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화 〉#24 신세계 (5)
나에게는 돌아왔다는 기쁨보다, 적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게 들려왔다.
나의 심장이 요동치는 이유는 분명 그것 이리라.
나는 주춤 거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나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서 순찰을 나온 것인가?
베피라면, 역시 그녀라면 나를 발견하고 끝맺음을 하기 위해서 달려올 것이다.
분명, 그렇게 될 것이 뻔하다.
지금의 내가 그녀를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지 않는다.
체력도 많이 소모되었고, 기계 조차도 과열이 계속되고 쉴틈없이 돌아 갔었기 때문에 무리가 왔을 것이다.
낭패다.
이대로 가다간 큰일 날 것이다.
나는 그렇게 지레짐작 하면서 겁에 질렸다.
그리고 주저함 없이, 힘겹게 올라온 구덩이로 뛰어들었다.
나는 몸을 땅으로 부터 발돋움을 해서 띄웠다.
문득 든 생각은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한심 스럽다는 생각 뿐이다.
나의 정신은 의심의 나락으로 떨어져 간다.
의심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의지를 하고 싶은 나에게는 정말로 공허함을 들게 만드는 사실이다.
믿을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단지, 그들의 언행을 통해서만 결정짓던 그것이 나를 참을 수 없게 만든다.
그들을 믿고 신뢰를 한 내 자신 또한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 발 아래 천천히 펼쳐지는 장면을 가만히 내려다 보았다.
구덩이는 밝게 달빛에 비춰지는 부분도 있었지만, 여전히 어둠에 드리운 부분도 있었다.
나는 이쪽 저쪽의 모난 부분을 발로 짚으며 내려갔다.
쿵-
내가 바닥에 착지하는 소리가 추격대?에게 들리지 않았으면 했다.
“허억… 허억….”
팔다리가 긴 시간 동안 긴장되어 있었고, 무리를 했기 때문에 부들부들 떨리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두려움이 아닐 것이다.
필시… 팔이 떠는 것은 두려움이 아닐 것이다.
* * *
“이정도면… 됐겠지…?”
아무것도 먹지 않고 하루를 버텼다.
물도, 식사도, 햇빛도 없이 말이다.
깊은 어둠속에서는 차가운 공기만이 나를 감싸안고 있었다.
슬슬, 해가 뜰 시간이라 지쳐있던 나의 몸을 힘겹게 일어섰다.
아직, 내 체력에만 영향을 줄 뿐이다.
정신적으로는 강인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는 아직 나는 살아있기에 충분하다.
한가지 안좋은 점이라고 한다면, 왕궁을 나왔던 시점에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것이다.
늦잠을 자지 않았더라면 아침 식사를 거르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은 3일 동안 물을 마시지 않고 살 수 있다고 한다.
사람은 먹지 않고 7일 동안 살 수 있다고 한다.
정신마저 희미해지는 이 상황에서 그 정보가 나의 머릿속에 저장되어있는 제대로 된 정보인지 의심하는 것도 지쳤다.
틀리면… 죽는 거지 뭐….
입 밖으로 목소리를 꺼낼 힘조차 없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에너지는 남겨두려고 한다.
정말 결정적이고 중요한 순간에 힘을 쓰지 못하게 되어버린 다면, 그것만큼 아까운 상황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생존에 필사적이지만, 언제나 항상 만일을 위해 체력을 비축해 두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귀찮음’이라는 것으로 표현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긍정적으로 생각할 점이 두가지가 있다.
아니, 두가지나 있다.
한가지는 어렸을 적의 나는 이런 상황이 일상 다반사 였다는 것이다.
그만큼 나는 이런 상황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이고, 과거를 기억하는 나의 몸은 이 혹독한 상황을 버텨내 줄 것이라 생각한다.
또 다른 한가지는 어제 내가 말린 고기 몇점과 소량의 물을 섭취 했다는 것이다.
그것들이 지금 즈음 분해 되어서 나의 몸 속을 돌고 있을 것이다.
틀림없이 나의 지식이 옳다면 말이다.
사람이 자신이 섭취한 무언가로 부터 영양소를 공급받기 까지, 16시간.
어제 허겁지겁 들이킨 그것들이 언제 나의 몸 속으로 들어 갔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마도 지금 즈음 이면 충분한 시간이 흐르지 않았을까 하고 위안삼아 본다.
“하아….”
나는 부들거리는 다리를 움직여 어둠속을 걸어나갔다.
잠깐 눈을 붙이는 바람에 내가 향하고 있는 방향이 맞는지 헷갈려지기 시작했지만, 잠시 뒤의 나는 그것마저 깨끗하게 잊어버리는 상황이 와버린다.
* * *
“뭐…야…?”
벽을 짚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던 도중, 벽이 없어졌다.
휴대용 시계에서 나오는 희미한 불빛으로 비춰보는 벽은 뚫려 있었다.
그렇다고 할 정도로 파여진 그곳은 아까 조우한 괴물이 어디론가 향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나는 그 희미한 빛을 바닥에 비췄다.
“호오….”
흙이 덧 씌워져 파여있다.
그러니까, 원래 뚫려 있었던 길 위로, 다른 방향을 향해서 길을 뚫었다는 것이다.
나중에 뚫어진 이곳은 괴물이 왔었던 곳인가?
그것은 아직 알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나의 앞쪽에 있는 벽을 비추었다.
내가 지금 껏 걷고 있었던 땅굴과 같은 크기로 ‘ㅓ’ 자로 뚫려있었다.
기존에 있었던 땅굴과는 다른 땅굴에 나는 ‘탈출’이라는 머릿속에 방금까지 박혀있었던 개념이 사라져 버렸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아마도 호기심이란 것에 홀린 듯이 방향을 틀었다.
식량도, 물도 없는 이 상황에서 나는 무슨 얼어죽을 호기심이냐, 라고 나에게 딴지를 걸었지만, 나의 두 다리는 계속해서 걸어갈 뿐이었다.
것참… 될대로 되라지….
* * *
“으으… 눈부셔라….”
긴 시간 동안 햇빛이 한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곳을 걸어다녀서 그런지, 정상적인 것이 부담스럽다고 느껴지게 되었다.
나는 햇빛에 대한 감사함을 잊은채로 불평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짹- 짹-
“어…?”
난생 처음 들어보는 소리에 나는 호기심을 완전히 개방했다.
나의 눈 앞에 날아다니는 것은 분명히, 분명히 새였다!
들은 것처럼, 아니 책에서 본 것처럼 그것은 갈색의 깃털로 뒤덮여 진채로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내, 내가 헛것을 보고 있나…?”
책에는 새를 포함한 모든 동물들이 멸종되었다고 들었다.
인간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살아있는 생명체는 양파와 그 외의 향신료들 뿐이었다.
아, 덧붙이자면 괴물들도 있다.
아무튼 다시말하자면, 이 세계에는 그 어떤 ‘동물’도 존재하지도 않는 다는 것이다.
현실을 부정하려는 마음을 접어두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앙상한 나무가 아니었다.
동화책에서 보던 것처럼, 온통 푸르른 색의 나뭇잎으로 뒤덮여져 있었다.
바닥 또한 초록빛으로 온통 물들어 있었고, 시원한 바람이 이 장소를 흔들고 있었다.
어찌 이리… 평화로운가.
평소와 너무 다른 다양한 색채에 나는 그만 넋을 잃고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부드러운 곡선으로 된 언덕 사이로 새들이 날아다녔다.
푸른 잔디들 사이로 각양각색의 꽃들이 색을 아름답게 꾸며주고 있었다.
“이거… 완전히 미쳐버렸구만….”
분명, 나는 정신 나간 것이 분명하다.
배가 고프고, 갈증이 나는 지금 헛것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볼을 꼬집었다.
내가 딱 한번 읽었던 연애 소설에서 나오는 주인공은 너무나도 행복한 나머지, 꿈이 아닌가? 라며 자신의 볼을 꼬집었던게 기억이 난다.
나는 그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보며, 정말로 같잖다… 라고 느꼈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그런 말 할 처지가 아닌 듯 했다.
틀림없는 현실이다.
나는 얼얼거리는 나의 볼을 매만지며, 옆에있는 물구덩이를 내려다 보았다.
이 세상 물이 아닌 것처럼 맑고 투명했다.
“이, 이거… 마셔도 되는 건가?”
나는 뭐라도 나의 뱃속에 때려넣고 싶은 마음에, 나오지도 않을 침을 꿀꺽 삼켰다.
“에, 에라 모르겠다!”
나는 그 자그마한 웅덩이에 얼굴을 파묻고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나무 그늘에 가려 시원함을 유지하고 있던 물은 나의 목을 타고 속으로 들어갔다.
“크하~”
살면서 이리도 상쾌한 기분이 드는 것은 처음이다.
낙원.
한 종교 서적에서 본 표현이 이곳에 참 맞는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이, 이건… 꼭 알려야 겠어…!”
나는 이곳에 대한 증거를 찾기 위해서 두리번거렸다.
짹- 짹-
틀림없는 사실이다.
내 볼을 스쳐지나가는 바람이며, 싱그러운 냄새를 풍기는 풀이며, 나의 눈을 제 기능에 맞게 무언가를 보게 해주는 이 장소야 말로, 내가 찾던 ‘비옥한 땅’이다.
나의 계획에 걸맞는 자연이 가득한 땅이다.
나는 나의 심장이 두근거리고 있음을 느끼며, 서둘러 왔던 구멍으로 뛰어갔다.
* * *
시간은 흐르고 흘러 제 2시 43분.
내가 사라졌던 시간과 별반 차이가 없는 시각이다.
꼬박 하루 동안 나는 그들로 부터 없어졌었다.
나는 왠지모르게 온 몸에 힘이 넘쳤고, 어젯밤에 힘겹게 올라갔던 구덩이도 아주 가뿐하게 올라섰다.
“흠… 역시 그쪽 공기가 더 맑구나.”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잠깐, 나는 이것을 모두에게 알릴 필요가 있나?
적인 마녀들에게도 말인가?
역시, 이것은 당분간 숨겨두어야 할 사실인 듯 하다.
물론, 잭에게는 솔직하게 말해두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나에게 바통을 넘겨준 그에게도 말해주는 것이 좋겠지.
나는 마음을 다잡으며, 나를 볼 그들의 시선이 기대가 되었다.
그들에게 한방 먹일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라는 것이다.
그들의 반응을 통해서 그들의 내면에 있는 사람이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도 확실하게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때 였다.
“페스틴!”
“…어?”
누군가 멀리서 달려왔다.
그녀의 등 뒤로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 씩 나에게 오기 시작했다.
“흐흑… 흑… 흐아아아아앙!”
페퍼는 그 짧은 거리를 순식간에 달려와 내 품에 안겼다.
그리고는 아주 아주 서럽게,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나의 심장이 움찔거렸다.
왜지?
그녀는 왜 우는 걸까?
* * *
“완전… 걱정했다….”
며칠 사이에 폭삭 늙은 것 같은 소피가 나에게 말했다.
그녀의 눈 밑으로 다크서클이 드리운 것을 보아하니, 쉬지않고 나를 찾고 있었던 것 같았다.
부들부들 떨리는 그녀의 양 손은 곧 얼굴을 가렸다.
“하아… 다행… 이다….”
역시, 그녀는 좋은 사람이다.
“…페스틴…. 돌아와줘서 정말 고마워.”
토니도 눈가를 촉촉하게 적시며 나의 옷자락을 잡았다.
“…사람을 걱정하게 하긴, 그래가지고… 네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겠나?”
포드도 나를 깎아내리는 듯한 말투로 나를 타박했지만, 실상 그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나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정말… 다행입니다.”
조이드도 잠깐의 시간 동안 고생을 했는지, 인형임에도 얼굴이 수척해 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의 시선이 달갑지만은 않았다.
그의 주인은 베피다.
베피는 마녀다.
…라는 간단한 사실이 나도 모르게 그를 경계해버리게 하는 것 같았다.
“아하하… 죄송합니다. 폐를 끼치고 말았네요.”
“일단은, 푹 쉬는게 낫겠군.”
브란도가 나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그가 내밀은 손은 아프지 않았다.
“네,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낯설다.
오로지 그것만 머릿속에 떠올랐다.
거부감이 든다.
오로지 그것만 나의 마음속에 가득했다.
낯설고 어색할 뿐인 이 상황을, 나는 벗어나고 싶은 마음 뿐이다.
과한 관심을 받고 있다.
이래선, 이래선 내가 지금껏 살아온 인생과는 다르다.
* * *
“뭐…. 살아돌아오니까 무슨 기분입니까?”
조이드가 나의 어깨를 부축해주며 물었다.
“어, 어… 글쎄요? 나름의 수확도 있었으니, 만족… 했다고 해야 하나요?”
나의 말에 그는 움찔했다.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나를 보며 방긋 웃고만 있었던 조이드의 표정 너머로 무언가 이질감이 느껴졌다.
가까이 있던 탓 일까.
무언가가 느껴진다.
“고, 고마워요….”
나는 나의 방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뭘요. 나중에 파티를 열도록 합시다. 가까스로 생환한 페스틴 군의 복귀를 축하는 파티 말이죠!”
그는 일부러 과장된 몸짓을 하면서 아주 밝게 웃었다.
“아하하… 고맙긴 하지만… 사양 할게요.”
쉬고 싶었다.
나는 그가 열어준 방문을 넘어서 침대로 몸을 던졌다.
씻고 자시고, 일단 몸을 쉬어두는게 최우선이었다.
나는 곧 골아떨어졌다.
의식이 멀어지면서 희미하게 조이드의 말이 들렀다.
“정말이지, 페스틴 군은 항상 예상을 뛰어넘는 다니깐요.”
<계속>