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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화 〉#20 심판자. (5) (100/128)



〈 100화 〉#20 심판자. (5)

쐐액—!

나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소리가 내 등 뒤로 스쳐 지나갔다.
나는 순간적으로 굳었고, 소량의 피가 내 목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꼈다.
정말로 타이밍이 좋았다.
내가 무의식적으로 무언가 줍는 행위를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죽었을 것이다.
위치상으로 적은 심장 부위를 노린 것 같았다.

‘젠장… 피곤할 때….’

하긴,  목숨을 끊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 언제 어디서든 나를 잡으려고  것이다.
드디어 마녀 쪽의 사람들이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 듯 했다.

‘것참….’

나는 숨을 크게 들이 쉬며 숙였던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아… 과한 관심은 제게 독이 됩니다만…. 

그간 쌓이던 피로는 여전히 존재한다.
오늘도, 무리했다.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을정도로 일들이 겹친다.
뭐, 평범한 사람이라면 별것도 아닌 피로도 이기는 하다.
24시간 내내 필사적으로 주변을 경계하고 있는 나에게는 피로가 풀릴 틈이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의 감각은 시퍼런 날이 번뜩이고 있고, 머리 또한 또렷했다.

…상당히 가까운 거리에서 누군가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옷자락이 서로 미끄러지는 소리.
온기를 내뱉는 숨소리.
그런 기척이 느껴졌다.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을 터인데….

‘…뭔가… 이상하다….’

그건 그렇고, 이번에는  무슨 힘을 가진 마녀인가.
그 마녀의 칭호는  무엇인가.
보통 사람이라면 놀라 자빠져서 살려달라고 애걸복걸 하겠지만, 나는 오히려 이런 상황이 즐겁다고 느껴졌다.
호기심을 자극하고, 생사를 오가는 탓에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자극적이고,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일은 내가 살아 숨쉬는 인간임을 깨닫게 해준다.

“시간이 많이 늦었습니다. 그런데도 습격이라니….”

나는 여전히 고요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깊고 깊은 까마득한 구렁텅이 속에서 나는 희번뜩 눈을 뜨고 있다.
나를 방해한 자를 노려보고 있는 것이다.
아니, 내 것을 감히 건든 자를 증오의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양동작전.
마녀들이 세웠을 법한 계획이라고 생각한다.
한쪽에서는 페퍼를, 다른 한쪽에서는 나를 잡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타당한 근거가 있다.
내가 공방에서 무언가를 만지작 거리고 있을 때즈음, 이미 마녀들은 페퍼를 잡을 궁리를 마치고 준비를 해두었을 것이다.
이런 늦은 밤에 페퍼 혼자서 비행장에 올라가지 않을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 그녀를 유인했을 것이다.

그와 반면, 마녀들은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파악을 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내 방에 숨어들어온 누군가가 당황하지 않았을 것이다.
반응도 한발 늦었다.
마녀의 입장에서는 내가 방에 있으리라 추측하고 와보았지만, 없었던 것이다.
긴장이 풀린 그 사람은 늦은 시각 탓에 잠이 들었을지도….

‘…고생이 많으시네. 나 하나 잡겠다고…. 그분… 꽤나 사람을 굴리는군.’

왠지 측은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은빛으로 빛나는 나의 방을 이리저리 살폈다.
하지만 그 무엇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멀리서…는 아니고.’

소리가 바로  앞에서 들렸기 때문에,  마녀는  방에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문을 여닫는 소리도 나지 않았다.
벽을 부수지도, 뚫지도 않았기에 이 방에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던 것이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상대를 어떻게 찾아낸다는 말인가.
냉각수.
그것은 본디, 기계의 폭주를 멈추는 것이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기에, 폭주하는 기계가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냉각수의 역할은 굉장히 커다랬다.
냉각수는 단시간에 과열된 기계를 차갑게 하는데 능했다.
나는 그것을 더욱더 개량해서 그 시간을 대폭 단축 시켰다.
체감 1초 정도의 시간이면 어떤 것이든 얼어붙게 하기 충분했다.
그 유리병에 담긴 냉각수는 공기 중에 쉽게 증발한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젖으면 안되는 것들 투성이인  방안에 그것을 마음껏 던질  있다는 것이 된다.
문제는, 아까의 사투로 인해서 서너개만 남았을 뿐,  이상의 공격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신중히 던져야겠다.’

막대기로 냅다 휘둘러서 때려 맞춰볼까 했지만, 아까의 공격을 통해 유추해 보건데, 상대는 날카롭고 빠른 무언가를 조종하는 듯 했다.
마녀들은 어떤 방식으로 인가 무언가를 조종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몸을 조종하는 자도 있고, 자신 외의 무언가를 조종하는 자도 있었다.
그들이 조종했던 것은 실체가 있었던 것이다.
쉽게 말해서, 무에서 유를 다루는 것이 아닌, 유에서 유를 다루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일단은 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최대한 자극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시간을 벌을 필요가 있어 보였다.

“당신은 누구시죠? 무엇 때문에 나의 휴식을 방해한단 말입니까…?”

일단은 쉽게 당황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음직한 그 마녀에게 태연하게 물었다.

“…”

고요하다.
하지만, 미묘하게 공기의 흐름이 달라졌다.
호흡이 빨라졌다고 해야 하나….

‘…’

두 눈을 여전히 허공에 고정한 후, 주변의 분위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온도, 풍향, 무게, 인기척, 시선을 포함한 것들의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뇌속에 주입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감각을 폭주시킨다는 이미지로, 정보를 흡입했다.

스윽….
스윽….

고요해진 공간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자니, 무언가 슬그머니 움직이는 소리가 들렀다.
우측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갑자기 우뚝 멈추어 섰다.
나는 소리가 멈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수상한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 눈알을 굴렸다.
그러던 순간, 갑자기 공중에서 빛이 났다.
정확히 말하면, 달빛에 무언가가 반사되고 있었다.
 반짝임도 잠시, 그 빛은 나에게 빠르게 날아왔다.
마녀가 한 짓이라면, '던져졌다.' 라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피할 시간도 없어서 팔로 막기 위해 팔을 드는 순간, 내 몸은 뒤로 당겨져 넘어지고 말았다.

쿠당—

“아야야….”

그렇게 까지 아프지 않았지만, 한번 소리를 내보았다.
 3자에게 혼란을 주기 위해서다.
 공간에는 나와 나의 적만 있을 터이다.
그러니 누군가가 오해를 할 만한 상황은 없게 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곳의 분위기를 마음대로 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를 잡아당긴 것은 누구지…?
그런 의문이 머릿속에 떠오를  즈음, 누군가가 내 귀에 속삭였다.

“나네, 페스틴…. 갑자기 끌어당겨서 미안하네.”

오랜만에 들리는 차분한 목소리에 나는 안심이 되었다.

“하하하….”

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엉덩이를 털고 일어섰다.
잭, 잭….
그 사람이 나에게 소곤대었다.

“시간이 없으니, 빠르게 말하겠네.”

나는 행여나 마녀가 잭의 존재를 눈치챌까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자, 자네…?”

잭이 내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았나 라고 생각할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그런 오해가 없도록 나는 소리내어 말했다.

“마녀 씨. 여기에는 우리 말고도 다른 사람이 있는  한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난 또 자네에게 내 목소리가 안들리는 줄 알았네…!”

내가 은연중에 알고 있었음을 드러내자, 잭은 기쁜 듯이 속삭였다.
이런 상황만 아니었더라면, 소리치며 방방 뛰어다닐 정도였다는 것을 나는 어렴풋이 느낄 수가 있었다.
…그건 그렇고 이번 마녀는 무척이나 신중한 성격인 듯 하다.
본능적으로 답할 법한데도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숨죽이고 있을 뿐이었다.

“…질문에 대답도 안해주시고…. 섭섭하네요.”
“자네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을 제 12시로 치면, 제 4시 방향에 있다네.”

그는 내가 시계를 자주 보고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내가 바로 알아챌법한 방식으로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주저함 없이 제 4시 방향을 향해 냉각수를 냅다 던졌다.
가까운 거리에 있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스슥-
스스슥-

옷자락이 부딪히는 소리가 나면서, 내가 던진 냉각수는 허공을 갈라 벽에 부딛히고 침대 위로 떨어졌다.
벽에 옷을 걸어놓은 덕에, 충격은 별로 없었다.
다행이 깨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재사용이 가능할 것 같았다.
병으로 부터 냉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잽싼 녀석이었군….”
“아하하… 빗나가 버렸네요.”

내 귓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린다.
갑자기 들은 생각에 잭에게는 미안하지만 소량의 불쾌함을 느꼈다.
누군가가 내 정신에 침입하려 했었다는 강렬한 기억이 남아서인가.
그래서 이 상황을 빨리 해결 하고픈 마음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여전히 태연하게 행동하며, 신중하게 움직이는 상대를 어떻게 하면 적당히 자극을  수 있을지 생각해 보고 있었다.
내가 던진 것을 가뿐히 피하는 상대라면, 더더욱 그럴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나는 잠시 잭이 하는 말을 한쪽 귀로 흘리면서 조금 상대를 도발해 보려고 했다.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게 생겼습니다. 당신은 언제부터 저를 기다렸던 거죠?”
“…”
“그분이 당신을 아끼지 않나 보네요. 마구잡이로 당신을 굴리는 모습을 보니… 어째 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당신의 우두머리는 아둔한 걸지도…? 당신같은 인재를 그리 험하게 다루는 것을 보면….”

나는 능글맞게 상대를 빈정거렸다.
그분이란, 마녀들의 입에서 나온 무언가의 존재를 칭한다.
상황상 그들의 우두머리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 세상에 더는 존재하지 않는 분열의 마녀는 폭력적이고 무절제하다.
그런 그 마녀가 ‘그분’을 충실히 따르는 것을 보아하니, 다른 마녀들도 그와 같다고 생각해 볼  있다.
필시, 내 방에 있는 이 마녀도 같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의 생각은 정답이었는지, 당황하는 중후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그렇지는 않다!”

…싱겁다.
어찌 그리 우둔한 사람들 밖에 없는 것인가?
그분에게 충성심이 강해보이는 집단.
그분이라는 존재를 비꼬고, 폄하한다.
그러자, 신중하던 사람이 너무나도 간단하게 반응했다.
그리 소중한가.
그렇게 과민반응 할 정도로 소중한가.
화가 치밀어 오른다.
나와 다른 그녀의 가치관에 강렬한 분노를 느낀다.
내 두뇌는 아주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그녀들이 누구를 따르고, 그 우두머리가 무엇을 의도하고 원하는지 눈에 선하다.
그들이 가진 힘은 그들에게 너무나도 사치라고 느껴졌다.
그들의 탐욕이 무엇이든, 멸절시켜야 한다.
타인의 행복을 가벼이 여기는 그들의 가치관은 치를 떨 정도로 구역질이 난다.

“자네가 바라보고 있는 지점에서 제 2시네!”

잭이 나에게 위치를 귀뜸해 주었다.

“그래서, 당신의 칭호는 뭐죠? 아껴지고 있다면, 칭호 하나 쯤은 있을 거 아닌가요?”
“…상해의 마녀, 그분의 목적에 반하는 반동분자를 처형하기 위해서 왔다.”

이렇게 쉽게 그 마녀의 이름을 알 수 있었던 것에 적잖게 당황했다.

“…그런가요? 그럼 저는 이제 슬슬 자야해서….”

나는 주변의 소음을 확실히 듣기 위한 소극적인 태도를 버렸다.
적극적으로 잭이 알려준 방향과는 정반대로 몸을 틀어 성큼성큼 걸어갔다.

“페, 페스틴 자네…!”

 귓가에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무시했다.
그리고 나는 침대 위에 있는 유리병을 줍는  하며 조용히 속삭였다.

“위치를 계속 알려줘요.”
“…아까와 같은 위치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냉각수가 담긴 유리병을 집어 들었다.

“…”

틱- 티딕-

작은 입자들이 뭉치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쇠들끼리 맞부딛히는 그런 소리 같기도 하다.

‘온다.’

나는 아까 전에 나를 비껴 나간 빛을 유심히 관찰했었다.
그것은 단순한 날붙이였다.
날카로운 그것은 달빛에 반사되어 하나의 빛으로 보이게 된 것이었다.
냉각수를 주우며, 주변을 빠르게 확인했다.
그덕분에 나를 스쳐지나간 날붙이가 벽에 박혀 있음을 확인 할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얼마나 강한 힘으로 던져졌는지 유추해 볼 수 있는 흔적 또한  수 있었다.
계산하자.
각도, 속도, 그리고 던져지기 전까지의 시간까지.

“쓰읍… 하아….”

쐐애애액!

아까보다 강한 힘으로 던져졌는지,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더 컸다.
위치도 알겠다, 실려있는 힘의 정도도 알겠다.
피하는 것은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나는 피함과 동시에 유리병을 던졌다.
살짝 어깨를 스친 듯 하다.
불이라도 데인 것처럼 오른쪽 어깨가 뜨거워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목적은 달성했으니.

챙그랑—!

“으읏…!”

냉각수가 허공에서 깨져 점점 상대를 얼려나갔다.
다리에서 부터 점점 몸 전체까지,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게 얼리고 있었다.

“제, 젠장!”

심하게 당황하는 윤곽이 드러난 그 마녀에게 다가갔다.

“상해의 마녀? 날붙이로 찌른다고 해서 상해인가?”
“크, 크윽….”

차가워진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것인지,  마녀는 말을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자신의 몸을 분열시켜서 조종하는 마녀가 있던데… 그 마녀의 칭호가 아마 분열의 마녀라고 했던가요?”

몸의 제어가 더이상 되지 않는 것인지,  마녀의 형체가 점점 드러났다.
수수께끼의 능력으로 자신을 숨기고, 나에게 날붙이를 날렸다.
신체 대부분이 얼고, 기능을 정지함으로  대단한 능력은 이제는  수 없는 듯 했다.
그 마녀는 매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 마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각자 가진 힘은 특이하고 강력한데… 하나같이 멍청하네요. …더 할말은…?”

그리고 나는 주저함 없이 벽에 꽂힌 날붙이를 뽑아 들어 그 마녀의 목에 겨눴다.

“페스틴…! 안된다네!”

귓가에 나를 말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피곤한 상태고, 무척이나 졸린 상태라 나의 몸이 제어가 되지 않았다.
나는 아마도 자신감. 그러니까, 자만심에 취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일이 잘풀리고, 그동안의 단련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자신 외의 사람들이 전부 하찮게 느껴지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거기에 더해, 귀찮음이 극치에 달했다.
더이상 타인을 위한 배려도, 나보다 남을 더 신경쓰는 것을 그만둔다.
오로지, 내 목적과 이익을 위해서 결단을 내렸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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