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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화 〉#20 심판자. (6) (101/128)



〈 101화 〉#20 심판자. (6)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날붙이를 단순한 위협용으로 사용하려고 했다.
그렇게 위협을 해서 내가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일은 내가 생각한대로 흘러가지 않았던 것이다

푸확!

내가 손에 들고 있던 날붙이는 여러 파편으로 나뉘어서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순간적으로 뜨거워진 나의 오른손에는 밤이었음에도 선홍빛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였다.

"아, 아…."

방심해버리고 말았다.
상대가 아둔하다고 성급히 판단하여 일을 그르쳤다.
'내가 이겼다.'라고 생각을 해버리면 깊게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는 버릇을 고쳐야 겠다고 뼈져리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페스틴 군…! 괜찮나!"

잭의 외침에 나는 고개를 조금씩 끄덕였다.
다친 곳은 나의 손 뿐이었는지, 다른 곳에서 통증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파편이 튀기는 순간 빛이 여러 곳에서 났던 것을 보아 잭이 능력, 아니 힘을 써서 나를 보호한 것이 분명했다.

"감히… 나를 얕보다니…! 고작 이런 걸로 나의 능력을 봉인할 수 있을 거라 생각마라!"

한밤중에 외쳐대는 눈 앞에 얼어있는 마녀는 예의범절을 모르는  같았다.

"…지금은 한밤 중입니다만?"

나의 말에 그 마녀는 눈을 부라리며 빈정댔다.

"…그게  어때서?  죽을 너에게 말하자면,  왕궁에 너의 편은 없다는 거다…!"

'…힘을 다루는 것은 능숙했구나.'

"조심하게, 마녀가 괜히 마녀인게 아니네! 눈에 보였던 능력 뿐 아니라 무언가 숨기고 있는 능력이 있을 수 있다네!"

나는 잭의 조언을 듣고 순간적으로 무언가를 떠올렸다.
내가 읽었던 광물에 관한 책에 보면, 철가루를 끌어당기는 신비한 돌이 있다고 들었다.
그것의 원리는 '자력'이라고 설명을 하던데, 자력이라는 것은 철가루 외에도 다른 물질을 끌어당길  있다고 들었다.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의 주된 관심사에서 벗어난 주제였었다.
나는 흥미 외의 내용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최대한 내가 서포트를 해주겠네… 아까와 같은 것을 조심하면서 제압하게!"
"아뇨, 충분합니다. 원하던 정보를 얻었으니까요."

이미 끝난 싸움이라 나는 편안하게 잭의 존재를 밝혔다.

"…! 혼자가… 아니었어…! 이 사실을 알려야 해!"

나의 말을 들은 그 상해의 마녀는 얼어붙어 있는 자신의 몸을 움직이려 애썼다.

"당신, 힘을 다 썼네요."
"뭐, 뭐!"

나는 희미했던 그 마녀의 몸이 점점 선명해져 가는 것을 느꼈다.
아까 거론한 책에서 나왔던 이런 내용도 기억이 났다.
자력은 보이지 않는 힘으로써 소량의 힘이라면 금세 약해지고는 하지만, 뭉치면 뭉칠 수록 강해져 간다는 특성이 있다는 내용 말이다.
거기에 더해, 자력을 이용한 은폐 기술에 관한 기록 또한 볼 수 있었다.
…내가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당신이 어떻게 자력을 이용해서 자신의 몸을 숨겼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힘으로 날붙이를 뭉치고 퍼지게 한다는 것은 알겠네요."

냉각수가 담긴 용기에는 자그마한 철막대가 달려있다.
그것이 이 마녀가 힘을 쓸  마다 같이 움직였다.
드디어 묘한 움직임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

"뭐, 뭐라고…! 아무도  능력을 간파하지 못했…."
"됐고, 슬슬 자야하니, 끝내볼까요?"
"어, 어떻게 말인가…?"
"조금 폭력적이지만… 실험 하나를 해볼까 합니다."

잭은 일말의 두려움을 느끼는 것인지, 그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고 있었다.

"괴물이라 칭하는 존재는 몸 속에 코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괴, 괴물…?"

차분해진 나의 목소리가 나의 방안을 채우며, 빙빙 울렸다.
나의 표정을   마녀는 얼굴이 새파래졌다.
내 말의 의도를 알아챈 모양이다.

"그래서 저는 한가지 가설을 세웠죠, 과연, 마녀의 몸 속에도 코어가 존재할까? 라는 가설 말입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불가사의하고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불가능한 힘을 가졌다는 것을 설명할 수가 없더라고요."
"…자네…! 그런 방식은 옳지 않다네!"
"…언제부터 제가 착한 사람으로 보여졌나요?"
"…"

나의 앞에는 울상이 되어있는 가녀린 여성이 얼어붙어 있었다.
그러자 나의 마음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역시 피곤해져 있다.
귀찮기 때문에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정리하지 않고 그대로 행동으로 옮기려고 하고 있다.
평소의 나였다면, 행동의 결과를 생각하고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들을 생각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최대한 평화로운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피곤하다.
아니, 그것은 핑계일 뿐이다.
나는 나를 방해하고 귀찮게 하는 마녀라는 족속들을 뿌리뽑고 싶었다.
그것이 폭력적이든, 비인간적인 방식이든 말이다.

"그럼… 조금 아플겁니다."

나는 그런 비도덕적인 행위를 늘 해왔던 것처럼 행동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좀처럼 드러내지 않은 나의 내면을 거침없이 보여준다.
박스에서 뒤적거리며 마땅한 거리를 찾으려고 했다.
그 마녀 코앞에서 일부러 진심인 척 한 것이 통했는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누군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렀다.

"마ㅡ 말할게…! 알고 싶은게 뭐야…? 대답해주면… 살려주는거지…?"
"…알려주시는 겁니까?"

나의 물음에 마녀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 사람의 신념이 이리도 쉽게 무너지는 것을 보니, 불쌍하기도 하고 하찮아 보이기도 했다.
슬슬  마녀의 체온도 정상적인 범위를 크게 벗어났을 것이다.
 위로 점점 얼어 붙어가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 위력일 줄이야….'

내가 만들었다는 것을 잊어버릴 정도로 신기했다.

"그럼, 하나만 묻죠. 당신들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그…그건…. 모든 것은 왕의 복귀를 위해…."
"복귀…?"
"…고결한 뜻을 가진 왕에게 반역의 이빨을 드러낸 악에게 복수하기 위해…."
"…복수. 그렇다는 말은 한번 패했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기습이다…. 기습…. 기습만 아니었으면…."

냉기는 여전히 옮겨지고 있었다.
이 마녀는 죽기 일보직전인 자신의 상태에 동공이 크게 흔들리며 거친 숨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처절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 보았지만, 그저 차분히 내려다 보았다.
약속.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다만, 목적을 달성했으니 딱히 지킬 이유 따위는 없다.
악을 동정해 보았자, 무슨 이득이 있지?

"…그럼, 안녕히."

냉기는 마녀의 목을 타고 올라가, 턱… 그리고 이어서 얼굴 전체를 뒤덮었다.
절망이 가득한 표정으로 그녀는 생명활동을 정지했다.
…시간이 매우 늦었다.
이래서는 두어시간 밖에 자지를 못할 것이다.
나는 확실한 정보를 얻었으니 지체없이 얼음동상을 부수려고 했다.

"아…?"

제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곳에 보이는 것은 젊어진 여성.
힐다의 얼굴이 공포로 얼룩져 있었다.
…작은 입자로 빛을 왜곡시켜, 거짓된 모습을 만들어낸 것인가.
그게 가능한가…?

"페스틴 군…."
"괜찮습니다.  계획에는 제가 왕이 된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추악한 부분을 잭에게 들켰다는 것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가져다 주었다.

"…잭, 사람을 옮길 수 있나요?"
"…그렇다네."
"가능하시죠?"
"…알겠네."

잭의 얼굴에는 그늘이 드리워졌다.
나의 짤막한 몇마디의 문장들은  인간성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잭 조차도  앞에서 수단에 불과했다.
알아버렸다면, 마음놓고 이용할 뿐이다.

"…죄송해요. 그리고 감사합니다."

잭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한 뒤,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 * *


나는 눈이 번뜩 뜨였다.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음…?"
"페스틴, 어서 일어나세요. 식사시간이 훨씬 지났습니다."
"…그렇습니까?"

엘리스는 나를 내려다 보며, 걱정의 눈초리를 보이는 것도 잠시, 입가에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페스틴, 뭡니까? 유혹하는 겁니까?"
"네? 유혹이라뇨?"

유혹.
내가 알고 있는  유혹이 맞다고 한다면, 나는 당최 왜 그런 말이 튀어나왔는지 이해가 안간다고   밖에 없다.
유혹이라 함은 연애에 있어서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 중에 하나라고 심리학 책에서 읽어 보았긴 했다.

"흐흠… 그럼 그렇게 깨벗고 있는 것은 왜죠?"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나의 상체가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천천히 시선을 아래로 떨궜다.
그곳에는 살갖이 드러난 나의 상체가 보였다.

"…못본 걸로 해주세요."
"맨 입으로요?"

'…것참, 자나 깨나 엘리스 조심이다.'

* *

나는 엘리스의 교묘한 계략에 속아 넘어가 이렇게 잡일을 떠맡긴 상태로 일을 하고 있었다.

"하아…."
"…뭐야, 한동안 안부려 먹었더니 허약해졌네?"

그 잡일 중에는 베피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듣자하니, 엘리스는 나에게 일을 맡겨놓고는 페퍼를 포함한 그녀들과 놀러 나간다고 했었다.

"네, 네~ 갑니다요~"

오늘의 수발은 간단하다고 한다면 간단하다.
베피는 보통 낮에는 개인 방에서 휴식을 취하고, 밤에 순찰을 돌았기 때문에 생활 패턴이 달랐다.
그래서 방금까지 비몽사몽했던 그녀의 귀염성은 어디가고 악덕 상사 기질만이 나를 상대해 주고 있었다.
 귀염성에 대해 회상해 보자면….
…엘리스의 안내를 받아 베피의 방으로 들어가니, 잠이 덜깨 보이는 그녀가 휘청휘청 걸어나왔다.
넘어질 것 같아 부축을 하려고 다가가자, 내 옷깃을 잡고, 풀어진 얼굴로 나에게 묻더라.

"오빠…야?"

품에 안긴 인형과 그녀의 상기된 얼굴이 올려다보는 표정.
젠장.
어쩔 수 없는 푹신푹신함이다.
격렬하게 아우성치는 내면을 잠재우고 엘리스와 함께 베피의 아침준비를 도왔다.
그리고 잠이 깬 후, 아무일도 없던 것처럼 냉소하고 까탈스러운 아가씨로 변했다.
…젠장.
엘리스, 다시 돌아와 주세요….

"그럼, 청소좀 부탁해."
"청소… 말입니까?"

발디딜  없이 더러운 베피의 방을 내려다 보며 나는 한숨을  쉬려다 참았다.

"하암~ 그래, 청소… 엘리스보다 못하겠지만 말이야."
"그건 그렇죠."

인정하는 바이다.

"오늘은 엘리스가 쉬는 날이라고 했으니…. 걔 대신에 너라도  써먹어야겠다."

평소에 얼마나 엘리스를 굴려먹고 있는지 어렴풋이 알 수가 있었다.
엘리스의 노고에 칭찬을 아끼지 않는 바이다.

'청소 좀  해두지….'

나는 어른이라면 자신의 앞가림은 스스로 해야 할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 미숙하다면 어쩔 수 없지만, 최소한의 무언가라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나부터 그렇게 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그럼, 수고하라고~"

베피는 손을 흔들고는 침대인지, 무엇인지 모를 푹신한 곳에 자신의 몸을 뉘인 후에 잠들어 버렸다.

'…사람이 저렇게나 빨리 잠들 수가 있구나.'

늦은 새벽까지 순찰을 도는 것은 꽤나 힘든 일임을 나는 깨달았다.
어제의 나도 정신을 붙잡고 있기에 꽤나 많은 힘이 들었기 때문이다.

똑- 똑-

'…그녀의 잠을 방해하는 사람은 배제한다…!'

잠을 설친 그녀가 나에게 호통 칠 것만 같아서 무서웠다.
문가로 다가가 살며시 문을 열어보니, 토니가 서있었다.

"오… 토니…. 어쩐 일이야?"

나는 최대한 소곤소곤 말을 하며 토니를 반겼다.

"응, 보다시피 널 도우려고."

하지만 토니는 베피가 잠들어 있는 것을 모르는지 그 나름의 밝고  소리로 말했다.

"쉿…! 베피가 자고 있어…!"
"괜찮아, 베피는 잠귀가 어두워."
"뭐…?"
"봐봐."

그는 재미있는 장난감이 생겼다는 듯이 살며시 웃고는 쇠 막대 두개를 들고와서 힘껏 치기 시작했다.

땅— 땅— 땅—

나는 속으로 마음을 졸이며 그런 대담한 토니를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봤지?"

토니는 고개를 으쓱하며, 쇠막대를 다시 내려 놓았다.

"지, 진짜네… 그럼…. 이 땅꼬마야!"

아까보다 대담해진 나는 베피의 약점을 놀렸다.

붕—!

"앗!"
"아, 말하려고 했는데…."
"하아…. 살았다…."

내가 땅꼬마의 '땅'을 내뱉었을 때 베피의 팔이 내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
겨우 피해냈다….

'설마… 깬건가…?'

"베피는 '그' 단어에 반응해."
"그 단어…."

나는 새근새근 자고 있는 베피를 내려다 보았다.

'자고 있을 때는 인형 같은데….'

평화로움을 바라는 나로서는 난폭한 그녀가 버거운 것이다.

"쿡쿡… 너의 당황하는 모습은 오랜만인걸?"

토니는 입가를 가리며 조용히 웃었다.

"것참…."

나는 뒷통수를 긁적이며 토니와 함께 방청소를 시작했다.

* * *

우리는 한가로이 바닥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토니 덕분에 방청소가 굉장히 빨리 끝났기 때문에 나는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그나저나… 페퍼랑 어쩌다 비행장에 올라간거야?"
"어, 어…?"

나의 물음에 토니는 잠시 당황한 듯 했다.
그리고는 포기한 듯 한숨을 쉬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하아…. 나중에 놀래켜주고 싶었는데, 일이 이렇게 되었네."

토니는 아쉽다는 듯이 내 어깨에 손을 얹고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놀래켜줘?"
"…너, 마녀사냥 하고있지?"
"뭐, 뭐…?"

전보다 말이 많아진 토니는 날카롭게 내가 몰래하고 있는 것을 짚었다.

"다 알고있어, 페퍼도 마녀의 존재를 알고 있지?"

나는 아무런 반응도  수 없이 그저, 놀라서 입을 벌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빈민가에서 만난 그 후드를 뒤집어쓴 사람이 나야."

역시나 라고 한다면 역시나였다.

"하하… 그렇… 아니, 그런거야?"

나는 이미 어느정도 눈치챘다고 할 정도였다.
그런데 장본인이 스스럼 없이 말해버리니,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응? 너희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나눠?"

'…!'

잠이 덜깬 목소리로 베피가 눈을 비비며 우리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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