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8화 〉#20 심판자. (3) (98/128)



〈 98화 〉#20 심판자. (3)

나의 머리 바로 위에서 페퍼가 위험에 처한 신호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위라 함은….'

나는 머리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 보았다.
그런다고 해도 보이는 것은 칙칙한 색의 천장일 뿐이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그곳에 위치한 공간들을 상상하기 위한 것이었다.
나라도 이런 무의미해 보이는 행동을 그냥 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머리 위에는 왕궁의 최상층일 것이다.
대체로 공방은 좋지 않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곳이 많다.
왕궁에 있는 공방이라고 해도, 깨끗하다고는 못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굉장한 것을 만드는 공간은 아니다만, 개인이 개발하는 것을 만드는 공정 과정에서 어느정도 좋지 않은 공기가 새어나온다.
여러층으로 나뉘어져 있는 왕궁에 최하층에 위치한 상황이라면 안좋은 공기가 위로 흘러 윗층에 악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비행장을 제외하고 제일 최상층에 위치한 것이 우리가 쓰고 있는 공방이라는 소리가 된다.
그러니까, 최상층인 공방 위로는 비행장 뿐이라는 소리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모종의 이유로 비행장에 올라간 페퍼가, 저번의 나처럼 곤혹을 치르게 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나의 몸은 지체할  없이 옥상으로 향했다.
…나의 장비들을 두고 말이다.


* * *

역시나, 체력단련을 통해 늘어난 나의 체력 덕분에 비행장에 멈추지 않고 올라왔다.
상당히 많은 계단을 한번에 오르기에는 평범한 사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나도 이제 평범하지 않다는 말인가?'

그 이유 외에도 많은 것이 있었지만, 내가 평범과는 조금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쾅-!

두 번째 신호가 잡혔다.
그렇다.
그녀는 내가 말한  번의 기회를  사용한 것이다.
그것을 전부 사용할 만큼 위기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혹여나, 그녀의 호기심 때문에 저지른 일이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내가 한달음에 도달한 비행장의 분위기는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달랐다.
언제나 위기의 순간에 느끼는 그런 긴장감이 넓디 넓은 비행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멀리서 페퍼의 외침이 들렀다.

"토니! 조심해!"

쾅!

그녀의 외침이 울리자 마자, 커다란 굉음이 들렀다.

'토니…라고?'

"키에에에엑!"

더물어 괴물의 괴성도 들려왔다.

'아, 또 인가….'

나는 주저함 없이 외쳤다.

"모두 물러서!"

그리고는 휘발유가 담긴 통을 들어 점화를 한 뒤, 그들을 향해 던졌다.
괴물로 보이는 실루엣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조금 빗나가고 말았다.
하지만 이것은 의도한 것이다.
곧 이어서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 불꽃은 어둑해진 비행장을 희미하게 비추며, 토니와 페퍼에게 위해를 가하던 괴물의 몸뚱아리를 보여주었다.
그 불꽃은 자신의 몸을 흔들면서, 마치 '여기다!  녀석이 너의 적이다!' 라고 말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나에게 정보를 던져 주었다.

튼실한  다리, 거대한 머리에 빼곡히 박힌 이빨들이 보였다.
그것도 잠시, 그 괴물은 서둘러 태세를 정비했다.
덩치에 비해 꽤나 약삭바르고 움직임이 날렵한 듯 했다.
나름의 지성도 가지고 있으며, 흉폭성 또한 굉장하다는 것을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방금처럼 두 사람을 날카롭게 공격하려 하지 않았을 테다.
그리고 내가 던진 휘발유를 보고 몸을 어둠속에 숨기려 하지도 않았겠지.

"…!"

토니로 보이는 사람의 형체가 내가 서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다음 공격을 대비하라고!"

그것은 전장에서 한눈 팔고 있는 토니에게 하는 조언이자, 경고였다.
나의 외침에 그는 자신 앞에 있는 거대한 괴물에 시선을 옮겼다.

"페스틴!"

그녀의 기쁨과 안도감이 섞인 외침이 들리자, 나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대개 사람은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한다.
그 사람에게 잘보이고 싶고,  사람이 보기에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면 더욱더 그렇다.
그래서 평소보다 더 힘이 들어가며, 오버를 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과거에는 나도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는 냉정하며, 침착하게 나에게 굴러들어온 문제를 해결해 나갈 뿐이다.
단지, 지켜보고 있다는 시선을 의식해버리면 실패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더욱더 커지기는 하다.

'…지금 그게 문제냐!'

나는 어서 저 방해물을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지켜내야 한다.
하지만, 급하게 오느라 미처 챙기지 못한 장비들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
작은 바람이 담긴 것처럼 품 속을 더듬거려 보았다.

달그락—

현재 믿을 수 있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팔다리와 몇개의 냉각수 그리고 휘발유 뿐이다.

'이를 어쩌나….'

나는 머리를 굴리며  괴물에게 달려갔다.

"조심해 페스틴!"

걱정 섞인 페퍼의 외침이 들려왔다.
단순히 용기에만 의존한 돌진이 아니었다.
나에게는 확고하고 완벽한 계획이 있고, 그것이 성공할 것이라는 굳건한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무의미한 죽음은 질색이다.
죽더라도  의미있는 죽음을 원하는 것이다.
여기서 죽으면 개죽음이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는다면, 이번에 죽는 것은 나다.
나는 괴물에게 적의를 드러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여긴 네가 있을 곳이 아니야…."

그것은 고요하지만 분노에 타오르는 나의 감정을 아낌없이 드러내준다.
근처에 토니가 페퍼와 있다.
분명, 이 두사람의 계획은 토니가 주의를 끌고 페퍼가 한방을 날려 쓰러뜨리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각자의 장점을 살린 전략은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것처럼 두번의 시도가 실패로 끝나버리고 만 것이다.
내가 건네준 것의 화력은 생각보다 약했던 모양이다.
나는 시험해 보기 위해 냉각수를 던졌다.
꽤나 그 괴물과의 거리가 근접해졌기 때문에 쉽게 맞출 수 있었다.

쨍강—

"키엑?"

괴물은 움찔했다.
마치 사람이 당황하기라도 하듯이 반응을 한 것이다.
이로써 이 괴물에게 어느정도 지능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냉각수는 효과도 없었다는 것도 말이다.
그 괴물은 냉각수가 닿은 부분의 근육을 조금씩 움직여보았다.

"키에에엑!"

얼핏 보기에 멀쩡해 보였다.

"역시나… 정답이었다."

지금부터 나는  괴물을 유인할 것이다.
 괴물은 어느정도 지능은 있지만, 유인을 당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지능이 높지 않다는 것도 확실시 되었다.
나는 확신에 차서 어둠속에 있는 토니에게 소리쳤다.

"토니, 거기있어?"
"…! 어! 있어!"

그는 기쁜 듯이 외쳤다.

"가지고 있는 무기가 있어?"

나는 다시 한 번 더 외쳤다.
일단 내가 결론 내리기를, 이 괴물을 나 홀로 쓰러뜨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체력도 체력이고 홀로 장시간 버티기에는 너무 버겁다고 느낀 것이다.
그래서 토니가 무엇으로 어떤 도움을   있는지 알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 묻는 것이다.

"지금은 없어! 고, 공방에는 있지만…!"

'호오… 나랑 같은 상황인가….'

"페퍼는?"
"이, 이제… 없어…."

아주 조금의 절망이 느껴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면 됐어! 된거야!"

나는 기쁨에 넘쳐 외쳤다.
오히려 이런 최악의 상황이 기분이 좋았다.
이와 같은 순간을 딛고 일어설 때의 성취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쾌감을 선사해 준다.

"토니! 지금 당장 갔다온다면 어느정도 걸려!"
"키에엑!"

그 괴물은 나에게 주둥이를 벌려 삼키려고 했다.
나는 순순히 잡히지 않으며 뒤로 뛰어 거리를 벌렸다.

"아… 그…."

시계를 휴대하고 다니는 나와 달리, 쉽사리 시간을 정확하게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너는 보통 코어 다듬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지?"

쾅!

괴물은 나에게 발길질을 했지만, 간단히 나는 피했다.

"한… 십분?"
"좋아, 그 정도는 버텨줄수 있어, 다녀와!"
"뭐, 뭐?"
"얼른! 서둘러!"

토니는 체구가 작고, 육탄전을  못하는 것 같지만, 손재주가 정말 뛰어났다.
나는 통신 장비에 사용할 코어를 다듬는데 30분 정도 소요되는데, 그는 10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나도 손재주가 뛰어난 편이라고 자부하지만, 그는 나보다  수 위였다.

탁! 탁! 탁!

성인이라고 믿기 어려운 자그마한 발자국 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다.

"페퍼! 거리를 벌릴테니, 내가 서있는 곳으로 뛰어올 준비해!"
"뭐? 지금?"
"저 녀석의 달리기 속도는 어느정도지?"
"토니랑 거의 비슷해! 빠르지만… 어떻게든 따돌릴 만 했었어!"

토니는 신장도 신장이지만, 장거리 달리기에도 약하며 빠른 모습을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조금씩 느껴지는 분위기에 의하면, 토니는 나에게 무언가 숨기고 있는 것 같았다.

"방금 토니의 달리기가 평소랑 달랐어?"

모두가 체력을 기르는 체력장에 다같이 가서 각자의 신체 능력을 체점 받았었다.
그 자리에는 페퍼와 토니도 있었다.

"아, 아니… 생각보다 빨랐어!"

토니가 주위 사람들에게 본 실력을 숨긴 것이 사실로 드러나면, 어제 본 그 사람과 토니는 동일 인물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페퍼, 잘 들어. 내가 여기에 휘발유가 담긴 유리병들을 놓고 갈거야."
"휘발유?"
"저번에 봤지? 점화는 아주 간단해! 핀만 뽑으면 되니까!"
"핀?"
"키에에에엑!"

우리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을 만한 참을성이 없는 괴물이 나에게 달려왔다.

"바늘 같이 생긴게 하나 있어! 뽑고 3초 뒤에 발화돼!"
"알겠어!"

나는 품에서 휘발유가 담긴 유리병 하나를 던져 다가오는 괴물의 왼쪽  언저리에 맞추었다.
그리고 그 괴물이 불길을 피해 방향을 틀기를 기다렸다.

"키, 키에에엑?"

괴물은 불이 번지는 것을 두려워하며 탈선했다.
역시, 조금 방향이 틀어진 것이다.
나는 비상용 몇개를 품속에 담아둔채로 몽땅 바닥에 내려 놓고, 괴물이 방향을 튼 곳을 향해 달렸다.

"좋아! 대결이다!"

나는 기쁘게 웃으며 괴물에게 외쳤다.
괴물은 나의 의도대로 유리병들이 놓여진 곳보다 내가 있는 곳으로 곧장 달려왔다.
페퍼는 괴물과의 거리가 떨어지자, 유리병들을 황급히 집어들었다.

"페퍼! 이 녀석이 눈치 못채게  속에 가두자!"
"불 속?"

나는 불길을 빙 둘러서 울타리를 만들 생각이었다.

"나는 신경쓰지 말고!"

나는 불꽃이 일은다고 해서 겁을 먹지 않는다.
하지만 이 괴물은 나보다 튼튼한 내구성이 있으면서도, 불 앞에서 주저하는 태도를 보인다.
두려움.
그것은 하나의 감정.
감정을 가지는 순간 약점이 드러나는 것이다.
지능을 가졌다고 해도 덮어지지 않는 표적이 생겨버리게 되는 것이다.

"응…! 알겠어!"

역시, 사람과 친밀한 관계가 되면, 서로를 신뢰하기 쉬워진다.

"우리의 콤비를 보여주자고!"

나는 그 순간 일련의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챙그랑-
챙그랑-
화르르륵-

"하…."
"돼, 됐다!"

한참을 뛰어다니다 겨우 불길 속에 가두는 것을 성공했다.

"키, 키에, 키에에엑?"

괴물은 덩치에 맞지 않게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이로써 표적은 움직이지 않는다.

"하아… 하아…."

작고 힘없는 거친 숨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수, 수고… 하아… 해, 했어…."

뒤를 돌아보니, 토니가 자신의 키만한 커다란 총을 등에 들쳐메고 있었다.

"세상에나…."

그가 그 무거워 보이는 것을 들고온 것에 놀란 것이 아니라, 나의 예상이 딱 맞았다는 것에 놀란 것이다.
시간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잠시만… 비켜 줘…."

토니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세를 잡았다.
거치대에 걸쳐진 커다란 총구가 괴물로 향했고, 토니는 숨을 고르다 크게 들이마셨다.
그리고는 집중했다.
어둠 속에서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한 그의 눈빛이 소름 돋을 정도로 강렬했다.
은빛으로 강렬하게 빛나는 그의 눈동자는 하늘의 달빛보다도 찬란했다.
목표를 향한 강렬한 욕망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토니의 앞에서 비켰다.
괴물을 흘낏 보니, 불길 속에 갇혀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페퍼도 어느새인가 우리의 옆에 와서 섰다.
그녀는 궁금한게 정말 많다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호기심을 참고 있는 것 같았다.

"귀 막아."

짧은 그의 한마디에 우리는 서둘러 귀를 막았다.
귀를 막은 직후 큰 진동이 울렸다.

쾅ㅡ!
쐐애액ㅡ!
퍼억!

질끈 감았던 눈을 떠보니, 흔들림이 없이 견고해 보였던 괴물의 다리가 크게 꿰뚫려 있었다.
그 충격으로 인해, 괴물은 행동 불능이 되었다.
환부가 총탄에 의해 지져짐으로, 재생이 더뎌졌다.

"와, 와…."

나는 멍해진 정신으로 감탄을 표했다.

'괴, 굉장한 파괴력이다….'

"뭐, 뭐뭐뭐 뭐야아아아아!"

페퍼는  놀란 듯 했다.
그런 우리들을 보고는 토니가 살짝 웃었다.

* *

우리는 방금 있었던 소음에 대해 추긍을 받고 있었다.
소피가 우리를 윽박지르며 말했다.

"대체! 어떻게 된거야!  소음은!"
"아하하… 그게 말이죠?"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미리 말을 맞추어둔 것이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실험을 위해 큰 소음을 낸 것이고, 그 폭발의 영향력 때문에 주위가 불이 붙고 말았다는 것으로 입을 모았다.
괴물의 시체는 둘을 먼저 보내고 내가 잘 처리했다.
괴물은 코어를 제거하면 재가 흩어지듯 녹는다는 것을 이용했을 뿐이다.
우리가 짜여진 각본대로 이야기하자, 나는 소피의 반응에 주의를 기울였다.
여기에서 그녀가 어떤 태도를 보이냐에 따라 마녀인지, 선량한 피해자인지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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