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화 〉#24 신세계 (1)
뚝- 뚝- 뚝-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물방울 같다는 느낌이 드는 청량하고 선명한 울림이었다.
“앗, 차가….”
그 한방울이 나의 뒷목으로 떨어져 나에게 차가움을 느끼게 해주었다.
차갑다고…?
아직은 겨울이 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이른 시기에 차가움은 어색하게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페, 페스틴… 천천히… 천천히 내쪽으로 와….”
아주 약간의 현기증을 느끼며 토니를 바라보았는데,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나에게 손짓하는 것이 보였다.
“왜…?”
“아, 최대한 빠르게… 빠르게 말이야.”
“왜, 왜 그러는 거야?”
나는 의문을 느꼈지만, 일단은 토니가 하라는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 그대로….”
내가 살짝 고개를 돌리려고 하자, 토니는 작지만 다급함을 담은 소리를 내었다.
“뒤돌지는 말고…!”
나는 흠칫 놀라며 뒤로 가려던 시선을 다시 앞으로 한채로 천천히 그리고 약간 서둘러서 걸어갔다.
천천히 내딛어지는 발자국에 맞추어 천장에서 물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져 갔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한기에 나는 소름이 끼쳤지만, 두렵지 않았다.
이와 같은 특이 현상에는 반드시 배후에 마녀가 있음을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토니, 어떤게 보여?”
“괴물…. 아니, 얼음 동상…?”
그게 무슨 소리인가?
갑자기 새벽에 나의 방에서 괴물이 나타난다는 것은 좀처럼 이해가 가지않는 상황이었다.
“아, 안되겠어…! 페스틴! 뛰어!”
한층 더 다급해진 토니가 방문을 열어젖히고 나에게 손짓을 했다.
나는 주저함 없이 상자로 몸을 날려서 들고 문으로 달려갔다.
그와 동시에 꽈드득- 꽈드득- 하고 무언가가 부서지고 붙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천천히 닫혀지면서 그 무언가의 정체를 잠시나마 관찰할 수 있었다.
푸른 달빛에 반사되어 보이는 영롱한 빛의 구조물이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이었다.
그것은 얼핏 보면 고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현재 문 틈 사이로 얇게 퍼져나오는 반들반들한 얼음을 보면, 그것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움직이는 것인가?
점점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는 것인가?
그것은 차차 조금 더 관찰해 본다면 알 수 있는 사실일 것이다.
일단, 정보를 모으는 것이 시급해 보였다.
옆을 보니, 토니는 초조해 하면서 도주할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페, 페스틴… 서둘러…!”
토니가 다급한 표정으로 내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도주… 아니면 자신의 무기를 들고 오려는 걸까.
토니의 의도가 어떠하든, 고개를 저었다.
“왜, 왜…?”
“무기를 가져올거야?”
“…그럼, 어떻게 하자고?”
“네 생각대로 행동해, 나는 조금 더 지켜볼거야.”
“지켜… 본다니… 너는 정말 위험한 방식만 고집 하는구나.”
토니는 나를 잠시 동안 응시하더니, 어둠속으로 황급히 달려 나갔다.
나는 조금의 시간이 있는 것 같아서, 상자 안에 있는 잡동사니들 사이를 뒤지고 뒤져서 휴대용 장갑을 찾아냈다.
“음… 이걸로는 안될 것 같지만….”
그것의 정체를 알고 싶다.
그렇게 하려면 이 냉기가 흘러나오는 문을 열어야만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냉기가 강렬했다.
금세 얼어붙을 만한 냉기가 느껴지는 바람에 한발자국 물러섰다.
“뭐냐 이건….”
상상 이상의 차가움이었다.
여름과 겨울철에는 조심해야 하는 것이 있다.
온도가 급격히 변화하는 시기에는 인체의 기본적인 체온조절 능력이 통하지 않을 때가 있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자연의 힘은 상상을 초월하니까 말이다.
아무튼, 여름에는 더운 날씨에 체온이 상승하게 되어버려 ‘열사병’ 이라는 것이 생길 수도 있다고 한다.
겨울에는 차가운 온도에 체온이 빼앗겨버려, ‘저체온증’ 이라는 상태이상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대개 차가운 물에 오랫동안 몸을 담그고 있으면 생기는 증상 이지만, 과거 기록에 들어있는 ‘얼음이 가득한 극지방’에 관한 정보에 따르면 그 극지방은 극심한 추위에 ‘동상’ 이라는 것이 걸리며 아까 말한 저체온증이 너무나도 쉽게 생긴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는 그런 극지방이 아닐 뿐더러, 겨울도 아니다.
그런데 왜 이리도 차가움을 넘어선 냉기가 흐르는 얼음이 한가을에 증식을 하고 있느냐에 대한 답은 마녀의 영향 때문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저체온증.
포드에게서 얼핏 들은 내용으로는, 체온이 기준점 이하로 떨어져서 신체의 신경기능이 저하된다고 한다.
그 이외에도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지 못하게 영향을 주기 때문에 지금의 나 처럼 어지러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누누이 말하지만, 나는 아직 의학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
이런 조그만 지식이라도 있음에 나는 감사를 표하고 있는 것이다.
마녀의 힘과 영향에 대해서 얼추 모양새가 잡혀나갔다.
하지만, 마녀의 위치는 어디이며, 어떻게 이 상황을 부드럽게 흘러가게 만드는지에 대한 답이 아직 이었다.
문을 열어서 그것의 자태와 성격과 특징을 살피려고 했지만, 상황이 영 좋지 않아서 아주 빠르게 좌절되고 만 것이다.
음…?
갑자기 오른손이 말을 듣지 않는다.
아마도 아까 문을 열기 위해서 내뻗어서 그 냉기에 닿았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상당히 위험한 힘인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호기심을 느끼고 있었지, 두려움이나, 불안함을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잠깐 생각하고 있을 동안, 점점 퍼져서 내 발 근처까지 뻗어왔다.
그런데, 나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것인지, 이리저리 퍼져나가고 있었다.
냉혹한 냉기를 가진 얼음은 갈피를 못잡고 있는 것이었다.
위력은 대단하지만 내 위치를 특정하지 못한다.
이 사실은 마녀가 나를 습격하는 것은 성공했지만, 내가 죽었는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이점이 있다.
나는 언제 한번 잠입에 쓰이지 않을까 하고 만들어둔 장갑을 꺼냈다.
이것은 ‘마찰력’이라는 것을 활용해서 벽을 탈 때 잘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기능을 가진 장갑이었다.
내 방 건너편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방문이 안된다면, 창문으로 보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 * *
“페, 페스틴…?”
옆방에는 포드가 지내고 있다.
포드는 갑자기 이른 새벽에 열려진 자신의 방문을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실례할게.”
나는 포드의 방에 있는 창문을 열어 젖혔다.
서늘한 바람이 나의 뺨을 타고 내 등 뒤로 흘러가는 것이 느껴졌다.
“에취! 왜, 왜, 왜이렇게 추운거냐….”
포드는 추위때문에 뒤척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벽 면에 서리가 껴있었고, 그가 덮고있던 이불 마저도 하얗게 쌓였다.
…왜 가만히 있었던 건지 이해가 안간다.
“…일어날 정신이 있으면 몸을 지킬 준비를 하는 것을 추천할게.”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창문 밖으로 몸을 내뺐다.
“응?”
“…! 뭐, 뭐…!”
심히 당황한 듯한 표정의 한 여성.
그녀는 내 방 창문에 달려있는 발판에 서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얼음판을 만들어 그 위에 있던 것이다.
푸른빛의 잘 정돈된 단발.
거기에 깊은 바다를 연상시키는 푸르고 어두운 빛이 그녀의 눈에서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펑키한 옷차림?
“뭐, 뭡니까…?”
“도, 도망을… 안갔다고…?”
“…그럼요.”
나는 주체하지 않고 휘발유를 던졌다.
“자, 잠깐!”
챙그랑-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불은 붙지 않았다.
“…의외인데요?”
“나, 나도 의외다.”
공기중에 수분이 많아서 그런가?
하지만, 내 휘발유는 그런 습기가 가득찬 공기에도 불이 확산되게 만들었다.
“…”
아, 가만보니, 냉각수였다.
것참… 역시 새벽에 갑자기 활동하는 것은 힘들구나.
잠이 덜 깬 것 같았다.
판단력이 흐려진 것을 보아, 피로를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것은 진작에 버린지 오래이지만, 나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인 듯 했다.
“…그럼, 다시 한번 더 갑니다.”
“의미가 없다는 걸 알텐데….”
분명, 냉각수에 닿았을 그 마녀는 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여 자신의 앞에 얼음벽을 세웠다.
벽에 맞고 퍼지는 불길은 한순간에 얼음을 녹아내리게 했다.
산소가 있는 한, 불은 쉽사리 꺼지지 않을 것이다.
“…? 부, 불…?”
“당신의 이름은 무엇이죠? 혹은 칭호라던지….”
어째 마녀들의 칭호를 듣는 것이 나의 취미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내, 내가 왜 말해줘야 되는거냐!”
…있는거냐고.
“…안알려주시는 겁니까…?”
“뭘 그렇게 시무룩 해지는거야…!”
“…아쉬우니까요?”
“…알겠어! 알려주면 될거 아니냐! 어차피 죽을 목숨, 그런 것 하나즈음은 알려줄 수 있지 뭐….”
싫은 티를 팍팍내면서도, 나를 불쌍히 여기며 흔쾌히 알려주시겠다고 한다.
“…그래서 뭐죠?”
나는 벽에 매달린채로 물었다.
새벽의 서늘한 공기가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그것을 더욱더 증진시키는 원인은 내 눈앞에 있는 마녀이지만….
“…윽, 좀 창피한데….”
웬일로 정상적이고 인간적인 반응에 나는 조금 흥미를 느꼈다.
마녀라고 하기에는 이 사람은 뭔가가 달랐다.
지금껏 만난 마녀들과는 다르게, 나에게 악의를 품고있지 않았다.
그저 사명감 하나로 내 앞에 나타난 듯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안알려 주는건가요?”
“재촉하지마…. 너 정말 특이한 녀석이네….”
“…그렇기는 하죠.”
“하아… 능글맞은 녀석.”
“…그래서요?”
“후우…. 그래, 나는 비정의 마녀. 너를… 크흑….”
마녀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자신의 머리를 감싸쥐었다.
“…농담에 어울려주지 않아서 비정인가요?”
엘리스 덕에, 나는 음흉한 사람이 되었다.
“아니야! 그분이 지어주는거라 나도 어쩔 수 없이 이걸로….”
“그분이요?”
“윽….”
비정의 마녀라는 사람은 그 단어가 등장하자마자, 얼굴을 구기며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어지간히 싫은 모양이다.
“페스틴…!”
등 뒤로 소리가 들려서 뒤돌아 보았다.
포드가 여전히 뻗친 머리를 정돈하지 못하고 나를 멍하니 보고 있었고, 그 옆에 토니가 자신의 무기를 들고 와있었다.
“아, 안녕. 나는 좀 바빠서.”
“너, 지금 그럴 상황이…!”
“하하하, 흥미로운걸 어째….”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거야?”
얼굴색이 노을빛과 닮아가기 시작한 비정의 마녀.
그녀는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소름돋는 눈빛은 전혀 아니었다.
사악한 악인의 눈빛이 아니었단 말이다.
어쩌면, 팜 아저씨 처럼….
아니, 이건 확정된 사실이 아니다.
이제 와서 뭘 숨기랴, 나는 팜 아저씨 부인이 마녀인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린 직후다.
하지만 명확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잠자코 있는 것이다.
아무튼,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마녀를 우리의 편으로 끌어당길 수 있지는 않나? 라는 가설이다.
그 전에, 잭의 도움을 받아 생포한 뒤에 좀 더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러려면, 우선적으로 잭의 존재를 알게 해서는 안되는 포드와 토니를 우리와 떨어뜨려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을 마친 나는, 주저함 없이 새로운 장비를 꺼내 들었다.
이름하여, 연막탄.
최근 대량의 괴물을 소탕한 관계로 많은 수의 코어를 습득할 수 있었다.
팍— 하고 소리를 내며 터지는 원통형의 물건은 자신에게 달려있는 자그마한 구멍으로 연기를 뿜어냈다.
“이, 이건 또 뭐냐 페스틴!”
포드가 놀라며 나에게 외쳤지만, 나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몰라.”
나는 황급히 휴대용 장갑을 손에 끼고는, 분열의 마녀에게로 몸을 던졌다.
“으왓!”
그 마녀는 놀라며 몸을 움츠러 들었지만, 나는 계속 움직였다.
얼음으로 된 발판을 나의 발에 신겨져 있는 부츠로 깼다.
유리가 깨지는 듯한 느낌을 받자 마자, 상당히 높이가 있는 공중을 박차고 뛰었다.
“뭐야아아아아악!”
아까 발판에 서있던 마녀의 다리를 잠깐 본적이 있었다.
밤이라 쉽게 눈치채기 힘들었지만, 떨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포드가 말해주는 사람이 태어나면서 얻는 일종의 ‘증후군’이라고 했던가?
그것 중에는 높은 곳에 대해서 발작을 일으킬 정도로 공포를 느끼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아마도 이 마녀가 거기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악!”
빠르게 아래로 하강하는 그 마녀를 낚아채 벽에 매달렸다.
나의 허리품에서 이성을 잃고 소리를 질러대는 이 사람의 모습을 보고, 높은 곳을 무서워 한다는 가설은 거의 확정시 되는 가설이다.
“잭? 보고 있으시죠?”
“…물론이네.”
나는 땅에 착지 하면서 이어서 말했다.
“…개화 가능한 마녀를 넘깁니다. 아무튼 뒤를 부탁해요?”
“…개, 개화? 방금 뭐라고 했는가?”
“조금 이따가 이야기 나누시죠.”
나는 잭이 있을 법한 곳으로 마녀를 던졌다.
“으악! 이 자식이!”
“…알겠네.”
잠깐의 빛이 나며, 비정의 마녀는 빨려들어갔다.
“사람을 뭘로보고오오오오!”
“휴….”
팟— 하고 흔적도 없이 마녀가 사라졌다.
그녀가 있던 자리를 잠시 동안 바라보고는 아직도 연기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많이 사용하지 못한 이 실험작의 한계를 알기 위해서 나는 벽을 타고 올라갔다.
마지막까지 내 작품에 대한 수정을 위한 실험을 해보는 것이었다.
것참… 나는 아무래도 상황파악을 못하는 사람인 듯 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