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화 〉#23 괴물 사냥 (8)
나의 몸에 있는 모든 근육이….
수축하는 느낌이 들었다.
눈 앞에 펼쳐지는 믿지 못할 상황이 시야에 들어왔다.
찰나의 방심으로 최악의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내가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누군가의 죽음이란, 이리도 쉽게 다가오는 건가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나는 다시 기억했다.
언제나 나는 원하는 것에 손을 뻗지만, 결코 얻는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간이 멈춘 듯이 느려지게 보이는 이 상황 자체가, 믿기지 않았다.
내가 더 빨리 움직였더라면, 상황은 나아졌을까?
공허함이라는 감정이 내 몸에 맴돌던 때에, 좀 더 이성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더라면 달라졌을까?
눈 앞에 펼쳐진 이 절망스러운 상황을 뒤엎고 싶다는 듯한 나의 외침이 평지를 가로질렀다.
“페퍼어어어!”
나의 커다란 외침은 넓은 평야를 흘러흘러 그녀가 있는 곳에 도달했을 것이다.
내가 잠깐의 방심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쾅—!
커다란 소리에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를 위해서 내 한 몸 바치고 싶었건만, 이리도 허망하게 잃어버린 현실을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어떠한 행동을 취했을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고 싶어서 잔뜩 힘을 주고 있었던 이마의 근육을 느슨하게 하고는, 다시 현실을 마주했다.
과연, 내가 보는 이 현실이라는 것은 쓰디쓴 것 일까?
살며시 뜬 눈 앞에서는 웅성거리는 사람들과 저만치 날아가버린 기분나쁜 형상의 널부러진 몸뚱아리 뿐이었다.
응…?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하고 눈을 크게 뜨고 살펴보았다.
페퍼가 서있었던 자리 주변에는 자욱한 흙먼지가 일고 있었다.
나는 굳어있던 두 다리를 다시 움직여 페퍼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흙먼지 틈새로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나에게 안도의 한숨을 짓게 만들었다.
“하아… 페퍼, 미안해.”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는 것인가?
아니다, 나는 나의 책임감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남들에게 내세우지 않는 나의 생각이기도 한 그것은, 다른 사람의 할일을 빼앗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그것은 바로 괴물들을 이 땅에서 송두리째 뽑아내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믿는 것보다, 나 자신이 하나하나 꼼꼼히 제거해 나가는 것이 안심이 된다는 것이다.
누가 또 마녀인지, 그들과 내통하고 있는 사람인지 알 수 있는 방도가 있기는 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상당히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에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고, 이 세상에는 더욱더 많은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너무 늦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나 홀로, 모든 것을 제거하는 것이 낫겠다 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원래 괴물 토벌대의 목적이 소수의 사람들이 대의 명분을 위해서 희생을 한다.
즉, 전장에는 소수의 사람만 고생하면 된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기도 했다.
나 역시 그러하다.
이것은 왕궁의 결정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몸뚱아리를 희생함으로 많은 사람들, 그리고 여기에 있는 전원의 노력과 시간을 내가 대신 가져간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조금의 자유라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고, 더 이상 피 비린내와 육체적인 고통을 느끼지 않게 될 것이다.
그저, 그들은 이제 자신의 인생을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 것은, 나로 충분하다.
그렇게 느낄 뿐이다.
페퍼는 뒤로 넘어져 엉덩이가 아픈지, 자신이 들고 있는 ‘빵야’를 자신의 옆에 내치고는 잔뜩 찡그린 얼굴로 자신의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나는 그런 페퍼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웠다.
“고마워~”
그 기괴한 괴물의 움직임에도 당황하지 않았던 것인지, 웃으며 가볍게 털고 일어섰다.
“미, 미안….”
“미안해 할 것이 아니지! 나도 긴장은 하고 있다구~!”
사과를 하려던 찰나에 그녀는 나의 말을 가로막고는 화를 내었다.
“그… 괘, 괜찮아?”
나는 손바닥이 까져서 핏방울이 맺히고 있던 페퍼의 손을 내려다 보았다.
“으응, 괜찮아~”
자신의 다친 손바닥을 의식하고 있었는지, 나의 물음에 그녀는 자신의 손을 등 뒤로 보내며 나에게로 부터 숨겼다.
“순간… 식겁했다….”
나는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내비쳤다.
“나, 나도…. 솔직히 말하면 그래….”
페퍼는 나에게 슬며시 다가와 귓속말을 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랬구나.”
나는 그녀가 괴물의 공격에 어떻게 반응했는지 뒤늦게 알게 되었다.
나의 손목에서 삐빅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먹먹했던 귀로 다양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페스틴…! 네 녀석… 의외인데…?”
브란도가 나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그러게, 주인 닮아서인가?”
베피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주인은 무슨… 텃세를 부릴꺼면 상황이나 파악하고 하시지 꼬맹이 양.”
히터는 작게 중얼거리고는 널부러져 있는 괴물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뭐, 뭐어?”
예상치 못한 태클에 베피는 당황한 듯 했다.
“…엄호 할 필요도 없었네.”
토니도 조용히 와서 엄지를 치켜세우고는 살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이야~ 놀라버렸습니다~ 어렴풋이 느끼기는 했었지만, 이정도까지 일 줄은 몰랐네요~”
조이드도 자신의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했다.
인형이 말할 소리는 아니었지만, 나는 그냥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갑자기 받는 칭찬세례에 나도 당황해 버리고 말았지만 말이다.
나의 노력에 대한 결실을 칭찬 받는 것.
그것만큼 즐거운일은 없겠다 라고 하겠지만,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그러니, 현재의 나는 전혀 기쁜 마음도 들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진정으로 바라고 있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나의 무언가가 아니라, 내 마음속 깊이 박혀있는 상처를 치유해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말과 행동을 보고 고맙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기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자신의 몸을 힘겹게 일으킨 그 괴물은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내면서 우리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저 녀석은 다른 녀석들에 비해 속도가 빠른 모양이야.”
안토리오가 방금 전의 상황을 되짚어 보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다른 개체보다 팔힘이 약하다는 느낌이 들군.”
포드가 그 괴물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게, 속도에서 나오는 힘을 실어서 공격하는 타입일 수도 있겠네.”
나도 그들의 대화에 참여하며 말했다.
“그렇다면, 힘을 모으기 전에 제거한다는 건?”
“지금?”
포드의 물음에 나는 다시 되물었다.
“피하지 않을까?”
안토니오가 차분하게 의문을 던졌다.
“그거야… 모두가 같이 공격하면 되지 않을까요?”
조이드도 처음보는 괴물인지, 확신하지 못하는 듯한 투로 말했다.
“그게 말처럼 쉬워야지.”
차갑게 딴지를 거는 베피의 말에 우리는 어느정도 동감하는 마음을 가졌다.
확실히, 그것은 실로 빨랐다.
300m 쯤 되어보이는 거리를 내가 뒤도는 잠깐 사이에 도달해 버리는 속도니, 상당히 빠르다고 할 수 있다.
“하아… 그냥, 쏴버리면 되는거 아니냐?”
히터가 자신의 품속에서 은색이 두드러지는 총기를 꺼내들었다.
곧 총구 끝을 괴물에게 맞추고는 주저함 없이 발포했다.
탕— 하는 총성과 함께 큰 진동을 일으키며 괴물에게 날아간다.
하지만 그 탄환은 괴물에게 꽂히지 않았다.
“뭐…?”
일순간 보였던 것은, 총알이 날아가는 속도를 훨씬 웃도는 빠르기로 총알을 회피하는 괴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거 이거…. 아무래도 꽤나 위험한 녀석인데…?”
히터는 당혹감을 숨기지 못하며 입꼬리를 움찔 거렸다.
“주저하지마라! 그러다 훅간다!”
소피는 등 뒤에 세워져 있던 낫을 들어 괴물을 향해 겨누며 계속해서 외쳤다.
“가보자고! 어떤 놈이던 간에, 우리를 방해하는 녀석은 다 찢어발긴다!”
“그래 그래! 짓뭉개 주자고! 인간이라는 생물의 위대함을 알려주자고!”
소피와 브란도는 신나게 외쳐대며 투지를 불태웠다.
그런 그들을 피곤하다는 것처럼 쳐다보는 히터도 자신의 총기를 재장전 했다.
“그래~ 그래~ 알겠다~ 곧 뒤따라 가마….”
철컥- 히터의 움직임에 따라 소리를 내었던 총기의 소리에 따라 우리는 일제히 태세를 정비했다.
모두가 한마음이라는 것은 이런 것인가 하고 떠올렸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모두의 단결력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그 중에서 몇몇은 다른 마음을 품고 있었다는 것을 너무나도 쉽게 알아채 버렸다.
사람은 자신의 겉모습이 어떠한지 자주 잊어버리는 것 같았다.
자신의 감정과 현재 겪고 있는 상황에 대한 반응들로 가득차버린 그들의 머리에는 자신의 겉모습을 꾸민다거나 하는 ‘제어’라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린 듯 했다.
그런 어리석은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나의 적들이 얼마나 부족한 사람들인지 다시금 깨달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