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화 〉#24 신세계 (4)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조금 당황했다.
아니, 적잖게 당황했다.
혼자 있으니 더 이상의 연기는 않겠다.
솔직히, 예상 외였다.
지금에서야 닥친 상황을 보며, 적응하고 생각을 바꾸며 나의 정신을 다잡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지금 이 시국에서는 그런 것도 의미가 없어보였다.
아까의 상황은 이러하다.
내가 던진 휘발유가 담긴 유리병은 ‘물컹.’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나에게로 돌아왔다.
데구르르 구르며 나의 부츠에 부딪친 그 유리병은 현 상황에서 나는 너무나도 나약 하다는 것을 대변해 주고 있던 것이다.
유리병이 깨져서 산소에 닿지 않으면 발화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발화 스위치가 눌러져도, 병이 깨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를 싸매며 고민하고 있었다.
나를 가두고 있는 무언가가 생물이라면 불에 의한 화상에 몸부림을 칠 것이다.
이곳이 무언가의 입 속이나, 소화 기관에 해당하는 장소라면, 그 화상에 대한 반응을 필시 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도 부드러운 내부의 벽은 내가 던진 유리병은 절대로 깨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나에게 각인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하하… 이를 어쩐담….”
나는 나의 턱을 매만지며, 이리저리 서성거렸다.
현재 소피가 가지고 있는 무기처럼 날카로운 무언가가 있었더라면 좋았을걸 하고 후회를 하고는 한다.
애석하게도 단검은 아침에 다급하게 준비하면서 미처 챙기지 못했다.
정말이지, 최악의 상황이다.
나의 건틀렛으로 뚫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다시 튕겨져 나오는 나의 주먹에 나는 탄식을 했다.
내가 가진 그 어떠한 수단도, 이 상황을 타개할 만한 여건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 괴물은 나를 어디로 끌고 가는 것 일까?
내가 옴짝달싹도 못하게 나를 가두고 있는 이 공간의 모양은 반구 비슷한 모양이었다.
이곳의 너비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나의 큰 발걸음을 기준으로 열 한 발자국 정도나 되는 것 같았다.
이곳은 상당히 넓다고 할 수 있을 정도라는 것이다.
여기서 사람이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을 제외하고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가 문제였다.
나는 가죽 가방에 손을 집어넣고는 이리저리 뒤적거렸다.
찰랑거리는 물이 담겨져있는 통과, 햇빛에 건조된 말린 고기 몇점이 다 였다.
이것은 순찰이라는 명목 하에, 최소한의 에너지를 육체에 공급하기 위한 마련이었다.
하지만, 이런 예외의 상황은 예측하지 못했는지, 며칠을 버티기 위한 식량으로써는 터무니 없이 부족해 보였다.
“것참….”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끈적거리는 듯한 느낌을 주는 벽을 바라보았다.
내 기억이 온전하다면, 분명 갇히기 전에 이빨처럼 보이는 것이 달린 벽이 나를 덮쳤다.
그렇다는 것은 이 곳의 중심에는 이빨로 촘촘히 닫아진 벽이 있을 것만 같았다.
사람의 치아는 입을 닫으면 완전히 빈틈없이 닫아진다.
미세한 틈이야 있겠지만, 입 안에 있는 무언가가 빠져나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보조하기라도 하듯, 피부 즉, 입술을 포함한 피부 조직이 치아를 덮고 있다.
어쩌면 나를 삼키고 있는 이 괴물도 비슷한 구조를 하지 않을까?
지금 이 상황에서 그나마 추측할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었다.
지금 나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방법이 계속해서 떠오르고 있다.
그것은 내 신체의 일부를 희생하여, 이곳에 대한 정보를 더 얻자는 계획이다.
하지만,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는 나의 계획 때문에,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겨우 붙들고 있었다.
도움을 청한다?
그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신호탄도, 주의를 이끄는 빛도, 육성으로 부르는 소리 조차도 이 암흑 속에서 빠져나가지 않을 것이다.
고작 한번의 방심 때문에 일이 틀어져 버려, 나는 화가났다.
내 안에 남아있는 감정 중에 하나인, 증오다.
그것의 총구는 오로지 나를 향해 있으며, 나의 마음을 꿰뚫고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홀로 남겨진 어린아이는, 공허함을 느끼며 이리저리 또 헤매게 된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시간이 흘러만 갔고, 나는 탈출하는 방법을 생각해 내기 위해서 사력을 다했다.
소리가 들렀다.
땅을 파고 어디론가 움직이는 듯한 그것의 소리 말이다.
쿠르르르르—
“…땅?”
나는 조이드의 말을 떠올렸다.
사람은 산소라는 것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고.
그 이유는 생물이라면 호흡을 통해 산소를 얻어, 몸에 필요한 에너지를 집어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주 기본적이고, 의식하지 않아도 습관처럼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제서야 생각난 부분이었다.
꿀렁거리며 움직이는 이것도 생물이라면, 호흡을 통해 산소를 얻어야 하지 않을까?
일정한 속도로 땅속을 움직이고 있다면, 산소라는 것이 꼭 필요할 것이다.
이 거대한 무언가가 아까부터 숨을 참으며 가고있었고, 벽이 움찔거리고 있는 것을 보아, 이것도 슬슬 숨을 참는 것이 한계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보통 사람은 코로 숨을 쉰다.
하지만, 병에 의해서 입으로 숨을 쉬는 사람도 있다.
괴물도 동일할까?
어쩌면 사람과 호흡하는 방식이 다를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자, 그동안 보아왔던 괴물들의 호흡법은 어떤가?
지금껏 조우해 왔던 그것들은 나를 경계하며, 입을 벌렸다.
그들의 입가에는 항상 연기 비슷한 무언가가 뿜어져 나왔다.
그렇게 거친 숨을 내뱉는 거였다.
“설마…?”
나는 몸에 힘을 주며, 나의 가설이 맞는지, 앞으로 예상한 일이 일어나게 되는지 숨을 죽이며 기다렸다.
콰드득- 콰드득-
“으엇…!”
내 몸은 크게 휘청거리며, 중심을 잃으려고 했다.
그 이유는 어째서인가 갑자기 경로를 변경한 무언가가 자신의 몸?을 비틀며 이리저리 꿈틀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미끌거리고, 잡을 곳이 하나도 없는 이 곳에서 나는 중심을 잡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다.
지금, 지금 밖에 없는 찬스를 단지 중심을 잃었다고 해서 날려버리는 것은 나로서는 절대로 용서하고 싶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웅-
나를 가두고 있는 무언가가 공중으로 날았던 것 같았다.
바닥에 고정되어야 할 나의 두 발이, 어째서인가 하늘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두웠지만, 상황이 달라졌음을 나는 바로 느꼈다.
쩌억-
틈이 생기고 곧 빛이 나기 시작한다.
숨을 들이 마시는건 잠깐의 찰나이다.
이 괴물은 힘이 세보였다.
괴물이 가지고 있을 폐라는 장기의 힘도 대단하지 않을까?
그래서 장시간 동안 숨을 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밝은 빛이 새어나오는 틈이 점점 더 벌어져 갔다.
지금이다.
지금 아니면, 잠깐의 찰나가 아니면 다시 나갈 수 없다.
이 괴물은 지능이 있는 것 같았다.
나를 경계하고 있을 터인 이 녀석이 나를 쉽게 놔줄까?
방심은 금물이다.
나는 주체하지 않고 바닥을 건틀렛으로 쳐냈다.
충격의 반발력으로 튕겨져 나간 나는 시원한 바람이 부는 바깥 공기를 마음껏 마실 수 있었다.
“그오오오오오….”
거대한 괴물은 나를 놓쳤다는 비통함을 느끼는 것인지 아주 낮은 소리로 신음했다.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포기했더라면 이 상쾌한 공기를 마실 수 없었겠지.
나의 몸이 땅으로 떨어지면서 나는 짜릿한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나는 영영 빠져나오지 못한채로 그대로 모든 기회를 잃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생각을 그만두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대로 숨이 끊어졌을 것이란 말이다.
타악-
텁-
내가 땅에 착지하자 마자, 괴물의 큰 입은 닫혔다.
쿠르르릉-
굉음을 내며 괴물은 다시 땅 속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나는 천천히 내려가는 검은 피부를 주먹으로 한대 쳐보았다.
외부는 여타 다른 괴물들 처럼 단단하고 튼튼한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내부.
그럼, 괴물의 내부는 다 이런 것인가?
그런 호기심은 둘째치고, 일단 이 곳을 벗어나는 것이 가장 좋아보였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완벽하고 안전한 도주 경로가 있을까?
허허벌판에서 그런게 있을리가 전무…하지 않았다.
“여, 여긴… 어디야?”
나무가 있다.
검은색의 나무들이 주위에 듬성듬성 있었다.
높은 키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한없이 낮다고 느끼게 해주고 있었다.
“우와….”
난생 처음으로 나의 두 눈으로 똑똑히 원목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동화책에서 보았던 푸르고 푸른 나뭇잎은 보이지 않았다.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나무는 어딘지 모르게 아파보이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쉽게 말해서 쇠약해 보였다.
왜… 쇠약해졌을까?
그런 생각할 겨를도 없이, 땅은 흔들렀다.
내가 이 괴물을 혼자서 잡을 수 있을까?
이 거대한 크기의 괴물을 나의 건틀렛이 꿰뚫을 수 있을까?
그런 의문들은 나의 마음에 주저함이라는 것을 놓고는 사라져 버렸다.
“아니야.”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아니, 아니, 아니야.”
조금 더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여기서… 굴복할 내가 아니야!”
외쳤다.
나의 앞에 다시 하늘로 솟아 오르며 크게 울부짖는 괴물을 향해 외쳤던 것이다.
“그오오오오오!”
그 괴물의 등장과 함께 무언가 반짝거렸다.
조금전의 나를 현혹시킨 그 덫인 것 같았다.
벌려진 입과 함께 하늘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던 그것은 주위의 나무들을 잘라버렸다.
상당히 날카로운 듯한 그것은 곧 나에게로 날아왔다.
공중에서 머무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아, 한쪽으로 몸을 날려 피했다.
핑-
촤르르르륵-
그것이 훑고 지나간 자리는 길게 움푹 패인 자국이 남아있었다.
“것참….”
그것의 강력함에 나는 한탄하고 있을 때 즈음, 무언가 보였다.
“어…?”
나는 처음 밖으로 나가 괴물들에 대해 설명해준 선생들의 말을 떠올렸다.
‘저 빛나는 부분이 약점입니다. 저곳을 꿰뚫든, 베든, 부수든 해야합니다.’
붉은빛으로 빛나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이곳이 허허벌판 이었더라면 알아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햇빛이 나무 그늘에 가려, 희미하게 보이던 그 붉은 빛은 나에게 기쁜 소식이 되었다.
쿠르르르-
또 이 괴물은 땅속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나는 서둘러 빛이 나는 곳을 향해 두 다리로 내달렸다.
그 괴물이 땅속으로 들어가기 직전, 온 힘을 다해 도약해서 주먹을 빛나는 곳 중심부에 내리 꽂았다.
괴물이 땅으로 도망치기 직전에 직격했다.
콰아아앙!
정말이지, 간발의 차로 아슬아슬하게 게임 종료다.
그 순간 땅이 요동치며, 괴물이 이리저리 몸부림쳤다.
나는 갈라지는 땅 속에 떨어지지 않도록 이리저리 피했다.
이 일대가 쑥대밭이 되고 나서야, 괴물의 요동은 멈추었다.
“것참… 힘이 넘치는 녀석일세.”
나는 힘이 다한 괴물의 빛나는 부분을 향해 걸어갔다.
“어…?”
나는 빛의 근원지를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이걸… 어떻게 발견한거지….”
거대한 몸집에 맞지않게 사람 손톱 만한 크기로 빛나고 있던 그곳은 나에게 경악이라는 마음을 가지게 해주었다.
…최근래의 내 몸은 뭔가가 이상했다.
잘 보이고, 잘 들리고, 빨랐다.
“…대체 뭐냔 말이냐.”
나는 호기심 보다 두려움이 마음속에 자리 잡는 것을 느끼며, 코어를 회수하고 괴물이 왔던 땅굴을 향해 걸어갔다.
* * *
때로는 도약하기도 했다.
상당히 긴 거리임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온 힘을 다해 발에 추진력을 담았다.
어두운 땅굴에서 부딪히게 될 거라는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별다른 흔들림이 없던 것으로 보아, 괴물은 일직선으로 온 듯 했다.
쉼없이 뛰어가고 있기는 하지만 종종 기계가 과열되는 바람에 잠깐 동안 걷기도 했다.
그것을 반복하며 꽤나 긴 시간을 이동했던 나는, 희미하게 보이는 빛을 발견했다.
아마, 내가 함정에 걸린 그 곳인 듯 했다.
나는 기쁜 마음에 서둘러 뛰어갔다.
나는 굶주린 배를 움켜쥐며, 나의 배에게 외쳤다.
“다 왔다! 실컷 먹여주마!”
빛의 끝에 도달한 나는 힘겹게 기어올라갔다.
상당히 깊은 구덩이 였기 때문에 올라가는데 상당히 애를 먹었다.
도약하면 되지 않나? 하겠지만, 애석하게도 과열이 된 순간이라 자력으로 탈출 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온 힘을 다해 기어올라온 나는 지쳐서 드러누우며, 숨을 헐떡였다.
“으하…. 몇시야 지금?”
나는 힘겹게 팔을 들어올려 현재 시각을 보려고 했지만, 내가 본 빛이 달빛임을 보게 된 순간 그럴 마음이 싹 사라졌다.
그래도 다시 한번 더 보기 위해서 힘을 써보았다.
“제… 20시… 8분…?”
무슨 터무니 없는 속도인가….
생애 첫 번째로 보는 거대하고 빠른 녀석이었다.
“젠장….”
나는 몸을 힘겹게 일으켜, 어기적 어기적 걸어갔다.
아주 멀리 희미하게 왕궁의 성벽이 보였다.
나를 반기는 것은 회색의 벽이었지만, 나는 나름 기뻤다.
희미해져 가는 시야에서 잠깐의 빛이 보였다.
아무래도, 나를 위한 구조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기쁨 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적… 이면 어떻게 하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