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4화 〉#22 오만. (104/128)



〈 104화 〉#22 오만.

나는 단도처럼 보이는 것을 집어 들었지만, 들리지 않았다.

“아하하하하! 멍청이~”

옆에서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미치광이의 얼굴을  사람이 보였다.
타인을 깔보는 눈빛.
그의 시선은 그가 가진 속내가 무척이나 끈적하고 더러운 것이라는 점을 알게 해주었다.
이런 수준 낮은 속임수로, 이 무기점에 들어온 사람의 금품을 갈취하고 생명까지 앗아갔던 모양이다.
어째 이상하다 했다.
무기들은 판매용이 아닌, 장식용에 가까워 보였기 때문이다.
…보기 좋게 낚여버렸다.
단순히 나의 무기의 효율을 높이려고 왔는데, 어째서 항상 일이 귀찮게 될까.
나는 순탄하게 일을 진행하고 싶단 말이다.

“하아….”

갑자기 쇠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온다.

달그락- 달그락-
끼릭- 끼릭-

아주 자그마하지만, 마찰음 하나하나가 내 귓가에 도달한다.
그리고 곧  소리가 점점더 선명하게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걸~ 집을  있을리가 없지….”

제리. 라고 하던가.
이 가게의 주인이자, 나를 깔보고 있는 사람.
그는 무척이나 가소롭다는 듯이 나를 내려다 보았다.
일단, 그의 말은 사실인 것 같았다
아까부터 온힘을 다해 단도를 들어보려고 했지만, 이상하게도 선반에 딱 붙어서 들리질 않았던 것이다.

“형씨~ 여긴 말이야~ 아니, 이 ‘집’은 말이야~ 전체가 기계로 되어 있거든~”

‘그래서 아까부터 이상한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한 거구나….’

나는 칼을 집어드는 것을 그만두고 그 청년을 똑바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어떤 이유가 있었든, 그는 이 빈민가 중심에서 나름 큰 영향력을 떨치고 있는 듯 했다.
복장이며, 말투며, 가게의 분위기만 보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어떤 인생을 살아 왔든, 저런 기쁜 표정으로 살인을 저지르려고 하는 모습을 보니, 그가 어떤 사람인지 대강 느낌이 왔다.
자신이 최고라고 여기며, 낮은 처지의 사람들에게서 강탈한 것들로 자신을 꾸미는 사람.
겉만 번지르르하게 꾸며진 가게 장식들을 보며, 탄식이 절로 나온다.
어릴적의 나 역시, 어른들은 머저리라 생각하며, 그들의 돈과 보석을 훔쳤다.
 값진 것들은 사람의 생명을 위한 것일 수도 있었으며, 국가 규모의 사업에 악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오만한 나는 내 자신의 생존을 위해 남의 것을 탐하게  것이다.

‘이 집 자체가 기계. …갖고싶다.’

나는 태연하게 방안 구조를 둘러보았다.
방 구석구석이 움찔거리며, 집 전체가 움직이려는  꿈틀대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것을 지켜보는 나는 두려움 보다는 흥미로움이 마음에 가득했다.

얼마의 시간을 공들여 만들었을까?
얼마의 재료가 낭비 되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즈음, 그의 손가락 마디마디에 뭔가 끼워져 있었고, 희미하게 빛이 나고 있었다.
별안간 그는 자신의 손을 자신의 머리위로 번쩍 들어올렸다.
 순간 일제히 벽과 바닥이 요동치며 나의 중심을 흐트러지게 하려고 했다.

‘뭐, 뭐지…?’

“이번 멍청이의 주머니는 두둑~ 하려나~!”

이게 바로 빈민가의 사고방식이다.
최대한의 이익을 내기 위해서 상대를 방심시킨다.
그리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익을 최대로 끌어 올린다.
그런 다음에는 홀로 남겨져 있는 탐욕스러운 자신의 모습을 보며 만족한다.
어찌보면 나랑 굉장히 비슷한 방식이 아닐까 싶었다.
이전의 내가 사용하던 방식과의 차이점을 이야기 해본다면, 단 하나, 피해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수 배웁니다.”

빈민가에 발을 들여 필요한 정보를 얻었다.
방식과 경험.
 두가지의 값진 것은 추후에 나에게 이로운 작용을  것이다.
거기에 더해, 마지막으로….
이 빈민가의 사람들에게 조차 희망을 주고자 했었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 적의를 드러내는 사람을 마주하고야 말았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할 일은 정해진 셈이다.
응당, 제거해야 할 뿐.
내 계획에 있어서, 악의 굴레를 굴리는 것은 오로지 나 뿐이면 충분하다.

그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발 밑이 무척이나 불안정하지만, 차분하게 움직임을 살피고 그에 따라 내 발을 얹었다.
나의 움직임에도 그는 전혀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자신의 걸작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인가?
하지만 그것은 단지 오만일 뿐이다.

나는 품 속에서 냉각수를 꺼내 냅다 던졌다.
자그마한 유리병은 그 사람에게 날아갔다.
그리고 그 사람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것을 확인한 후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자신의 팔로 쳐냈다.

“…물? 뭐야 이건.”

하지만 그가 살고 싶었다면 절대로 그렇게 해서는 안되었다.
미리 품속에서 핀을 뽑아두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품속에 손을 넣는 것을 경계할 때까지 타이밍을 잰 뒤에, 주저함 없이 핀을 뽑았던 것이다.
보기좋게 얼려진 그의 한쪽 팔은 점차 그의 목까지 얼려가며  사람의 생명을 위협했다.

“아? 아아아아아???”

냉기는 그의 손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집 일부가 의지를 잃고 작동을 멈추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눈에 띄는 저 반지들은 이 집을 조종하는 매개체였던 모양이다.

“뭐, 뭐야…?”

그는 당황하며 자신의 손을 움직이려고 하였다.
그런 그를 뒤로 하고, 가게의 문을 한번 더 잡고 돌려보았다.
이대로 두면 그의 신체는 전부 얼어붙을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개자식… 이거 냉각수냐? 이 XX XX가아아!!!”

귀를 찌르는 그의 외침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내 두눈을 의심케하는 것을 목격하고 말았다.
기계가 형성된다.
그것도 허공에서.
무에서.
유로….

“굉장하시군요. 그런 특별한 힘을 가지고 계셨다니.”

틀림없이, 마녀의 그것과 같은 기술이다.
마녀라고 칭하였기는 하다만, 이 불가사의한 힘을 가진 사람은 남자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잭도 남자였지.

완성되어진 기계는 나에게 겨눠졌다.
히터와 토니가 사용하는 화기류에 속하는 기계다.
구조와 사용법을 알게된 나는 대처하기 어렵진 않았다.

위이잉-

“뭐하는 XX인지 모르겠다만…. 넌 실수한거야.”

저것도 코어를 에너지원으로 삼는 모양이다.
히터는 납과 은으로 된 탄을 사용한다.
토니는 코어에 의한 에너지를 응축시켜 발사한다.
이 사람이 후자와 같은 방식으로 탄을 발사 시킨다면….

잠깐의 섬광.
몸을 재빨리 틀어 탄의 궤도로부터 벗어난다.
예상 범위의 곱절에 곱절을 더한 궤도 밖으로.

―――!

그럼에도 탄은, 내 옷깃을 스쳐간다.
…나의 움직임에 그는 무척이나 당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추가로 이어지는 공격을 막기 위해, 망설임없이 그의 다른 쪽 손을 향해 냉각수를 던졌다.
반지들이 그 일을 가능하게 한다면, 얼려버리면 된다.
그리고 차분히 뒤를 돌아보았다.
육두문자가 귀를 광광 울려대는 것은 덤이다.

“XX!!!!!”

벽에는 넓은 구멍이 뚫려있었다.
그리고 소량의 전류가 흘렀다.
제대로 맞았다간, 뼈도 못추릴  했다.
시선을 돌려 정문 입구로 향해 걸어갔다.
품위있게 문고리를 돌려 나가려고 했지만, 여전히 열리지 않았다.
이 문은 그에게 제어받지 않았던 것이다.
…문과 거리를 두고, 냉각수를 던졌다.
그 문조차도 기계로 되어 있었던 것인지, 웅웅거리던 소리를 죽이며 작동이 멈추는 소리가 들렀다.
움직임이 멈춘 것을 확인한 나는 발로 문을 뻥 찼다.
부츠에게 새로이 기능을 추가해주었다.
강약을 조절하여, 좀 더 세밀한 컨트롤을 하기 위함이었다.

와장창-

기분좋게 부서진 그 문은 산산조각이나서 길바닥에 널부러졌다.
부서진 얼음 파편은 주변 바닥을 조금씩 얼리기 시작했다.

‘성능 좋네.’

나는 조용히  가게를 빠져나와 서늘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어이! 멍청한 자식! 나에게 도움을 줄 권리를 주겠다! 어이! 이 개자식아!!! 어서 이걸 녹이라고오오오!!!!!”

그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지만, 나는 그것을 무시한채 어둑한 그 밤거리를 홀로 걸어갔다.
가게는 요동쳤다.
…최후의 발악인가.
곧, 점차… 그의 목소리가 사그라 들었다.

콰과광ㅡ

굉음이 들린다.
집 전체가 무너져 내리는 듯한 그런 소리.
무기는 조달하지 못했다.
하지만 가게 내부에 있는 도구들의 이미지는 내 머릿속에 저장되었다.
그것을 토대로 새로운 장비를 개발할 뿐이다.
자재와 코어는 왕궁에 있는 것을 이용하면 된다.

* *

팜 아저씨와 팜 아저씨 부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런데 팜 아저씨 부인은 정말로 특별한 힘을 가진 것인가?
어릴 적 보았던 그것은 잘못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화장실을 가려던 찰나, 주방 문 틈 사이로 신비한 빛이 나는 것을 보게 되어서 나는 다가갔던 것을 기억한다.
그때 등 뒤에서  아저씨 부인이 나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 태연하게 나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셨다.
되게 일상적이고 평범한 대화를 마치고 싱긋 웃으시며 주방 문을 열었고, 그곳에는 신비한 빛이 없었다.
그때는 동화책을 많이 읽었던 때라 내가 잠시 헛것을 본 것으로 마무리 지었지만, 정보가 얻어진 지금의 나에게는 무척이나 수상한 일이 아닐까 싶다.
…아직 확실한 물증이 없다.
그러니 이것은 단지 의심해 볼만한 것으로 마무리 지어보자.

나는 왕궁으로 향하던 내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 팜 아저씨의 얼굴을 떠올렸다.
내가 마녀를  몰살할 것이라는 말에, 그는 심히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당황하던 사람이 말이다.
마치, 마음을 다잡으려는 듯이, 그리고 무언가를 지키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것 또한 의심해 볼만한 일이다.
…왜?
그는 그런 표정을 왜 지은  일까?
그리고 그것 외에도 수상한게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아무튼, 그런 것보다 지금 중요한 것은 마녀사냥 이기에,  질문들을 고이 접어 마음속에 담아두었다.
텅 빈 나의 마음속에 그런 것으로라도 빈자리를 채우지 않으면….
나는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나저나, 집 전체가 기계로 이루어져 있다니, 그런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이 아이디어를 적용하기에는 눈에 띄고 자재도 필요 이상으로 많이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을 간소화 해보는 것은 어떨까.

‘인형을… 탄다?’

아니다.
그것은 불편하다.
세밀한 조작이 불가능할 것이며, 사각지대가 너무나도 많아진다.
내가 나의 장비들을 내 몸을 다 뒤덮는 디자인으로 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가, 기동성과 시야확보를 위해서 그렇게 했다.
먼저 선수를 치기 위해서는 빨라야 했고,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나의 시각을 활용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게, 나는 만능이 아니다.
모든 것에 대비해야 했고, 모든 것을 준비해야 했던 것이다.
나는 졸고있는 경비대들 앞에 섰다.
그리고 조용하게, 그들의 사이를 지나 왕궁으로 들어갔다.

* *


저번에 상해의 마녀라는 자는 내 방에 침입해서 급습을 했다.
내 예상 밖의 힘을 가지고 있던 그 마녀를  페이스 대로 흘러가게 하지 않았더라면.
아니, 잭이 없었더라면 틀림없이 당했을 것이다.
그런 일이 앞으로 허다할 것이라는 예상에 나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이미 잠에 빠져들기 위해서 누운 것이지만, 내가 잠들었을 때, 나를 노리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오늘 밤 만큼은 뜬 눈으로 밤을 지셀 작정이었다.
앞으로 있을 불특정한 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위한 장비는 물론이고, 페퍼가 자신 스스로를 지킬 무언가를 만들어야 했다.
나는 둘째치고, 그녀는 누군가로부터 오는 위협으로 부터 보호를 받아야 했다.
페퍼는 나와 달랐기 때문이다.

본인 스스로 자신이 위험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지 않은 이상,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괜히 나 때문에 누군가가 피해를 입는 것은 절대로 원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선량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짐을 지는 것은 나 혼자서 충분하다.
그러니 나는 괜찮다.
그렇게 애써 생각하며 주의를 돌리고 싶었지만, 자꾸만 불편한 생각이 들었다.
어째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까?
그것은 나도 모르겠다.
‘내’ 알 바가 아니다.
보호.
내가 누군가를 보호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도움.
그것이 적절한 단어일 것이다.
나는 페퍼에게 조금의 도움과 언질을 하고는 그 뒤로 오로지 나만 지키고 성장시킬 것이다.
겉으로는 여전히 성실한 학생으로 남을 것이긴 하다만, 속으로는 일절 그러지 않을 생각이라는 것이다.
다 뒤엎고 처음부터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는 하지만, 일단 저지른 일이기에 계속 고수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이 오지 않는다.
피곤에 쩔어 기절하기 전까지, 아이디어를 구상해야 겠다.


* *

‘아.’

“페스틴, 아침입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어제 저녁 식사  안보이던데…. 몸이 안좋았던 거에요?”

어느새 잠들어버린 모양이다.
왜 밤은 짧을까.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쓸어넘기며, 천천히 일어났다.
온 몸에서 근육통이 느껴졌다.
아니, 자각했다.
이미 익숙해졌다.
 느낌은 꽤나 긴 기간동안 나와 함께 해왔기 때문이다.

“…네, 보시다시피…. 계단에서 굴렀거든요.”

나는 상해의 마녀에게 당한 상처를 엘리스에게 보여주었다.

“…”

그녀의 눈에는 심한 상처로 보였는지, 이것을 가지고 농담을 하지는 않았다.
…조금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늘 하던 교묘한 농담은 일절하지 않았다.

“크흠…. 그럼, 옷을 좀 갈아입겠습니다.”

대화를 하고싶지 않았다.
오늘의 계획을 이행하기 위해, 한시 바삐 움직여야 했다.

“…? 그 손으로요?”

하지만 엘리스는 문 앞에서 꿈쩍도 않고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도 이상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왜요?”

그 질문을 한 나는 곧바로 타인에 의한 탈의를 하게 되며, 그녀의 강압적인 태도와 함께 옷을 갈아입게 되었다.
덤으로 치료까지.


* * *

약간의 치욕스러움을 느끼며, 나는 식당을 향해 걸어갔다.
치욕이라 표현할 정도까지는 아닌 일이지만, 누군가에 의해서 벌거벗겨진다는 것은 생각보다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의 감상일 뿐이다.
평생에 걸쳐 스스로 해온 일을 다른 사람의 손에 걸쳐서 해보니, 느낌이 정말 생소했다.

‘귀족들은 이런 삶을 사는 것인가….’

엘리스는 내가 다시 감아놓은 붕대를 사정없이 풀어대고는, 새로운 붕대를 깔끔하게 감아주었다.
손에 감긴 붕대를 살펴본다.
…간밤의 치료는 엘리스가 해주었던 것인가….

누군가의 시선이  뒤에서 느껴진다.
…누구지?
잠시 생각을 멈추고, 나의 모든 주의를 그 시선으로 돌렸다.

‘페퍼? 줄리? 마리?’

가벼워보이는 발걸음 소리가 들리자, 온갖 사람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가지를 치고, 발소리의 주인을 찾기 위해 지금까지 얻은 정보들 조합해 나갔다.
제 7시 반.
아침 식사 시간.
식당으로 향하는 복도.
여성.
차분하기 보다, 발랄한 발걸음.
이 성격에 부합하는 사람은….
…잠깐.
예전에 줄리가 이 공간에서, 이 상황에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는 이상한 눈빛을 했다.
그 때 줄리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보였었다.
틀림없이 나에게 무언가를 한  같았다.
단순한 장난?
나를 놀려먹으려는 음흉한 눈빛이었나?
…그녀가 마녀라면?
줄리가 나에게 무언가를 한 것이라고 가정을 해보자.
그 수상한 일이 벌어지고 나서부터 페퍼의 상태가 이상했던 것 같았다.
그 원인은 나에게 있다고는 하지만, 평소보다  했다는게 중요하다.
시간이 흐른 뒤, 나의 뒤통수를 때리는 시점에서 페퍼의 이상함이 사라졌다.
그냥, 그간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었다고 생각했었다.
…어쩌면, 페퍼는 무언가를 보고 말았던 것인가?

나는 정확한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말이다.
어찌되었든, 이번에도 동일한 상황이 벌어진다고 한다면, 어울려 줄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려면, 허술한 나 자신을 상상하는 것이 필수라고 생각되었다.

‘그럼, 최악의 가설을 입증해보자.’

“페스틴!”

내 뒤에 있던 사람은 줄리였다.

“뭐야~ 다쳤잖아?”
“어, 안녕?”

그녀는 나의 어깨에 자연스럽게 팔을 두르며 말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지금 까지의 그녀는 일절  몸에 손대지 않았었다.
하지만 친한 척, 자연스럽게 접촉을 했다.
평소라면, 아무런 의심없이 소량의 불쾌함만 느꼈을 것이다.
…내 몸에 손대는 그녀가 매우 수상해 보였다.
나름 최선을 다해 경계하고 있으니, 사소한 행동들까지도 의심되기 시작했다.

“…다른 애들은?”

나는 평소에 보여주었던 내 자신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모올라~ 내가 으찌 아니? 아무튼, 이 누님은 오늘도 늦잠 잤다~ 이 말씀!”
“그래 그래….”

나는 한심스럽다는 듯이 그녀를 흘겨보고는 문을 열었다.
머리에 무언가가 부착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드레날린?
그것의 영향이든, 고양감이든 나의 감각은 폭주하고 있었다.
따라서 아주아주 미세한 변화를 재빠르게 알아챌 수 있었다.
나의 뒤통수에 무언가가 이변이 생겼다.
페퍼는 이번에도 같은 반응을 보일까?
의도적으로 그녀의 눈 앞에 아른거리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 * *


놀랍게도 아무일도 없었다.
머리에 부착된 것에 대해 마음을 다잡고 잔뜩 경계를 하기까지 하면서 대비를 하고 있었건만, 나에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까지 만났던 마녀들이 가진 힘은 대부분 파괴를 목적으로 했었다.
폭력적이고, 상대방의 마음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그런 위압감을 가졌었다.
줄리가 마녀라는 가설.
그렇다면 왜, 나에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걸까.
내가 기대를 했던 마음이 컸기에, 상실감 또한 클  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일이야 안풀려 왔으니까 말이다.
그냥 나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나의 공방에 들어가 페퍼를 비롯한 나머지  사람을 위해서 그들이 주문한 무기를 만들기로 마음 먹었다.
마녀들의 공통점은 밤에 가까운 시간, 아니면 새벽을 넘어 아침이 되기 전까지 나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와는 별개의 상황이 더러 있었지만, 주로 그들은 그런 시간대에 나에게 간섭해왔다.
그러니, 안심하고  할 일을 하자.

이 왕궁에는 몇명의 마녀가 숨어 있을까?
이 나라에는 몇명의 마녀가 숨어 있을까?
나는 호기심에 마음이 두근거렸다.
그래서 공방으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은 무척이나 가벼웠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앞에 일어날 일들은 나 혼자로서 버텨내기에 가혹한 일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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