때문이다.
별 시덥잖은 이유를 붙여가며 나는 이렇게 한가로이 앉아있는 것이다.
그냥 변명을 하고 있을 뿐이다.
내가 조금만 더 체력이 남아있었더라면, 기꺼이 따라가겠지만, 그들도 어엿한 사람이기에 그들을 믿고 놓아버린 것이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책임 회피가 되겠다.
개인적으로 딱히 내가 나서지 않을 일이라면 굳이 나서지 않으려고 한다.
그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문제를  쉽고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모양인데, 괜히 내가 참견해서  어질러 버리면 도움을 주는 것 만큼 못한게 되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나는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가만히 먼 벽을 바라보며 하릴없이 앉아있는 사람인 척을 하면서 말이다.
내가 스스로에게 느끼는 것이지만, 나도 참 음침하기는 하다.
세상에 누가 취미를 인간 관찰로 하겠는가.
…아, 엘리스.
그런 시원찮은 생각을 하고 있을 때즈음  멀리에 있는 좁은 골목길의 입구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도 지치지 않는지, 빵 하나를 가지고 싸우고 있는 것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예전에 나도 저랬었지….’

콰아앙—!

과거에 대한 나의 생활을 생각하며 감상에 젖어들 때 즈음, 그 골목길에서 부터 큰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울려퍼지며, 거리를 진동시켰다.

‘…? 초, 총성?’

뿌연 연기를 내뿜으며, 굉음을 낸 사람은 후드를 뒤집어 쓴 채로 자신의 겉모습을 가리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에게 발포된 그것의 총구는 그의 속모습을 아낌없이 드러내 주고 있었다.
무어라 중얼거린 그 사람은 다시 그 어두컴컴한 골목길로 사라졌다.
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사람이 들고 있는 것은 분명히, 총…! 총이었다…!
총이라 함은, 히터가 가지고 있는 무기로써, 화약을 이용한 폭발력으로 납덩어리를 날리는 기계이다.
그것은 히터만 가지고 있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도 그것을 '가지고 있었다.' 라는 게 성립되는 것을 눈으로 지켜보았다.
거리는 술렁이고 있었고, 어느새 경비대들이 몰려와 차가워진 시체 곁으로 가서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홀린 듯이 그들에게 걸어갔다.
경비대들 사이에서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빌….”
“4팀은 골목을 수색하세요. 아…?”

나를 본 그는 진지한 얼굴에서 반가움을 표했다.

“오…! 페스틴,  지냈어요? 여기는 어쩐 일이에요?”
“하하하, 잘 지냈죠, 빌도 잘 지내고 있는  같네요.”
“그럼요, 보는 것처럼 바쁘게 지내고 있죠.”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비꼬기라도 하는 것처럼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하하…. 그렇군요.”

실로 바빠보여서, 더 이상 말 걸기가 미안해졌다.

“그럼, 수고하세요. 한가할 때 또 만났으면 좋겠네요.”
“그래요, 왠지 미안하네요.”

오히려 사과해야 하는 것은 나였음에도, 그는 머리를 숙여 사과했다.

‘어쩜 이리 친절한 사람인가.’

“…아닙니다. 제가 방해를 했는데요 뭘.”

나는 그렇게 말하고 부드럽게 웃었다.
그러자 그도 부드럽게 웃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까의 굉음이  들려왔다.

콰아앙—!

“…!”
“!”

나와 빌은 한가로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경직되고 말았다.
우리는 누가 뭐라할 것 없이 반사적으로 소리의 발생지로 향해 달려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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