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0화 〉#23 괴물 사냥 (6) (110/128)



〈 110화 〉#23 괴물 사냥 (6)

“잘자.”
“응, 너도~”

나는 차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배웅했다.
배웅이라고 해도, 방문 바로 앞에서 하는 것이지만 말이다.
문득, 테리스의 경고가 생각났지만,  어떤가.

달칵-

닫혀진 문 앞에 서있던 나는 한순간에 고요함을 느꼈다.
그녀의 방 안에서 새어나오던 불빛은 고작, 문 하나 때문에 전부 사라져 버렸다.
언젠가, 내 앞을 막는 것들을 없애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나는 천천히 내 방을 향해 걸어갔다.


* * *

나는 침대에 천천히 내 몸을 눕혔다.
스르륵 소리나며, 부드러운 이불이 내 몸을 감싸 안았다.
천장을 말없이 올려다 보았다.
규칙적인 내 숨소리가 들려왔고, 그 박자에 맞춰서 나의 가슴이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했다.
나의 숨소리를 제외하고, 나의 방안을 채우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손을 들어 휴대용 시계를 바라보았다.
일정하게 깜빡이며 희미하게 내 방을 비추는 빛을 가만히 바라보다, 다시 손을 내렸다.
깜빡.
깜빡.
나의 눈꺼풀도 눈의 수분을 유지하기 위해서 깜빡거렸다.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는 눈꺼풀은 미세한 먼지들을 밀어내고 있었다.
그것이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정확히 볼 수는 없지만, 눈꺼풀의 역할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것처럼.
내가 생각하지 않아도, 내가 신경쓰지 않아도, 내가 알려고 하지 않아도, 세상은 움직인다.
일정한 박자를 타며, 일정한 속도로 나아간다.
사람은 그저 그것에 발걸음을 맞추기만 하면 된다.
굳이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서로를 방해하고 있다.
개인의 이익 때문에, 개인의 편견 때문에, 개인의 사견 때문에 서로의 길을 방해하는 것이다.
내가 바라는 세상은 타인의 이익, 그리고 타인을 바라보는 시각의 편견이 없다.
그런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타인의 생각을 존중할 것이다.
서로의 길을 열어주는 그런 ‘조화’가 가득한 세상일 것이라 예상해 보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이 거대한 세계를 내가 바꿀 수 있을까?
그것은 오만한 생각일 것이다.
‘내’가 아니라, ‘모두’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누구의 도움으로…?
바로, 비할데 없는 지혜를 가진 자에게 말이다.
그것은 내가 아니다.
내 계획의 일부에는 인간을 초월한 무언가의 존재를 찾는 것이 포함된다.
어째서 인간을 초월한 존재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한낱 인간이, 모두를 이끌 능력이 있는가?
‘모두’라는 것은, 악한 사람이든, 선한 사람이든, 어리석든, 지혜롭든, 어리든, 성숙하든, 개인의 욕심에 찌들은 사람이든, 남에게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이든 포함되는 것이다.
포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그 단어를 이끌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가?
있다면, 왜 이런 세상이 계속 되는가?

‘…’

나는 그 답을 찾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그리고… 나의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되겠지.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내가 사랑하는 것들.
나를 아껴주는 것들.
나를 보호하는 것들.
모든 것이 정말로 아깝지만, 내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변할 기회를 찾지 못하고 죽어갈 것이다.
이제, 그만하면 됐다.
아쉽다.
정말로 아쉽다.
나도 무언가를 해보고 싶었다.
열정에 넘쳐서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
그저 내 이기적인 마음때문에 누군가에게 화를 내보고 싶다.
차마, 사람의 입으로 내뱉지 못할 폭언도 내뱉고 싶다.
상대방의 감정을 의식하지 않으며, 마음대로 짓밟고 싶다.
나는 언제까지 참아야 하며, 언제까지 거지같은 나를 바로잡아야 하는 것인가?
오늘도 밤이 깊어간다.
눈꺼풀이 점점 내려간다.
이윽고… 나는 잠이 들었다.


* *

고요하다.
이른 아침은 알  없는 평온함이 존재한다.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이로써, 나는 모든 준비가 마쳐졌다.
앞으로 새로이 생길 세상을 이끌 사람들.
보호하고 싶은 소중한 사람들.
그리고 가능성을 품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나의 계획은 시작되었다.
순간적으로 머리가 가벼워졌다.

“…”

사라졌다.
머리의 먹먹함이, 잠을 자도 생기가 돌아오지 않는 나의 머리가.
멍한 느낌과 항상 피곤했던 느낌이 말이다.
그저, 포기한다는 것이 이리도 마음이 편해지는 거였던가?
탐욕에 가득찬 내가 마음을 비움으로써 머리가 맑아지는 거였나?
나는 뭔가, 바뀌었다.
그냥 그렇게 느꼈다.
나에게 낯설음을 발견하고 어색함을 느낄 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시간을 보아하니, 엘리스일 것이다.

“들어가겠습니다.”

얼마 노크하지도 않은채로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다.
그리고 엘리스가 침착한 그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내가 자는 사이에 불쑥불쑥 들어오신 모양이다.
깨어이있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놀란 듯 하다.
엘리스는 코 언저리 부분이 살짝 붉어져 있었다.

“…! 깨, 깨어있었군요.”
“네.”

그리고 이곳에는 정신이 한없이 맑아진  자신이 앉아있었다.

* * *

“일어나 있었으면, 인기척이라도 내지 그랬습니까?”
“…미안해요. 어제도 그렇고 의도치 않게 놀라게만 하네요.”
“으흠, 아, 아닙니다.”

나의 마음은 가벼웠다.
그녀를 놀라게 해버렸다는 일말의 죄책감이 사라져 있는 것이다.
무감각이 아니라, 평온함에 가까웠다.
나를 용서해주는 그녀를 믿고 있던 것이었다.
다시 관찰해 보니, 그녀의 눈은 포근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여느때 처럼, 다소 차갑고 굳은 표정이었지만, 그녀의 눈 만큼은 확실하게 나를 따스하게 대하고 있는 것이었다.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느낌이었다.
감각이 새로워졌다.
비관적이고, 단편적이었던 나의 시각이 달라진 것이다.
어째서?
어디서 부터?
그러고 보니, 내 안에 다른 사람이 있었던 것 같은 느낌도 사라졌다.
그 ‘죄악감’은 누구인가?
어째서 나의 마음을 옭아매고 있었던 것인가?
누가 이런 짓을 했는가?
누가, 왜 나를 억제하고 있는 것인가?
나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즐겁게 엘리스와 이야기를 하며, 아침 식사를 하러 걸어갔다.


* * *


“자, 여러분! 여러분에게 전달할 중대한 사항이 있습니다.”

조이드가 여느 때처럼 교탁을 꽉 붙들고 외쳤다.
주위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언제나 그랬던 조이드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감흥없다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벽 밖으로 나갈 준비는 되었나요?”
“벽…?”
“뭐, 뭐, 예?”

모두가 눈을 휘둥그래 뜨면서 당황하고 있었다.
나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최근에 여러분은 자신의 무기를 완성시켰을 것입니다. 고생한 장인들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네요.”

그는 자신의 양손을 부딪치며 아주 밝게 웃었다.
조이드가 마녀의 편이라면, 그의 가면 아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나는 잘 모르겠다.
아직 그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아주 소량의 주저함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차라리 그가, 확실히 마녀의 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증거가 눈에 보이기를 바란다.
그럼 주저함 없이 제압할 뿐이다.
하지만  그렇듯 일은 풀리지, 아니, 쉽게 풀리지 않는다.
아직 시간은 여유 있다.
넘겨진 세대가 드디어 첫 발을 내딛는 것이다.
나는 기대감에 부풀어 밖에서 활약할  자신을 상상했다.
내가 하게 되는 행동들은 파괴에 가까운 폭력적인 것들이지만, 괴물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것이다.
그런 빌미를 주어야, 내가 행동하는데 있어서 떳떳하게 보일 것만 같았다.
뻗어지는  팔 너머로, 넓고 넓은 세상이  앞에 펼쳐질 것이다.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앞으로 하게 될 일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일이라 해도, 무척이나 신났다.

* * *

부웅——— 하고 일정하게 울려대는 기계음 소리에 우리가 지쳐  때 즈음, 배는 하강을 시도하며 살짝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페퍼, 다 왔나봐.”
“…응.”

내 옷이 찢어질 정도로 붙잡고 있는 페퍼 덕분에 나역시 긴장되고 말았다.

“페퍼, 밖을 봐봐, 하늘이 예뻐.”
“응…. 어, 어, 어…. 그러네.”
“응?”

나는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페퍼를 보고는 다시 조용하게 창 밖을 바라보았다.
정말, 하늘이 맑구나.

* *

배의 엔진 열이 주위를 달구고 있을 때, 시원한 바람이 저 멀리 있는 검은 산에서 부터 몰려왔다.

“아직, 낮 인데… 뭘 할  있어요?”

안토리오가 선생들에게 물었다.

“응, 너희는 밤에만 나타나는 줄만 알았지?”
“그럼요, 대개 그 시간대에 베피가 나가니까요.”

그에게서 시선을 옮기니, 포드가 내가 준 것을 소중하게 자신의 품 속에 붙들고 있었다.
하지만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그런 생각을 가지며,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럼! 지금부터 인가요?”

마리는 의욕이 넘치게 자신이 만든 커다란 외골격을 가진 기계에 탑승하고서는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아니, 우선 찾아야지.”

베피가 그런 넘치는 열정을 끊어버리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당신의 감으로요?”

토니는 그녀를 힐끗 보고는 물었다.

“…어, 조금 자랑으로 들리겠지만, 나는 보통 사람보다 시력이 좋아.”
“그리고~ 다른 사람의 기척을 알아내는 감각 또한 좋지요~”

옆에서 조이드가 끼어들며 말했다.
그는 오랜만에 주인과 함께 하는 시간에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듯 했다.

“그럼~ 슬슬 움직이자~”

소피가 기지개를 피면서 말했다.
입이 찢어지듯 하품하는 것도 잊지 않고서 말이다.

“너희들,  배를 기점으로 너무 멀리 나가지 마라.”

히터가 우리들을 흘겨보았다.
그의 시선에서 귀찮은 일이 더이상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그런 간절한 마음이 느껴졌다.

“너희들의 시체를 치우는 사람은 없을 테니, 알아서 잘들 처신해라.”

브란도도 히터의 말을 거들며 으스대었다.
그는 자신의 커다란 풍채를 믿으며, 다른 사람들을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 덕분에 그의 훌륭한 기술들을 손쉽게 가로챌 수 있었다.

“걱정마, 사방이 탁 트여서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있으니까, 큰 문제는 없을 거야.”

나는 옆에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페퍼에게 말했다.

“어, 어….”

페퍼는 역시 높은 곳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데  7구역의 전망대는 좋아하는  같던데….
단순한 고저 차이가 아닌 듯 한 그녀의 취향에 대해서 나는 좀더 정보를 모으며 지켜보아야 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는 순간, 누군가가 내 옷자락을 여러번 잡아당겼다.

“페스틴.”
“…토니? 왜 그래?”
“나랑 같이 움직이자.”
“같이…?”

나는 토니의 권유에 페퍼를 힐끗 쳐다보았다.

“페퍼도.”
“그래?”

페퍼와 토니와 함께한다니.
…토니는 무슨 생각으로 함께 하자고 한걸까.

“…고마워.”

나는 토니에게 감사를 표한 뒤에 페퍼를 쳐다 보았다.
하지만, 밝았던 나의 감정은 한순간에 뒤엎어 졌다.
너머로, 까맣게 몰려오는 무언가와, 그것들의 뒤를 따르는 거대한 먼지 구름이 눈에 보였던 것이다.

“모두! 태세를 정비해!”

베피의 날카로운 외침에, 소풍 온 것처럼 평화로웠던 우리의 분위기는 한 순간에 엎질러졌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등 뒤에 달린 기계의 스위치를 눌렀다.
무수히 많은 괴물들을 바라보며,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그것들의 흉폭함을 온몸으로 느꼈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이런 상황은 처음인 듯 했다.
아무래도,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할 것 같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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