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5화 〉#19 짐승은 곧 숨통을 조여댄다. (8) (95/128)



〈 95화 〉#19 짐승은 곧 숨통을 조여댄다. (8)

나는 순간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혹여나 나를 해하려는 목적을 가진 누군가가 달려든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걱정과는 달리, 지쳐보이는 빌이 숨을 헐떡데고 있었다.

“어… 괜찮으세요?”
“허억… 허억… 페스틴…. 어디에 있었던 겁니까….”

빌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고는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따라오지 않을 거면… 말해줬으면 좋았을 것 같네요….”

나를 찾기 위해 상당한 시간을 소모한 듯한 그의 모습에 괜스레 미안해졌다.

“아… 미안해요….”
“자꾸만… 자꾸만 안좋은 생각이 떠올라서… 혹시라도 당신이 위험에 처한 건 아닌지….”
“아… 죄송합니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사과는 제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것을 딛고 일어서야 진정한 어른이라고 생각한 까닭에 서슴지 않고 고개를 숙인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그를 따라갈 의무는 없었다.
그를 쫓아간 것도 나의 독단적인 행동 이었을 뿐이었다.
 그가 그런 말을 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가 나를 의지해서 그런 것인가?
전에 그를 도와 사람을 붙잡는데 도움을 주었던 기억이 남아있다.
그날 내가 나서지 않았더라면, 헨델은 차가운 시체로 남아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조금 오만할지도 모르겠지만, 결과론으로 보자면 그렇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그다지 유쾌하지 못하다는 것즈음은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 생각을 그만두었다.
하지만 지금의 경우는 내가 나서지도, 도움을 요청 받지도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태도에 나는 살짝 의문을 가졌을 뿐이다.
빌의 앞에 서서,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어쩔 줄 몰라하는 내 자신을 상상할 때 즈음, 뭔가 소름돋는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그가 왕궁과 한패라면?
마녀들과 내통해서 나를 몰아서 제거하려 했다면?
빈민가의 중심지로  수록, 사람이 죽어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피폐해져 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환경에서, 그 누구의 도움이 생기지 않는 곳에서, 다수의 그들이 나를 에워싸고 나를 매장하려 했다면 말이다.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그럴 경우에는 나의 생존을 위해서 모두의 가능성을 끊어버리는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살인은 옳지 않은 것이지만, 옳은 것을 고집하고 있다간, 이런 세상에서 가장 먼저 죽게 될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전의 ‘분열의 마녀’는 나에게 위협을 가했고, 나는 그것에 응할 수 밖에 없었다.
내 스스로 악의 굴레에 들어가버리고 만 것이다.
나는 그들을 이해하고 싶지만,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알아버리고 말았다.
그들의 가능성도 버리고 싶지 않다.
하지만 늘 그렇듯 마음대로 되질 않는다는 사실은 나의 가슴을 후벼 팔 뿐이다.


* *

빌은 마저 순찰을 돌겠다고 먼저 거리를 떠났다.

“하아….”

토니.
그는 어디의  일까?
나의 아군인가, 적군인가, 아니면 또 다른 존재인가.
그런 생각에 잠길 때 즈음,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

잠시 동안 허공을 바라보며 걷고 있다가 퍼뜩 무언가 떠올랐다.

“페퍼…!”

그렇다.
나는 어리석으며, 같은 실수를 반복할 뿐이다.
서둘러 다리를 바삐 움직여 옷가게로 향했다.
어찌나 화가 나있을까.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처진다.


* * *

나는 차가운 분위기 속에서 페퍼의 얼굴을 살폈다.
그녀는 눈을 마주치지도 않은채로 시선을 돌리고 있었고, 그녀의 손에는 한벌의 옷이 들려있었다.
분명, 고르고 골라 엄중한 심의를 걸쳐서 가져온 옷이라고 생각되었다.

“음… 미안해, 기다리게 했네.”

나는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려고 마음을 먹었다.

“…”

나의 사과에도 그녀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확실히 나라도 화가 났을 것이다.
약속이라는 것은 꽤나 무거운 것이고, 동행하는 것도 결코 가볍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기껏 시간을 내서 같이 나왔는데, 말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면 역시나, 화를 낼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신기하게도 그녀를 소중하다고 생각하고 있음에도, 감정적인 생각보다 이성적인 생각이 흐르기 시작했다.
홀린듯이 말들을 내뱉었다.
변명.
그러니까, 스스로에게만 하던 거짓말을, 소중하다 생각하는 페퍼에게 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의  ‘살인’이 나를 크게 뒤흔들고 있었다.
나의 마음의 장벽을 무너뜨려, 과거의 행적을 덮듯이 쌓아올린 벽이 무용지물이라는 듯이 외쳐대는  같았다.

“조금 오래 걸릴 것 같아서 자재를 사러 갔다 이제 온 거야.”
“짐은?”
“많아서, 가져다 달라고 했어.”

거짓말이다.
지극히 평범한 거짓말이다.
이 말과 행동이 페퍼에게 어떻게 비춰질지는 전혀 모르겠다.
그냥 나는 최선을 다해 진실을 숨기고자  뿐이다.

“…”

나의 말에 그녀는 잠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미안해… 말도 없이 갔다 와서.”
“…아니야… 수고했네.”

역시, 내가 사람을 잘 보았던 것 같다.
그녀는 마음이 넓었다.
쪼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본이 아니게 그녀의 성향을 이용해 버린  같지만, 나는 죄책감을 하나도 느끼지 않고 있었다.
어째서 일까?
나는 감정이 있게된 사람임에도 어째서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속임수를 쓸 생각을 하게 되어버리는 것인가?
이전의 무감각한 내가 다시 돌아온 것인가?
왕궁 생활을 하며, 다양한 사람들과 만난다.
그들과 즐겁게 이야기를 하고 실없는 농담을 하며 시간을 보내왔다.
내가 '즐겁다.' 라는 감정을 느끼며 내가 살아있음을 눈치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은 뛰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감정이 풍부한 사람들과 동화됨으로써, 나는 감정이 생겼다고 착각한 것이다.
그래, 내가 혼자있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이유는, 다름아닌….
나의 현실적인 모습을 잊지않고, 직시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마음의 소음을 삼키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럼… 가볼까?”

나의 조심스러운 말투에 그녀는 고개를 조금씩 끄덕였다.

“세티는?”

나는 일부러 발걸음을 천천히 내딛었다.

“먼저 갔어.”
“하긴…. 내가 많이 늦긴 했지.”

나는 소형 시계를 훔쳐보고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다시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옷으로 시선이 옮겨졌다.

“…옷이 멋지다. 정말 마음에 들어.”

나는 그녀의 손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페퍼는 아무런 반응도 없이 내가 옷을 가져가는 것을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평소와 다른 고요함에 나는 괜시리 조급해졌다.

‘…역시 이런 반응은 싫다.’

나의 마음은 명백하게 이상하다는 것을 신호하고 있었다.
하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았다.
물론, 나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나에게 실망하여 떠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랬을 뿐이다.

“고마워, 옷을 골라주어서 그리고… 기다려 주어서”

나의 말에도 여전히 말없이 걷는 페퍼였다.

‘음… 어떻게 해야 하려나….’

이런 상황에서도 체면을 구기려 하지 않으며, 효과적인 방법을 몰색하는 나 자신이 싫어졌다.
어째서 나는 이런 사람이 되어버린 것인가.
이렇게 한탄만 하고서는 현재 상황을 타개하지 못한다.
나는 다시 스스로를 일으켜 세웠다.
다시 다독였다.
오로지 성공만을 바라보며 살아왔다.
나는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가능성이 존재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님을 나는 알고 있다.
타이밍.
그것은 모든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테엽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알맞게 끼워 맞추어야 상황은 부드럽게 흘러간다.
지금 감정이 고조되어 보이는 그녀의 앞에서 무슨 말을 해도 잘 먹히지 않을 것 같았다.
역효과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그녀를 말로써 만족시키는 것을 그만두었다.

“시간이 늦었네… 슬슬 왕궁으로 돌아가야 될  같아.”

나는 그 말을 뒤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 역시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우리의 사이에는 정적이 흘렀고, 나는 참을 수 없는 욕망을 애써 진정시키며 묵묵히 걸어나갔다.

* *

나는 방안에 홀로 앉아서 그녀가 사준 옷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

그 어떤 생각도 말도 나오지 않았다.
작동이 멈추어버린 기계처럼 나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채로 굳어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사태를 어떻게 바꾸어야 막힘없이  풀려나갈 것인가?
나는 그렇게 멍하니  시간 동안 앉아있었다.
창 밖을 바라보니 어둠이 하늘에 천막을 늘어뜨려 놓고 있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 어떤 일이 일어나든… 자연은 그대로 흘러가는구나….”

세상의 구석구석에서 잡다한 일들이 일어났음에도, 시간은 흘러가며, 밤이 되고 낮이 되기를 반복한다.
그런 흐름속에서 나는 너무나도 작고 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아 간다.
이런 울적한 기분이 들 때마다, 나는 내가 가끔씩 인지해버리는 슬픈 사실이 떠오른다.
자아성찰을 하다 느낀 것이 하나 있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착한 아이가 되고 싶었다.
그렇기 때문에 동생 소브를 위해 노력했다.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고 싶어서 그랬다.
그렇게 고생했다.
단지, 어린 나이에 동생을 보살피기 위해서 '정말로 노력을 많이 했구나.' 라는 칭찬 말이다.
오로지 그것만을 위해서 노력한 것이다.
내가 저지른 일들이 옳지 않은 일들 뿐임에도 그렇게 칭찬을 받고 싶었다.
나는 보상을 받고 싶었던 것이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서 그런 욕심이 사라지는 듯 했지만, 가끔씩 나는 여전히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여전히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착한 아이로 남고 싶었다.
그래서 남들에게 잘 보이려고 행동하고, 배려하고, 말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극소수의 사람만 나의 노력을 알아줄 뿐이고, 나머지는 나의 부질 없는 노력이 되었다.

나는 부모에게서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유년기는 잘 보살핌을 받았다.
하지만 나의 정신적인면에서 의지할 사람이 없어져 버려서… 아니, 사랑을 줄 사람이 없어졌다보니, 방황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은연중에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나의 아버지가 되어줄 사람을 찾고, 나의 어머니가 되어줄 사람을 찾고  찾았다.
그것은 현재까지 계속 바뀌어 왔으며, 나는 바뀌어진 그들 역시 소중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의 몸과 마음이 이렇게 커버렸지만, 여전히 나는 부모의 손길을 바라고있는 것이다.
아니, 부모의 손길을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나는 언제나 착한 아이로 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내가 너무 악하다.
오늘 따라 왠지, 팜 아저씨 부인의 차가 마시고 싶어졌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차를 말이다.
부드럽고 차분한 팜 아저씨 부인의 차를 떠올리며 나는 스르르 잠이 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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