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7화 〉#20 심판자. (2) (97/128)



〈 97화 〉#20 심판자. (2)

사람은 의식하지 않는다면 두려움을 가지지 않는다.
그것이 위험한 것이라고 해도, 그것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으면, 아무리 겁이 많은 사람이라 해도 대담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의식하는 순간부터 사람은 긴장하기 시작한다.

나의 경험을 생각해 보겠다.
내가 어렸을 때는 괴물이나 그 밖의 위험요소들에 대해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의 생존에만 신경썼지, 다른 곳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매일매일 긴장된 상태에서 살아간다.
지금의 나도 그렇다.
눈 앞에 내 공방을 두리번 거리는 그녀를 두고 나는 긴장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늘 함께 있었기에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제 와서 긴장된다니, 나도 참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듯 나는 태연하게 행동해 왔었지만, 가끔가다 인식을 해버리는 바람에 나의 감정이 제어가 되지 않을 때가 종종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의 태도에 곤혹스러워 지고는 한다.
나는 아무래도 여성에 대한 방어력이 제로에 가까운 듯 하다.
…나 스스로 당황한다니, 그것만큼 우스운 이야기는 없을 것이다.
 홀로 어색한 기류를 뿜으며 헛기침을 해댔다.
아까 페퍼가 살짝 당황한 눈치를 보였던게 이것 때문인가….

“으흠, 흠….”

나의 기척에 그녀는 두리번 거리는 것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왜?”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다.
내가 그녀에게 나타내는 반응은 그녀에게 의문점을 남기기에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페퍼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자,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중력에 의해 흔들거렸다.
아니, 찰랑거렸다.

‘왜 그런거에 시선을 집중하는거냐….’

나는 내 자신에게 한 소리를 하고는 최대한 침착하게 말해보려고 노력했다.

“아… 음… 혹시  궁금한게 있어?”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뜬금없고, 게다가 완전히 크게 벗어난 듯한 나의 질문 말이다.

“…? 아니, 딱히.”

역시나 당연한 반응이다.

“아, 아니… 계속 두리번 거리길래….”

나의 어설펐던 언행을 변명하기라도 하듯 딴청을 피웠다.

“음~ 전에도 와봤지만, 천천히 둘러볼 기회는 없어서.”
“둘러본다니?”
“여긴 너만의 공간이잖아?”

‘그렇긴 하다.’

“…그렇지?”

나는 페퍼가 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매우 궁금 해졌다.

“그래서 너를 알아가….”

무언가 설명을 하려던 페퍼가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입을 닫아버렸다.

“…? 왜 말을 하려다 말아.”

갑자기 반응이 돌변해버린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얼떨떨한 기분을 표했다.

“아, 아니야. 좋네 여기. 이것저것 만들기에….”

무언가 얼버무리려는 그녀의 태도에 나는 의아한 감정이 들었다.
결코 기분 나쁘다는 것이 아닌, 단순한 의문일 뿐이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털끝 만큼의 불쾌함도 느끼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 좋긴하지. …시간도 늦었으니, 슬슬 가자.”

저녁 식사가 끝나고 잠깐의 텀을 두어 만났던 것이기에, 더이상 그녀의 시간을 빼앗는 것은 그만두고 싶었다.
그녀와 있는 시간은 즐거웠지만, 무엇이든 적절한 때가 있는 법이다.
그리고 어느정도 선을 지키는 것이 매우 좋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그래… 어, 가야지.”

그녀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여러번 쓰다듬고는 두 팔다리를 뻣뻣하게 움직이며 걸어 나갔다.
나는 그녀를 그녀의 방으로 바래다 주고 싶었기 때문에, 기름이 묻은 손을 대충 털어내고는 서둘러 뒤따라 갔다.

* * *


아직 해가 떨어지지 않았음에도, 복도는 매우 조용했다.
그저, 어색해진 우리 둘 사이에 발걸음 소리만 일정하게 날 뿐이다.
일정한 간격으로 들리는 서로 다른 발걸음 소리는 왠지 모르게 편안한 기분을 주게 했다.
사람은 제각각 자신의 개성이 두드러진다.
간혹가다 자신의 개성을 양보하는 사람이 있기는 하다만, 내가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 중에 그런 사람은 매우 적었다.
지금도 같다.
우리는 서로 먼저 박차고 나가지도 않고, 너무 느리게 걸어가지도 않았다.
마치 서로의 발걸음을 의식하듯 일정하게 상대방의 발걸음에 맞추어 걸어나갔다.
설령, 이러다 늦는다고 해도 나는 기분이 나쁘거나 하지 않았다.
고요한 페퍼의 목도 그녀의 심정을 대변하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평화로운 정적이 너무나도 좋았다.
더군다나 페퍼와 함께라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 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너무 정적인 것도 좋지 않다고 생각한 나는, 입을 열었다.

“페퍼, 방으로 가서 뭐할거야?”

지극히 평범하고 아무런 부담이 없는 질문을 했다.

“음~ 먼저… 공부를 좀 해 둬야 되겠지.”
“공부?”

지금의 그녀는 무엇을 공부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지금은 의학에 대해 공부하고 있어.”
“의학? 혼자서?”

내가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었지만, 유일하게 의학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얻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에 포함된 여러 자료들이 나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았던게 컸다.
그래서 왕궁에 와서 그 학문을 공부하고 있는 포드에게 물어보는 것이 잦았다.
정말 그와 말을 섞기는 싫었지만, 나의 성장을 위해서 그런 불편함도 감수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군을 만들기 위한 것에 이바지 한다.' 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 중이다.

“응, 하다보니 재밌더라고?”

다시금 느끼는 것이지만, 페퍼는 머리가 좋다.

“어디까지 공부 했는데?”

“음… 어디까지 라고 하기에는 뭐하네… 지금은 질병에 대해 공부하고 있어.”
“질병? 이를테면?”
“오~ 복습을 도와주는거야?”
“뭐, 뭐… 그런 셈이 되려나? 이런게 복습을 돕는 거라면, 꽤나 괜찮지 않을까 싶은데….”

씨익 웃으며 내 옆구리를 툭툭치는 그녀의 팔꿈치로 의식이 쏠린다.
덕분에 나는 횡설수설 했다.

‘나도 어쩔 수 없구나, 역시 사람인가?’

“그래~ 그럼, 먼저 사람의 몸에 이상이 올  대부분은 외부의 영향을 받아서 병에 걸리는 상황이 많지.”
“외부의 영향이라 함은….”

나도 완전한 멍청이는 아니었기에, 몇가지의 질병들에 대해 알고는 있었다.

* * *

“아, 다왔네.”
“아, 그러네….”

발걸음을 멈추며 무미건조하게 들리는 페퍼의 목소리에 따라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제 시작 이건만….’

역시, 나는 타이밍이  좋지 않다.
조금만  빨리 말을 꺼냈더라면 대화를 더 길게 이어나갈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나는 아쉬움을 토로하며 말했다.

“다음에 이어서 이야기 해보자고.”
“그래….”

페퍼는 무언가 할 말이 있는  했다.
하지만 입을 벌렸다 다물었다.

“…?”

나는 구태여 그녀의 시간을 붙잡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헤어짐의 씁쓸함을 뒤로 하고 나의 공방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럼… 수고하시지요.”

나는 방긋 웃으며 페퍼에게 인사를 했다.
아쉽지만, 헤어질 때도 있는 법이다.
그래야 만남도 있으니까 말이다.

탁- 탁- 탁-

멍하니 서있던 페퍼를 뒤로하고 몇걸음을 뗀 순간 누군가가 뛰는 소리가 들렀다.
그리고 갑자기 내 뒤통수가 얼얼해졌다.

퍽—!

“아야!”

주위에 아무런 위험요소도 없었고, 페퍼 외에는 경계할 만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굉장히 당황했다.

“아니, 뭐, 뭐야!”

내가 당황해서 뒤돌자, 멋쩍은 듯한 페퍼가 서있었다.

“에, 에잇! 누나한테는 경의를 담아야지!”

에라 모르겠다.
저질러 버리자.
…라는 듯한 그녀의 태도에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뭐지? 뭐야… 어떻게 된거야?’

이런게 바로 믿는 망치에 발등 찍힌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황급히 자신의 방으로 도망치는 페퍼를 나는 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 * *

끼릭- 끼릭-

나는 공방에 홀로 앉아서 부츠를 손보고 있었다.
완충 작업은 완료했고, 이제 실전에서 유용하게 쓰이는지 시험을 해볼 필요가 있었다.
나의 공방으로 걸어오는 도중, 어이없는 상황에 정신이 반즈음 나가있었다.
다행이 도착하고 나서 제정신을 차리기는 했다.
나는 방금 전의 페퍼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색한 그녀의 모습에 나는 그 행동의 의미를 알아내고 싶어졌다.
내 뒤통수가 아프기는 했다.
진짜 봐주지도 않고 쌔게 때렸다.

‘무슨 사람 손이 그렇게 매워….’

나는 다시 한번 뒤통수를 매만졌다.

따끔.

‘아 맞다.’

페퍼가 나의 뒤통수를 때린 이후로 갑자기 뒷목의 선을 따라 피가 흘렀었다.
매우 소량이었지만, 이유없는 혈흔에 나는 또 다시 당황하고 말았다.
그냥 페퍼의 손톱에 찔렸거니 하고 넘어가고 싶었지만, 역시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하아… 대체 뭐지….”

최근들어 뭔가 망설이는 듯한 그녀의 모습이 눈에 자주 밟혔다.
그리고 방금 전, 나의 뒤통수를 때린 뒤에야 속시원 하다는 모습이 보였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나에게 화풀이를 하고 싶었던게 아니었을까?
평소의  행실을 생각하니, 어느정도 납득이 갔다.

“그래… 뒷통수 한대면 많이 봐준거지….”

그렇게 결론을 내렸어도 여전히 나는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왜 뒤통수냐고!”

내가 머리를 쥐어짜며 외치자, 옆에서 쿵쿵 거리는 소리가 들렀다.

“조용히  하자! 페스틴!”

소피다.
슬프지만,  공방 바로 옆에 있는 방이 소피의 공방이었다.
사실 내가 쓰고 있는 이 공간도 방이라고 하기에는 협소하기는 하다.
그냥 비어있는 창고를 내가 물려받은 것과 다름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딱히 그것에 대해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걸로도 충분하다.
심지어는 전에 팜 아저씨 공장에서 썼었던, 내 자그마한 공방보다 확실히 컸으니까 말이다.

“후우…. 내가 문제지….”

조용히 내뱉는 한탄은 다행이 소피의 귀에 들리지 않았는지, 더 이상 호통은 들리지 않았다.
소피 덕분에 나의 주의가 흐트려 졌다.
이것은 단순하게 밤 산책을 하고 싶은 나의 변명이다.

“그럼, 숨좀 돌릴까?”

굽혔던 허리를 피고는 나는 기지개를 폈다.
이건 언제나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 * *

공방을 나서고, 어둑어둑해진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지금이… 제… 몇시야?”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다.

‘것참… 엘리스는 부지런 하시다니까….’

바쁜 일이 있었는지, 미처 등불을 켜 놓지 못한 엘리스에게 한 소리 했다.
주머니에서 부싯돌을 꺼내, 램프의 심지에 불을 붙였다.
…이것은 빈말이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만, 전혀 그런 생각이 없는 것이다.
나의 특이한 이 화법은 남들이 들으면 오해하기 쉬운 것이기 때문에, 주로 나 혼자나 속마음으로 이야기 하고는 한다.
일종의 오락이라고 생각한다.

‘흐음… 그런가?’

아니, 나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에 의해 밝아진 복도를 느긋하게 걸어가고 있던 나에게 한순간 불안함이 몰려왔다.
그리고 어김없이 현실로 되어 돌아왔다.

삐빅—! 삐빅—!

“…!”

아까 페퍼에게 건네준 자그마한 기계에 몰래 무언가를 집어넣었다.
그것은 페퍼가 그 위급할 때 쓰라한 그것이 사용 되었을 때, 즉각적으로 내가  수 있도록 연결해 놓았던 것이다.
이것은 통신할 때 쓰이던 코어를 조금 손봐서 만들었다.
대화를 할 수 없지만, 상대방의 위치를 어렴풋이 알  있게 한다는 것이다.
 말은 즉슨, 위험신호가 울려 신호가 오면, 위치를 파악해서 도움을 주러 바로 갈 수 있다는 말이다.

나는 서둘러 옆의 벽에 매달려 있는 램프에 불을 붙였다.
램프에 불을 붙였지만,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다.

‘미리 챙겨두길 잘했네….’

나는 환해진 복도를 보며, 일말의 기쁨을 느꼈다.
그리고 서둘러 손목에 있는 것에 눈을 돌렸다.
밝아진 복도는 기계에 표시되는 신호를 더욱 선명하게  수 있게 해주었다.

“여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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