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2화 〉#21 가지치기. (1) (102/128)



〈 102화 〉#21 가지치기. (1)

"와하하;; 별거 아닙니다…."

나는 갑작스런 그녀의 등장에 당황하며 눈알을 바삐 움직였다.

"흐음~ 그래…?"

그녀가 아직 잠에서 덜 깬 것에 매우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베피는 이상하리만치 눈치가 좋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라고 한다면, 남들과 다른 그녀는 모두가 잠들고 난 뒤에 순찰을 돌며 괴물을 소탕하기에 충분한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정확히 어느정도의 기간 동안 그렇게 해왔는지 나는 알지 못했지만, 다년간의 경험이 쌓인 것을 보아, 그 날카로운 감이 더 예리해져 왔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그녀가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얼마나 들었는가.
베피가 우리의 적이라면 매우 큰 위험요소가 되는 것이다.
정보를 흘린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무기를 빼앗기는 것과 다름없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어디까지 들었는지 알고 싶은 마음에 허술한 나 자신을 상상했다.

"저, 어, 어…."
"…"

옆에서 토니는 아무말 않고 잠자코 있었다.
다른 상황이었다면 그의 도움이 절실했겠지만, 지금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다.
현재는 목표가 있으며 일부러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에, 그가 괜히 난입한다면 일이 틀어질 것만 같았다.
이런 나의 속마음을 알아챈 것인지 토니는 여전히 입을 열을 생각이 없어보였다.
베피는 수상해 보이는 나를 잠시 응시하더니,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흐음… 너, 뭔가 숨기고 있어?"
"예? 아, 아뇨…. 아무것도…."

나는 가까워진 그녀의 얼굴을 회피하듯 고개를 돌려버렸다.
얼버무리려는 나의 태도를 강하게 무시하고는 내 머리채를 잡고 자신의 눈에 똑바로 맞추는 그녀의 태도에 나는 겁을 먹고 말았다.

"내  똑바로 봐."
"…왜, 왜 그러세요…."
"바른대로 말해, 너 나한테 뭘 숨기고 있잖아."

사실이다.
그녀에게 나는 나의 포부를 숨기고 있다.
그녀를 포함한 모두에게 그렇게 하고 있다.
물론, 잭은 제외하고 말이다.
옆에서 토니가 잠자코 있다가 더는 못보겠는지 입을 열려고 했다.
나는 베피가 눈치 못채게 아무말도 하지 말라는 제스쳐를 토니에게 보여주었다.
등 뒤로 손을 보내 살짝 흔들었던 것이다.
그러자 토니는 눈을 몇번 꿈뻑이고는 열었던 입을 다시 다물었다.

"아… 저… 그게…."
"거짓말 하면 죽을  알아, 아까  말도 다 들었으니까 말이야."

'다…? 진정으로 다 들었다는 말인가?'

하지만 나는 그녀가 방금 전까지 잠에서   상태였다는 것을 무척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왠지 모르게 대담해진 나의 마음이 그녀를 설득하기 위해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아… 음…. 그게요…."
"하아? 아까 말한 후드를 뒤집어 쓴 토니를 만났다는  뭐야?"
"네?"
"빈민가에서 만났다면서? 둘이 왜 그런 곳에 간거야?"

그녀는 자신의 호기심을 이겨내지 못했는지 우리에게 솔직하게 물었다.
하긴, 그녀가 나를 단지 멍청하고 둔해빠진 노예, 아니 학생으로 생각한다면 복잡한 심리전을 할 이유가 없기도 했다.
뜸을 들이자, 조급해진 상대방이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크흠… 그게요…. 어쩌다 보니 휘말린 거라…."

사실을 말하는 나는 괜히 찔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흐음…? 진짜로?"
"네… 도둑이 저희의 것을 훔쳐가는 바람에, 토니랑 양동작전을 펼쳐서 제압했죠. 그치 토니?"

베피가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노려보니, 나는 토니에게 동의를 구했다.

"네."

토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간결하게 말했다.

"음…. 토니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건데…. 근데, 너희 둘만 있었어?"
"아, 아뇨… 페퍼도 있었어요."

'뭐야? 왜 내 말은….'

나는 베피의 차별에 억울함을 느끼며 불편함을 호소하려 했지만, 베피는 나의 머리채를 놓고는 시선을 돌려버렸다.
나는 그녀를 배려하기 위해서 살짝 숙였던 허리를 곧게 폈다.

"하지만, 너희 둘만으로는 설득력이 부족해, 어제의 소동도 있고 말이야?"

그녀는 우리를 골칫덩어리 보는 듯이 올려다 보았다.

'음…. 그런 키로 우리에게 윽박지르셔도….'

최근들어, 나의 성장 때문에 선생들의 신체들이 전보다는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
그런 나의 속마음을 눈치챈 것인지 베피는 나를 흘겨보았다.

'움찔….'

"페스틴, 너는 꿇어있어."
"예?"

쾅—!

'아니, 어째서.'

베피의 주먹 한방에 나는 그대로 이마를 땅에 부딪혔다.

'세상에나…. 뭐냐  괴력은….'

머리가 띵했다.
그래서 나는 좀처럼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아무래도 직통으로 맞아버린 모양이다.
그리고 페퍼에게 사실에 관해 묻기 위해서 간다고 하는 베피의 말이 희미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점점 멀어져가는 그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베피는 정말로 위험인물이다. 간파하고 그것을 헤집을 능력이 충분히 있는 사람이다….'


* * *

어쩌면 그녀는 선생들의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얻었을 수도 있겠다.
선생들은 은근히 아니, 꽤나 우리들의 동태를 잘 알고 있다.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 말이다.
…경비대.
어쩌면 그들이 우리의 외출을 감시하는 것은 아닐까?
아직은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 그들의 체계적인 구조에 나는 조금씩 흥미를 가져갔다.
호기심이란 정말 좋은 원동력이구나 라고 생각하며, 나는 내 자신이 뭐하고 있는지 다시금 생각해 보았다.

'음… 걸리면 죽는다 이거….'

나는 큰 마음을 먹고 선생의 방에 침입했다.
다른 선생들보다 나를 쉽게 용서해 줄만한 조이드의 방에 몰래 들어와 있는 것이다.
나는 베피에게 얻어맞은 후유증으로 머리가 아프다며 간이 침대에 눕겠다고 했다.
그래서 손쉽게 점심시간에 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 틈을 타서 의료실에서 빠져 나온 뒤에, 바로 옆방인 조이드의 방에 들어온 것이다.
우선, 조이드는 너무나도 수상하다.
그가  이전의 언행은 그가 충분히 마녀에 속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가설을 뒷받침 해주었다.
그게 사실인지는 두고 봐야 알 법한 내용이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한 것이다.
적극적으로 행동하겠다고.
평소에 눈여겨 본 조이드의 식사시간은 보통 15분에서 20분 사이다.
그 짧은 시간 내에 그의 방을 뒤지고 다시 원상복귀 해야 된다는 소리다.
조금 일찍이 단서를 찾게 된다면 정리를 해야할 것들이 줄어들기는 하다.
나는 우선 내가 조이드라면 중요한 것을 어디에 숨길지 생각해 보았다.

'서랍 깊숙한 곳?'

드르륵-

없다.

'침대 밑?'

여기도 아니다.

'그럼…. 책상 뒤?'

괜한 추측이었다.

'…어디지….'

사실은 숨기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려나?
괜한 나의 오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예전의 그가 말했던 모든 말은 단순한 추리 실패를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성실하게 조사를 했지만 놓쳐버린 점이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괜한 사람을 잡는 것은 아닐까?
과열되어서 눈에 보이는게 없어진 것은 아닐까?
이런 의문을 가지는 나의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한 동정심인가.
아니면 그에게 호감이 있기 때문일까.

나는 여전히 어리석다.
나의 감정은 여전히 나의 앞길을 막는다.
역시 나는 여전히 부족하다.
그러니, 나는 더욱더 감정을 배제한다.
설령, 그 어떤 감정도 느낄 수 없게 되어도 말이다.
설령, 소중한 사람에게 나의 애정과 그들을 생각하는 나의 마음을 전달할 수 없게 되어도 말이다.
나는 늘 바라지만, 얻을  없음을 아주 잘 알고 있다.
따라서 포기한다.
오로지 내 목표를 위해서.
나는 여전히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며, 약하다.
그저, 최선의 결과를 내려고 늘 발버둥 칠 뿐이다.
모든 위험요소를… 배제해야 한다.

"후우…."

오늘도 팜 아저씨 부인의 차가 그리워지는 날이다.


* * *


별다른 성과도 없이 나는 텅 빈 의료실에 홀로 누워있다.
가끔은 이렇게 머리를 식히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하아… 좀처럼 진척이 없네."

나는 내가 하려고 한 일들이 얼마나 어렵고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지 뒤늦게 깨달았다.
나의 목표 때문에 안일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아저씨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자네, 결과도 중요하다만…. 제일 중요한 것은 과정이네."

나는 팜 아저씨의 말을 속으로 되뇌이고 되뇌였다.

"과정… 과정이라…."

작동이 멈추어버린 기계처럼 나의 열정은 식어만 가고 있을 때, 이런 분위기 전환점이 필수라고 생각했다.
 나 자신을 새롭게 다져가야 했다.
늘 나 자신을 새롭게 만들어가야 했다.
늘  자신을 새롭게 변화 시켜야 했다.
나는 내 장비들만 개선하려고 했지, 내 자신은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오만한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이럴 때가 아니야….'

나는 멍한 머리를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나는 문고리를 잡으며 생각했다.

'오늘… 외출이 허가되는 날이었지?'

나의 성장을 위해서 하루를 희생한다.
여기서 나의 전환점을 만들어 낼 것이다.
나는 힘차게 발을 내밀었다.
가자.
나는 희망을 원한다.
그것이 설령 무의미한 꿈이라도 말이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비참한 현실에 무너지고 말 것 이다.
필시.
필시 나는 힘없이 무너져 내릴 것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 나는 기초를 다지러 가는 것이다.

* *


이곳이 어디냐 하면, 제 7구역.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
내가 절망적인 일을 겪으며 성장한 곳.
나는 난간에 메달려 화창한 하늘 밑에 펼쳐진 제 7구역을 내려다 보았다.
이곳 전망대는 도시 내 유일한 높은 건물이다.
나는 멀리서부터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깊은 감상에 빠졌다.
자연은 인간이 무엇을 해도 그대로 흘러간다.
자연스러움.
그것은 내 인생의 전반에 걸쳐서 내가 사용해온 한가지 방법이다.
내가 현재 애용하고 있는 방식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나의 겉모습을 보고는 그것이 나의 진정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정확한 증거는 없지만, 나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렇다.
정말이지 슬프게도, 나를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로 부터 내 자신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상충되고 만다.
다른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를 남들이 알아주었으면 한다.
실제의 나는 상냥하지 못하다.
친절한 것도 거짓이다.
어리숙해 보이는 내 자신도 그들을 방심하게 하기 위한 일종의 미끼일 뿐이다.

나는 무감각하며, 비인간적이다.
남들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나는, 머릿속에 그리고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다.
누가 자신이 살인을 저지를 것 같다고 두려움에 떨며 하루를 보내나?
누가 자신이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을 한번의 실수로 인해 전부 뒤엎어버리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는가.
다른 사람이 뭐라 생각해도 나는 내 자신을 컨트롤 하는데 너무 지쳐있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직  수가 없다.
미지수인 나를, 위험한 것 투성이인 나를 아직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늘 특별한 힘이 있기를 바랐지만, 한편으로 나에게 특별한 힘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역설적인 생각이 내 몸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점에서 나는  자신을 버리고 새로운 나를 이어나간다.

세대교체.
얼마전에 만난 탐험가.
그는 절망에 빠졌다.
그래서 나는 그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서 선뜻 나섰다.
이번에도 똑같다.
힘들어하는 나를 위해서 선뜻 나선 것이다.
상냥함을 꿈꾸던 나는 이제 버려야 할 때가 온  같다.
이제 그만 쉬어야  때가 온 것이다.
친절한 나도, 어리숙한 나도 말이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나의 발걸음은 어느덧 팜 아저씨의 공방에 도착해 있었다.

"…온 김에 차나 얻어 마실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갔다.

* * *


땅! 땅! 땅!

쇠망치로 무언가를 두드리는 소리가 공장을 가득채웠다.
나의 빈자리를 채우기라도 하듯 그런 소음이 가득차 있던 것이다.
어쩌면 나를 보고싶다는 마음을 잊으려고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들이 밀었을 때, …왠걸?

"뭐, 뭐하는거야?"
"자, 자네…! 말도 없이 무슨 일인가!"
"뭐야 형, 뜬금 없이."

그곳에는 망치를 잡고 있는 소브와 옆에서 무언가 지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팜 아저씨가 있었다.

"어머나, 언제 왔어요?"

등 뒤에서 풍겨오는 향긋한 차의 냄새가 나의 코를 간질였다.

'대체 뭔 상황이지…?'

나는 소브가 망치를 들고 기계를 수리하는 모습을 보며, 의아함을 느끼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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