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화 〉#23 괴물 사냥 (2)
“…왜?”
나는 그런 민감한 페퍼의 반응을 놓치지 않으며 재빨리 뒤돌았다.
“아… 음…. 아냐, 내가 잘못 본 거일 수도 있겠는데….”
“뭐를 잘못보는데?”
페퍼에게 하는 유도질문은 나에게 정보를 가져다주는 이익이 있지만, 마녀들이 그녀를 경계하게 만들어 페퍼를 위험에 처하게 하는 불이익도 있다.
하지만 해보라지.
내가 결코 페퍼가 다치지도, 위협으로부터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는 일을 만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음…. 아니야, 내가 좀 피곤했나 봐.”
이내 고개를 저으며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페퍼였다.
그녀 스스로도 이런 문제에 대해서 신중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듯 했다.
그녀가 나를 신뢰하고 있어도 말이다.
나도 이해한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신중하게 생각하며 행동하는 것보다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의 결정과 생각을 존중한다.
사람 대 사람으로써 그렇게 하는 것은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 그럼 쉬엄쉬엄 하고… 휴식을 취하는 것도 중요하니깐 말이야.”
“그래~ 일부러 와줘서 고맙네?”
“…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 필요 없어도 그렇고.”
나는 사뭇 진지하게 나의 생각을 전달했다.
“파하하하! 그래 그래~ 알겠어~”
나의 말에 그녀는 ‘가볍다.’ 라고 생각할 정도로 밝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결코 그녀가 나의 말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 아님을 나는 알 수 있다.
나름의 많은 시간 동안 그녀를 허투루 지켜본 것이 아니어서,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의도를 파악해버리고 말았다.
페퍼와 친해진 증거로써 그것이 드러났다면 좋았겠지만, 애석하게도 그저, 나의 관찰하는 감이 날카로워졌을 뿐이었다.
“이제 나는 가볼게.”
나는 손을 들어 인사를 하고는 몸을 돌려서 페퍼의 방을 나갔다.
그러는 와중에 그녀가 다시 한번 나의 뒤통수를 때리지 않을까 하고 기대감에 부풀었다.
이번에도 비슷한 상황에 비슷한 결과를 겪게 된다면 나야 더할나위 없이 좋다는 것이다.
뒤통수가 잠깐 얼얼 할 뿐이겠지만, 나는 특정 인물이 마녀라는 사실을 확정 짓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와라… 페퍼, 와라!’
잔뜩 긴장하며 페퍼의 매운 손을 기다렸지만, 문을 닫을 때까지도 그녀의 손이 나의 뒤통수에 도달하지 않았다.
‘아닌가….’
문이 닫히고 그것에 대한 확신이 사그러 지려고 할 때 즈음, 맞은 편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테리스가 서있는 것이 보였다.
“아, 안녕하세요?”
그녀도 이 왕궁의 선생이라 어느 정도 예를 갖추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네, 안녕하세요.”
그녀는 사무적인 말투로 나의 인사를 정중히 받고는 나에게 물었다.
“당신이 페퍼 양의 방에서 나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만.”
“…네, 그런데요?”
테리스는 얼굴을 가까이 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설마… 불순한 목적으로 방문한 것은 아닌가요?”
‘뜨끔.’
특정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노력하기 마련이다.
“네? 아, 아뇨…. 딱히 그런 건….”
“흐음…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무슨 용무로 여기까지 온 것이죠?”
나는 잊고 있었던 사실을 재차 확인하듯 내가 서있는 복도를 두리번거렸다.
“아, 죄송합니다. 페퍼에게 전달해 주고 싶은 것이 있어서, 부득이 하게 여성의 숙소에 들어오고 말았습니다.”
나는 테리스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이며 사죄했다.
규칙이란, 지키면 좋은 것이지만, 때에 따라서는 규칙을 무시하게 되어버리는 순간이 있다.
그것이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일부러 규칙을 어기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어쩔 수 없는 타당한 이유가 근거하기 때문에 규칙을 어길 수 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지금의 내 상황에 빗대어 본다면, 후자가 더 어울리기도 하겠다.
…변명이긴 하다만.
왕궁에는 몇가지 규칙이 있다.
그 중 하나는 방금 테리스가 언질을 준 ‘서로의 숙소에 침범하지 않는다.’ 라는 규칙이 있다.
그것은 개인의 사생활을 존중하자는 의도를 가지고 있으며, 어쩌면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 그런 규칙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다 만들은 ‘응축기’….
아니, 페퍼의 센스로 다시 태어날 그것을 전달해 주기 위해서 온 것이었다.
물론, 사심이 있기는 하다.
자그마한 것부터 노력을 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
그러니까, 페퍼와의 사이를 더욱 돈독히 하는 것과 같은 개인의 이득을 위해서 행동하게 되었다.
지나친 자기만족은 좋지 않은 것이긴 하다만, 그렇다고 또 그렇게 몰아 세우기에는 의도가 썩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 걸려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개인의 판단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지겠지만, 대개 마음이 넓은 사람은 용인하고 이해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편이지만, 남들도 나에게 그렇게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없잖아 있다.
“흐음…. 그런가요? 다음 부터는 숙소장인 저에게 전달을 하도록 하세요.”
“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페퍼 양에게 볼일이 있어서….”
“아, 예, 그러면….”
나는 테리스를 향해 고개를 거듭 숙이면서, 그녀의 가면 뒤에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유심히 살폈다.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을 관리해 왔는지, 그녀는 쉽사리 자신의 내면의 무언가를 나에게 내비치지 않았다.
나는 페퍼에게 별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여성들의 숙소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왔다.
* * *
“페스틴, 잘 되가?”
공방으로 다시 돌아온 나에게 토니가 고개를 빼꼼 내밀며, 나를 닦달했다.
“아~ 귀찮아.”
“…미안해.”
나는 심심하던 찰나에 토니에게 장난을 해볼까 하며 입을 놀렸다.
“포드가 주문한거 말이야.”
“……그래?”
그는 자신이 주문한 것을 이야기 하는 줄로만 알았던 것인지, 순간 경직된 얼굴이 갈피를 못잡고 허둥대는 것이 눈에 보였다.
곧 심통난 토니의 표정이 보이자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네가 주문한 거는 이미 다 만들었지.”
“…그래? 빠르네.”
“그야 뭐…. 간단하니까?”
실로 간단한 것이다.
그가 원하는 대로 디자인된 도면도 나에게 주어졌고, 그 도면은 친절하게 정확한 치수를 기입해 놓아 두었던 상태이다.
그래서 내가 보고 그대로 따라 만들기만 하면 되는 것이어서, 나는 그리 간단하게 만들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
그는 잠시 곰곰히 생각하는 듯이 동작을 멈추었다가, 이내 다시 자신의 공방으로 돌아가면서 말했다.
“그럼 코어를 가지고 돌아올게.”
“그래, 기다리고 있을게.”
나는 그에게 손짓으로 배웅하고는 나의 공방으로 다시 돌아왔다.
“페스틴~”
그 때 마리가 나의 등을 콕콕 찌르면서 나를 불렀다.
“…응?”
나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뒤를 돌아보았다.
“헤헤헤… 지금 바빠?”
그곳에는 밝게 웃으며 곱슬곱슬한 자신의 머리카락을 배배꼬는 마리가 있었다.
“아니, 당장은 그렇게까지 바쁘지는 않아. 왜?”
나의 물음에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이고는 나에게 조심스레 손짓을 했다.
나는 그녀가 귀를 대보라는 뜻으로 그렇게 한줄 알고 그녀의 얼굴을 향해 내 얼굴 옆면을 갖다 대었다.
“아, 아니~ 내 공방에 좀 와달라고~”
나의 돌발적인 행동에 당황하기라도 한 듯, 그녀는 손사래를 치며 땀을 흘렸다.
“그, 그래…. 그렇구만. 미안해.”
나는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은채로 그녀의 공방으로 향했다.
‘아, 그 전에….’
“토니! 마리 좀 도와주고 올게!”
조금 거리가 있는 토니를 향해 나는 외쳤다.
그리고 멀리서 토니가 고개를 끄덕이는 작은 몸짓을 확인하고는 그대로 마리의 뒤를 따라 걸어 들어 갔다.
* * *
“짠!”
“와… 뭐야?”
“에헤헤… 어때?”
“굉장한데…? 누구거야?”
“당연히~ 내 꺼지!”
“그래~?”
나도 모르게 마리의 말투를 따라하게 되며, 그녀가 신나하며 보여준 그녀의 걸작을 감상했다.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루어진 몸체.
그것을 연결해주는 튼튼해 보이는 관절.
다양한 무기를 탑제하고 있는 듯한 두터운 등.
이 모든 것이 조화롭게 이루어지도록 연분홍색으로 도색이 되어있었다.
날렵하고, 때로는 야들야들한? 암튼 되게 보기 좋았다.
“이걸…. 어떻게 사용하는거야?”
“응? 아~ 저번에 네가 조이드랑 대련할 때, 착용했던 걸 좀 참고 했어. 사용법은 네거랑 별반 차이 없을걸?”
“그, 그래?”
나는 눈을 휘둥그래 뜨면서 마리에게 물었다.
의외였다.
그 천하의 마리가 내걸 본따 만들다니.
이 숙녀분은 자신의 천부적인 재능을 썩히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호오… 그래?”
어느새 왔는지, 등 뒤에서 토니가 자신의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잠깐 돌아보니, 기다리다 지친 듯해 보였다.
“근데…. 어느 부분에서?”
“음… 파츠 별로 나눠서 제작하고…. 사용할 때는 합치는 거?”
“그, 그래…?”
나는 아무런 생각없이 눈에 띄는 버튼을 눌렀다.
“아! 그건!”
철컥-
내가 버튼을 누르는 순간, 마리의 다급한 외침이 들리며, 기계의 어느 한 부분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하으으….”
마리는 부끄러운 것을 들켜버렸다는 듯이, 튀어나온 무언가를 낚아채서 자신의 품속에 집어넣어 버렸다.
핑크빛 무언가가… 내 눈에 스쳐지나갔다.
“…그건 뭐야?”
토니도 그것에 대해 호기심을 느꼈는지, 적극적이게 마리에게 물었다.
“돼, 됐으니까…. 둘이 빨리 가서 볼일 봐….”
그녀는 자신의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우리에게 어서 가보라는 듯이 턱짓을 했다.
“어, 어… 그래….”
나는 마지못해 떠나는 척을 하며, 마리의 방심을 유도했다.
“하필 이, 이걸 눌러버리는 구나… 하이구…. 내가 미리 말할 걸 그랬네….”
우리가 등을 돌리자, 마리는 무어라 중얼거리면서, 자기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아니, 화를 내고 있었다고 하기보다, 투정? 엇비슷한 그런 느낌이다.
나는 토니를 힐끗 보고는, 씨익 웃었다.
토니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망설임 없이 바로 움직였다.
“그럼… 가기전에 확인하고 가야지! 헤헤헤!”
나는 짓궂은 웃음소리를 내면서 마리에게 달려가 품속에 있는 무언가를 뺏었다.
“와하하하하하?”
“크흡.”
나의 돌발적인 행동에 토니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런데 품속에 있는 무언가를 뺏은 순간, 나는 더이상 웃지를 못했다.
“안돼!”
경직된 나의 손에 있었던 그것이 황급히 달려온 마리에 의해서 도로 주인에게 돌아갔다.
그것은 분홍색 팬… 아니, 이건 차마 입으로 담지 못할 것 같았다.
심하게 얼굴이 빨개진 마리의 면전 앞에서, 그렇게 대놓고 말하는 것은 굉장한 실례가 아닐까 싶다.
“크흠…. 그럼.”
‘토니…! 어딜가는거야!’
토니는 정적이 흐르는 상황에서 헛기침을 하고는 서둘러 이 자리를 떠나버렸다.
“앗… 아…. 미, 미안…. 이런건 줄 몰랐어….”
“됐어!”
나의 사과에 그녀는 나를 쌔게 밀쳐버렸다.
그리고 빨개진 얼굴로 문을 쾅 닫아버리고는 소리를 질러댔다.
“페스틴 진짜 나빠! 나랑 절교야! 으아아아아앙~”
‘미, 미안하다….’
서러운 울음소리에 나는 서둘러 그 자리를 떴고, 언젠가 그녀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어야 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보다, 왜 거기에 그게 있었던거지?
* * *
“이, 이거…. 상당한 큰일 아니야?”
나는 그간 당했던 것을 장난으로 복수 하자는 의미해서 한 행동이었지만, 알고보니 사람으로써 어떨까?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불과,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신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한 나였지만, 이렇게 또 일을 저질러 버리고 만 것이다.
“…내 알 바는 아닌 것 같아.”
“너, 너무하는거 아니야?”
나를 위로해줄 지언정, 오히려 나를 모르는 사람처럼 대하는 토니가 얄미웠다.
‘하긴…. 아까의 내 업보도 있으니….’
“…어쩌지?”
이미 엎질러진 물, 나는 그녀에게 머리를 박고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뭘 어쩌긴, 지갑을 탈탈 털어야지.”
“그, 그래야 되려나… 에휴….”
자재 사느라 돈을 거의 다 쓴터라, 아주 소량의 은화만 짤랑거리고 있을 나의 지갑을 떠올리고는, 탄식에 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힘내, 내가 조금은 보태줄게.”
“진짜?”
“나도 너를 안말린 것도 있으니….”
“…아냐, 이건 내 실수야. 돈은… 안보태도 괜찮아. 몸으로 때우는 것은 익숙하니까….”
“그, 그래….”
지금은 조금 덜하지만, 지난 시간 동안 온갖 상황에서 베피와 소피의 수발을 다 들어주었던 토니의 스킬을 나도 좀 써봐야 겠다고 느꼈다.
“일단, 하던 걸 마저 하러 가자.”
“…그래, 그러자.”
* * *
“그래서, 코어는 다 가져왔어?”
“그럼.”
토니는 자그마한 미소를 얼굴에 띄우며 코어를 두 손 가득 들어올렸다.
그렇게 토니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줄로만 알았다.
“페스틴.”
이 불청객만 없었다면 말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