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화 〉#20 심판자. (4)
“하아….”
우리가 입을 모아서 말하자, 그녀는 자신의 이마를 짚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일단, 숙면을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진심으로 고뇌하는 듯한 그녀의 모습에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었다.
자, 아직 이것 가지고는 판단을 쉽게 내려서는 안된다.
나는 나 자신에게 다시 주의깊이 살펴볼 것을 권했다.
“너희… 그렇다고 이런 한밤중에….”
획실히, 늦은 시간이기는 했다.
나의 기준에서는 아직 잘 시간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핑크빛 잠옷을 걸친 소피의 모습은 그것을 각인시켜주기에 충분했다.
‘그것보다… 왜 저리 귀여운 잠옷을 입고 있는거야?’
매력.
그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숨겨진 무기다.
그것을 이용해 원하는 것을 얻을 수도 있지만, 사람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는 어느정도 갖추어야 하는, 나름대로의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사람에 대한 관찰을 하다보면, 각양각색의 매력들이 보인다.
주관적인 시선이 아니라 객관적인 시선으로 남들을 보아야 그 사람만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랬기 때문에, 이 점은 거의 확실시 하고 있는 점이다.
이 매력에 한층 더 강렬함을 줄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반전 매력이다.
단순히 앞에 꾸며주는 말 한마디가 더하여 진 것 뿐이지만, 그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겉으로는 안 그래 보이지만, 사실은 엄청 마음이 여린 사람도 있다.
평소에 차가운 모습을 보이지만, 가끔씩 상냥함을 들춰 보이는 사람도 있다.
똑똑해 보이지만, 가끔씩 덤벙대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도 있다.
비록, 매우 적은 양의 예시이지만, 분명하게도 많은 사람들은 각자의 매력이 내면에 잠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깨우는 것은 본인을 포함한 주변 인물이라는 것이다.
…라는 것이 내가 읽은 심리학에 관련된 책의 일부 내용이다.
나는 처음에는 긴가민가 했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나름대로의 타당한 이유가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해 나가고 있다.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미간을 잔뜩 찡그리고 있는 소피의 눈치를 보면서 슬쩍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괴물 토벌에 이바지 하고픈 마음 때문에….”
변명이다.
추악한 생각을 자기도 모르게 스스로 내뱉고 마는 경우가 있다.
나는 우리의 순수한 마음을 이해해 달라는 간청을 한다는 모습을 떠올리며 그녀의 마음을 이용했을 뿐이다.
…라는 변명을 해본다.
그러니까, 그녀의 눈에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말한 어린아이가 앉아있을 뿐일테다.
그러니 나는 마음 놓고 마음껏 그런 내 자신을 상상했다. 분명, 괜찮을 것이다.
“끄응… 알겠다…. 너희도 충분히 반성하는 것 처럼 보이니… 이번 만큼은 특별히 봐주지….”
소피는 고뇌를 하다 큰 결심을 하는 듯한 강건한 표정을 짓더니, 우리를 쭉 훑어 보았다.
그리고는 나에게로 시선이 멈추더니, 이런 한마디를 내뱉었다.
“동기도 그렇게 나쁜 건 아니라고 하니… 혼낼 수도 없고… 다음부터는 조심해라… 알겠지?”
무서울 정도로 일이 너무나도 잘 풀린다.
“네, 네….”
“…”
“넷…!”
“대답 봐라… 아아앙?”
험상궂은 표정을 지으며 소피가 우리를 향해 윽박질렀다.
“네!”
“…네.”
“네엣!”
‘것참… 어린이도 아니고….’
“토니, 가자….”
소피는 정말로 졸렸는지, 눈을 비비며 하품을 크게 했다.
그리고는 웬일로 의욕적이게 발을 어기적 어기적 끌고 가며, 자신의 침실이자 휴식공간을 향해 걸어갔다.
소피에게 있어서 잠이란 매우 중요한 것 같았다.
“…페스틴.”
“응?”
토니가 그녀를 따라가던 움직임을 멈추고 나를 불렀다.
“…또 보자.”
붉게 상기된 얼굴로 나에게 인사를 하니, 내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미쳐 날뛰었다.
아,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이성을 좋아한다.
이것은 단순히 우정일 뿐이다.
다들 그런게 있지 않은가?
그토록 원하던 것이 드디어 얻어진 기분 말이다.
그것도 연애에 관련된게 아니냐고?
…됐다.
그만하면 됐다.
나도 내가 어떤지 잘 모르겠단 말이다….
“하암~”
페퍼도 긴장이 풀렸는지 졸려하고 있어서, 자세한 것은 내일 아침이 밝아지고 나서 묻는 것이 나아보였다.
무엇보다도, 왜 내 뒤통수를 때렸는지 알고 싶었다.
“페퍼, 내가 바래다 줄게.”
“무어~? 괜찮아~”
반쯤 풀린 눈으로 말하는 페퍼는 전혀 마음이 놓이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전혀 안괜찮아 보이는데, 얼른 내 손이나 잡아라.”
“어, 어?”
페퍼는 당황한 듯 했지만, 휘청거리는 페퍼를 부축 하기에는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과한 밀착은 내가 이성을 유지하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손으로도 충분히 에스코트는 가능하리라 판단한다.
‘…나는 분명, 페퍼를 업어본 것이 맞겠지?’
나는 공방의 불을 끄고는 페퍼를 이끌며 복도로 향했다.
* * *
사실, 걸어가면서 묻는 것은 어떤가 했지만, 페퍼의 상태가 말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말 않고 잠자코 걸어왔다.
정적이 흐르던 시간이 눈 녹듯 사라지고, 어느새 페퍼의 방 문 앞에 도착했다.
“에헤헤… 고마워~ 잘자!”
페퍼는 베시시 웃으며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녀가 손을 흔드는 것과 동시에 페퍼의 머리카락도 같이 흔들렀다.
‘이 사람은 피곤해지면 완전 딴 판이구만….’
시간이 늦었다.
나도 피곤함을 느끼는 것 같다.
‘크흠….’
자, 슬슬 나도 돌아갈 시간이다.
기분 전환은 했다.
이제 나의 신무기를 개발할 시간이다.
나는 뻐근해진 양 어깨를 주무르며, 아무도 없는 어두컴컴한 복도를 홀로 걸어갔다.
* * *
“앗, 따가워…!”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이 나의 얼굴을 타고 눈으로 곧장 돌진했다.
덕분에 나의 눈은 불이라도 데인 것처럼 따갑고 뜨거워졌다.
전에 포드에게 들은 것이지만, 인간의 몸에서 나는 땀의 성분 중에, 요리를 할 때 사용하는 소금 이라는 것과 비슷한 것이 있다고 했다.
그것이 염분이라고 했었던가….
그것은 사람이 무언가를 섭취하고, 그 섭취한 것에서 영양분 같은 것을 체내에서 빨아들이면 그것이 돌고 돌아 땀으로 배출 된다고 했다.
…인체의 상호작용은 어떠한 규칙성이 있다.
분명, 이 자그마한 사실 조차도, 나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게 짠가…?’
나는 이미 땀이 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괜한 호기싱에 볼을 타고 내려오는 땀을 핥았다.
“역시, 짜네.”
…새벽에 지금 뭐하는 짓인가?
‘것참….’
지금 나의 상태를 보니, 슬슬 자지 않으면 미칠 것만 같았다.
나는 만지고 있던, 장비들을 잘 정리한 다음, 먼지를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행이게도 창문을 열어 두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뿌옇게 피어오르는 먼지들을 다 먹어버릴 뻔 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말이지….’
몇 시간 뒤면, 아침 식사시간이라 살짝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는 참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그래도… 무언가를 마시는 것이 나으려나….”
나는 나의 개인 작업실에서 나와 공방 한가운데에 있는 물통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컵에 따라서 마시라는 소피의 명령을 무시한채로 그대로 들이켰다.
물론, 물통에 입을 대지는 않았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서 그다지 유쾌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딱히 반항을 해보려는 것이 아니라, 몰래 입을 대고 마시고 있는 소피를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도 반전 매력입니까? 대답해 보시죠, 잘난 심리학자님.’
나는 코웃음을 치며 방으로 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갔다.
* * *
몸을 전체 씻기에는 시간도 늦었기도 했고, 물이 따뜻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대충 세수만 하고 욕실을 나왔다.
더럽다고 하지마라.
앞으로 몇 시간 뒤면, 그렇지 않아도 씻을 예정이다.
몸의 컨디션을 조절하기 위한 계획의 일부일 뿐이다.
“하하… 좋구만….”
아무도 없는 텅빈 복도를 혼자 걷는 것은 왜인지 모르게 나의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것 같았다.
고요한 길고 긴 공간을 나의 발걸음으로 가득채우는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 같았다.
내가 존재하기 때문에, 아무런 변동이 없을 터인 공간이 일렁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살아있다.
나는 여전히 세상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후….’
대뜸 이런 생각을 하고는 하지만, 내가 그렇게 하는 이유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한숨이 절로 나오게 된다.
그런 내 자신이 한심하다고 느끼기 때문이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지쳤다는 것도 아니다.
단지, 나를 위로해줄 사람이 하나도 없기에, 나 스스로를 혼자서 다독일 수 밖에 없는 슬픈 현실에 한숨이 나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방식은 특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참으로 나약한 존재인 나를 일으켜 세우는 것은 여간 쉬운일이 아니었다.
소브 보다 훨씬 더 귀찮았다.
나는 처음부터 강한 사람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고는 하지만, 그래도 노력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여기까지 성장하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늘 이런식이다.
내 안에서 두개의 자아가 싸우는 것 같다.
한쪽은 지나치게 부정적이어서 괜한 걱정을 사서 하기도 하고,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기도 한다.
반면에 다른 쪽은 너무 지나치게 긍정적이어서 근거없는 확신을 가지기도 하고, 이루어질 수 없는 행복한 상상에 빠지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늘 말하는 것이다.
뭐든지 적당한 것이 최고라고.
나는 지친 몸을 이끌며, 방문을 열었다.
* * *
‘음…?’
누구나 느낄 정도로 나의 방이 분위기가 이상해져 있었다.
쉽게 말해서 기척이 느껴진다.
‘이건 또 뭐람….’
다시 한 번 더 번복하는 말이지만, 사람은 위기의 순간에 큰 힘을 발휘한다고 하던가?
그것이 외부적인 것에 영향을 미치는 것 보다, 내면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기는 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일단, 누구나 느낄 수 있다는 점의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문을 열 때 누군가의 흠칫 놀란 듯한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낮이었다고 한다면 절대로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 였는데, 새벽이라 다행이도 잘 들렀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여성의 목소리.
지극히 당연하게도 마녀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녀가, 비행장 외의 다른 장소에서도 습격 하리라는 것즈음은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 추리하기 쉬워서 하품이 나올 지경이다.
나는 최대한 눈치채지 않은 것처럼 행동했다.
눈을 반즈음 뜨고, 휘청거리며 다리의 힘을 점점 풀었다.
나는 금방이라도 침대에 드러누울 것처럼 움직였다.
방심.
'방심해라.' 라고 속으로 되뇌었다.
스슥….
나의 겉모습은 피로에 쪄들어 보여도, 나의 귀는 쌩쌩했다.
민감한 귀는 자그마한 소리를 놓치지 않고 잘 주워 들었다.
등 뒤쪽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나며, 그 무언가가 나를 제거하기 위한 최적의 장소를 찾기 위해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렸다.
나는 등 뒤에 무언가에 대해 나의 모든 감각을 집중 시키려는 찰나에 책상에서 종이 한 장이 떨어져 내렸다.
팔랑—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그 종이를 집어 들기 위해서 몸을 숙였다.
그리고 그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